신인특집 |강희정
슈퍼 블러드 MOON 외
옆집 사는 미경이가 독사에게 물렸다 그는 단숨에 테세우스가 되어 둥근 브라운관 밖으로 빛처럼 튀어나와 괴물을 물리치고 앞니로 살갗을 찢어 피를 빨아 휙휙 내뱉었다 곁에는 그 애 엄마 아빠도 있었는데
노을이 마을을 물들일 때 트럭 문이
열렸고 키가 큰 미경이는
자기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가버렸다
아테네의 왕이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친
신화를 내게 들려주던 그는
이불을 돌돌 말고선 번데기가 되어갔다
남쪽 사는 매미가 전국에 날아들어 지붕을 벗기고 벼 이삭을 넘어뜨렸다 그의 아내 열 손가락은 속수무책 비바람 뿌리치고 탈출한 가축들도 집 나간 지 얼마 안 돼 큰 물소리에 갇히고 말았으나 그의 우화는 오지 않았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누워 있는 마른 영웅 그의 한쪽 폐는 녹았고 다른 쪽도 곧 기능을 상실할 것 같다고 의사가 말했다 병원 밖 축축한 밤하늘 독오른 핏물이 달항아리에 흉터처럼 고여 있다 뒤늦게 부화한 늦매미가 붉은 물기를 털어내고 날개를 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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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그가 멸치 한 줌을 쥐고 있다 턱시도
코숏이 꼬리를 흔든다
주먹이 휘두른 폭력의 공기에
붉은 속살이 털을 밀어낸다
고양이를 지극히 싫어하는 부인이
애완견과 산책을 한다
목줄이 느슨해진 틈을 노려 시고르자브종은
자주 하얀 이를 드러낸다
입에 거품이 생긴다
짐승은 돌보는 게 아니에요 결국엔 해코지할 거예요 그녀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는 그를 보면서 개의 목줄을 푼다 인간과 살다가 버려진 겁니다 우리가 돌보지 않으면 대체 누가 돌본단 말입니까 고양이는 제 하인 대하듯 아쉬우면 애교를 부리다가도 어느새 쌀쌀맞게 돌아선다니까요 개가 고양이 뒤를 쫒는다 고양이가 사람을 물고 공격했다는 소식은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킥보드를 타고 지나가는
소녀의 종아리가 피를 쏟아낸다
혀에 피 묻은 개를 품에
안은 부인의 얼굴이 누렇다 그리고
다친 소녀를 향해 짐승 같은 비명을 내지른다
강희정
202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산맥》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