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생가, 관리실태
이대로 좋은가?
이육사 생가를 둘러보고 난 뒤 마음이 아주 무거웠습니다. 생가를 관리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먼저 들기 시작했지요. 이육사 생가를 처음으로 보게 된다는 기대를 잔뜩 안고 갔던 저는 그 관리실태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네요. 정말 여기가 이육사 생가가 맞는가 할 정도로 그 관리가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육사선생의 생가를 이렇게 관리를 하고 있으랴 하는 생각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사실은 저부터 반성 하나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안동에 산 지가 17년이나 되었는데, 이육사 생가를 이제야 처음으로 찾아가본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육사 생가가 그 곳에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 길은 안동의 메인도로인 간선도로입니다. 17년동안이나 자주 그 길을 지나다녔었지만 그 곳에 이육사 생가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요. 이건 저의 무관심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성하겠습니다. 약간의 변명을 늘어놓자면, 이정표가 하나 있기는 한데 그 이정표가 너무 작고 또 너무 높이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별 생각없이 달아 놓은 이정표인 것 같더군요. 며칠 전 우연히 그 이정표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제가 이육사 생가를 찾아볼 마음이 있었다면 그 이정표가 문제였겠습니까? 검색해서라도 찾아 봤었겠지요.
이육사 생가를 보고 난 뒤, 제가 그저 울분만 가지고 이 포스트를 쓰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관리실태,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 하나 짚어봐야 하는데, 이육사 생가를 처음 보는 순간 관리실태를 보고 감정이 격해지고, 정말 어이가 없어 그저 '광야'에서 "목놓아 울고" 싶었을 뿐입니다. 총체적 부실관리였습니다. 안동시와 경상북도에서는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육사 생가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민속자료를 이렇게 관리해도 되는 것인지요?
마침 이 날 이육사 생가에는 관리인이라는 한 남성분과, 시인이라는 분이 이육사 생가 마당에서 말씀을 나누고 계시더군요. 그래서 저도 이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이 분들도 이육사 생가 관리가 너무 허술하다며, 제게 울분을 토하며 하소연을 하시더군요. 특히 시인이라는 분은 이육사 생가에 대해 상당한 애착심을 가지고, 울분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그 두분의 이야기를 열거하면 이렇습니다.
"대학의 국문학과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인솔해서 가끔 여기를 찾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보여 줄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지저분하고 관리가 제대로 안되는데, 학생들이 무엇을 보고 돌아가겠습니까? 사랑채에는 그동안 무당이 살았었는데, 연간100만원의 사글세를 내다가 2년전쯤부터 도주하여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고, 안채에 지금 세들어 사는 사람은 연간 80만원씩 사글세를 내는데, 이 돈을 가지고 누가 어떻게 생가를 관리하는 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관리는 전혀 되지 않고 있고, 전에 살던 사람들이 집을 마음대로 집을 뜯어고치고, 또 지금 현재 이육사 생가에 세들어 사는 사람이 퇴근하고 돌아와야만 문을 열어주고, 비로소 이육사생가를 관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인이라는 분이 저더러, "여기는 무당이 살다가 짐을 구대로 두고 도주한 것 같다"며,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그 사랑채 문구멍으로 들여다보라고 하더군요. 정말 그 곳에는 부처님 같은 형상도 있고, 태극기도 걸려 있었습니다. 또 건물과 담 사이에는 무당집의 간판으로 사용한 듯한 간판이 널부러져 있었지요.
이육사 생가를 찾은 날 참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정말 안동 시민으로서, 보기에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그건 제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습니다. 안동시민들이라도 자주 이 곳을 찾는다면 이렇게 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리어왕, 로미오와 줄리엣 등으로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생가도 영국에서는 이렇게 관리를 할까요? 돈키호테로 잘 알려진 세르반테스의 생가도 스페인에서는 이렇게 관리할까요? 영국이나 스페인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생가나 세르반테스의 생가를 가지고 아주 소중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토록 유명한 이육사 생가를 관광자원화 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됩니다. 무슨 무슨 위원회나 자문위원회 같은 것은 이름뿐이어서는 안되고, 명실공히 안동의 관광자원을 발굴하고 개발하여 세상에 알려야 할 것입니다. 이토록 소중한 관광자원을 이렇게 사장시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다른 문제점들도 있습니다. 이정표가 너무 작고 높이 달려 있어서 찾기가 어렵다는 점은 서두에서 말씀드렸었고, 안내판이 생가 마당 안에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물론 생가 앞 소방도로가 좁아서 안내판을 생가 안에 설치한 것으로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
며칠전에 이육사문학관에 가서, 이육사선생의 따님이신 이옥비여사님을 처음으로 뵙고온 뒤라 생가를 보고난 뒤의 기분은 정말 착잡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육사 생가
이육사생가의 좁은 마당 안에 있다는 안내판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거기에 적혀 있는 내용을 약간 수정하여 여기에 옯겨 봅니다. 이 건물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0호로, 안동시 태화동에 위치해 있는데요.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였던 육사(陸史) 이활(李活, 1904~1944)의 생가입니다. 육사는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서 태어났는데, 저항시인으로 유명합니다.
홑처마에 'ㅡ'자집으로 안채는 맞배지붕이고 사랑채는 팔작지붕입니다. 사랑채와 안채의 칸수가 같고 앞뒤로 'ㅡ'자형 집이 평행으로 배치되어 있 서로 꼭 같은 공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고 합니다. 사랑채와 안채는 서로 지붕이 맞닿아 있을 정도인데, 이 사이에 대문간을 만들었습니다. 안채는 부엌, 방,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랑채는 방3칸과 왼쪽에 부엌을 두었다고 합니다.
이 집이 안동 시내로 옮겨온 후에 한쪽 일각문(一角門) 자리에 대문을 내고 원래 대문은 없어졌다고 하네요. 원래는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6년 이 곳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원천리 생가터에는 육사선생의 시비가 건립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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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생가 관리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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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전부터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사랑채 안을 문구명으로 들여다보았더니 ...
이육사 생가 관리실태
- 2013년 2월 2일, 토요일
- 이육사생가 내 안내판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