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세시 화정역에 5학년 쑥코 모둠 아이들을 기다린다.
작은 국화꽃 냄새가 좋다.
가지를 세어보니 스무 사람 넘게 줄수 있다.
이꽃 받은 사람도 오늘만큼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범기도 학교에서 오자마자 같이 나왔다.
30분이 넘어도 아이들이 오지않아 준혁이네 전화 했더니 다들 오늘이 아니고 토요일 인줄 알았다 한다
아, 내가 아이들과 지내는 카페에 토요일 오후에 간다고 같이 갈사람 가자 했더니만 그 이야기 인 줄 알았단다. 에그 또 내 실수구나 싶었다.
그래도 내가 먼저 주 수요일에 우리끼리 가자 약속한건데
아이들이 변경된 줄 알았단다.
그래도 난 쑥코 아이들과 함께 가야지 싶었다.
네시가 다 되니 준혁이와 신희만 온다.
"어 슬아하고 세연이는?"
"못 온대요. 시간이 안된대요"
"그래? 슬아하고, 세연이 무척 가고 싶어했는데."
할 수 없이 우리끼리 가자했다.
'어쩜 이 시간이 이 아이들과 마지막 시간이 될지 모르는데.
마지막 날 함께 밖에서 보내자고 했는데.
봄부터 반전 집회 다니면서 박기범 아저씨한테 편지쓰고, 기도하고 그랬는데. 박기범 아저씨 무사히 돌아왔다고 했을 때, 기뻐하고 얼굴 보고 싶다고 했다.
난 그때 돌아왔으니 되지 않았느냐고 달랬는데. 언젠가 만날 날 있을거라고.
이제 아저씨 진짜 얼굴 볼 수 있는데. 학원가느라 시간 내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슬아도, 세연이도 못와서 많이 서운했을 것이다.
영어 학원 하루정도 못가도 되지 싶을텐데. 밖에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없이 소중할 수 있는데.
그리고 마지막 글쓰기 시간인데.
아, 참 어렵다. 사실 속으론 좀 속상하다.
어른들이 아이들 마음도 좀 헤아려주지 싶다.
아, 이것도 내 욕심이다'
신희와 준혁이는 12월부터 우리 집으로 와서 글쓰기를 하기로 했으니 헤어지지 않아서 퍽 다행이다.
신희는 지하철 표를 처음 사본다 했다.
"선생님 이 표 여기에 넣어요? 이 표 잃어버리면 안돼요? 왜 안돼요? 갈 땐 다시 사야해요? 난 지하철 무서운데. 박기범 아저씨 어떻게 생겼어요? 나 한끼 굶었다요?"
끈임없이 이야기한다. 신희와 한시간 동안 이야기하며 가는 시간이 즐겁다. 옆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2. 혜화동에서
가니 천막이 보인다. 천막이 작아서 그런지 다행히 아늑해 보였다. 춥지도 않아서 다행이구. 다들 반갑게 인사했다. 이라크에 같이 갔던 승로씨가 거의 마이크를 잡고 파병반대 서명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박기범씨 얼굴을 보고 서 있다.
"인사해. 아저씨야. 기범씨, 우리 고마리 아이들이여요"
"와아. 반가워."
아이들은 멋적게 인사하고, 소망나무 이파리에 글도 쓰고, 서명도 했다.
둘레에 있는 사진도 보고, 기찻길 아이들이 만든 소망 나무도 보고 우리도 하면 좋겠다 한다. 거기에 걸린 그림들, 글들 모두 다 마음과 정성으로 만들었다.
아이들 눈이 동그레진다. 한 참을 둘러 보고
천막에 앉아 이야기 하며 작은 국화꽃에 리본을 달았다.
범기도 정말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자꾸 이야기를 한다.
아저씨 힘 없으니까 말 많이 하면 힘들어져. 그러니까 서운하지만 조금만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타일렀다.
그래도 자꾸하니 원...
저번주 화요일 아이들에게 파병반대 하기위해 기범씨 단식 할거라고 이야기하면서 글쓰기 시간에 쓴 글을 주었다.
기범씨는 아이들한테 '어미개. 새끼개' 책을 한 권씩 준다.
무어라 정성껏 써서 선물한다.
참 어여쁜 모습이다.
신희하고 준혁이는 얼굴이 환해진다. 기뻐하는 얼굴이 보인다.
슬프고 힘든 일인데도 이렇게 아이들이 있어 기쁘고 기운나고 그러는구나.
결국 기범씨 부탁으로 쑥스럽지만 준혁이랑 신희는 마이크를 잡고 쓴 글을 읽었다. 커다란 목소리로 들으니 그 자리에선 그 글이 빛나보인다.
글보다도 아이들 마음이 전해진다.
사실 그 글은 다듬지도 않고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로, 아이들 마음으로 쓴 글이다. 내가 한 말을 쓴 친구도 있지만 대부분 자기들 마음으로 쓴 글이다.
나도 듣고 있으니 쑥스럽기도 하고 참 좋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갑자기
"야, 우리 노래하자. 내가 이 악보 갖고 왔거든. 우리 글쓰기 시간에 자주 불렀잖아"
"선생님 어떻게 불러. 창피하게."
"아니야 우린 할 수 있어. 여기 물오리 노래 끝 부분은 마지막 한 번 더 부르고, 그다음 큰길로 가겠다. 그다음 문제아다. 자 시시시 시작 얼음어는 강물에..."
학교밖 연수 때 만든 노래집을 보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세상에 내가 노래를 부르다니.
노래 끝나면 마이크 잡고 말도 한다
우리들은 아무리 잘못했어도 그걸 인정하고요. 큰길로 다녀요. 여러분들도 이 큰길 다니지요. 여기 한 번 보세요. 저기 아저씨 계속 여기 보시는대요. 일로 오셔서 파병 반대 서명하세요. 우리 군인들 보낸 수 없잖아요. 가면 침략군이어요. 이라크에도 우리 같은 아이들이 있어요. 그 아이들도 우리 처럼 살아야해요...
아이고 뭐라뭐라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난다.
단지 저절로 말이 나왔을 뿐이다.
점점 어두어져 촛불이 하나 둘씩 피어난다. 사람들도 점점 많아진다.
우리 동네보다 젊은 친구들이 많다. 지나가는 아줌마도
"파병 안돼 그건 절대 안돼. 그걸 왜 보내. 사람 죽이러가는건데.그건 절대 안돼"
역시 아줌마 목소리가 커서 잘 들렸다.
할아버지도, 아이들도, 장애인도 잘 안써지는 손으로 어떻게라도 쓴다 '군인 보내지 말아요'하고
우린 또 한번 마음껏 노래부르고, 기범씨 선배 누나하고 동무가 와서 같이 노래 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 힘이 나는지 더 큰소리로 잘 부른다.
정말 마음껏 무엇을 한다는거 벅찬 일인듯 싶다,
힘없고 나약한 사람이 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그 일을 함께 하는 이들과 같이 한다는 건 가슴 뿌듯한 일이다.
이런 가득찬 마음이 이루어졌음 정말 좋겠다.
꽃에 달 리본이 없어 리본을 사러 한참을 그동네 헤맸다.
겨우 사서 천막으롣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보니 별도 안보인다.
단지 높고 길다란 크레인이 보인다.
그 크레인에는 쇳덩이 하나가 덩그러니 달려있다.
금방 떨어질 듯하다.
도시 한복판 길거리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까맣고 높게 보이는게 무시무시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며,웃으며 걸어 다닌다.
그 아래 건물 맨 위층에서는 연인들끼리 차 마시는 모습도 보인다.
장사하는 사람들 목소리도 들린다.
나도 걸어간다.
천막도 거기에 있고
소망나무 이파리들이 팔락 거리며 두 그루도 있다.
이렇게 무서운 것하고도 함께 사는구나
천막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또 가고.
우리도 한쪽에서 싸온 간식 먹으며 뜨듯한 어묵 국물을도 마셨다.
아이들은 우리 보다 잘 먹어서 좋다.
또 한번 노래 공연도 하고 8시가 다 되어 떠날 준비를 했다.
신희는 팔을 잡고 늘어지며 더 있다 가자고 한다
토요일에 올거니까 그때 또 오자하고 천막 식구들과 헤어졌다.
헤화동에 왔다하니 남편이 저녁을 사준댄다
지하철을 타고 안국동에 내려 남편 사무실 찾아가는데 길에서
알마를 만났다. 처음엔 어? 하고 몇발작 가다 다시 왔다
한상진씨도 있다. 아침 신문에 봤던, 텔레비젼에서 잠깐 봤던 이라크 사람들도 있다.
"알마?"
맞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난 한상진씨 보고 오늘 신문에서 봤다고 했더니
아 그러냐고 한다. 우리 박기범씨 단식장에서 오는 거라고 했더니
다들 웃고 반가워했다. 사진도 한 번 찍었다.
잠깐 인사지만 정말 놀랬다. 우연이 길에서 만날줄이야. 아이들이 알마 눈이 정말 예쁘단다.
그 언니 열 세살이거든. 우리나라에 와서 이라크가 평화를 찾느데 도와달라고 왔대. 그리고 이라크 전쟁때 안네 프랑크처럼 전쟁 일기도 쓰고...
아, 그렇구나.
우리 넷은 별 말없이 걸었다
다음 글쓰기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준비해야겠다 싶다.
3. 난 또 희망을 걸어본다
그렇게 아이들과 저녁까지 먹고 돌아온 시간이 10시 20분이었다.
신희를 집에 데려다 주고 나오는데 뒤통수가 따갑다.
신희 어머니얼굴 보기가 미안했다.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그래도 고맙다. 신희도 고맙다. 준혁이도, 준혁이 어머니도.
혼자 걸었다.
우리 동네엔 그래도 쬐금 별이 보이는구나
아, 마음이 좋구나!
기범씨도, 바끼통 식들도 건강해서 다행이야
그래. 봄 하고는 또 달라
그때보단 마음에 여유가 있구나
길영이 생각난다.
봄에 그 애타하던 그 얼굴이, 목소리가
봄에 지냈던 일들이 다시 떠오른다
세상은 그렇게 사는거구나
사람들과 함께 사는거구나
집에 오니 세수도 하기 싫다.
그냥 눕고만 싶다. 감기가 한달 째다.
밥을 며칠째 굶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맨날 일하면서 거기 살다싶이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난 또 왜 이러나 싶다.
내일 3학년 아이들과 가야 하는데. 엄마들이 막상 보내려고 할지 걱정이 앞선다
나를 믿고 좋아한다면서 막상 캠프말고 다른데 가려면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난 그런 어머니들과도 함께 하고 싶다.
오래 만나는 아이들 어머니는 고마리랑 어디 가는구나 하시는데
만난지 얼마 안되는 어머님들과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내일 못가면 다음주에 가지 싶다. 토요일도 있구.
하지만 기범씨가 하루 빨리 접었으면 싶다. 얼굴이 많이 상했다
길쭉한 뼈다귀가 서 있는 듯하다
오늘 어머니가 오셨댄다 얼마나 마음 상하실까
나랑 있었다면 같이 울었을 거라고 기범씨가 놀렸다.
오늘도 잘 잤으면 좋겠다.
다음에 갈 때는
국화꽃도, 리본도 많이 준비해야겠다.
날이 춥지 않아서 정말 하늘이 고맙고 또 고맙다
첫댓글 아이들 기억속에 오래오래 남을 날일겁니다. 그 기억 속에 바람선생님 모습도 아름다이 들어있을거고요.
바람은 그냥 옮겨온거구요, 고마리샘입니다요, 고마리샘. 거봐요, 직접 올렸으면 좋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