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우체통|김 참
피뢰침
이젠 헐리고 없는 화명동 주공아파트 옥상엔 피뢰침이 있었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엔 피뢰침이 없다. 이상하다. 삼십 년 사이에 피뢰침이 사라졌다. 만덕동 주공아파트 살던 이십팔 년 전에도 옥상엔 피뢰침이 있었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엔 피뢰침이 없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 많던 피뢰침들. 삼 년 전 살던 삼계동 부영아파트에도 피뢰침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전에 살던 덕포동 부원아파트엔 피뢰침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제대하고 옥상에서 담배 피울 때 본 것 같기도 한데 알쏭달쏭하다. 그럴 수도 있다. 내 인생에서 피뢰침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 지금은 새벽 한 시 오십 분. 차 몰고 나가면 이십 분 만에 도착하겠지만 이 새벽에 피뢰침 확인하러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올빼미처럼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 보는 아내가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 피뢰침 보러 간다고 하면 아내는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겠지.
아파트에서 사라진 게 참 많다. 아랫목 후끈 데워주던 연탄보일러도 사라졌고 1층까지 이어진 쓰레기통도 사라졌다. 분리수거 열풍이 쥐들을 아파트 밖으로 몰아냈다. 인간과 쥐가 동거하던 시절은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도 벼락은 아직 피뢰침을 찾아다니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제 피뢰침 같은 건 없는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어차피 내 인생에서 피뢰침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니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니까 필요 없으면 모두 버리는 무정한 시절. 덕포동 부원아파트에 피뢰침이 있는지 없는지 자꾸 궁금해지는 새벽 두 시 반. 나는 자꾸 그 옛날 내가 본 피뢰침들의 행방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파트 옥상에 우두커니 서서 유기를 기다리던, 벼락의 다정한 친구 피뢰침들, 옥상을 외롭게 지키던 그 많던 파수꾼들. 아파트가 너무 높아져 이젠 피뢰침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시집, 『이상한 그램책 나라』(신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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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참|1995년 《문학사상》 등단했다. 시집으로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 『미로여행』, 『그림자들』,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 『그녀는 내 그림 속에서 그녀의 그림을 그려요』, 『초록거미』.이상한 그림책 나라가 있다. 현대시동인상, 지리산문학상, 사이펀문학상, 최계락문학상 수상. 인제대 리버럴아츠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