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아니 본가 식구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다 외운다.
앞자리는 생년월일이라 그럴수 있다지만 뒷자리 7개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기억력이 좋아서도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부터 모두 한끗 차이다.
1970년대 주민번호가 지금처럼 일괄적용될 때 같은 지역에는 비슷한 번호가 주어졌다.
그 때 동시에 발급된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기에 내 번호만 외우면 한자리만 바꾸면 되기에 외우지 않아도 된다.
우연히 모임에서 만난 사람과 주민번호가 비슷한걸 알고는 그맘쯤 청송에 살고 있었던걸 확인하고는 갑자기 친해진적이 있다.
우리집... 이제 진짜 우리집의 본적은 잠시 몇년 살았던 인천이다.
막내였던 신랑은 결혼을 하자 독립된 가구가 되고 새로운 본적지를 부여받게 되었다.
그 당시 직장때문에 살던 곳이 인천이었고, 그 집의 주소가 본적지가 된 것이다.
그 후 얼마 2년 뒤 대구로 내려왔다.
본적은 영원히 인천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본적이란 가족관계 등록부가 올라가 있는 곳. 호적의 기준이 되는 주소라고 한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한 사람이 결혼을 해서 독립하게 되면 새로운 세대를 이루게 되는데 그 가족이 모두 최초로 시작하는 장소라는 뜻일까?
그때 거주하고 있는 주소가 본적이 되고, 그 집안의 사람들은 모두 같은 본적을 갖게 되는 것.
예전에는 이력서나 자기 소개서에 주소와 본적을 다 적었던 기억이 나는데 요즘은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겠다.
딸이 결혼을 했다. 독립된 세대를 이룬 것이다. 진짜 호적에서 파 낸 것이 된건가?
우연인지 인연인지 인천 사람을 만났다.
본적지 주소 사람이다.
이럴려고 우리의 본적이 그 먼 인천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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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 / 공광규
청양군수가 2014년 개별공시지가 결정통지문을
내가 사는 일산 주소로 보내왔다.
본적인 남양면 대봉리 653번지 지목이
옛날 초가집 두 채 자리여서 대지인 줄 알았는데
밭으로 되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나와 여동생들이 고추와 맥문동을 심을 때
사금파리와 기왓장과 모가 부드럽게 닳은 곱돌이
식구들처럼 다정하게 어울리던 밭이다.
혼자된 어머니가 좋아하던 홍화꽃과 도라지꽃이 출렁이고
겨울을 춥게 보낸 언 고구마와 썩은 무를 버렸던 밭이다.
어린 동생이 마당가에 눈 똥을 삽으로 떠다가 묻고
그걸 알고 강아지와 고양이도 가서 똥을 묻고 오던 밭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참 비어있자
민들레씨앗이 날아와 해마다 식구를 늘리고
무좀에 찧어 붙였던 쇠비름이 뿌리로 자기 영역을 넓히고
명아주가 거미에게 공짜로 잎과 대궁을 빌려주어
거미줄을 치고 반짝이는 아침 이슬을 매다는 밭이다.
지붕이 없어서 별이 가득 내리고
지붕이 없어서 내리는 비를 다 받고
지붕이 없어서 내리는 눈을 다 덮고
벽이 없어서 바람이 무시로 다녀가는 밭이다.
개미와 땅강아지와 귀뚜라미와 지렁이가 모여 살고
산비둘기가 오고 참새가 와서 발자국을 찍고 가는 밭이
내 본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