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사자성어(四字成語)
⊙ 안심입명(安心立命)
삶과 죽음에서 초탈하다
안심입명(安心立命)은 수행을 통하여 번뇌에서 초월한 깨달은 경지를 가리킨다. 《전등록(傳燈錄)》에 나오 는 사자성어로 명예와 부(富), 권력, 그리고 죽음을 초탈, 달관한 것을 가리킨다. 때론 마음 심(心) 대신 몸 신(身) 자를 써서 안신입명(安身立命)이라고도 한다.
우리의 삶은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불투명하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시그널이 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과연 언제쯤 마음 편안히 안심하고 살 수 있을까?
인간의 삶은 하루에도 수차례 희로애락이 교차한다. 1년 365일 가운데 안심, 편안 속에서 보낼 수 있는 날은 많아야 20%를 넘지 못한다. 80%인 300일 정도는 불안, 초조, 근심, 걱정 등 이런저런 번뇌 속에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사업을 하는 사람은 더하다.
선종의 2조 혜가(慧可)가 폭설을 뚫고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로 달마(達磨)를 찾아간 것도 마음이 편안 하지 못해서였다. 2조 혜가가 마음이 편치 못하니 치유해 달라고 했던 마음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혜가가 달마를 찾아간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공황장애', '불안장애' 때문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근심 걱정 이 너무 많았다. 만성적, 고질적인 불안 증세였다.
불안감으로 인해 항상 긴장 상태 속에 있으며, 자율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는데, 아마 2조 혜가도 이런 증세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 인구의 25% 정도가 불안 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특히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정도 더 많다고 한다.
안심입명은 (富), 귀(貴), 명예 등 삶에서 초연한 것을 말한다. 안심(安心), 안신(安身)은 마음이 편안한 것, 근심, 걱정이 없는 것을 뜻하고, 입명(立命)은 《맹자(孟子)》 진심장(盡心章)에 나오는 말로 천명(天命)과 같은 말이다.
아무런 번뇌 없이 살아가는 유유자적한 소요유(逍遙遊) 같은 삶을 가리키는데, 사실 그런 삶은 생존경쟁이 치열한 이 사회에서는 쉽지 않다. 산속의 스님들 외에는 꿈 같은 일이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상향인데, 이상향이기 때문에 그리움의 대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안심입명(安心立命)
安 편안할 안. 心 마음 심. 立 세울 립. 命 목숨 命.
출처 : 윤창화 <불교의 사자성어> ----------------------------------------------------------------------------------------------------------------
본문에서 안심입명에 대해서 자세히 설하여 안심입명의 뜻을 바르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안심입명 이 단순한 말이 아니라 깊은 뜻을 함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안심입명에 대해서 조금 더 부연해 보고자 합니다.
안심입명(安心立命)이란 "마음을 편안히 하여 삶의 근본을 바로 세운다." "참된 마음자리를 깨달아 삶의 방향을 확립한다."는 뜻이라 하겠습니다.
안심입명이란 이 말은 유교 · 불교 · 도가의 사상이 함께 스며 있는 동아시아 정신문화 속에서 형성된 표 현입니다. 특히 "입명(立命)"은 중국 유학의 경전인 《논어》의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과 연결되며, 《맹자》에서는 "입명(立命)"을 인간이 하늘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의 삶을 바르게 세우는 것으로 설명합 니다.
여기에 불가(佛家), 특히 선종(禪宗)의 "안심(安心)" 사상이 결합되면서 "마음을 바로 안정시켜 생사의 흔 들림 속에서도 삶의 근본을 잃지 않는 경지"라는 선적(禪的) 의미가 깊어졌습니다.
선가에서 말하는 "안심(安心)"의 진의는 무엇일까요?
선종에서 말하는 안심은 단순한 심리적 안정이 아닙니다. 그저, '걱정이 없다, 마음이 편하다, 스트레스 가 없다'는 정도를 뜻하지 않습니다.
선가의 안심은 '망상과 분별이 쉬어 본래 마음자리로 돌아간 상태'를 말합니다.
달마대사(達磨大師)와 혜가(慧可)의 일화를 보겠습니다. 안심(安心)을 말할 때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바로 달마대사와 혜가의 문답입니다.
혜가가 말했습니다.
"제 마음이 편안하지 못합니다. 스님께서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달마가 말했습니다.
"그 마음을 가져오너라. 내가 편안하게 해 주겠다."
혜가가 아무리 찾아도 붙잡을 '마음'이 없음을 깨닫고 말했습니다.
"찾아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달마가 말했습니다.
"내가 이미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이것이 선가에서는 <안심법문(安心法門)>이라고 말하는데 안심의 핵심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붙잡을 실체가 없는 망념을 따라가지 않을 때 본래 마음은 이미 편안하다는 것입니다.
안심입명은 단순한 처세훈이 아니라,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본성을 깨달아 삶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수행의 경지를 뜻합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욕망에 끌려가지 않고, 분별에 휘둘리지 않으며, 생사와 흥망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상태'입니다.
안심입명(安心立命)이란 뜻을 『불교대사림(佛敎大辭林)』에서 찾아보니 '안심입명'은 나오지 않고 안신 입명(安身立命)만 나와서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본래 "입명(立命)" 자체가 유가(儒家) 계통의 표현이고, 여기에 불교 특히 선종의 수행정신이 스며들면서 "안신(安身)"보다 "안심(安心)"이 더욱 중심 개념으로 떠오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가에서는 "몸과 삶의 자리를 바로 세움"이 강조되었고, 선가에서는 "마음이 바로 서야 삶도 바로 선다" 는 방향으로 깊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문(禪門)에서는 자연스럽게 "安身"보다 "安心"을 근본으로 삼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의 평안"은 단순한 감정 안정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참된 안심(安心)은 얻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조건 따라 유지되는 것도 아니며, 외부 세계가 완벽해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집착할 '나'와 붙잡을 '경계'가 본래 공함을 통찰할 때 드러나는 본래의 고요함에 가깝습니다.
안심입명이란 결국 "착과 망상을 놓아 본래 청정한 자성을 깨닫고 어떤 경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세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안심입명은 집착할 ‘나’와 붙잡을 ‘경계’가 본래 공함을 통찰할 때 드러나는 본래의 고요함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은 곧 "궁극적 깨달음의 경지"라 하겠습니다.
마음이 머무름이 진실로 없다면 그곳이 진정으로 편안한 곳이니 인연을 따르는 내 삶 바로 서지 않으랴.
마음이 편안한 곳곳마다 도량이요, 분별이 쉬는 때 내 삶이 바로 선다. 진실로 이때야말로 안심입명 이 아닌가?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직접적으로 지식과 지혜를 함양할 수 있도록 바르게 살도록 가르쳐 주신 스승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생각해 보면 모두가 스승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오늘도 좋은 하루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며, 자애와 연민, 복과 지혜를 닦아 통찰지를 갖추고 정리를 따라 정심정행하며 안심입명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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