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낼 모래면 서울로 간다고,
아래층 사는 수희씨와 슬기가 함께 점심을 먹자고 약속을 했다.
유명하다는 음식집을 몇 군데 다녔던 터고, 인도에 왔으니 인도 음식 진짜 잘하는데 가서 먹자하고,
아침부터 분주히 할 일을 했다.
오후 한시 래핑드럼 명상이 끝나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미라 게이트 앞으로 나오는데...
공지판에 데스 셀러브레이션을 알리는 글이 사진과 붙어 있다.
83세 남자 백인이었는데 병원에서 몇시에 숙환으로 별세
나는 갈등했다.
사마디 셀러브레이션이고, 오쇼때와 똑같은 장소 똑같은 형식의 데스 셀러브레이션.
몇년을 아쉬람에 다녀가도 볼 수 없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점심 약속을 한 친구들을 만나면 양해를 구하고 참석해야지 하고 기다리는데..
수희씨가 아쉬람에서 연락을 받고 먼저 알고 있었다.
아쉬람 가까운 선더반호텔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간단히 먹고, 머룬로브로 갈아입고
오디토리움으로 바쁘게 향했다.
오디토리움 입구부터 라이브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
들어가니 관처럼 놓여진 길고 검은 천이 덮여진 상자 위에 장미꽃잎이 덮여져 있다.
순간 숙연해졌다.
나는 머뭇 머뭇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음악과 함께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었고,
그동안 망자가 살아왔던 83년이란 세월의 희노애락과 버거움을 놓아버림을 축하했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흘러 오디토리움 안으로 얼굴이 창백한 밀랍인형같은 시신이 보이는 채로
남자 산야신들이 든 들것에 올려져 희고 핑크빛 물든 천에 쌓여진채 들어왔다.
알 수 없는 진한 향 냄새
그리고 노래와 춤 박수와 환호성 ....
잠시후 오쇼의 데스 샐러브레이션 메세지가 오디오로 흘러나왔다.
모두 정지된 상태에서 저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그의 음성을 들었다.
나는 그의 음성에 그토록 사랑이 담겨 있는지 몰랐었다.
사랑이 담긴 음성이 내 가슴 밑 안쪽 어딘가를 뚫고 나는 폭포같이 쏱아지는 눈물을 소리없이 흘렸다.
감사하고,..아~~....
명상을 하다보면 오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오쇼를 알게 된것에 감사하고 기쁘다.
다시 음악과 춤, 축제가 열리고 다시 오쇼의 음성이 들린다.
죽음도 삶의 어떤 것일뿐.
장미꽃을 한 웅큼씩들어 망자의 육신에 뿌려주며 모두 저마다 축성을 했다.
나는 한국에서 처럼 부디 명복을 빕니다 라고 ...
시신은 오디토리움을 나와 사람들과 함께 쉬어가며 춤추고 축제를 벌리며 화장터까지 행렬했다.
너무 많은 산야신들이 었고, 교통이 마비되어도 주민들도 모두 축제를 함께 맞았다.
화장터 앞
멀리까지 강이 보인다.
강이래야 수로 정리도 안되고, 지저분한 그저 작은 물 줄기.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수없이 많은날 사랑을 나누었던 가족중의 한 사람이 불길에 휠싸이는 걸 바라보아야 하는 남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동화가 되는듯했다.
두시에 시작한 셀러브레이션은 춤과 가슴속 허밍 그렇게 다섯시가 되어서 각자 갈사람들은 가고 남을 사람들은 남아져서
한줌 재로 변한 공간을 지켰다.
터덜터덜 아쉬람으로 돌아오는 길
길 바닥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장미꽃잎을 보면서
어느새 과거로 흘러버린 시간 이란 생각.
오늘따라 유난히 조용한 아쉬람.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았다.
그저 그렇게...
얼마동안 인지도 모르게...
첫댓글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고인에게 천국에서도 아쉬람과 같은 축제의 시간을 많이 많이 가지도록 빕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한 그 분이 부럽군요....인생을 잘 산 사람만이 마지막도 훌륭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듯....
하리 옴!
우리는 살아가고 있기도 하지만 죽어가고도 있지요.
죽음은 삶의 연장이라는 관점에서 그 분은 영생의 삶을 살러 가신 것일 겁니다.
인도에서 죽음을 축복하는 이유도 그러하겠지요.
사난다님은 많은 축복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그 분의 영생의 삶의 에너지에 님의 맑은 에너지를 보태주셨으니까요.
사난다님!
편히 오소서!
옴 따뜨 사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