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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연 환경 1. 기후 4월 중순부터 기온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는데 주로 7월에 매우 덥고(약 30℃~35℃), 북해에서는 해수욕이 가능하며, 해가 길어 밤 10시까지도 밝다. 그러나 일교차가 큰 관계로 저녁에는 항상 긴팔 옷이 필요하다. 가을은 뚜렷하지 않으며 비가 많이 내린다. 그리고 겨울에는 오후 4시께면 해가 지므로 밤이 무척 길다(아침 8시까지). 2. 면적 통일 이후(1990년 10월 3일) 총면적은 35만 7000km2이며, 남북으로의 거리는 876km, 동서의 폭은 640km에 달한다. 3. 지형 유럽의 중앙부에 위치한 독일은 아주 다양한 지형을 가진 나라이다. 바이에른(Bayern) 남부 지역은 알프스의 줄기가 뻗어 있어 이 지역의 추크슈피체(Zugspitze:2962m) 산에는 사계절 내내 눈이 쌓여 있으며, 스키장들이 많이 있다. 서부 지역이나 북부 지역은 저평야 지대로 동부 지역에 비해 겨울 날씨가 특히 온화한 편이다. 4. 수도 통일 후 국회의 결정에 따라 베를린(Berlin)으로 수도가 결정되었으나, 본(Bonn)에 위치한 많은 행정부와 국가 기관이 수도의 이주에 따른 예산 문제로 아직 본에 위치하고 있고, 차츰 베를린으로의 이주를 서두르고 있는 상태이다. 5. 주요 도시 독일의 도시들은 아무리 작은 도시라 할지라도 대도시가 갖춘 모든 문화 및 교육 시설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독일에서는 도시와 지방의 차가 그리 크지 않다. 거주 인구별로 순서를 매겨 보면 독일의 주요 대도시는 다음과 같다. 베를린(340만 명), 함부르크(Hamburg:160만 명), 뮌헨(M chen:120만 명), 쾰른(K n:100만 명), 프랑크푸르트(Frankfurt:63만 명). 6. 인구 독일 인구는 서독 지역 6300만 명과 동독 지역 1600만 명으로(총 7900만 명) 그 가운데 560만 명이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국인들은 독일의 경제 부흥기인 1960~1970년대에 독일 내 노동력의 부족으로 인한 외국 노동력의 유입에 따른 것으로, 터키, 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 그리스인이 주로 구서독 지역에 거주하며, 구동독 지역에는 주로 베트남인과 아프리카 옛 공산 국가의 흑인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아랍 국가의 정치적 혼란기(팔레비 왕의 붕괴와 이란, 이라크 전쟁)에 이주한 아랍인도 많은 편이다. 동양인으로는 주로 중국, 인도네시아, 우리 나라, 대만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II. 역사 지금의 독일 지역을 가리키는 게르마니아라는 이름은 단순한 지리적 명칭이 아니다. 이 말은 고대 로마인들이 독일어를 사용하던 북쪽의 작센과 프리젠, 서쪽의 프랑크, 중부 독일의 튀링겐, 남쪽의 알레마넨과 바이에른 종족들이 거주하던 라인 강, 엘베 강, 도나우 강(다뉴브 강) 사이의 지역을 지칭하던 말이었다. 지금의 국가명 Bundesrepublik Deutschland의 도이취(Deutsch)라는 말의 어원도 `로마적이지 않은', `민중적인'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로마 제국의 동북부 경계가 게르만 민족의 잦은 침입으로 안정되지 못하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엘베 강까지 영토를 확장하였고, 9년에는 엘베 강이 게르만 민족과 로마 제국의 경계가 되게 하였다. 그러나 게르만 민족의 헤르만(Hermann) 장군이 베스트팔렌(Westfalen) 지방의 토이토부르거발트(Teutoburgerwald)에서 로마 군대를 대패시켜 로마 제국의 게르만 민족에 대한 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시켜 놓아, 로마 황제는 엘베-다뉴브 강의 경계가 아닌 라인-다뉴브 강을 경계로 제국의 영토를 다시 후퇴시켰다. 그 결과 게르마니아 지역은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나뉘어져서, 지역 전체가 로마의 지배하에 있어 로마 문명의 완전한 영향권에 있었던 프랑스와의 문화적인 차이를 낳게 한 원인이 되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부터 라인-다뉴브 강을 따라서 역사적인 도시들(마인츠, 코블렌츠, 아우크스부르크, 레겐스부르크)로 발전하게 되는 장성을 축조하였다. 장성 안의 성채들에서 로마 제국의 문화가 만개하였고, 성채를 중심으로 게르만 민족과 로마인들과의 문물 교류가 시작되었다. 기원 원년 후 발트 해 부근의 게르만 민족들은 인구 팽창으로 인해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흉노족의 유럽 침략은 동쪽으로부터 슬라브족의 이동과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가져왔다. 하지만 많은 수의 게르만 부족은 오데르나이세 강 양동쪽의 지역에 계속 남아 있었으며, 이는 후에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슬라브족과의 갈등 관계의 시초가 되었다. 이동을 시작한 게르만 부족들은 대부분 남쪽으로 이동하여 일부는 로마 황제의 허가를 받아 로마 제국의 영토 안으로 이주하였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로마 제국 안으로 들어온 게르만 부족은, 처음부터 로마 제국에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었지만 점차 게르만 민족의 이동으로 로마 제국의 국경이 무너짐으로써 유럽 대륙의 지배자는 로마인으로부터 게르만족으로 서서히 바뀌게 되었다. 왜냐하면 게르만 민족은 이미 로마 제국의 군사 제도, 행정 조직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흉노족의 서진이 멈추었을 무렵 게르만 민족은 로마 제국의 영토 안으로 깊숙이 침입했기 때문이다. 모젤 강 유역에 거주하던 프랑크 부족은 메로빙거 계열의 클로비스를 중심으로 제국의 영토를 점령해 갔으며, 마침내 로마 제국의 마지막 식민지였던 갈리아 주를 차지함으로써 서로마 제국을 와해시켰다. 클로비스는 나중에 기독교로 개종하였는데(496년) 이것은 게르만족의 기독교화의 계기가 되었고, 중세에 있어 교황권과 군주권과의 제휴와 갈등이라는 특징을 만드는 시발점이 된다. 나머지 게르만 부족들도 프랑크 부족의 지배권을 인정하기 시작했으며, 클로비스는 로마 제국의 황제와 같은 절대 왕권을 확립하기 시작하여 로마 제국의 행정 조직과 사회 조직을 다른 게르만 부족에게 전파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클로비스 사후 프랑크 부족은 카롤링거 계통에서 지배자가 나왔고, 732년 유럽의 역사를 뒤바꾼 투울 전투에서 사라센은 프랑크 부족의 카를 마르텔(Charles Martel:샤를 마르텔)에 의해 격파되었고, 이 전투의 승리로 인해 이슬람 교도의 유럽 침공은 저지되었으며 그들은 이베리아 반도의 남부 지역에서만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피레네 산맥을 큰 경계로 하여, 남쪽에는 유럽 내의 유일한 이슬람 문화가 꽃피울 수 있게 되었지만 북쪽은 어떠한 종교 세력도 넘볼 수 없는 기독교의 강력한 땅이 되어 갔다. 이 사건 이후 카를 마르텔은 유럽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로 부상하였고 교황과의 관계도 급속히 밀접해져 갔다. 카를 마르텔 이후 피핀은 프랑크 부족의 왕으로 옹립되었는데, 당시는 대주교 보니파티우스가 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드족(랑고바르드족)과 첨예한 대립을 하던 시기였다. 자신의 권익을 지켜 주기에는 동로마 제국이 지리적으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그는 새로운 보호자를 찾던중 피핀과 밀착하여 상호간의 현실적 이익을 관철시켜 나갔다. 피핀은 정통성을 확보했으며, 보니파티우스는 피핀의 롬바르드족 정벌을 통해 북이탈리아의 위협 요소를 제거하였다. 피핀은 그후 라벤나(Ravenna) 지역과 로마 부근의 지역을 롬바르드족으로부터 빼앗아 교황에게 기증하였다. 교황은 피핀과 그의 아들 카를 대제(샤를마뉴 대제)를 대관하였고, 피핀에 의한 교황령의 설치는 중독립 국가로서 중세 교황령 국가가 창건되는 중세 유럽사 전개의 시초가 되었 다.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제는 기독교의 테두리 안에서 독일의 민족들을 하나로 모으고 800년에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칭호를 수여받음으로써 알프스 산맥 북쪽의 서로마 제국 황제의 계승자가 된다. 이것으로 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게르만족에서 로마 황제의 명칭을 얻게 되었고, 동시에 로마 제국의 전통을 회복시켰으며, 이후의 군주와 교황이 상부상조하는 선례가 되었다. 그후 이 거대한 왕국은 오늘날의 프랑스의 바탕이 된 서프랑크와 오늘날의 독일의 바탕이 된 동프랑크로 나뉘어진다. 왕조적 정통성에 따라 왕위가 세습되는 서프랑크와는 다르게 동프랑크에서는 911년 카롤링거 왕조가 끊기자 바이에른, 프랑크, 작센, 슈바벤, 프리젠, 로트링겐 등의 동프랑크 부족들이 콘라트를 선거를 통해 왕으로 추대하였고, 콘라트의 사후에도 하인리히를 선정함으로써 세습이 아닌 선거로 지배자를 선출하는 전통을 마련하였다. 이 동프랑크 왕국은 오토 1세 시대(936~973)에 와서 신성 로마 제국으로 발전한다. 1000년께부터 1300년까지 독일의 인구는 거의 두 배로 증가하게 되는데 이러한 인구 증가와 더불어 기독교 포교를 위한 새로운 수도원 건립 등 당시의 수도원의 개간 사업으로 독일인의 동쪽 이동이 시작된다. 새로운 토지 개발, 농민 이주, 도시 건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그 결과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브라덴부르크 등의 토대가 이 때 이루어진다. 독일 기사단(Deutscher Order)은 폴란드 대공 마조비아의 요청으로 대규모 농민 이주 사업에 참여하게 되고, 이것은 곧 프로이센의 시작을 의미하였다. 중세 후기에 이르러 지방 영주들의 영향력이 급격히 커졌다. 이 시기는 수공업자들의 조직인 길드와 독립적인 상인, 그리고 은행가들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자 동맹(Hanseatic League) 같은 무역 단체들이 왕들보다도 더 큰 세력을 지니기도 하였다. 16세기와 17세기는 종교 분쟁이 뚜렷했던 시기로 마르틴 루터의 교리는 1517년에 종교 개혁을 이끌어 냈고, 이것은 독일의 종교적 분열을 초래하였다(오늘날에도 중부와 북부 독일 사람들의 대부분은 개신교도이며, 서부와 남부 독일은 카톨릭의 영향력하에 있다). 이러한 종교적 분열은 사회적·경제적인 긴장 요인과 더불어 1618년 30년 전쟁의 발발 요인이 된다. 제국 동부의 국경인 뵈멘 왕국(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보헤미아 지방)에서 발발한 30년 전쟁은 단순한 종파적 대립일 뿐 아니라, 스페인과 네덜란드, 프랑스와 합스부르크가, 스웨덴과 폴란드 사이의 갈등 등 국제간의 갈등이 표출된 전쟁으로 전개되었다.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은 신교측을, 스페인은 카톨릭 동맹을 지원하였다. 오랜 전쟁으로 독일 지역은 황폐화되었고 어느 쪽도 이득이 없어 결국 베스트팔렌에서 평화 계약이 맺어진다. 1648년에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은 독일 지역을 약 350여 개의 국가로 산산이 갈라 놓았고, 독일 북부가 스웨덴에 점령되고 프랑스는 라인 강 좌안까지 진출하게 된다. 스위스와 네덜란드는 신성 로마 제국에서 탈퇴해 나가게 되고, 종교 문제는 그 지역 영주의 신앙에 따른다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또 각 영방의 주권과 외교권을 인정한 것에 비해 제국과 황제에 대한 영방 군주의 의무를 전혀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독일 제국이 강력한 국가 권력을 형성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러한 중앙 정치의 세력 약화는 문화의 발전을 이루게 하는데 루터의 성경 번역, 구텐베르크의 활자 발명 등 독일의 문자 언어 문화가 크게 발전하였고 철학과 시, 건축술, 음악 등의 분야에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프로이센은 17세기 중반에 들어와 점점 세력을 확장해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영주 시대에는 북부 독일의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고, 프리드리히 2세 때에는 유럽의 강대국이 된다. 1763년 프리드리히 2세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신성 로마 제국에서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와 더불어 강대국이 된다. 나폴레옹의 침공은 독일의 국가 형태에 변화를 가져와서 수많은 군소 국가 대신 중간 크기의 국가들이 생겨났다. 세력이 강해진 남부 독일의 국가들이 1806년에 독립을 선언하고 신성 로마 제국의 프란츠 2세가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남으로써 신성 로마 제국은 막을 내리게 된다. 같은 해에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에게 항복을 하였는데 이 사건은 국가와 사회 개혁의 계기가 되었고, 이후 다시 1813년 프로이센은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해방 전쟁을 일으켜 1814년 나폴레옹에 승리한다. 이 해방 전쟁은 단일된 독일 민족 국가의 형성이라는 욕구를 불러일으켜 1815년 빈에서 37개 독일의 국가들과 독립 도시들은 독일 연방을 이룬다. 그러나 이 연방은 강력한 연방 국가가 아니라 엉성한 형태의 연합에 불과했다. 프로이센의 수상인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의 이원 통치 구조에 종말을 고하고 1866년 독일 연방에서 탈퇴하고 여러 개의 북부, 서부 독일 국가들을 편입시킨다. 독일 연방은 없어지고 북독일 연방이 오스트리아를 제외하고 남부 독일 국가들과 연맹을 맺은 것이다. 1870년 프랑스와의 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남부 독일 국가들은 프로이센과 북부 독일 연방에 가입함으로써 승전 후 비스마르크와 함께 독일의 통일을 이루어 낸다. 1871년 1월 18일 프로이센의 왕 빌헬름 1세의 선언으로 독일 제국이 성립된다. 역사적으로 두 번째로 성립된 이 독일 제국은 1871~1918년까지 유지된다. 그러나 독일 제국의 복잡한 연방 체계로 빌헬름 2세는 유럽 내의 주변국들의 동요를 진정시키지 못했다. 이 불균형적인 관계는 유럽의 1차 세계 대전의 요인이 되었고, 전쟁은 1918년 독일의 패배와 독일의 공화국 선언으로 막을 내렸다. 1919년 바이마르에서 설립된 연방 국가는 처음부터 전쟁 보상, 물가 상승, 경제적 위기, 대규모의 실업 등으로 많은 분쟁과 소요 사태를 겪었다. 수많은 군소 정당들과 정부의 잦은 교체, 1929년 전 세계를 흔들어 놓은 세계 대공황의 영향을 받아 1932년 600만 명의 실직자를 낳은 독일의 경제 공황은 급진 과격주의의 위치를 강화시켜 1933년 마침내 히틀러와 나치스에게 권력의 자리를 열어 준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합병한 후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다. 독재 정권의 테러 행위와 연합국의 반격은 독일 내의 반(反) 히틀러 세력을 강화시킨다. 이 히틀러 대항 운동은 사회의 전 계층에서 일어나서 유럽의 `철의 장막'은 전후 독일을 둘로 나누어 놓는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에 의해 점령된 서쪽 지역에는 1949년 서방의 자유 민주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독일 연방 공화국(BRD:서독)이 세워지고, 소련에 의해 점령된 동쪽 지역에서는 동독(DDR)이 세워진다. 동독은 점점 서독에 대해 빗장을 단단히 채우고 1961년 베를린에 장벽을 세우고 독일 국경 내에도 지뢰와 철조망으로 서독으로의 길을 차단시킨다. 1961~1989년까지 독일 내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가려다가 처형된 사람이 111명으로 알려져 있고,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다가 죽은 사람이 적어도 80명이라고 밝혀져 있다. 1989년 동독인들의 평화적 혁명은 동독 집권당인 독일 통일 사회당(SED)의 정권을 붕괴시켰고 통일을 향한 길을 앞당겼다. 수천만 명의 동독인들이 헝가리를 통해 서독으로 들어왔고, 프라하와 바르샤바의 서독 대사관에서 망명을 요청하였다. 수십만 명이 동독의 여러 도시에서 속박과 통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마침내 동독은 III. 정치 1. 개관 독일은 16개의 주로 형성된 연방 공화국으로서 민주주의 법치 국가이다. 사회 복지 국가, 그리고 각 주가 자치권을 갖는 연방 국가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주 국회들이 지정한, 연방 국회 의원들과 같은 숫자의 대표로 구성된 대통령 선출 연방 회의에서 대통령이 선출되는데, 대통령은 정치 활동의 실질적인 권한보다는 단지 국가 대표자로서의 상징적인 권한만을 갖는다. 그래서 대통령은 군대 통수권을 갖지 못하고 평상시에는 국방부 장관이, 전시에는 수상이 군대 통수권을 갖는다. 그리고 대통령의 정부와 의회에 대한 영향력은 의도적으로 축소되었는데 이는 근대 독일 역사에 나타난 독재자의 출현을 방지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현 대통령은 로반 헤어초크(Rowan Herzog)이다. 연방 대통령에 비해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수상은 국민들이 직접 뽑은 하원 의원들의 재적 과반수 이상의 지지로 선출되고, 연방 각료는 수상 제청에 의해 연방 대통령이 임명한다. 현 수상은 독일 통일을 주도한 헬무트 콜(Heltmut Kohl)이다. 2. 연방 의회 독일 의회 정치의 기본이 되는 연방 의회는 각 주의 대표로 구성되는 상원과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하원으로 이루어진다. 선거 방식은 비례 대표제를 기본으로 소선거구제를 병행하고 있다. 즉 유권자는 두 개의 투표권을 갖는데 제1표는 248개의 선거구에서 직접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것이고, 제2표는 일종의 전국구 선거와 같이 각 정당이 제출한 후보자 명부를 보고 지지 정당을 선택하는 투표권이다. 제1투표에서 최고 득표자가 당선되고, 제2투표에서는 주별 득표수에 비례해서 정당이 의석을 각 주에 배분하는데 이 때에 전국에서 유효 투표의 5%이상을 얻지 못하거나 제1투표에서 3석 이상을 확보하지 못한 정당은 제외된다. 의회 내 정당 분산을 막기 위해 도입한 이러한 5% 규정은 3개의 의석을 얻은 정당이나 소수 민족을 대표하는 정당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3. 정당 현황 ① CDU, CSU:구서독의 남부 지역과 구동독의 작센 지방에서 강세를 보인다. ② SPD:노년층(40~60대)의 지지를 업고 동부 프리슬란드(Ostfriesland) 에서 브레멘(Bremen), 하노버(Hannover), 브라운 슈바이크(Braunschweig), 헤센(Hessen), 중부 라인란트팔츠(Rheinland-Pfalz), 자아를란트(Saar) 지방에서 우세를 나타낸다. ③ FDP:남부 독일의 시골 지역(Nordw temberg, Saarland, Franken-schrumpfen)에서 강세를 보인다. 통독 후에는 작센안 할트, 튀링겐, 서부 작센(구동독 지역)에서 지지를 받고 있으나 구동독 지방에서의 노년층 득표가 저조한 편이다. 의석 수는 얼마 안 되지만 캐스팅 보드 역할을 하고 있다. ④ Gr e(녹색당):환경 문제가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점차 지지도가 낮아지고 있다. ⑤ PDS:옛 정부의 장교였던 지도적인 고용자 층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 4. 외교 독일의 외교 정책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즉, 유럽 통합의 추진, NATO(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발전, 동유럽 국가들의 개혁 지지와 제3국과의 교류가 그것이다. 현재 진행중인 유럽 단일 통화 제도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체의 핫 이슈이다. IV. 경제 1. 개관 독일 연방 공화국은 선진국의 대열에서 선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력을 종합해 볼 때 세계 4위의 위치에 있고, 무역 분야에 있어서는 세계 2위이다. 독일은 1975년 이래로 서방 선진 7개국의 모임인 G-7의 회원국이다. 세계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독일의 경제 부흥을 `라인 강의 기적'이라고 하지만 서독의 첫 경제 장관에 의하면 이것은 기적이 아니라 자유 경쟁의 원칙하에 인간의 창의력과 자유, 열성을 보장받은 독일 민족 전체의 노력에서 나온 결과일 뿐이라고 한다. 독일은 통독 후 동독의 재건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아직도 동독 지역의 생활 수준은 서독에 비해 떨어지고 실업률도 상당히 높지만 연방과 각 주, 민간 기업 그리고 국민들의 노력으로 동독 지역은 연간 성장률 10% 선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밝은 장래를 가지고 있다. 1991년도 통계에 의하면 독일의 전체 수출량은 6700억DM(1DM은 한화로 약 514원에 해당)이고, 전체 수입량은 6450억DM이다. 그리고 1인당 GNP는 2만 3000달러에 달한다. 주요 수출 대상국으로는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 룩셈부르크, 미국, 오스트리아, 스페인, 일본, 덴마크 순이며, 수입 대상국은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영국, 미국, 일본, 오스트리아, 스페인, 덴마크 순이다. 2. 주요 산업 분야와 기업들 자동차 산업 일본, 미국 다음으로 세계 생산량 3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주요 자동차 생산 업체와 소재지는 다음과 같다. 다이물러 벤츠(Daimler-Benz:슈투트가르트 Stuttgart), 폭스바겐(VW:볼프스부르크Wolfsburg), BMW(뮌헨), 오펠(Opel). 1년 총생산량 468만 대가 위의 회사들에서 생산되며, 그 가운데 220만 대는 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기계 제작 및 기계 설치 분야 주요 산업 가운데서 가장 큰 기업군을 이루고 있으며, 종업원 1000명이 넘는 비교적 큰 기업은 전체의 3% 미만이고 대부분 전문화된 중소 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서독 지역에 3600여 개와 구동독 지역에 930개의 기계 제작 공장이 분포되어 있다. 이들 공장에서 생산되는 품목의 종류는 대략 1만 7000종에 이른다. 이 분야의 1년 총생산량은 2400억DM에 이른다. 그 가운데 약 60%가 외국으로 판매된다. 독일의 이 분야 수출량은 선진 공업국 전체 수출량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화학 공업 주로 독일 중부 지역에 발전되어 있고, 세계 화학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기업으로는 바이엘(Bayer:레버쿠젠 Leverkusen 소재), 획히스트(H hst:프랑크푸르트 소재), 바스프(BASF:루드비쉬하펜 Ludwigshafer 소재), 메르크(Merck:다름슈타트 Darmstasdt 소재)가 있으며, 총생산량의 50%를 외국에 수출하며 요즘 환경 공학 분야(수질, 대기 등) 및 유전 공학에 이들 화학 산업이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기 분야 산업 큰 기업으로는 지멘스(Siemens:뮌헨 소재), 보쉬(Bosch:슈투트가르트 소재)가 유명하며, 로봇 및 제어 공학 산업이 이 분야의 인기 종목이나 미국, 일본에 비해 기술적인 면이 다른 분야에 비해 떨어지고 있어 근래에 기초 연구 분야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10대 기업 독일의 10대 기업은 다음과 같다. V. 문화와 생활상 1. 언어 및 인종, 종교 인도 게르마니쉬 언어군에 속하며, 지역에 따라 사투리가 심한 편이다. 특히 심한 곳은 바이에른 지방으로 독일의 다른 지역 사람들도 알아듣기 힘든 편이다. 표준어라고 하면 주로 북부 지방(하노버 북쪽)에서 사용되는 말을 칭한다. 독일어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북이탈리아에서 많이 사용되며, 벨기에, 프랑스 등 국경 접경 지역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약 1억 명에 달한다. 독일 민족은 게르만족에 속한다. 남부와 서부, 스위스에서는 기원전부터 정착해 있던 켈트족과 혼혈이고, 엘베 강, 잘레 강 동쪽 지역과 상부 마인 강 지방 및 오스트리아에서는 슬라브족과 혼혈을 이루었다. 혼혈도가 가장 낮은 곳은 작센 지방이다. 독일의 종교 분포는 신교(49.1%), 카톨릭(42.7%), 이슬람교(2.7%), 무종교(7%) 순이다. 2. 국민성 근면 검소하며 질서 의식이 강하고 우리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교적이지 못하며 약간 폐쇄적이다. 그러나 일단 마음을 열면 끝까지 진실한 관계를 유지한다. 예로 유학생들과 독일 학생과의 관계에서 보면 독일 학생은 상대방이 청하기 전에는 스스로 도움을 주지 않는 편이나, 도움을 청하면 많은 사람이 진심으로(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이것은 음산한 독일의 기후와도 관련이 있는데 독일은 집안에서의 생활 문화가 강해서 베를린,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등 유명 관광지를 제외한 곳에서는 가게 문이 닫히는 3. 음식 하루에 한 번만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것이 독특하다. 주로 점심식사 때 수프를 비롯한 고기, 감자, 야채 등으로 이루어진 따뜻한 음식을 먹는 다. 독일인의 음식 문화는 이탈리아, 프랑스에 비해 그리 발달되어 있지 못한 편인데, 고기와 빵, 소시지를 주식으로 먹는다. 독일의 전통 요리로는 200~300가지 정도의 소시지와 햄, 뮌헨 지방의 돼지 족발 요리(Schweinehaxe), 고기 경단 스테이크, 돈까스, 여러 가지 수프가 있다. 소시지 종류 중에서 석쇠에 구운 브라트부르스트(Bratwurst:구운 흰소시지)와 삶은 소시지인 보크부르스트(Bockwurst:붉은색의 쇠고기 소시지), 그리고 카레 가루를 뿌린 카레부르스트(Curry-wurst) 등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물이 안 좋은 탓인지 맥주를 많이 마시고, 아침에는 커피, 저녁에는 맥주 아니면 차를 주로 마신다. 4. 도시와 지방의 차이 도시와 지방의 문화적 차이는 거의 없고, 지방에서도 도시인과 같은 취미 생활과 여가 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부대 시설(수영장, 소극장, 극장, 디스코장 등등)을 갖추고 있고, 병원과 유치원 등의 교육 시설에서도 도시와 거의 차이가 없다. 주로 바이에른 지방 사람들이 친절하며 북으로 갈수록 무뚝뚝한 편이라고 한다. 5. 결혼관 독일 사회에서의 결혼관은 우리 나라와 큰 차이가 있다. 결혼 전의 동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이들에게 있어 동거는 결혼 전의 남녀가 서로에게 적합한 파트너인지를 모든 면에서 관찰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서로가 잘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하면 결혼을 결정하나, 특별한 의식(결혼식 또는 혼인 신고)을 중요시하지 않아서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몇 십 년 동안 자녀를 두고 사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통계를 보면 남자들이 결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금 관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미혼 남자의 경우 월급의 50% 정도까지 세금을 징수하는 독일의 세제와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혼전의 성 관계를 자연스럽게 여기며, 이미 10대의 청소년들 사이의 성관계도 대단히 자유 분방하다. 초등 학교에서도 피임 등의 성교육을 많이 실시한다. 독일은 이혼율이 30%에 이른다. 이혼시 자녀 문제는 우선적으로 모친에게 주로 부양권이 주어지나, 주말과 방학 때는 아버지와 같이 지낼 수 있으며, 아버지는 자녀 및 전처의 생활비로 수입의 일부를 주도록 되어 있다. 6. 여성의 지위 및 사회 활동 여자의 일생은 3개의 K축(교회라는 뜻의 Kirche, 아이라는 뜻의 Kinder, 부엌이라는 뜻의 K he 의 머릿글자 K)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독일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전통적으로 여성에 대해 보수적이었으나 현재는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어 있다. 1919년 여성들의 정치적 동등권이 의결되고, 1949년에 독일의 기본법에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되었고, 1977년 결혼법과 가족법이 개혁되었으며, 1980년 직장에서의 남성과 여성에 대한 동등한 대우에 관한 법률이 발효되는 단계를 거치는 동안 여성의 지위는 점차 향상되어 왔으며,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도록 법이 보장하고 있다. 탁아 시설의 발달과도 관련이 있지만 15~65세까지 독일 여성의 50% 이상이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동일한 일에 동일한 보수라는 원칙이 적용되어 남성 근로자보다 더 적은 보수를 받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여성에게는 야간 근무( 또한 1961년 이래 모든 연방 정부에 최소한 1명 이상의 여성 장관이 속해 왔으며 현재에도 4명의 여성 장관이 있고 국회 의장 및 부의장도 여성이다. 1991년 이후에는 여성과 청소년을 위한 연방 내각이 구성되었으며 모든 주 정부는 여성 장관과 여성 민원 조사관을 가지고 있으며, 1200여 개의 지방 행정 기관들도 여성에게 동등 지위의 자리(Gleichstellungsstelle)를 마련해 주고 있다. 7. 신세대 경향 독일 청소년의 90% 이상이 안정적인 직업과 직장에서의 성취도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데 이는 독일 내 10% 이상의 실업률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또 많은 청소년들이 부모로부터 일찍 독립하고 싶어하지만 비싼 방세와 생활비 때문에 25세까지도 부모에게서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다. 독일 청소년의 경우 개성이 무척 뚜렷한 것이 특징인데 통독 이후에는 자라 온 환경이 다른 관계로 구서독 청소년과 구동독 청소년의 견해가 다른 경우가 많다. 구서독 청소년의 경우 정치·사회 복지 정책 등에 관심을 가지고 환경 파괴를 가장 큰 문제로 생각하는 반면, 동독 청소년은 실업과 가정,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생계 불안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 결과 나타났다. 1990년 전 독일 청소년 연구 조사에 의하면 구서독 지역 청소년들이 구동독 지역 청소년보다 단체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구서독 청소년 37%, 구동독 청소년 19%가 청소년 단체에 가입), 스포츠를 선호하는 반면 구동독 지역 청소년은 음악 감상과 독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자신들의 삶의 목표에서는 비슷한 선호도를 보이기도 했다. 삶의 목표 1위가 좋은 친구 사귀기(구서독 76%, 구동독 67%), 2위가 개인의 성공(구서독 60%, 구동독 62%)이고 다음으로 가정 생활 (구서독 49%, 구동독 58%), 자립(구서독 44%, 구동독 45%), 자아 실현(구서독 31%, 구동독 32%), 세련된 옷차림(구서독 31%, 구동독 31%) 순으로 나타났다. 8. 교육 3~6세까지의 어린이들이 부모의 의사에 따라 유치원 교육을 받고(70%), 만 6~18세까지는 의무 교육 기간으로서, 각자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5학년 때부터 진로를 결정하며(11~13학년 때 다시 한 번 진로를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인문계 학교나 실업계 학교를 선택한다. 대학을 가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학업이 주는 스트레스가 우리 나라 학생에 비해 적은 편이며 주말 및 방학은 각자의 취미를 위해 시간을 배려하며 그들 또한 이 기간에는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대학에서는 수업료가 없으며, 생활이 곤란한 학생에게는 국가가 생활비도 보조해 주고 있다. 9. 생활상 대부분의 직장인이 독일 사람은 주로 일주일 또는 한달 동안 먹을 식량을 한꺼번에 장만한다. 사계절 옷 역시 계절이 바뀜에 따라 두세 벌씩 새로 사 입는 사람이 대다수며 입지 않는 옷은 불우 이웃이나, 제3세계의 난민들을 위해 깨끗이 세탁하여 보낸다. 이런 생활 습관에서 보듯이 독일인은 계획적인 생활이 몸에 익어 은행, 관공서 등 여타 지역의 근무 시간을 1분이라도 초과하면 일 처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퇴근 후의 독일인은 가정에서의 생활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특별한 동창회·동문회·향우회 등이 없으며 집에서 취미 생활과 가정일을 돌보는 것이 전부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친척을 방문하든가 산책·영화 구경을 한다. 학생들의 경우 밤을 새워 공부하기보다 주로 하루에 몇 시간 정도를 열중해 생활 리듬을 유지하며, 대학생의 경우 주말엔 주로 부모한테 가거나 여자(남자) 친구를 방문하며, 밤늦게까지 여는 카페(Cafe)에서 친구들을 만난다. 청소년의 경우 주말에 한 번 정도 디스코장에 가기도 한다. 직장인들의 집에서의 생활은 부엌일, 아이들 돌보는 일 등 모든 일을 남녀가 같이 하며, 다양한 텔레비전 프로에 따라 취미에 맞는 채널을 택해 맥주나 초콜릿 등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며, 출·퇴근 시간 때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잡지나 소설책을 읽는 것이 보통이다. 독일인들의 대다수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단 음식을 많이 먹고 좋아하는 편이며, 몇 가지 술 종류와(독주, 맥주, 와인, 샴페인) 음료수(콜라, 주스, 물, 스프라이트 Sprite) 정도는 집에 항상 기본으로 두고 먹는다. 독일 사람을 방문할 때는 사전에 꼭 전화나 구두로 약속을 해야 하며, 식사 초대인 경우 상대방의 음식 습성에 맞추려고 하는 편이다. 독일 남성들은 주말에 독일 분데스리그(Bundesliga) 중계 및 유럽 지역에서 벌어지는 축구 경기를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것 또한 커다란 즐거움 중에 하나이다. 독일인의 출퇴근 거리는 직장에서 집까지 대략 자가용으로 1시간 거리(100Km정도)로 쉽게 교통 체증을 느끼지 않고 다니며 학생들의 경우 자전거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주말에는 산책을 즐기며, 대부분 몇 시간 이상 산이나 들판을 걷는다. 독일 사람과의 산책 계획시에는 최소한 두세 시간이 소요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보통 1년에 휴가는 4~5주이며 여름 휴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일을 떠나 더운 나라 및 섬으로 간다. 이 여름 휴가는 독일 사람들의 가장 큰 취미 중의 하나로, 휴가를 위해 1년 동안 일을 해 저축한다. 독일 사람들은 각자 한두 가지의 취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말하는 취미는 아주 전문성을 띠어 남보다 훨씬 나은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운동의 경우 한 단체팀에 소속되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트레이닝을 하고 다른 팀과의 정기 시합도 많이 한다. 통계에 의하면 요즘 독일인의 휴식 시간이 점점 많아져 전체 인구의 40%가 7만 5000개에 달하는 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그 외 10% 정도가 개인적으로 운동을 즐긴다. 여기서 말하는 클럽의 성격은 우리 나라에서 생각하는 회원제나 많은 경비가 드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가 저렴한 회비로 쉽게 배우며, 대인 관계도 맺을 수 있는 장소를 말한다. 공공 건물 및 상점의 영업 시간은 다음과 같고, 이 시간은 엄격히 지켜진다. 백화점 및 개인 상점:오전 8시 30분~오후 6시(월요일~금요일) 영업한다. 목요일은 오후 8시 30분까지 개점하며, 토요일은 오전 8시 30분~오후 1시(소도시) / 2시(대도시) / 매월 첫째주 토요일은 오후 4시(소도시) / 6시(대도시)까지 열린다(이 시간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 박물관:대부분 월요일에 쉰다. 국립 박물관은 오전 9시~오후 5시까지 개관하며 큰 박물관에는 커피숍과 레스토랑이 있다. 은행의 경우 월요일~금요일을 오전 8시~오후 6시까지 영업하며 토요일은 오전 8시~오후 1시까지 문을 열고, 소도시의 경우 점심 시간에 닫힌다. 그러나 대도시에서는 늦은 저녁까지도 열리며, 특히 역에 위치한 우체국은 밤 12시까지 열리는 곳도 있다. 10. 대중 문화와 스포츠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프로 축구 분데스리그는 독일인이 보고 즐기는 가장 인기 있는 운동 종목이다. 1부와 2부로 나눠지는 프로 축구와 프로 축구팀 산하 아마추어팀, 지역 및 동네 단위로 축구팀이 결성되어 있어 주말이면 동네 작은 운동장을 비롯해 대도시의 1부 프로 축구 경기가 벌어지게 된다. 1부 프로팀은 16개 팀으로 2시즌(1년) 동안 홈 앤 어웨이(Home and away) 방식의 경기를 치르며, 하위 세 팀은 2부 리그로 떨어지고, 2부의 상위 3팀이 1부 리그로 올라오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외국 선수 반입은 한 팀에 최대 3명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 이탈리아 및 스페인 프로 축구팀과 다르다. 독일이 축구 강국이 될 수 있는 모체는 어린 꼬마(5~6세)라도 자질이 뛰어나면 어렵지 않게 분데스리그로 진출한다는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정식 축구 클럽(Deutsche Fu allbund)의 회원은 530만 명에 달하며 이 숫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한다. 그리고 체조 클럽(Deutscher Turnerbund)에도 430만 명이 소속되어 있으며, 체조는 어린이 및 노인이 함께 즐기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보리스 베커(Boris Becker)와 슈테피 그라프(Steffi Graf)에 의해 붐을 이루기 시작한 테니스는 요즘 상당히 높은 인기를 차지하고 있으며, 1994년 세계 프로 복싱 챔피언의 탄생을 계기로(핸드리 마스케) 복싱 또한 한창 인기 종목으로 급상승하고 있다. 그 외에 사격 단체(Deutsche Sch zen-bund:140만 명)가 있으며, 이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사교의 의미가 큰 운동 종목이다. 또한 통독 이후 육상(90만 명)도 구동독 선수들에 의해 붐을 이루며 세계 수준에 달한다. 수영의 경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필수적인 운동이며, 유사시에 생명 보호의 관점에서 신생아의 경우 3~4개월 후면 수영장에 데려가 일찍 물에 적응을 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독일에는 영화보다 연극 문화가 발달되었다. 텔레비전 프로 가운데는 대담 프로(Talkshaw)가 발달한 것이 특징적이다. 우리 나라에서처럼 화려한 쇼 프로는 보기 어렵다. 스포츠 중계가 많고 보도 프로 비중이 크다. 스포츠인으로 유명한 사람은 보리스 베커, 슈테피 그라프, 핸드리 마스케, 마이클 슈마허(자동차 경주 세계 챔피언) 등이며 모델로는 클라우디아 쉬퍼가 유명하다. 11. 교통 독일의 대중 교통 수단은 크게 도시와 도시를 이어 주는 철도와 비행기, 그리고 도시 내의 대중 교통 수단인 지하철, 버스, 택시 등이 있다. 철도 독일의 철도는 통일 전 서독의 연방 철도(Bundesbahn)와 동독의 제국 철도(Reichbahn)가 있었으나 통일 후 연방 철도(DB)로 합병되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사철(私鐵)은 없으며, 철도는 가장 빠른 ICE(Interciry Express), 특급인 IC(Inter City)와 EC(Euro City)가 운행중이며 그 외 D-Zug(schnell Zug), E-Zug(Eil Zug)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대도시와 외곽을 이어 주는 통근 열차 개념의 S-bahn이 있다. 철도 요금은 꽤 비싼 편이지만 우리 나라와는 달리 고속 버스가 없으므로 이용률이 높다. 비행기 루프트한자(Lufthansa)가 유일한 민항 회사이며, 1991년에 출범한 저먼 윙(Ger-man Wing)사는 파산하였다. 하지만 독일인의 해외 여행 수요가 많으므로 부정기 전세기 회사로 하팍 에어(Happag Air), LTU 등이 있다. 지하철 U-bahn이라고 하며,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뉘른베르크(N nberg), 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트 등 대도시에서 운행중이다. 버스 독일 내 가장 활발한 대중 교통 수단의 하나이며 특징은 시간표에 따른 정시 운행을 하는 점이다. 시가 전차(Stra nbahn) 현재 대도시에서는 교통 소통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지하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독일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교통 수단이다. 지하철과는 달리 지상을 시속 60km 정도로 운행하기 때문에 호젓하며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택시 독일의 택시는 신속 정확하고 친절하기로 유명하다. 값은 꽤 비싼 편이지만 서비스가 좋고 모든 택시는 콜택시(Call Taxi)이다. 자동차 젊은 청소년이나 대학생의 경우 폭스바겐에서 나온 골프(Golf)차를 선호하며 어디서나 쉽게 부속품을 구할 수 있으므로 중고차 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독일인 대부분이 기본적인 차 관리를 할 수 있고, 젊은 층이나 중년 남자들은 부속품만 있으면 스스로 차를 수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본차와 우리 나라 차의 경우 부속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중고차 값이 독일 차에 비해 싼 편이다. 중고차의 경우 출고 후 4년 뒤에 가장 경제적으로 살 수 있다고 한다. BMW는 특히 여성들이 선호하는 차이며, 포르쉐(Porsche)와 벤츠(Mercedes Benz SL500)는 부의 상징이기도 하다. 12. 축제 카니발 행렬은 부활절 7주 전부터 행해지며, 쾰른, 마인츠, 뒤셀도르프가 유명하다. 가을에는 민속 잔치가 주 단위로 열리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뮌헨의 10월 축제(Oktoberfest)가 9월 둘째주 마지막 토요일부터 10월 첫째 일요일까지 열린다. 10월 축제 기간 동안에는 뮌헨은 물론 그 주변 도시에서도 방을 구하기가 힘들다. 또한 마을마다 열리는 축제로 중세 때부터 내려온 폴크스 운트 슈텐페스트(Volks und Sch tenfest)가 있다. 놀이 기구와 독일 고유의 소시지, 감자 요리와 고기 종류의 음식들을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전 독일 도시에서 성탄절 4주 전부터 특정한 장소에서 장이 열리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은 뉘른베르크이다. 이런 성탄절 시장에서는 따뜻한 적포도주와 같은 특색 있는 술들이 선보이며, 크리스마스 트리를 위한 갖가지 장식품들 또한 많이 볼 수 있다. 색색가지의 젤리, 과자, 빵들도 빼놓을 수 없는 전시품들이다. 13. 공휴일 모든 주의 공통적인 휴일로는 1월 1일(설날), 10월 3일(통일의 날), 12월 25~26일(크리스마스) 등이 있다. 주마다 다른 공휴일은 다음과 같다. 바덴-뷔르템베르크와 바이에른에서는 1월 6일(Dreik igstag:공현절)에 쉬며, 바이에른과 자아르란트(Saarland)에서는 8월 15일 성모의 승천제(Maria Himmelfahrt), 또한 11월 1일 성인(聖人)의 날로 대다수 많은 주에서 공휴일로 정해져 있다. 부활절, 성령 강림절(pfingsten), 그리스도의 성체 축제 날(Fronleichnam), 그리스도의 승천(Christi Himmelfahrt)은 공통된 공휴일로 지정돼 있으나 매년 그 날짜가 틀리며 주로 4월에서 6월이다. 14. 언론 매체 잡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로는 100만 명의 구독자가 있는 『슈피겔 Der Spiegel』이 있다. 수준이 가장 높은 잡지로서 대졸 이상자에게 주로 읽히며, 정치와 시사가 주내용이다. 그 외에 중간 수준의 『슈테른Stern』, 『포쿠스Focus』, 『분테Bunte』, 『퀵Quick』 등이 있으며, 요즘 케이블 방송의 대중화에 힘입어 텔레비전 프로그램 전문 잡지들이 홍수처럼 출판되고 있다. 여가 선용을 위한 전문 잡지(스포츠, 컴퓨터, 취미) 또한 많은 구독자가 있다. 이 모든 잡지를 포함 독일 전체에 출판되는 잡지 종류 수는 대략 600가지에 이른다. 신문 『빌트 Bild』(470만 구독자), 『베스트도이체Westdeutsche』(70만),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 Allge-meine Zeitung』, 『디 벨트Die Welt』 등이 유명하며, 그 중 벨트지는 남녀노소, 지식고하를 막론하고 가장 대중적으로 읽는 조간 신문으로 수준이 낮아 외국 노동자(특히 터키, 이탈리아, 그리스 등)가 읽을 만한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수준이 높은 Frankfurt Allgemeine Zeitug 등 몇몇 신문은 정치면, 경제면 모두가 대학생 수준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독일 신문 구독 형태는 구독자의 3분의 2가 정기 구독자이며 3분의 1은 가두 판매에 의하며, 특히 학생이 정기 구독을 할 때는 많은 할부 금액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한달 구독료는 신문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략 40DM 정도이며 가두 판매대에서 신문의 구입시 대략 2~3DM 정도이다. 방송국 국영 방송국으로는 ZDF와 ARD가 있으며 사설 및 케이블 방송이 1986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현재 30여 방송 채널이 있다. 그 가운데 뉴스 전문 방송국 2개, 스포츠, 대중 음악 방송(M-TV, VIVA ①, VIVA ②, VH-I) 등이 전문성을 띄고 있으며, 외국 채널로는 CNN, 터키 방송, 중국, 홍콩 방송국 등이 있다. 15. 주의 사항 레스토랑에서 계산할 때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을 삼가고, 조용히 눈이 마주칠 때까지 기다려서 그 자리에서 계산을 한다. 임비스(lmbi㎗별@肝음식점)이나 셀프 서비스점(Selbstbedienmg)점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시킬 때는 우선 음료수(예:물, 콜라, 맥주, 주스)를 먼저 시키는 것이 기본적이다. 레스토랑 및 카페에서의 팁은 금액의 약 5% 정도를 주면 충분하다. 식사후 트림은 아주 실례인 반면, 식사중 코를 푸는 것은 흉이 되지 않으며, 상대방이 재채기를 할 경우 독일어로 “게준트하이트(Gesundheit:“건강하세요”라는 뜻)”라고 하는 것이 좋다. 길가에서는 우측 통행이 원칙으로 에스컬레이터 및 엘리베이터를 탈 때에도 우측에 붙어 서 있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공공 교통 시설 이용시(버스, 지하철, 기차 등) 모든 승객이 내린 후에 승차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공공 건물은 금연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흡연 지역을 따로 마련해 놓은 곳도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