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절요 제2권
성종 문의대왕(成宗文懿大王)
기축 8년(989), 송 단공 2년ㆍ거란 통화 7년
○ 여름 4월에 교하기를, “내가 바야흐로 학교를 숭상하여, 자나 깨나 염려하고 있다.
그런데 요사이 유사가 올린 거인(擧人)의 인원수를 보았는데, 오직 태학(太學)의 조교(助敎) 송승연(宋承演)과 남해도(南海道) 나주목(羅州牧)의 경학박사(經學博士) 전보인(全輔仁)이 근실히 가르침은 공자가 학문을 널리 닦은 뜻에 합하고, 가르칠 때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은 과인이 학문을 권면하는 마음에 맞으니, 마땅히 권장하고 탁용하는 은전을 더하여 특별한 은총을 보여야 하겠다.
승연은 9등을 올려 국자박사(國子博士)에 임명하고 이어 비공복(緋公服) 한 벌을 주며, 보인에게는 공복(公服) 한 벌과 쌀 50석을 주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문관으로 10명 이하의 제자가 있는 자는 모두 임기가 차서 천직(遷職)할 때에 유사가 갖추 기록하고 아뢰어 포상하고 폄출하게 할 것이다. 12목의 경학박사는 과거보러 가는 문생이 한 사람도 없으면, 비록 임기가 찼더라도 다시 유임시켜 효과를 내도록 책임지우고, 참작하여 관계(官階)를 줄 것이며, 이를 일정한 법식으로 삼도록 하라." 하였다.
[原文]
○夏四月,敎曰,予方崇學校,寢興軫慮,近覽有司所進,擧人名數,唯大學助敎宋承演,南海道羅州牧經學博士全輔仁,誘以能諄,合宣父,博文之意,誨而不倦,副寡人勸學之心,宜加奬擢之恩,用示殊尤之寵,承演,可超九等,授國子博士,仍賜緋公服一襲,輔仁可賜公服一襲,米五十碩,自今凡文官,有弟子十人以下者,有司,於政滿遷轉之時,具錄奏聞,以爲褒貶,其十二牧經學博士,無一箇門生赴試者,雖在考滿,復令留任,責其成效,量授官階,以爲常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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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제3권
현종 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무오 9년(1018), 송 천희 2년ㆍ거란 개태 7년
○ 전보인(全輔仁)을 상서좌복야로 삼았다.
[原文]
○十一月,輔臣,以彗星已滅,表請御正殿,復常膳,從之。○以全輔仁,爲尙書左僕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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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제3권
현종 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기미 10년(1019), 송 천희 3년ㆍ거란 개태 8년
○ 우복야 전보인(全輔仁)이 졸하였다. 보인은 성품이 경망하고 조급하였는데, 명경으로 출신하여 여러 번 학관에 임명되어 당시에 노숙한 유학자로 이름났다.
[原文]
○右僕射全輔仁,卒,性,輕躁,以明經出身,累授學官,時稱宿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