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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을 도구로 해서 자신의 일을 이루신다.
당시 에스라 는 하나님의 일꾼 이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마치면 자기의 위치로 내려와서 내가 미약함을 알고 있으면 된다.
'말씀' 을 알게 되면 선한 일을 하게되고 악에 대한 극복력이 생기고 삶에 대한 변화가 생긴다.
반대세력에 맞서는 용기
복음의 역사속에 동일한 사단의 역사가 있다.
'사단'은 내 사정을 이해하는 것처럼 달콤하게 역사 할 수 있다.
1. 에스라 제목
본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에즈라'로 불렀다. 그러나 에스라 2장의 내용이 느헤미아 7장에서 반복되며, 이 두 책이 나름대로의 특징을 지닌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이 두 책은 별개의 것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헬라어 칠십인 역에서는 본서를 '에스라1서'라고 했으며, 라틴어 벌게이트 역에서는 오늘날과 같이 '에스라'로 칭하였다. 그러므로 본서의 제목은 본서의 저자인 동시에 중심인물 인 제사장 에스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2. 이해를 위한 서론
구속사적 개관 - 역대서와 에스라서 사이에는 70년의 바벨론 포로생활의 암울한 역사가 생략돼 있다. 본서는 암울했던 포로생활이 끝나고, 이제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선포함으로써 시작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 선민으로서 합당치 못한 행동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바벨론에 잡혀가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으로 말미암아 선민국가를 재건 회복하게 되는 과정의 기록인 것이다.
1) 시대적 배경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는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과 나라를 재건한다는 하나의 줄거리로 되어 있으므로, 히브리 성경에서는 이 두 성경이 한 권으로 묶여져 있다. 바벨론 유수는 주전 606년에 시작되었고, 적의 공격 끝에 예루살렘성이 주전 587년에 함락되었다. 바벨론인들은 주전 606-587년 사이에 많은 유대 민족을 포로로 끌어 갔는데, 그들 중에는 다니엘과 에스겔도 포함되어 있다. 예레미야는 포로 생활의 기간을 70년으로 예언하였는데(렘 25:12-14/렘 29:10-14), 이는 606년에 침공을 시작하여 536년, 남은 자들이 돌아와서 제단을 재건하고 제물을 드리기 시작할 때까지 이어졌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는 그 땅과 성에 돌아와서 성전과 성곽을 재건하는 일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에스더와 학개, 스가랴서도 역시 이 시대에 기록되었다(스 5:1-이하).
※ 기록연대 - B.C 444년 느헤미야 총독부임 직후 기록 가능성 높음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와 역대기는 그 시대적 배경이 연속적이어서 기록 연대상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에스라서의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① 후기 연대설: 에스라서를 느헤미야서보다 더 늦게 기록되었다고 보는 견해로서 비평주의 적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모빙켈(Mowin-ckel)은 본 서의 기록 연대를 주전 200년경으로 잡았으며, 토레이(Torrey)는 주전 250년경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19세기와 20세기초의 비평주의자 학자들은 느12:11, 22에 나오는 얏두아가 요세푸스의 책에 나오는 알렉산더 대왕의 얏두아와 동일 인물임을 내세워 주전 300년경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② 전기 연대설: 이 견해를 따르는 학자들은 느12:11, 22에 나오는 얏두아가 요세푸스의 책에 나오는 얏두아와는 동명 이인이라고 주장하며 후기 연대설을 반대한다. 에스라서는 느헤미야의 귀국 후인 주전 444년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에스라서에서는 전기 연대설을 지지하며, 에스라가 느헤미야 때의 대제사장인 여호하난의 방에 들어간 기록을(스10:6) 통해 볼 때, 에스라서는 에스라 생애 말기인 주전 444년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한다.
2)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유대 역사
에스라-느헤미야야서는 바벨론 을 정복한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에게 고향으로의 귀환을 허락하는 조서를 선포한 이야기로 시작하여(스1:1-3 참조) 귀환한 이들을 중심으로 성전이 극적으로 재건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스1-6장). 그 후 에스라는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제 7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신앙 개혁을 추진하고 율볍책을 백성들에게 읽어 준다(스7-10장). 아닥사스다왕 제 20년에 돌아온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한 후 (느1-6장) 잠시 페르시아로 돌아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사회개혁에 착수하는 것으로 에스라-느헤미야서는 마치고 있다(느13장)
바벨론에서의 귀환 - 세번의 귀환
1차 2차 3차
성전재건 종교개혁 성벽재건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
BC538~ BC458~ BC444~
BC515 BC456 BC432
3) 연대기: 이 기간에 대한 간략한 연표는 다음과 같다.
BC 606~605- 바벨론의 침략이 시작되고, 포로들이 국외로 추방되다.
BC 587- 예루살렘이 함락되다.
BC 539- 고레스에 의해 바벨론이 멸망하고, 메대 바사 왕국이 시작되다.
BC 538- 고레스가 유대 민족의 팔레스틴 귀환을 허락하는 조서를 내리다.
BC 536- 약 50,000명의 유대인이 귀환하여, 제단을 재건하고 제사 의식을 행하다.
BC 535- 성전 재건이 시작되었으나, 공사가 중단되다(스 4장 참조).
BC 520- 15년 후 공사가 다시 시작되고, 학개, 스가랴가 사역하다.
BC 515- 성전이 완공되어 헌납되다.
BC 476- 에스더가 바사의 왕비가 되다.
BC 458- 에스라가 예루살렘에서 영적 개혁을 주도하다(스 7-10장 참조).
BC 주전 445- 느헤미야가 귀환하여 성곽을 재건하다. (단9:25)
※ 성경 연구자들 간에는 어떤 연대에 대하여 일 년이나 이 년 정도의 의견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사소한 불일치가 교훈을 기록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4) 지도자들: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 우리 시대의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
스룹바벨(세스바살-2:3/3:8)의 직책명은 "딜사타"(2:63/ 방백)였는데 "총독"이라는 뜻이다. 역대상 3장 17-19절은 스룹바벨이 다윗 가문의 왕족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는 복구된 나라의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봉직하였다.
이 시대의 대제사장은 여호수아(예수아-학 1:1/학 1:12/학 1:14/슥 3:1-10/스 3:2참조)였고, 또한 두 선지자, 즉 학개와 스가랴가 사역하였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처음 귀환하는 무리를 인도한 사람이 아니었음에 유의하자, 에스라는 7장까지 무대에 나타나지 않는데, 두번째의 일단(첫번째보다 작은)을 거룩한 땅으로 인도하였다. 에스라는 거기서 활약하고 있다가 결국 느헤미야와 협력하게 된다(느 8:9/느 12:26).
에스라는 제사장이며 서기관이었던 경건하고 애국적인 유대인으로 우리에게 소개된다(스 7:1-6). 그는 위대한 성경 연구자였고 그 땅에서 율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또한 기도의 사람이었으며(8:21-23), 자기 백성의 영적인 복지에 대해 큰 부담을 지닌 사람이었다(9:3-4). 그의 이름은 "도움"이란 뜻이다. 여호와를 믿는 에스라의 믿음은 군대의 호위 없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위험한 여행을 기꺼이 떠맡아 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을 재건하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을 때 왕의 궁정에서 관리로 있었다. 그는 우리가 오늘날 "평신도"라고 부르는 사람으로서, 선지자의 소명을 받았거나 또는 제사장의 계열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는 술 관리 담당자의 직위에서 총독으로 승진하였다.
→ 그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하나님 역사를 이루는데 사용하였다.
5) 교훈: 하나님은 죄를 범하는 민족에게 유배의 심판을 내리셨다. 그는 또한 남은 자들이 돌아올 것을 약속하셨다(렘 25:12-14/렘 29:10-14). 다니엘은 바벨론에 있는 동안 예레미야의 예언을 읽었고, 이것은 그 백성의 귀환을 위해 기도하는 데에 있어서 그를 격려하였다(단 9:1-이하).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 히브리 민족을 통하여 오셔서 세상을 구원하게 하시려고 예루살렘에 "불빛"을 보존하셨다. 포로 생활은 유대인들을 우상 숭배로부터 치료하였고, 말씀을 알고 순종하고자 하는 욕망을 주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들은 받은 교훈을 빨리 잊어버렸다.
3. 기자 - 에스라
에스라서의 저자는 지금까지 학사인 에스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에스라서에서 저자에 관한 정확한 언급이 없고, 문장도 1인칭과 3인칭이 섞여서 나온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서로 다른 몇 사람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탈무드의 기록에는 본 서의 저자를 에스라로 밝히고 있다. 또한 문장의 주어가 바뀌는 경우는 저자가 한 사람일 때도 나타나는 것으로서 고대 바벨론 문서나 다니엘서에서도 볼 수 있다. 또한 본 서는 제사장적 관점에서 역대기와 비슷한 문체로 기록되었으며, 사건 묘사의 치밀성으로 보아서도 에스라의 저작인 것이 유력하다.
에스라는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스라야의 아들로 사독 계열의 제사장이다. 그는 율법에 정통한 서기관으로서 2차 포로 귀환 때에 유다 백성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에스라는 포로 시대에 살았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에 대하여 익숙한 학자였다. 그는 율법에 정통하였기 때문에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잘 알았고, 유다가 다시 회복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율법을 백성에게 가르침으로써 타락한 유다 백성을 회개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는 또한 여호와께 은혜를 입어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였다. 즉 이방 왕에게 신임을 얻었던 것이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법을 좇아 언제나 신실하고 정직하게 행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정통하고 정치적인 힘이 있는 에스라를 통하여 유다 백성의 포로 귀환을 이루어 가셨던 것이다. 특히 에스라는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 사업을 성취하였으나 아직도 하나님의 법을 떠나 불경건한 삶을 살고 있을 때 등장하여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귀한 사역을 감당했다.
종교 개혁
에스라는 포로 귀환으로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이방 족속들과 통혼하여 그들의 딸들을 아내로 취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범죄했음을 알고는 옷을 찢으며 회개하였다. 에스라는 하나님께 유다 백성의 죄악을 고하며 마치 자신이 죄지은 것과 같이 통회 자복 하였다. 에스라가 회개할 때에 온 유다 백성이 에스라와 함께 통곡하며 회개하였다. 에스라는 이방인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자들에게 그 여인들을 돌려보낼 것을 명하였고 유다 백성은 에스라의 명을 좇아 그와 같이 행하였다. 이로써 에스라는 백성 가운데 있는 죄악을 제하는 종교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유다 백성이 그와 같이 범죄를 저지른 것은 하나님의 법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다. 에스라는 무지한 유다의 죄악을 깨우치고 솔선 수범하여 회개함으로써 유다의 죄악을 회개시켰던 것이다.
율법 교육
에스라는 율법에 능통한 자로서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에 힘썼다. 오랫동안 이방의 포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유다 백성은 율법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남이 많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백성은 율법을 배우고 나서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통곡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에게 죄를 깨닫게 만들고 회개시키는 능력이 있다. 에스라는 그 때가 여호와의 절기이므로 백성에게 울음을 그치게 하고 초막절을 지키도록 명하였다. 유다 백성은 참으로 오랜만에 초막절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상기하게 되었다.
→ 에스라의 율법 교육은 유다 백성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를 힘써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4. 기록 목적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거의 같은 시기의 포로귀환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라나 느헤미야의 기록 목적이 유사하다.
에스라서의 기록 목적은
첫째, 포로귀환 이후에 벌어진 성전 건축의 역사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둘째, 성전 건축과 같은 하나님의 사업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에스라 3장에 나오는 성전의 기초 건축을 위한 백성들의 일치 단결(1절), 방해 세력에 맞서는 용기(3절), 자발적인 예물 헌납(4-7절), 조직적인 역할 분담(8, 9절) 등에 관해 기록되어 있다.
셋째, 70년이라는 바벨론 포로 기간과 포로귀환 그리고 성전 재건을 통해서 드러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하기 위해서이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포착될 수 없지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5. 주제 및 특징과 구성
1) 주제 및 특성
본 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과 성전 재건이 주제를 이루고 있으며, 특징으로는 먼저 포로 후기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데, 느헤미야와 더불어 포로귀환 이후의 사건을 다루는 구약의 마지막 역사서이다. 또한 역대기와 느헤미야서와 유사하게 이스라엘 전통 종교의 회복을 염원하는 제사장직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와 신앙의 구심점인 성전이 재건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을 보아서도 이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에스라서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 관계가 강조되고 있다. 언약은 족장 시대 이래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포로 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언약 백성들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돋보일 뿐만 아니라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이 강조되고 있다.
2) 구성
에스라서는 바벨론을 멸망시킨 바사 제국의 고레스 왕의 조서로부터 시작된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의 포로 생활이 끝나고 스룹바벨의 인도하에 약 5만 명에 달하는 귀환민들이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런 본 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반부(스 1-6장)와 후반부(스 7-10장)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에스라 이전의 사실에 관한 내용으로 주로 스룹바벨의 인도하에 일어난 제1차 귀환과 귀환자의 명단(스1:1-2:70) 그리고 성전 재건의 시작과 중단, 재개와 완성(스 3:1-6-22)등이 기록되어 있다. 전반부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성전 재건이다. 후반부는 에스라 이후의 사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는 약58년의 공백 기간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여인과 혼인하는 등 신앙의 순수성을 상실해 갔다. 이런 시점에서 에스라 인도하의 제2차 귀환(스7:1-8:36)이 이루어졌고 그후 에스라의 종교개혁(스9:1-10:44)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언약 갱신이 완성되어 갔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6. 간략한 개요
Ⅰ. 스룹바벨 영도하의 귀환(1-6장)
1. 유대인의 회복(1,2장) 2. 사역에 대한 반대(3,4장)
3. 성정의 봉헌(5,6장)
Ⅱ. 에스라 영도하의 귀환(7-10장)
1. 아닥사스다의 조서(7장) 2. 유대인의 귀환(8장)
3. 에스라의 중보기도(9장) 4. 백성의 개혁(10장)
7. 자세한 개요
제 1 부 - 포로귀환자들의 예루살렘성전 재건(1:1-6:22)
Ⅰ. 스룹바벨 영도하의 제1차 포로귀환(1:1-2:70)
1. 고래스의 포로귀환 및 성전재건허가 칙령(1:1-4)
2. 이스라엘의 헌물 및 고레스의 성전 기명 반환(1:5-11)
3. 1차 귀환자들에 대한 계수(2:1-63)
1)종족과 계보가 명확한 자들의 가계 및 지역별
명단과 수효(2:59-63)
2)종족과 계보가 불명확한 자들의 가계별 수효(2:59-63)
4. 귀환자들의 총계(2:64-70)
II. 성전재건(3:1-6:22)
1. 성전기초공사(3:1-13)
①성전건축에 앞선 백성들의 준비(1-7)
②성전토대의 완성(8-13)
2. 이스라엘에 대한 대적의 방해(4:1-24)
①고레스 집권시의 방해(4:1-5)
②아하수에로 집권시의 방해(6)
③아닥사스다 집권시의 방해(7-23)
④성전건축의 중단(4:24)
3. 성전건축의 재개와 완공 (5:1-6:18)
①선지자들의 권고로 인한 성전건축 재개
②성전건축 재개에 대한 닷드네의 이의 제기(5:3-5)
1)성전건축재개에 대한 질문(3-5)
2)고레스칙령 확인을 위한 상소문(5:6-17)
③다리오왕에 의한 고레스칙령 확인(6:1-12)
④다리오왕의 조서에 따른 성전건축 재개와 완공(6:13-15)
⑤성전봉헌(6:10-18)
4. 유월절 의식 준수(6:19-20)
제2부 - 포로귀환자들의 신앙개혁 운동(7:1-10:44)
I. 에스라 영도하의 제2차 포로귀환(7:1-8:36)
1. 포로귀환자들에 대한 아닥사스다의 포고(7:1-28)
①영도자 에스라의 계보와 자질(7:1-10)
②에스라를 향한 아악사스다의 조서(11-26)
③에스라의 찬양(7:27,28)
2. 2차 귀환자들에 대한 계수와 귀환을 위한 준비(8:1-30)
①2차 귀환자들에 대한 계수(1-14)
②성전수종자들 모집(15-20)
③금식선포(21-23) ④재정관리자의 선정(24-30)
3. 2차 귀환자들의 예루살렘 도착(31-36)
①귀환의 경로(31-34) ②귀환감사제사(35,36)
II. 이스라엘의 대개혁 운동(9:1-10:44)
1. 이방인들과의 통혼범죄(9:1,2)
2. 이스라엘을 향한 에스라의권고와 회개의 촉구(9:3-15)
①이스라엘의범죄에 대한 에스라의 비탄(9:3,4)
②에스라의 중보기도(9:5-15)
1)하나님의 자비를 호소(5-9)
2)이스라엘의 범죄를 고백(10-15)
3. 이스라엘의 대각성운동(10:1-44)
①이스라엘의 회개(1,2) ②언약갱신(3-5)
③이방인과의 통혼문제해결을 위한 총회(6-15)
④이방인과 통혼했던 자들의 명단(18-44)
제사장들의 명단(18-22)/레위인들의 명단(23,24)/일반백성의 명단(25-44)
에스라 느헤미야 장별 내용 비교
8. 내용상의 구분
(1) B.C. 536년 스룹바벨의 인도하에 이루어진 바벨론 포로 1차귀환과, B.C. 516년에 완공된 예루살렘 성전재건을 주 내용으로 하는 전반부(1-6장)와
(2) B.C. 458년 에스라의 인도하에 이루어진 바벨론 포로 2차귀환과 신앙부흥운동에 주내용으로 하는 후반부(7-10장)로 나눌 수 있다.
▶ 주목할 사항
-귀환이 예언되어져 있다는 사실
-귀환이 고레스왕의 포고문에 의하고 실제로 개시되어졌다는 사실
▶ 두 단계의 귀환
*고레스왕 제1년(B.C. 536)에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개시되어져서
*아닥사스다왕 제7년(B.C. 458)에 에스라의 지도하에 완료되어짐
▶ 중심이 되는 영적인 의미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성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애3:32)는 말씀에 가장 잘 표현되어져 있다.
▶ 제 1부 - 고레스왕의 포고로 시작
제 2부 - 아닥사스다의 포고로 시작
▶ 제 1부의 중심적 인물 - 스룹바벨
제 2부의 중심적 인물 - 에스라
▶ 제 1부의 결말 - 재건되어진 성전이다.
제 2부의 결말 - 재분리 되어진 백성이다.
* 1부에서건 2부에서건 다 귀환한 사람들 또는 거룩한 용구(用具)의 주의 깊은 리스트가 있다
9. 장별 상고할 내용
【 1장 】
▶ 고레스 왕이 유대인을 돌려보낸 이유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다.(사44:28,45:1,렘25:11,12,29:10)에서 포로생활이 70년임을 말씀하셨다.
=고레스의 원통형 비문 발견됨
: 고고학자, 호르무즈, 라삼에 의해 발견
* 고레스의 포로귀환 허가의 배후에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만이 세계역사를 운행하시고 주장하심을 보다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다.
▶ 1차귀환에 동참한 유대인의 숫자가 불과 5만명에도 (42,360명)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황폐해진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겪게될 현실적 어려움을 상당 수의 사람들이 두려워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즉 70년 동안에 걸쳐 바벨론에서 이룩한 생활기반을 모두 버리고 떠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했듯이(창12:1-9), 또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향해 애굽에서 지체말고 떠나야 했듯이(출12:37-41),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된 유대인들 역시 미련없이 떠나는 결단이 필요했었다. 비록 바벨론 땅에서 닦은 생활기반이 아무리 든든하고 또한 바사와 고레스의 통치가 아무리 든든하고 또한 바사왕 고레스의 통치가 아무리 관대할지라도,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서라면 온갖 난관을 무릅쓰겠다는 헌신의 자세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 따라서 위의 상황을 통해, 편리한 물질 문명속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세상에 안주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함을 알 수 있다. 세상의 명예와 지위와 재물이 아무리 큰 만족을 준다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누리게 되는 기쁨과는 바꿀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겨야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태도이다.(히11:25,26)
☞ QT : 약속을 이루시는 일에 열심히신 하나님을 보라!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셔서(흔들어 깨우다의 의미, 1:1,5) 약속을 이루신다.
세상 만사, 역사는 곧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쓰임이 된다. 하나님의 시각에서 역사를 보라!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 QT : 바벨론으로 잡혀온 지 70여년이 지난 터라 대부분의 유다백성들은 바벨론에서 태어나서 그 곳 문화와 언어에 익숙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꺼이 현실의 안락을 버리고, 신앙적 결단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귀환했다. 그들은 인간적으론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의 삶을 던진 것이다. 이들의 명단이 구체적으로 실려있는 것은 그 일의 가치를 높이고 기억하신다는 뜻이다. 주의 거룩한 일에 쓰임을 받고자 헌신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은 아시고 기억하신다.
☞ QT : 선교와 관련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둘 중에 하나이다. " 가는 자와 보내는 자"
귀환하지 않고 남아있는 있는 자들은 필요한 물질적 도움을 주어야 했다.
【 2장 】
그들의 계보(스 2:1-57)
귀환했던 사람들의 가계가 후손을 위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스룹바벨이란 이름의 지도자였다. 이 겸손한 사람은 여호야긴의 손자였다(스 3:2;대상 3:19). 그는 성전을 재건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으며, 종종 하나님께서 친히 그에게 개인적으로 용기를 붇돋워 주셨다(참조, 학 1:14;스2:4,21,23;슥 4:6,7,9,10). 이렇게 귀환을 한 사람은 전부 42,360명이었다.
▶ 자손별로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 것은, 70년의 바벨론 포로생활에도 불구하고 유대백성들의 민족적 종교적 정통성을 상실하지 않고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 자신의 가문과 출신지를 기억했다는 것은 후에 다시 본토로 돌아갈 것을 믿었음을 의미한다.
▶ 이스라엘의 귀환 사건은, 성도가 비록 세상에 살고 있을지라도 언제나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함을 교훈해 준다.
▶ 귀환자들의 대부분이 바벨론에서 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가계와 출신거주지를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은, 유대백성들의 마음속에 스스로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식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일이었다.
▶ 따라서 성도들 역시 처해있는 현실적 여건과 신분이 어떠하든지 항상 스스로를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 인식하여 예수그리스도께 속한 자로서 부끄럼없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한다.(딤후2:15)
▶ 그들의 족보가 이렇게 자세히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포로생활이란 어려운 삶 가운데서도 그들의 민족성과 나아가 신앙의 순결을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 QT : 스나아 자선외 경우는 3,630명이나 된다. (스2:35, 느7:38) 통상 100명 이하의 다른 가문들과는 대조된다.
☞ QT :본문은 지루할 정도로 길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본문에서는 유다 사회 구성 요소에서 빠진 이들이 없다. 지도자로부터 노예가지 다 공동체의 주인들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한가지 목표를 위한 공동체로서의 인식을 갖고 있었다.
☞ QT : 족보없는 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족보를 잃어 버릴 만큼 바벨론에서의 생활이 그만큼 나태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해진 검증절차를 통해서만이 완전한 유대인으로 다시 들어올 수 있었다.
【 3장 】
그들의 신앙(스 3:1-13)
(1)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제단이 세워지고 다시 희생 제물을 바쳤다. 바벨론 포로기 이전의 이스라엘의 마지막 대제사장의 손자인 예수아가 이것을 지휘했다. 이 예수아(학개와 스가랴는 여호수아라고 부름)가 포로 귀환 시대의 첫 대제사장이 되었다.
(2) 최초로 지켜져야 할 신성한 절기는 초막절이었다.
(3) 기원전 536년 6월에 성전 재건이 시작되었다.(스3:8)
(4) 기초가 놓였을 때 거대한 의식이 거행되었다.
▶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1)
: 강제가 아닌, 자발적이며 개인신앙심의 발로에서 모인 것임, 즉 세상 통치자의 명령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가 그들을 자원하게 만들 것이다.
▶ 초막절
: 초막절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장막생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키는 절기로 7.15-22일까지 일주일 동안 지킨다.
▶ “대성통곡하며” (12)
①새 성전이 옛 성전에 비해 너무 보잘 것 없고(학2:3) 초라했으며, 그 상황이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었기 때문에 대성통곡함
②다시는 하나님의 전을 보지 못하고 죽을 줄 알았는데 다시 성전지대가 놓임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였기때문에 대성통곡함
【 4장】
▶ 바사 왕 연대표
1. 고레스 (B.C. 539-529)
2. 캄비세스2세 (B.C. 529-523)
3. 스메르디스(B.C. 523-522
4. 다리오1세 (B.C. 522-485)
5. 아하수에로 (B.C. 485-464) : 에스더의 남편, 크셀크세스
6. 아닥사스다1세 (B.C. 464-424)
▶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3절)
영적 공통성이 없는 자들을 그 요청에 따라, 영적사업에 동참시키면, 일시적 충돌은 면하게 되지만 거기서 오는 역효과는 너무 크다.(고후6:14)
▶ “손을 약하게 하여” (4절)의 의미
→사람으로 낙심하게 하거나 사기를 저하시켜 정상적인 활동을 못하게 하는 것을 의미함.
▶ 성전재건을 방해한 3가지 방법
(1) 유대인을 기만하고, 함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온다.
-우리들도 너희들과 함께 세우고 싶다
(2) 공연하게 방해한다
-유대인의 백성의 기력을 잃게 한다.
(3) 헛소문을 퍼뜨린다.
-관원들을 매수하여 그들에게 반대케 한다
▶ 우리들의 motto는 시종[결코 타협하지 않는다]가되어야 한다. 또 실망에 대해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갖고 있지 않으면 아니된다.
※ 중상모략하는 악마
사탄은 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방해하려 했다.
1) 그는 타협을 시도했다(스 4:1-3). 유다의 적들은 그들이 예배를 위한 집을 짓는 데 있어서 모두 일익을 담당하겠다고 제의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거절했다.
2) 그는 중상모략하려고 했다(스 4:4,5). 그들의 적은 그들에 관한 거짓말을 공직에 있는 바사 사람에게 했다. 그들은 왕(캄비세스)에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반역의 온상으로 아뢰었다. 그리고 왕이 모든 건축 행위를 중단하도록 해달라고 제안했다. 캄비세스는 이에 찬성하고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 5장 】
▶ 『 스룹바벨 = 세스바살 』 (16절)
스룹바벨은 바벨론 또는 갈대아의 이름이고 세스바살은 총독을 의미하는 파사의 칭호이다.
(1) 그는 남은 자의 유대 귀환의 지도자였음
(2) 새로운 성전의 기초를 설치함
(3) 새로운 성전의 건설을 완성함 - 세스바살
【 6장 】
도와 주시는 하나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역사하고 계셨다.!
1) 학개와 스가랴는 모두 이 당시에 백성에게 위안을 주는 사역을 시작한다(스 5:1,2).
2) 새로운 바사 왕인 다리오 대왕은 그 일에 대해 개인적 관심을 갖는다. 우리가 성서를 더듬어 갈 때 고레스가 내린 칙령의 본래 내용이 드러난다. 그는 유대인이 성전을 재건해도 허락했다. 그러므로 다리오는 성전 축조를 계속하라고 명령하고 그 경비를 자신의 공금에서 지불하라는 칙령을 내린다(스 6:19).
▶ (2절)
고레스의 조서가 바벨론에서 발견되지 않았을때에 원수들은 기뻐하였을 것이고, 이스라엘에게는 근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라도(메데) 그것이 발견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 (15절)
“다리오왕 6년 아달월 3일에 전을 필역하니라”
→ B.C. 515년 2월 18일
【 7장 】
왕으로부터 상호 협조(스7장) 바사의 군주인 아닥사스다는 바벨론을 떠나 귀환자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할 에스라의 계획을 상당히 도와주었다. 왕은 세 집단에게 보내는 조서를 내렸다.
1) 바벨론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 아닥사스다는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에 돌아가고자 하는 많은 사람이 귀환하도록 허락했다. 그는 또한 에스라가 모으고 있는 특별한 제물을 자유로이 바치도록 권유했다(스 7:11-20).
2) 유브라데 강 서편 모든 바사 고지기에게 : 그들은 에스라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그에게 마련해줘야 했다.
3) 에스라 자신에게 : 그는 공직자들을 선출하고 지명해야 했으며, 유브라데 강 서편에 사는 유대 백성들을 다스려야 했다(스 7:25,26).
▶ (1절) “이 일 후”
*6장과 7장간에는 60년간의 gap이 있는 것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최초의 6장은, 스룹바벨의 지휘하에서 귀환후의 20년간에 대해서의 기사이다. 그러므로 6장의 끝과 7장의 초와의 사이는 약60년간의 gap이 있는 것이다.
▶ (6절)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에스라는 육신적으로는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생각하며 먼 길을 떠난 것은 → 오직 하나님의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 (10절)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
-“연구하여”:사냥군이 짐승을 추적하듯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을 말한다.
(시111:2,119:14-16,140,147)
- “결심하였더라”: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 있으므로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결심함 (오래 전부터 결심함)
(시57:7)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 되었사오니”
▶ 『 에스라』
(1) 아론의 직계 자손임으로 (7:1-5) 제사장임
(2) 모세의 율법에 통달한 학자임(7:6)
(3) 그는 말씀을 연구하여,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숙련자들을 하나님이 사용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4) 그는 성경의 지식을 깊이 충분히 갖는 것이 지도자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자격인가를 나타내고 있다.
◎ 에스라의 품성
(1) 경건한 목적(7:10)
(2) 성공에 대한 경건한 감사(7:27-28)
(3) 하나님에의 깊은 신뢰(8:21-23)
(4) 백성의 죄때문에의 깊은 슬픔(9:3,4)
(5) 하나님 앞에서의 깊은 겸양성(9:5-15)
(6) 악에 대한 신속하고도 용감한 행동(10)을
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 8장 】
귀환 여행을 위한 준비
1) 에스라는 거의1,500명의 남자 및 그 가족과 함께 기원전 455년 3월 중순에 바벨론을 떠난다.
2) 도중에 무리들은 점호를 위해 아하와 강(유브라네강의 지류)가에 모인다. 에스라는 오기로 지원한 레위 사람이 하나도 없음을 발견하고 놀란다(스 8:15).
3) 그때 그는 대표를 즉시 보내어 귀환길에 오르도록 몇몇 레위인들을 설득한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신다.
왜냐하면 곧 거의 3백명의 레위 사람이 무리에 가담하기 때문이다(스 8:16-20).
4) 그때 에스라는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여행이 무사할 것을 하나님께 기도한다. 여기에서 그의 고백은 흥미롭다(스 8:22).
5) 그때 에스라은 자신이 바벨론에서 가져왔던 예물을 받은 금, 은 등의 운반을 맡도록 12명의 두목을 지명한다. 이것은 금, 은으로 환산해서 총 오백만 달러가 넘는 상당한 액수였다(스 8:24-29)
6) 기원전 455년 8월에 소수의 무리가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한다.(스 7:9;스8:31,32).
▶ (16-17)의 이름들은 거의 전부가 “하나님” 혹은
“여호와”란 칭호와 관련되어 있다.
▶ (21-23절)에서 볼 수 있는 에스라의 신앙
(1)겸손함(21) : 그의 겸손은 기도생활로 나타난다.
성도로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 하는 큰 교만이다.
(2)권세 앞에서도 담대히 하나님을 증거함(22)
(3)언행이 일치함 : 성도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대로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자들로 판정된다.(딛1:16)
【 9장 】
학사 에스라의 탄원(스 9:1-15)
1) 그때 에스라는 유대인이 이교적인 관습을 행하며 이방 여인과 결혼함으로써 이미 성읍에서 말씀의 증거를 더럽혔음을 안다(스 9:1,2).
2) 이 위대한 성서 교사는 즉시 깊은 슬픔에 잠겨 이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쏟는다. 에스라 9:5-15에 나오는 에스라의 기도는 다니엘(단 9장)과느헤미야(느9장)의 기도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 (1절) “가증한 일을 행하여”(느13:23,26,27,신7:1-3,사52:11)
▶ (3절):죄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아는 사람이라야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5,6절) “낮이 뜨뜻하여”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참된 신앙인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를 자기가 지은 것처럼, 회개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생각해보게 된다.
예)모세(출32:30-32, 히13:17)
【 10장 】
백성의 성결
1) 죄에 대한 인식이 지휘자들의 마음에 즉시 자리잡았으며 그들은 곧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에 일치한다.
2) 모든 남자들이 3일 내에 예루살렘에 나타날 것을 명령하는 선포가 유다 전역에 걸쳐 내려진다.
3) 에스라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방 아내들을 버리는 데 동의한다. 에스라는
이와 관련된 합법적인 문제들을 처리하도록 여러 지휘자들을 임명한다. 3개월 동안 조사되었다.
▶ (11절)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라”
-하나님만 두려워함으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에스라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 (18-43절
기록된 명단을 보면 그 이름들이 거의 전부(84명)가 “여호와” 또는 “하나님” 이란 칭호와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그 이름의 소유자들이 이런 성스러운 이름을 가지고 일시동안 세속화되어 하나님께 욕을 돌렸던 것이다.
예> 엘리멜렉 -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라’
구원받은 사람들 - ‘그리스도인’
→나는 그리스도인의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 QT : 개혁은 주님 오실 때 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대부분 바벨론에서 태어났으나, 그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터전을 버리고 유다로 돌아왔고, 반대와 어려움 속에서도 성전을 건축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버려야 할 죄를 갖고 있었다. 개혁은 계속되어야 했다. 우리도 주님 오실 때까지 영적 전쟁을 통해 계속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혁해 나가야 한다.
10. 적용될 교훈
에스더 -느헤미야를 통해 모든 시대의 성도에게 적용될 수 있는 회복의 과정을 배울 수 있다.
1) 그 땅에 돌아오라 : Back to the Bible, 영원한 곳을 소망하라
2) 제단을 수축하라 :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를 기억하라
3) 성전을 세우라 : 교회생활의 회복, 공동체의 일원이 되라
4) 적들의 등장 : 어려움, 고난, 핍박을 예상하라
5) 예언자의 등장 : 말씀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순종하라
6) 완성된 성전 : 회복된 교회생활을 지속하라
7) 분리하라 : 생활 깊숙히 들어온 죄를 버리라. 섞여있는 무리를 분리하라
8) 계속되는 개혁 : 개혁, 그리고 또 개혁하라
Jesus is coming.
We are 2 seconds away from the coming of Messiah.
Are you ready to meet your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