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재발심 해인사 백련암, 삼천배 기도 회향
삼천배 기도하는 날은 나를 찾는 날, 나를 밝히는 날, 우리를 찾는 날, 우리를 밝히는 날이다. 몸도 마음도 모두 놓아 버리고 싶어지던 날, 성철 큰스님 열반 20주기 사리탑 3000배 아비라 카페 회원 500명이 동참했다는 인터넷의 동영상을 자세히 보고 아비라 카페에 가입했다. 필요한 불교 정보를 찾다가 아비라 카페를 알게 되어서 기뻤다. 그날 같은 절에 다니는 친구한테 전화해서 해인사 백련암에 삼천배 절하러 가자고 했다. 부산, 창원, 마산, 김해 단체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았다. 수진성 보살님과 통화하니 자세히 안내해 주었다. 미리 아비라 카페에서 백련암 절하러 가시는 초심자들 필독사항을 출력해서 친구한테 전해 주면서 아침, 저녁으로 108배를 꼭 하라고 했다. 몇년전 봉정암 기도 후 다음 날 폭우가 내려서 하산 하다가 미끄러지면서 많이 다쳤다. 봉정암 기도는 2회로 회향하였다. 5월 셋째주 토요일 도반들이 봉정암 기도 가자고 하는데, 거절하고 백련암 삼천배 절하러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5월 17일 토요일 화명동에 사는 친구와 택시를 타고 만덕터널 지나서 육교 앞에서 내렸다. 2호차에서 수진성 보살님이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다. 동참 인원이 많아서 3호차에 탑승하였다. 차에서 먹는 떡은 꿀맛이었고 생수는 감로수와 같았다. 간식을 보시해 주신 보살님, 일회용컵 대신 머그잔 보시한 보살님께 감사드렸다. 처음 절하러 가는 우리에게 단아한 모습을 지닌 금강인보살님이 10년전 백련암에서의 기도 이야기를 해 주셨다. 삼복더위에 힘겹게 삼천배를 하고 난 후 감원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1배 한 것과 같다고 전해 주었다. 그 의미를 난 이해하였다. 10년 회향 후 지금은 백련암에서 봉사를 하신다고 하셨다. 차에서 도반님들이 기도집을 보고 순서대로 오분향예불문, 예불대참회문, 대불정능엄신주, 회향게, 발원문을 독송하였다.
어느덧 버스가 해인사에 도착하였다. 내려서 백련암까지 걸어 올라 가는데 도반님이 차를 태워 주어서 편히 백련암에 도착했다. 맑고 고요한 백련암에는 내가 상상했던 숫자 이상의 사람들이 기도하러 오신 것을 보고 놀랐다. 친구랑 관음전, 고심원, 적광전, 책방, 정념당, 원통전, 천태전에 참배를 하고 책방에서 기도자리를 마련하였다. 조금 뒤 저녁공양을 하고 커피를 한잔 마시고 산책을 하고 있는데 백련암 감원스님께서 차에서 내리셨다. 친구랑 합장 반배 드렸다. 불교TV로 뵌적은 있었지만 오늘 처음 뵈었다. 조금 지나서 관음전에서 감원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성철 대종사님의 기념관 건립 모연에 관한 법문을 잘 듣었다. 나에게 공덕 지을 일이 생겨서 환희로운 마음으로 여겨졌다.
나는 30년전에 혼자서 백련암에 기도하러 간 적이 있었다. 1981년도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고 휴일이 되면 절에 가서 기도를 자주 드렸다. 친척 중에 법사님이 한분 계셔서 대한불교청년회에 가입하여 신행활동을 하면서 바쁘게 지냈다. 청년회를 3년 같이 다닌 친구가 집에도 알리지 않고 해인사 약수암으로 출가하였다. 출가하기 전날 그 친구는 우리 집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출가했다. 그 친구가 너무 보고 싶고, 해인사 백련암에도 가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시월 어느날, 토요일 근무를 하고 난 뒤 바로 통영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해인사로 향했다. 백련암에 도착하여 원통전에서 참배를 하고 나니 날이 저물었다. 저녁공양 시간이 지났지만 조촐한 공양을 보살님께서 챙겨 주셨다. 몇 분의 보살님께서 삼천배 기도를 하러 오셨다. 아무 말없이 같이 절을 하였다. 옆의 보살님 하는대로 따라 절을 했다. 대한불교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1080배는 몇 번 했었지만 삼천배는 처음이라 따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었지만 참고 하다가 보니 새벽예불 시간 전에 삼천배를 다 하였다. 잠깐 마루에서 졸고 있는데 뜰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아서 나가 보니 보살님들이 성철 큰스님께 뜰에서 삼배를 하셔서 나도 삼배를 큰스님께 드렸다. 날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스님께서 새벽예불 전에 늘 그렇게 하신다고 어떤 보살님이 말씀하셨다. 첫 스님과의 친견이었다. 조금 지나서 새벽예불을 드리는데 무릎이 아파서 혼이 났다. 아침 공양을 하고 난 후 원주스님께서 불명, 원상 화두를 주셨다. 도운선이란 불명을 받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였다.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오솔길을 내려 오는데 약수암 팻말이 보였지만 가지 않았다. 출가하여 행자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를 찾아가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마산에 사시는 젊은 보살님과 이야기 하면서 내려왔다. 그 보살님은 혼자서 아비라 기도를 하면서 시간 나면 자주 기도 드리러 백련암에 오신다고 말씀하셨다. 집에 와서 일과 중에 108배는 꼭 했다. 백련암에서 3000배를 한 뒤에 두려움이 많아 줄어 들었다. 이듬해 도반들과 백련암에 절하러 갔었는데 삼천배를 다 하지 못하고 내려 오면서 지족암에 간 기억이 난다. 신행활동에 빠져 있을 무렵 부모님께서 결혼을 권했지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3년 뒤에 결혼을 하고 남매를 낳았다. 첫 아들을 임신하고 나름대로 태교한다고 금강경을 매일 독송했다. 그런 인연으로 지금의 아들은 동국대학교의 불교학부에 다니면서 엄마의 잘못된 불교공부를 지적할 줄도 알고, 늘 환한 미소를 머금고 열심히 공부하는 착한 아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딸도 어느 비구니스님의 유발상좌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데 가족처럼 대해 주시는 스님께 감사를 느낀다. 가끔 힘들어 하는 내게 아들은 자기이름을 지어 준 큰스님께 자기 이름 값이라고 진심으로 잘 모시라는 이야기도 한다. 32년간의 행복한 인연에 감사드린다.
1982년 가을날 학교 선배님이 파혼위기의 상처를 안고 불일암의 법정스님을 뵈러 갔는데 스님께서 그 결혼은 하지 말라고 그러시면서 불교공부 열심히 하면서 절에 다니라고, 인연을 못 만나서 그 선생님은 지금도 독신이시다. 그 무렵 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불일암을 가을 날 혼자서 찾아 갔었다. 뜰에서 어떤 스님이 계셨다. 법정스님께서 출타 중이라면서 그 스님께서 우리 스님은 책 그대로 사시는 분이라면서 저를 보고 종교생활을 우위에 두면서 생활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뜰에서 뵌 도현스님이 쓰신 책인 조용한 행복이란 책을 3년전에 사서 보니 그 옛날 절에 다니던 생각이 많이 떠 올랐다. 법정스님을 무척 따르는 스님이시다.
1993년 9월 23일 딸 아이를 낳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1993년11월 4일 텔레비전 뉴스에서 성철 큰스님 열반 소식을 연일 보도하였다. 재에 참석할 수 없어서 많이 슬퍼하였다.
2012년 BTN불교TV에 해인사 백련암 감원스님께서 성철 큰스님 100주년 기념 행사 일정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시청하였다. 백련암에 가고 싶었다. 50대 중반에 들어선 내가 삼천배를 할 수 있을지, 오래전부터 양쪽 일차성 무릎 관절증과 좌골신경통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잘 낫지 않았다. 직장 근무를 마치고 한의원에 가서 침과 뜸치료를 받았었다. 양방 치료도 받았지만 잘 치료가 되지 않았다. 치료를 중단하고 절 수행을 했다. 스님들께서 108배를 천천히 매일 하라고 일러 주셨다. 그렇게 하면 무릎관절을 고칠 수 있다고 하셨다. 올해 5월 17일 백련암에서 삼천배 기도 회향 후 새롭게 재발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통증이 심한 무릎인데도 30년 전 삼천배 하고 심하게 아팠던 때와는 달리 통증이 심하지 않았다. 잘 알고 있는 비구니스님께서는 다리가 아픈데 어찌 삼천배를 했냐고 꾀병 아니냐고 농담으로 말씀하셨다. 백련암에서 준 성철 큰스님 탄생 100주년 기념 가야산 호랑이 성철을 만나다.의 영상물을 감명깊게 보았다. 누구나 깨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우리 시대의 성철 큰스님, 오직 한 길 부처의 길을 가셨던 우리 시대의 살아 계시는 부처님, 정말로 뵙고 싶어서 매달 백련암으로 향한다. 6월 21일은 관음재일이라서 제가 다니는 절의 감원스님 감로법문 듣고 백련암 삼천배 기도차량 타기 위해 동김해 소방서 옆에 차를 두고 단체차량 2호차에 올랐다. 점심공양 먹을 시간도 없어서 간식으로 해결하였다. 어느 보살님께서 반야용선이라고 하셨는데 공감한다. 불보살님의 가피력을 믿으면서 생활하지만, 망설이지 말고 꾸준히 삼천배 절 수행을 해야 되겠다. 7월 19일 통도사의 산내암자에서 사시기도 드린 뒤 통도사 주차장에 내 차를 두고 신평에서 버스 타고 노포동에 내려서 지하철 타고 동래역에서 내려 2호차 타고 기도하러 백련암으로 향했다. 바쁘게 기도하러 다닌다고 핀잔하는 이도 있지만, 내 생에 어디서 이런 지중한 백련암의 가풍을 만날 것인가? 긴 세월을 두고 다시 만난 인연, 내 스스로 찾은 자유로운 수행 방법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남을 위해 기도하시는 아비라 카페 3000배 기도 하시는 도반님들이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꼭 대중기도에 동참 할 것이다. 버스 안에서 입승 묘적심보살님의 집전으로 기도를 드린 뒤 명오선 보살님의 생생한 자신의 광명진언 기도법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항상 원효대사께서 바가지에 강변의 깨끗한 모래를 담아 광명진언을 108번 외운 다음, 그 모래를 산소나 시신 위에 뿌려 영가를 천도했다고 한다. 우리도 성묘를 지내러 갈 때 준비한 모래를 뿌려주고 집안에 상을 당했을 때, 절에서 49재를 지내는 동안 집에서 49일 매일 광명진언을 외우기를 권하셨다. 광명진언을 외우고 극락왕생을 하기를 기원하면 무한한 진언의 공덕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업장을 소멸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광명진언 기도법을 생활화해야 되겠다.
저녁 공양후 뜰에서 우리 학교의 한 선생님을 백련암에서 만났다. 그 선생님은 1호차 탑승, 50대인데도 동안이고 날씬한 분이시다. 10년째 매달 한 번씩 꼭 3000배 하러 오신단다. 가정에서 500배 이상 절을 하면서 백졸스님이 주석하고 계시는 재송동에 있는 옥천사에 가서 능엄주 독송 기도를 하신단다. 신심이 깊은 분이시다. 삼천배를 해도 다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는다고 다음날 학교 복도에서 만나서 이야기 나누었다. 33년 절을 다니면서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내게 백련암 삼천배 기도는 많은 것들 느끼게 해 주었다. 삼천배 절 수행을 통해 긍정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힘을 주었고 남을 의심하지 않는 커다란 힘을 심어 주었다. 도일장 보살님의 1년 기도회향으로 보시한 염주가 나를 한없이 기쁘게 하고 동료들이 나의 얼굴이 맑아졌다고 하는데 이게 작은 기도의 힘이 아니겠는가. 또한 아비라 카페의 유익한 불교의 정보들도 매일 접하면서 무한한 행복에 감사하면서 절 수행을 해야 된다는 것도 알려 주었다. 8월 16일 기도신청은 30년동안 통도사를 사랑하면서 기도를 하시는 동진행 노보살님도 동참기도신청을 하였다. 생전에 큰스님을 친견하셨다고 무척 좋아 하신다.
나만 깨어나는 삶이 아니라 다 함께 깨어나는 삶, 모두 함께 부처님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리라.
생로병사, 살아서 늙어 병들어 죽는 과정, 벗어 날 수 없는 숙명
되돌아 갈 수 없는 청춘날, 하루 하루 사는 날, 죽음으로 한발짝 한발짝, 제 마음과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늙음으로, 죽음으로 가는, 숙명의 인생 늙음인 것을 아는 나는 매일 새벽 지비하신 부처님전에 정성드려 절 올리며 온 우주법계 두루 두루 비춰지기를 발원한다.
산다는 것은 늘 움직여서 마음이 흐르고, 몸이 흘러 흘러 어디론가 가야만 한다. 밤낮이 흐르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끊임없이 자전과 공전으로 흘러 흘러 여행을 간다 우리가 산다는 것도 늘 연기법 따라 몸과 마음이 어디론가 가야하는 숙명의 여행,
남은 생 부끄럽지 않는 생을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
인생은 설레임! 봄아침의 그 한없는 설레임!
극락을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이 일심으로 삼천배 절하는 것이라고 믿고 수행에 힘쓸 것이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첫댓글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