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구간
첫날
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우리는 여러 가지의 제약들로 가슴이 답답한 증세들을 격었다. 회사의 모든 경상예산들이 축소되거나 취소되고 누구나가 구제금융의 수렁에서 벋어나자면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미룰 수 도 없는 것들이 있나보다. 영원히 없어져 버릴 것 같던 장기근속휴가가 다행히도 부활되어 방학을 틈다 과감히 휴가계를 냈다. 다들 외국이라도 나깠다 오려니 했나보다. 아니 알게 모르게 외국에 다녀오는 눈치다. 허긴 어떻게 얻은 휴가인가. 외국에 별로 나가 보지 못한 나로서는 좋은 기회지만 대간을 가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10년 근속휴가의 첫날 벼르고 벼른 장기산행의 첫날이다. 그동안 대간을 너무 잊고 지냈나보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종주를 끝내려 했는데 이렇게 하다가는 유급할거 같다.
현주와 민술이와 반포의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났지만 버스는 끊어지고 서울역에 예약한 기차를 타러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역에 도착하니 10분전이다. 태일이의 환송을 받으면서 기차에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언제나 여행의 감동을 느끼게 하는 곳. 서울역은 내 여행의 출발지이자 돌아오는 도착지이기를 마다하지 않았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러할 거고 그러고 싶다.
학교에 갈 때도 나는 철도를 이용하기를 즐겨한다. 주로 많이 이용하는 시간은 오후4시15분발 부산행 열차다. 일산에서 3시22분발 경의선으로 이곳에 도착하면 약5분여의 기다림으로 갈아 탈수가 있다. 언제나 학교를 가는 길은 여행하는 기분으로 기차를 탔다. 그래서 공부를 못했는지도 모른다. 학교가는 기분으로 가야할 길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갔으니 공부가 될 리가 있는가. 그래도 이 기차를 타고 여러권의 책을 읽었으며 피곤한 몸과 마음을 진정 시킬 수 있었다. 이제는 백두대간을 위해서 그것도 단독종주를 위해서 이 기차를 탔다. 7월10일 토요일 5시10분. 영동에 도착하니 7시38분. 땅거미 내려앉는 무주를 거쳐 거창으로 가는 이 고개에 3만원에 도착하니 별이 우리를 반긴다. 서둘러 야영 준비를 하고 현주가 준비한 저녁과 고기와 술로 밤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단독종주를 지원하기 위해 현주가 후배와 함께 와주어서 쓸쓸하지 않아 너무나 고맙다. 그들 흰바위산악회는 정이 있는 산악회다. 작년인가 기상청에 다니는 나의 친구 준호가 수리봉에서 암벽등반중 추락사하여 괴로울 때 흰바위 산악회의 회원 중의 하나가 단독종주를 한적이 있었다. 추풍령으로 지원을 갔었는데 얼마나 부럽던지....
된비알도 목야회도 이런 나의 속마음을 몰라주니 한편 야속하기도 하고 한편 모두 왔으면 소란했겠다 생각도 들고 하여튼 대간종주를 잘해야 겠다는 생각 뿐이다. 처남을 데려오지 않은 것이 조금은 걸리지만 이번 휴가는 철저히 혼자이고 싶다. 아들과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무언가 혼자 해내고 싶다. 노동조합은 파업을 준비중이다. 파업만큼 나도 힘들게 가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야 할 길이다. 내 생전에 이렇게 긴 종주를 할 수 있을까? 젊어서는 시간이 없어서 나이가 들어서는 힘이 없어서 하여튼 내게 이렇게 귀한 시간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아니야 그렇지는 않을 거야 산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는 다면 시간은 허락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밤은 깊어만 간다.
둘째 날 7월 11일 일요일
신풍령의 휴게소를 뒤로하고 급경사 오름을 오르는데 스틱을 찍은 자국이 선명하다 분명 하루 이틀 전에 이곳을 지난 이가 있다. 혹 부지런히 걷는다면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걸어본다. 하지만 어제의 술이 과했나. 생각만큼 걸음이 걸어 지질 않는다. 이번 산행의 기본은 혼자이고 6시를 산행시작으로 8시를 산행 마감으로 하여 계획을 했었는데 너무 무리한 계획인가? 수정봉을 지나면서 발도 아프고 점점 짐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수정봉을 지나 삼봉산에 오르니 가스가 많이 차오른다. 조금 내려오니 대덕산이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저산을 가야하다니 위압감이 몰려온다. 급경사를 내달아 소사고개에 내려오니 12시가 넘었다. 가게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조금 쉬고 길을 떠난다. 현주와 그의 후배가 서울로 가는 시간에 맞게 대덕산을 넘으려면 서둘러야한다. 하지만 쌀을 후배에게 덜어 주고도 걸음이 늦어지는 것을 어찌하리 현주야 미안하다. 일주일치의 식량과 장비와 간식과 각종의 비상용품을 모두가지고 왔으니 오죽하겠니. 힘들다 특히 여름에 약한 내가 어찌 여름종주를 계획했던고....
후회해도 이젠 할 수 없다. 삼도봉을 지나 대덕산을 지나니 조금은 여유가 생기면서 혼자 가야할 길이 궁그마기도하고 핑계를 대고 서울로 가고 싶기도 하고 헤어진다는 현실이
이렇게 쓸쓸한데 오랬동안 살다가 헤어지는 이들은 어떠할까? 먼저간 준호도 생각이 나는 것이 심상치가 않다. 오후 4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덕산재에 도착해 개울물에 세수하고
캔맥주로 갈증을 덜어낸다. 시원한 맛이 더위를 한풀 벗겨낸다. 아쉬움도 잠시 자가용을 잡아 가버린 현주와 그의 후배를 배웅하고 조금 남은 해를 아까워하다. 갈까? 잘까? 고민하다가 짐이라도 줄여 보고자 1인용텐트를 휴게소 앞마당에 친다. 전에 근복이 일행의 지원을 왔다가 정일형과 바람 맞은 덕산재는 꽤 차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조용하다. 그때 근복이외 상일형과 원영에게 조금은 서운했다. 서운할 것도 많지 지가 일정을 잘못 알고 와서는 무슨
투정이람. 마음을 비워라 덕분에 울산의 대간꾼 두명을 만나 애기도 나누고 종주대에게 줄려고 준비한 술과 고기로 아침부터 즐거운 시간을 가지지 않았는가? 효성씨엔씨 인가에 다니는 두사람과 뒤에 몇차례의 연락을 했었다. 뒤에 한명은 포기하고 혼자서 구간종주를 마쳤다고 애기를 전해들었다. 하여튼 부러운 사람들이다. 종주가 끝날 때 소주라도 한잔 나누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심란하다. 외로움이 몰려온다. 혼자라는 것이 이렇게 사람을 우습게 만드나? 핑게김에 휴게소에서 소주와 약간의물건을 사고 집에 전화를 하려니 전화도 불통이고 물건도 그렇고 잔돈도 없어 물건을 살수도 없다. 젊은 부부가 아이의 목욕을 시키는 중이다. 소주를 한병 사고 뉴스를 보고 싶어 이야기하니 어렵단다. 인심 참 고약하다. 서울의 조합원들이 궁금하다. 파업이 시작되면 달려가려 했는데 막상 이곳에 있으니 열의가 흔들린다. 마음속 가득히 부정과 불의에 맞서고자 했던 지난 10여 년의 시간이 밀려와 뭉클해진다. 지는 해가 만들어낸 하늘의 색깔을 바라보며 저녁과 소주로 외로움을 달래본다. 덕산재에 부는 건조한 바람이 젖은 옷과 장비들은 물론 마음까지도 말리려나 조합원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
셋째 날. 7월 12일 월요일
이른 아침을 먹었지만 시간은 7시가 다되어간다. 하늘은 구름이 조금 있지만 대체로 맑은 날이다. 하늘 위는 구름이 연하게 끼었고 아래는 비 온 뒤의 깨끗한 모습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혼자 가는 첫날의 날씨로는 훌륭하지만 오늘 낮에는 얼마나 더울까? 능선을 따라 40여분을 가니 고개가 나온다. 부항령은 2시간거리인데 이상하다.한시간도 못되서 헬기장이 나오고 부항령이라니 아닐거야 지도를 다시보고 지형을 확인한후 다시 길을 재촉한다. 지루하고 심심하다. 아래로 터널공사중인 곳에 가니 이곳이 부항령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지를 조성하려는지 중장비로 산을 일군 흔적이 있는 곳에 왔다.
조금 지나니 누가 버렸는지 자두 봉지가 보여 보니 열 댓개의 자두가 잘 익어 있었다. 자두의 상한정도로 봐서 2-3일 지나지 않았을까? 정말 이렇게 맛있는 자두는 정말 처음이다.
다음 지원대가 올 때 자두를 실컷 먹어 봐야지. 삼도봉 가는 길이 정말 멀다. 배낭무게가 점점 어깨에 부담을 준다. 부항령에서 물을 구해야 했는데 그냥 온 것이 후회된다. 드디어 삼도 화합비가 있는 삼도봉이다, 지도로만 보았던 석기봉과 민주지산과 각흘산등을 바라보며 오월인가 훈련중인 공수부대원들이 동사했던 산은 어디쯤일까 그려본다. 젊은이들의 원혼이나마 좋은 곳으로 가길 빌어본다.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로 갈라지는 이곳 삼도봉은 삼도의 도지사들이 비를 건립하고 삼도의 화합을 기원하는 행사를 가졌던 곳이다. 산중에 하얀 색의 화강암이 어색하다. 왠지 산이 아닌 것 같고 우리의 현실이 어색하게 강요된 듯한 느낌을 준다.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버리자는 데는 동의 하지만 이런 외형적인 조형물이 아닌
진정한 화합은 불가능일까? 아니 우리들 보편적인 사람들은 지역감정이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위정자들이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조장하는지도 몰라
언제나 우리는 정책으로 국민에게 다가서는 정권을 만날 수 있을까? 국민들의 생각이 깨어야 할 것이다. 건강하고 건전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가 필요하다. 상식이 통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하여 여기 버티고 있는 이 조형물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흐렸던 하늘이 주변 산세를 조망할 수 있게 개였다. 아무도 없는 삼도봉에서 사진을 찍고 물을 구하러 안부로 내려선다.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물을 길으러 내려 간다. 곧 길은 끊어지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고사리가 많은 계곡의 상류에 물이 있다.
일찍 내려서서 일찍 내려서서 공연히 생고생을 했다. 물을 구해 올라오니 약초를 마대에
지고 올라오는 사람을 만났다. 오늘 처음 사람을 만난 것이다. 사람이 이렇게 반가울 수 있다니 정말이지 신기하다. 가야할 길에 대한 정보를 조금 얻고 그분에게 약간의 간식을 주고 대화를 나눈다. 근 한시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고 길을 서둘러 떠난다. 밀목재를 지나고 화주봉에 왔을 때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알수있었다. 갈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오늘 우두령까지 가려면 야간 산행을 해야 하나보다.
고도가 높은면 가스로 온몸이 젖고 내려오면 더위와 더쿨이 온몸을 휘감아 여름산행의 험난함을 몸으로 막아내고 있다. 화주봉을 지나 험한 암릉길을 지나면서 더는 가지 못하고 텐트 자리를 찾아 보지만 적당한 곳이 나타나지 않는다. 몸은 지치고 속옷까지 젖어서 미치겠다.
그래도 이번에 쿨맥스 속옷을 구입해 그나마 조금 낳다. 길옆에 텐트를 치고 그냥 들어가
일기를 적는다. 물이 없어 저녁은 포기이다. 일기를 적으면서 그냥 잠들어버렸다.
넷째 날 7월 13일 화요일
저녁도 먹지 않고 잠들어 버린 후 나뭇잎을 두드리는 비 소리에 심란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비가 내리지는 않는 것 같은데 가스가 나뭇잎에 맺혔다가 바람에 떨어지는 소리치고는 많은 양이다. 날이 밝기도전에 텐트를 걷고 우두령을 행해서 간다. 계곡아래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에 놀라 머리칼이 쭈뼜 선다. 사람소리에 놀란 멧돼지 일가가 소리를 지르며 도망을 친다. 멧돼지의 모성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은지라 먼저보고 놀라 도망가는 멧돼지가 고맙기도 하고 한편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다. 아무도 없는 산중에 저들이 나를 발견한 것이 이렇게 겁나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엄마를 따라가는 새끼들의 뒷모습을 보며 한참을 그 자리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겨우 가슴을 진정시키고 길을 가면서도 앞으로 이런 일을 얼마나 만나게 될지....
아침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우두령에 도착해 사슴목장의 문을 돌아 물이 있는 곳에서 옷도 말리고 아침도 해 먹으며 놀랜 가슴을 달래 본다. 고도가 팔구백을 넘으면 안개가 끼고 그 아래는 그래도 흐리지만 상쾌하기는 하다. 저아래는 지금 얼마나 더울까? 조합원들은 파업에 돌입했을까? 소식을 듣지 못해 궁금하기 그지없다. 처음 파업을 했을 때가 생각난다.
집회에 갔다가 집에 가니 아이가 자고 있는데 그때 약속을 했었다. 너의 인생에는 불합리와 불의와 부정이 없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겠노라고. 이제 그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다. 이제 내년이면 중학교에 간다. 아직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멀었는데 아이는 빨리도 커간다. 아이가 커 가는 정도를 따라 사회도 커 가면 얼마나 좋을까? 혹 아이와 함께 파업하고 데모하고 하는 경우는 오지 말아야 할텐데 하긴 아들과 함께 목소리 높여 사회의 변화를 주장하는 것도 괜찮은 일 일거야. 용인아 무럭무럭 자라 아빠와 함께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위해, 보편적인 삶도 존경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자구나. 용기 있는 사람이
되자. 정의를 위해 인류를 위해 힘없고 약한 자를 위해 한 평생 살자구나. 몇 일 산에서
고생하더니 이제는 농담도 할 줄 아는군. 이제부터는 안개속도 비옷을 입지 않으리라. 어차피 모두 젖어버려 공연히 비든 하기만 하고 젖은 옷을 말리기도 쉽지 않다. 그냥 가리라.
지금 기온이 30도를 넘는데 아무리 해도 체온이 많이는 떨어지지 않으리라. 계속 움직이고 영양을 공급하면 견뎌낼 수 있으리라. 쿨맥스속옷과 쉘러바지 쿨매스T 믿어 보는거야 배낭 속에는 비닐봉투로 중무장을 해서 여벌옷은 절대 젖는 일이 없을거야. 삼성산을 넘어 바람재에 내려서기 전에 숲 속에서 불현듯 사람이 튀어나와 다시 또 놀랬다. 멧돼지가 많은 동네라서 이기도 하지만 오는 중에 만난 멧돼지들이 파 놓은 흔적을 여러번 본지라 자라보고 놀랜 가슴 솥뚜껑을 보고도 놀랜다고 멧돼지가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대구에서 약초를 캐러온 사람들이다. 여러 가지의 약초를 캐어 왔다. 여러 가지를 설명하는데
대간종주가 아니라면 불임에 좋다는 약초라도 얻어다가 아내에게 주고싶다. 왜이러냐 나이가 얼마인데 이제 아이타령이야. 그 아저씨들이 시간이 있으면 간식이라도 하고 가라는 바람에 은근히 소주를 기대해본다. 기대가 거의 빗나가지 않아 참외며 빵 그리고 몇잔의 소주로 요기를 하고 거기다 짐도 무거운 놈이 욕심 것 참외를 집어 넣는다. 산에서의 과일은 정말 맛있다. 과일을 많이 먹는 사람은 아님에도 갈증을 해소하고 허기를 달래며 피로를 빨리 회복하는데 효과가 있다. 꿀맛이다. 그래도 부항령의 자두만큼은 아니다. 바람재의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 황악산을 향해 간다. 술을 먹어서인지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오후3시30분경 황악산에 올랐다. 여러 해 전에 황악산을 MBC산악회와 오른적이 있었다. 정일형과 답사까지 했던 산이다. 반가운 마음에 오래 머물면서 추억에 잠겨본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등산객이 없다. 그래도 많은 이가 찾는 산이기에 사람을 만날까 기대를 했었는데 아무도 없다.
혼자 먹는 밥이 귀찮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해서 참외만 먹는다. 조금 내려오니 직지사 갈림길이다. 저길로 가면 김천으로해서 서울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가야한다. 기어코 올 것이 온다. 지금까지는 안개 속이었지만 비가 온다.비를 맞으며 길을 간다. 백운봉을 지나 운수봉, 여시골산을 지나 궤방령을 향해간다.발의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 왼발의 앞쪽이 감각이 없고 발뒷꿈치가 쓰라려서 걸음을 옮기기가 수월치 않다. 발이 온전치가 않은가 보다. 다른 이들도 이 정도일까? 궤방령을 다와서 목장의 울타리를 넘어야 하는데 전기선을 깔아 놓았다. 경고 문구도 보인다. 몸은 젖었는데 감전되면 차라리 전기를 모르면 용감하기나 할 것을 배낭을 던져 놓고 전기선에 닿지 않으려 조심조심
넘어오고 나니 폐쇄된 목장이다. 웃음이 난다. 누가 본 사람이나 없었을까? 우스운 모습이 었을 거야. 이곳 궤방령의 아래로 고속철도가 지나 간다나 흙과 돌을 실은 차들이 자주 지나간다. 터널공사를 하는곳에서 나오는 흙들로 고개옆의 계곡을 메우고 있다. 물길이 고개를 가로지른다. 인위적으로 물길을 돌려놓아서 백두대간을 끊어 놓은 모습이다. 논길 옆으로 해서 능선을 오르다 다시 내려온다. 오후네시가 조금 지나고 있지만 해가 있는 곳에서 젖은 옷을 말리고 가야겠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쉬었다 가고 싶은 게야. 물에 젖은 텐트와 속옷, 마음까지도 젖어 버려 조금이라도 마른 곳이 있으면 반갑고 가기가 싫어지는 게 이제는 지쳤나보다. 발도 어느 정도 인지 확인도 해야하고 길옆에 짐을 풀었다가 다시 챙겨서 가스저장소 아래의 휴게소를 발견하고 그리로 옮긴다. 와보니 휴게소가 아니라 오리고기전문식당이다. 신라촌가든 이다. 서울에 오랜만에 전화를 건다. 보고싶은 아내에게 그리고 산악회의 친구들에게. 전화가 안되는 이들은 메시지를 남기고.....
오늘은 이곳에서 저녁을 푸짐하게 먹어보자. 냄새가 너무 지독하게 나서 밖에 있는 원두막에서 오리고기 주물럭으로 정말 푸짐하게 먹어본다. 양말을 벗으니 발뒤꿈치가 난리가 아니다 물집이 벗겨진 속으로 물집이 또 생겼다. 이러고도 가야하나. 정말 가관이다. 저녁을 먹고 옷가지들을 널어 건조한 공기에 말린다. 일기를 쓰다가 밖에 나와보니 별이 초롱초롱하다. 저 별들이 집에 있는 아내의 눈에도 보이겠지. 별이 너무나 초롱초롱해서 공연히 집생각이 또 난다. 아내가 이번 주말에 온단다. 뭐 그리 장한 일을 한다고....
내일은 어떤 상황과 만나게 될까? 나는 이곳에서 돌아가지나 않을까? 그럴 수는 없다.
마르지 않는 양말을 짜고 또 짜는 것을 보면 포기할 것 같지는 않은데. 자자...
고개 마루로 넘어오는 바람이 그리 더운 바람은 아닌 듯 하니 고개가 높은가? 혹 날이 추워지나 그럴 리가 지금은 삼복중이고 더운 여름이 확실하다. 오랜만에 건조한 곳에서 잠을 잔다.
다섯째 날 7월 14일 수요일 맑음 아침부터 불볕더위
나는 참 아침잠이 없나 보다. 새벽 3시인가에 일어나 해가 뜨기를 기다린지 벌써 오래다. 아니 사실은 신라촌의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는지 모른다. 화장실 결벽증 때문에 쉽게 아무데나 해결해도 보는 이가 없는데도 굳이 화장실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래도 결벽증이다. 산에서도 아주 급해야 해결한다. 사실 모든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려는 생각이 있기는 하다. 자신의 흔적을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추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그렇다 아무도 보는 이 없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데 그렇게 까지 깔끔을 떨어야 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지만 뒤처리를 아무렇게나 하기는 싫다. 보는 이가 없다고 해서 편한 대로 살기는 싫다. 정석대로 누가 있건 없건 그것은 나와의 약속이며 내가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시키는 것이며 내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는 벌써 떠서 중천에 떠 있는데 주인은 나타나지를 않으니 무슨 연고인가? 어제저녁 주인이 퇴근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내가 잠든 사이에 나갔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got볕에 젖은 장비를 말리며 주인을 기다리니 늦은 시간에 안에서 나온다. 화장실을 빌려 세수하고 일보고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나니 정말 살 것 같다. 텐트로 돌아와 발톱이 아파서 깍으려고 보니 발톱의 색깔이 이상하다. 손톱깍기를 대니 고름이 죽하고 나온다. 이 정도 였기에 그렇게 발이 아팠구나. 물집 때문이 아니었어. 발톱이 이렇게 상했으니 그리 아팠던 게야. 미련하기는 곰같이..... 양 발톱이 죽어서 고름이 나는데 그걸 참고 왔단 말인가. 장기등산은 발을 아끼고 아껴야 한다던데. 대간을 71일간 무지원으로 종주한 길춘일이의 책속의 사진이 기억난다. 쭈그러지고 부르튼 그의 발 사진을 보고 발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무슨 홀대인가. 소염제며 진통제며 약이란 약은 다 꺼내놓고 어느것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고민을 한다. 연고를 바르고 진통제와 소염제를 먹고 나니 이제야 진짜루 발이 아픈 것 같다.
발이 아픈걸 알고 나니(?) 엄살이 심해진다. 걷고 싶은 생각은 없고 마냥 퍼지고 싶다. 가든의 여주인이 커피를 대접한다고 해서 들어가 커피도 마시고 주인장과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눈다. 담배를 하루 동안이나 피우지 않았는데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피운다. 이거 분위기 이상하게 돌아가네. 서둘러 짐을 싼다. 무거운 쌀을 반도 넘게 덜어낸다.
주인아주머니가 담배 세 갑을 권한다. 쌀을 팔아 담배를 산 꼴이 되었다. 텐트로 돌아와 짐을 싸고 출발을 하려니 방에서 식사하던 아저씨가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건다. 들어와 식사를 하고 가란다. 김천의 일송산악회 회장님과 등반대장 일행이다. 등반대장님은 백두대간의 산들을 거의 섭렵했다고 하며 백두대간에 도전하려 한다는 말과 부럽다는 말을 들으며 오리백숙에 술도 한잔 곁들여 잘 대접받았다. 다음에 서울가면 안부라도 전해야 겠다. 회장님은 김천의 농협 전무이시다. 2시가 다되어서야 배낭을 메고 산길을 오른다. 햋볕이 따가운 전형적인 여름날이다.
오후도 쉬고 내일 갈걸 그랬나?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더우면 더워서 하여간 인간의 간사함이라니...
한시간을 가기도 전에 더위에 지치고 몸은 천근이고 발의 통증은 말할 수 없다. 가성산을 넘기도 전에 가스가 몰려오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 좋던 날이 비라니 보슬비가 내린다. 눌의산 정상에 오르니 가스가 조금 걷히고 시야가 트인다. 추풍령이 보이고 마을들하며 고속도로며 산들과 밭들도 보인다. 무지개를 감상하며 느긋이 휴식을 취해 본다. 눌의산의 하산길은 가파르다. 그마저도 비가 온 뒤라 미끄럽기까지 하다. 땀인지 비인지 옷이 모두 젖어 버렸다. 이제 추풍령에 가면 무조건 첫 가게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리라. 정말 갈증나는 날이다. 포도밭을 지나 철길을 지나 도로에 나오니 호프집이 보인다. 무조건 1000cc짜리 생맥주를 단숨에 마셔 버린다. 호프집의 주인친구들이 내게 관심을 보인다. 힘든 등산을 왜 하는가와 백두대간은 무엇인지 등. 등산은 나도 왜 하는지 몰라서 알때까지 가야 할것이라 애기해 주었는데 백두대간은 일제가 그들의 지리개념으로 바꾸어놓은 산맥개념에 반하는 우리민족 고유의 지리개념이다. 우리는 1대간 13정맥의 지리개념이 조선의 산경표에 나와 있다. 그것을 80년대에 일부 등산인과 지도제작자들이 우리의 지리개념을 되찾아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알고 또 백두대간을 걸어서 답사중이다 등 아는 대로 일러주니 이들도 내게 술을 사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길 원한다. 끝으로 학자들이 용기가 없다는 둥 바꿀 건 바꿔야 한다는 둥 말은 많이 하였는데 전달은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스름히 어둠이 깔리는 시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취기가 제법이다. 맥주에 소주로 저녁을 대신 하였으니 취하지 않으면 이상하리.
술김에 여관을 잡아 혼자 이니 할인해 달라고 아양을 부려 본다. 마음씨 좋은 아줌마가 2만원에 방을 내 준다. 짐을 풀고 목욕을 하는데 시계를 차고 했더니 시계안에 물이 들어 갔나보다. 시계가 보이질 않는다. 미국에서 130달러를 주고 산 고도계시계인데. 할 수 없이 시계를 풀고 TV를 보니 조합원들이 너무 고생이다. 집회에서 경찰과 맞서다 다치고 입원하고 날 리가 아니다. 당장 올라가야 하는데 어찌 해야 하는가?
이리저리 뉴스를 돌려가며 보아도 모두가 힘든 모양만 비춘다. 어찌 할거나 이대로 올라가야 하는가 아니면 이 소식을 듣고도 머물러야 하는가? 고민으로 잠도 오지 않는다.
여섯째 날 7월
이른 아침에 일어났지만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방송이 시작되기를 기다려 첫 뉴스부터 보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이대로 종주를 그만두고 서울로 가는 방법 외에는 마음을 다스릴 방법이 없다. 이토록 고민이 될 줄 알았다면 출발을 하지 말걸 후회도 하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공연히 발을 치료하느라 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여기서 그만두고 서울로 가면 종주는 영 틀렸는지도 모른다. 물론 시간은 많다. 어차피 동료들에게 원망은 산 것이다. 튈 필요가 있나? 가뜩이나 산에 다니는 것이 소문이 났는데 종주를 그만두고 복귀를 하면 또 입에 오르내리지 않겠나. 조용히 마음으로 참여하자. 앞으로 더욱더 열심히 조합원으로의 역할을 해내자. 그러면 조합원들도 이해하지 않을까? 마음이 강행으로 기울자 마음은 벌써 산으로 달려간다. 서둘러 짐을 싸고 어제 저녁 고장난 시계를 고치러 추풍령 읍내로 가니 물이 들어가 수리 불가란다. 시계가 없으면 불편할 테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힘들면 쉬고 배고프면 먹고 날이 저물면 자면 그만이다. 문명의 이기인 시계가 없다고 생활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고서에 시간을 기록하기가 어렵겠지. 서둘러 금산을 오른다. 애초에 금산은 채석을 많이 해서 우회하려 하였으나 이번이 아니면 올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강행하기로 한 구간이다. 채석으로 인하여 정상까지도 망가지고 더욱이 발파로 인해 바위가 많이 갈라저 매우 위험해 보였다. 바위들이 갈라진 정상에서 잠시 조망을 하고 길을 잡아 출발한다. 사오백의 고지들을 몇 개인가 지나고 나니 다시 안개가 쌓이고 급기야는 비가 온다. 참내 출발할 때 비가 왔으면 핑계 김에 눌러 라도 앉을 텐데 꼭 출발을 하고 나서 일기가 나빠지는 것은 나를 약올리려고 하는 걸까? 혹 내가 포기라도 할까봐? 사기점고개에 와서 물을 구하러 밑으로 내려간다. 개울에서 물을 보충하고 소똥냄새를 피해 고개로 올라와 소나무 밑에서 점심을 먹는다. 비를 맞으며 빗물인지 땀인지 모르는 물에 말아서 혼자 먹는 점심은 정말 싫다. 조개 젖에 김치조금 물에 말은 밥 비에 젖은 마음까지 후루륵 먹고는 지도를 살핀다. 시계가 살아났다. 안에 들어갔던 습기가 말랐나보다. 안개가 걷히는 사이로 포암산이 보인다. 가자 오늘은 오르막에 대한 적응이 되었나보다. 오르막만 나오면 입에서 욕부터 나왔는데. 이제는 그런가보다. 어차피 가야할 길. 모두를 포기한 사람처럼 모든 것을 시간과 걸음에 맡겨 버리고 걷는다. 얼마간을 걸으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포암산의 중계소로 가는 길인가 보다. 대간은 이 길로 올라 가다가 능선으로 붙어야한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능선 길을 만난다는 생각이 들자 우회로의 유혹을 버리지 못한다. 아래로 가다보니 길이 아닌 듯 하다. 방향이 영 아닌 것 같다. 다시 올라가다가 또 너무 온 것 같다. 다시 내려오고 또 가다가 다시 올라오고 결국은 또 내려간다. 입에서는 욕이 절로 난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우회로를 찾은 정직하지 못한 내면의 나에게 욕을 퍼부어 댄다. 안개가 걷히면서 용문산과 국수봉이 보인다 지도를 꺼내보니 맞는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길을 정확히 갈 것을 공연히 우회하여 찜찜하고 힘들고 시간 보내고 애고애고 잔머리 굴리다가 몸만 피곤하다. 작점고개에 외서 물을 보충하고 몸도 씻고 휴식을 취해 본다. 갈 길이 멀다. 큰재까지 가려면 용문산과 국수봉을 지나야 한다. 지친 몸을 끌다시피 능선을 오른다. 용문산기도원을 품고 있는 용문산을 지나는데 능선에 기도하는 제단이 보인다. 한사람이 기도할 수 있는 크기의 시멘트 구조물이 흰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공연히 섬찧한 느낌이 든다. 그 구조물 뒤에 물이 있다는 것을 뒤에 들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만들었겠지. 어느덧 날씨는 개였지만 등산화는 젖어서 물이 찌걱댄다. 옷은 쿨맥스로 무장을 하여 쉽게 마르는데 등산화와 배낭외피는 쉽게 마르질 않는다. 힘겹게 국수봉에 오른다. 큰재로 내려서는 길도 만만치 않다. 큰재에 내려서니 인성분교의 교정에 잡초가 많이 자라 있다. 부산 환경연합의 재산인 듯 경고문도 있고 문이 잠겨있다. 폐가나 다름없는 교사와 운동장이 을씨년스럽다. 굳게 닫힌 교문 옆으로 들어가 운동장에 텐트를 친다. 우선 젖은 발을 먼저 벗어 바람을 쒸운다. 교문앞의 할머니집에서 물을 길어와 저녁을 지어먹고 일기를 쓰는데 아들집에서 저녁을 먹고 오신 할머니가 TV를 틀어놓아 귀를 기울여 본다. 어렴풋이 뉴스의 아이템으로 시간을 짐작하여 시계를 조정해본다. 얼마나 적중할까? 나중에 확인하니 6분의 오차를 보였다. 내일은 화령재에 가야 하는데 지금의 내 발로는 힘들지 않을까? 하여튼 최선을 다 해서 가는 거야. 야간등반도 감수하고...
저녁에 해질 때 구름이 있었는데. 비나 오지 말아야 할텐데.....
선선히 불어오는 여름밤의 선들바람이 종주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어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