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은공파> 모은공은 함안의 모곡으로 은거한 후 손자가 넷인테, 첫째인 근재공(휘 孟賢)과 둘째인 율간공(휘 仲賢)은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있었으며 넷째인 사의공(휘 季賢)은 모곡에서 부모님을 봉양하였다. ⑴근재공파는 아들이 일곱인데 ㈎ 장자는 휘 상으로 문과급제하여 사간원정언을 거쳐 교리까지 이르러 교리공파ⓕ라 부르고 임진난전후에 면천에 이거하였기 때문에 면천파라 부른다. ㈏ 제2자는 휘 위(瑋)로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기 때문에 감찰공파ⓖ라 부르고 인천 원주 남원에 살고 있다. ㈐ 제 3자는 휘 래인데 은진현감을 역임하였기 때문에 현감공파ⓗ라 부르고 세거지는 남양주 덕소인데 양주파를 일명 은진공파라고도 한다 ㈑ 제 4자는 휘 속인데 손자가 문과에 올라 참의까지 역임했으나 후손이 없어 잘모른다. ㈒ 제 5자는 휘 종이며 진주판관을 역임하여 판관공파ⓘ라 부르고 묘소는 경기도 포천에 있지만, 후손은 주로 진주에 살고 있으므로 근재공파에서는 진주파라 부르기도 한다. 판관공의 손자가 둘인데 초주공(휘 간)과 목사공(휘 철)이다. 초주공의 손자는 진주의 사봉에 터를 잡은 행와공(杏窩公, 휘 중영)과 지수면 청원리로 이거한 행정공(杏亭公, 휘 중광)이며 행정공은 부용당성안의의 문인으로 병자호란을 맞아 찰방의 벼슬까지 했으나 삼전도의 굴욕에 항의하여 청원리에서 학문으로 일생을 마쳤으며 장자는 휘가 현근이며 호는 백촌이며 차자는 휘가 현재이며 진사로서 호가 죽촌이고 계자는 휘가 현주인데 통덕랑으로 호가 매촌이다. 따라서 진주에서는 행정공팡의 지파로서 백촌공파 죽촌공파 매촌공파라고도 한다. 목사공의 후손은 경기도 이천에 세거하고 있다. ㈓ 제 6자는 휘 애인데 작은아버지이신 율간공이 영해부사로 외직에 가실적에 따라가서 영덕의 창수면에 뿌리를 내렸다. 울진현령을 역임하셨기 때문에 영해파를 현령공파ⓙ라 부르며 후대에 가장 많은 유학자를 배출하여 영남- 성리학계의 한 축을 이루기도 하였던 파이다. 현령공의 손자인 운악공(휘 涵)은 문과에 급제하였고 그 아드님은 모두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장자는 휘가 시청이며 호는 청계이고 둘째는 휘가 시형이며 호는 우계이고 셋째는 휘가 시명이며 호가 석계이고 넷째는 휘가 시성이며 호군을 지냈다. 따라서 영해에서는 청계공파 우계공파 석계공파 호군공파로 세분하여 부르기도 하며 석계공의 아드님은 대학자가 배출되여 퇴계학파의 종장을 역임하여 재령이씨의 큰 업적을 남긴 파이다. 존재선생(휘 徽逸) 갈암선생(휘 玄逸) 등을 위시하여 정묵재(휘 尙逸) 평재(휘 隆逸) 정우재(휘 靖逸)등 모두 학업에 전념하신 선조이며 손자는 밀암(휘 栽) 고재(휘 만)등이 영남의 유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거유이다. 운악공이 의령현감을 역임하였기 때문에 현령공파의 의령지파(통정공파)가 있으며 의령과 진주진성에 살고 있다. 영해파에서는 위에 열거한 선조의 호를 따서 존재파 갈암파 밀암파 평재파 고재파 등으로 지파를 부른다. ㈔ 제 7자는 휘 구(玖)이며 진사로서 원주에 후손이 살고 있으므로 원주파 또는 진사공파ⓚ라 한다. (그러나 계대가 확실치 않은 부분이 있어 원주파는 재령이씨의 다른 큰축을 이루는 파라 생각된다.)
⑵ 병조참지까지 역임하신 율간공은 아드님이 둘인데 ㈎ 장자인 휘 포는 김해로 이거하여 김해사직공파ⓛ라 부르고 사직공의 손자는 휘가 대형(大亨)인데 임진난에 김해성을 사수한 공로로 판결사에 증직되어 김해에서는 판결공파라고도 한다. ㈏ 차자는 함안의 모곡을 위시하여 함안일원에 세거하고 있어 함안파라 부르고 휘가 무(珷)인데 호를 덕고라 부르므로 덕고공파ⓜ라 한다. 함안 덕고공파는 후손의 숫자가 많아 손자대에 더 분파되어 4손자중 장손이신 휘 沔은 장악원주부를 역임하였고 호를 미촌이라 하여 주부공파 또는 미촌공파이다. 둘째 손자는 휘가 익이며 호는 간옹(艮翁)이라 간옹공파라 한다. 셋째 손자는 휘가 정(瀞)이며 남명 조식의 문인으로 임진난에 창의하여 공을 세우고 창원대도호부사 청주목사까지 마치고 말년에 함안에서 진주 수곡(원당)으로 이거하여 남명의 덕천서원의 산장을 역임하였다. 호는 모촌이며 문집이 전하고 이파를 모촌공파라 부른다. 넷째 손자는 휘가 숙(潚)이며 호는 갈촌이라 갈촌공파라 부르는데 임진난에 창의하였으며 장성현감 합천군수직을 역임하여 합천파라고도 한다. 후손의 숫자가 많으며 함안과 진주에 널리 세거하고 있다.
⑶모은공의 넷째 손자인 휘 계현은 두 형이 관직에 나아갔으므로 부모님을 봉양하시다가 셋째형(후손은 알 수 없음)을 대신하여 옥살이를 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사의(司議)의 벼슬을 제수받았기 때문에 사의공파라 부른다. 사의공의 아드님은 넷인데 함안의 서쪽과 진주로 이거하여 세거해왔다. ㈎ 장자는 휘 변으로 첨지의 벼슬에 있었기 때문에 첨지공파ⓝ라 하고 창원-진해 등지로 이거하여 오늘에 이르며 창원파라고도 한다. ㈏ 둘째아드님은 휘가 침(琛)이며 부호군 통정에 이르러 통정공파ⓞ라 부르고 통정공의 손자는 휘가 예훈(禮勛)인데 생원시에 합격하고 호는 성재이기 때문에 성재공파라고도 한다. 성재공의 장자는 진주의 진성면 일원에 세거하였으며, 차자는 휘가 강(堈)이며 호는 도산으로 진주의 대곡면 마진리 소도산아레 세거하였으므로 도산공파라 한다. 또한 통정공의 셋째 아드님은 휘가 희성(喜成)인데 임진난 전후에 함안의 지곡에 살았으므로 지곡파 또는 호가 도암이라 도암공파라 칭한다. ㈐ 셋째 아드님은 휘가 종(琮)이며 군자감주부를 역임하여 주부공파ⓟ라 부르고 처가인 진주의 운곡(현 하동군 옥종면)으로 이거하여 진주파(하동파)로도 불리웠으며, 현손인 휘 영국(榮國)은 진주의 수곡으로 입향하였는데 호에 따라 심운재공파라 부른다. 또 후손의 일부는 전남의 광양에 까지 세거하므로 광양파도 여기에 속한다. ㈑ 넷째 아드님은 휘가 전(琠)이며, 산림에 뭍여 학문을 하면서 제자를 길맀기 때문에 처사로 알려져 있으므로 처사공파ⓠ라 부른다. 함안의 고문헌에 이처사 사적이 전한다. 임진왜란의 전란으로 후손의 숫자가 적으며, 함안지곡의 도암공파와 가까운 집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