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 정조 15년 6월 9일 임자
간교한 백성 김보환(金普煥) 등이 홍패(紅牌)를 물에 불린 종이로 본을 떠서 패 하나를 위조하고 또 나무 조각으로 예조의 인장을 위조해 새긴 일이 발각되었다. 형조가 아뢰니 전교하기를, "삼가 선조(先朝)의 수교를 상고하건대, 어보(御寶)를 위조하였더라도 전자(篆字)의 획이 분명하지 않거나 위조한 물건을 압수하여 바치지 못했을 때는 해당 율문을 적용하지 말라고 하교하였다. 종이쪽을 물에 불려 본을 뜬 것이 어찌 전자획이 될 리가 있겠는가. 종이쪽도 역시 찾지 못했으니, 이 두 가지가 이미 하교를 받은 규정에 어긋난다. 위조한 인장 문제는 증거물이 있긴 해도 찍은 흔적과 전자획이 과연 완전히 분명하여 사형에 처하더라도 더 논의할 여지가 없는 범죄인가. 즉시 사리를 따져 회계하라."하였다. 형조가 위조한 인장의 글자획이 비뚤어지고 이지러져 모양이 갖추어지지 않았고 위조한 인장을 찍은 종이를 증거물로 잡지 못하였다고 아뢰니, 율을 감하여 충군(充軍)하도록 명하였다.
有奸民金普煥等, 漬紙於紅牌, 僞作一牌, 又以木片僞刻禮曹印文。 事覺, 刑曹以聞, 敎曰: "謹稽先朝受敎, 以御寶僞造之篆畫不分明及僞造眞贓未捉納者, 勿用當律爲敎。 紙片濕摺, 豈有篆成畫之理乎? 紙片亦不得覓來, 則卽此兩件, 已違受敎定式。 至於僞印, 雖有贓物, 而印跡與篆畫, 果皆十分明白, 置之大辟, 無容更議之所犯乎? 其卽論理回啓。" 刑曹以僞印欹缺不成樣, 僞寶紙踏, 未得執贓爲奏, 命減律充軍。
* 홍패는 으레 여러 겹을 붙인 종이로 만든다. 맨 윗면에 글씨를 쓰면, 그 글씨는 바로 아래 붙은 종이에 스며든다. 이런 홍패를 물에 불려 분리하면 두 개의 홍패가 만들어 진다. 다만 어보를 찍은 부분은 아래 종이에 스며들지 않으므로, 따로 어보를 제작하여 새로 찍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