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025.12.15.(월)
별 볼 일 없이 사는 듯해도 바쁘다. 낮 12시. 수성못 ‘쿠우쿠우’에서 모임이다. 얼마 전 초등동기 L이 모친상을 당해 잘 치렀다는 감사로 초대한 날이다. “에고! 안 해도 되는데”라고 사양 문자를 보내도 거듭 얘기한다. 고맙게 승낙했다. 동기 얼굴도 보고 살아가는 모습, 겸사겸사 수다를 즐길 시간이다. 승용차보다 버스를 타기로 했다. 편한 마음으로 이어폰을 통해 좋아하는 칼럼도 감상할 수 있고, 유튜브로 전문가의 하모니카 강습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성 6번’을 타면 50분 걸리는 거리이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출발했다. 버스 차창으로 펼쳐진 경치와 사람 구경도 재미있었다. 갑자기 우리 집 새 식구가 된 달팽이를 떠올린다. 이 미물을 언제까지 잘 키울 수 있을까? 생명이기에 정성과 관심을 쏟아야 좋은 결과가 온다. ‘따뜻한 외로움’ 내 글을 읽은 한 대학 동기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녀는 예전에 키우던, 예쁘고 도도한 고양이의 매력을 잊지 못해 기회가 되면 다시 ‘먼치킨’이란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한다. 고양이에 대해 잘 몰라 ‘먼치킨’을 검색해 봤다. 작고 보잘것없는 달팽이와 여러 가지로 비교가 된다. 크기나 값이나 생명력이나 큰 차이가 있다.
얼마 전 달팽이 가출 사건을 떠올리다가, 달팽이가 사라졌을 경우와 고양이가 명을 다했을 때의 마음이 어떨지 궁금했다. 당연히 대부분은 달팽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사실 나도 그렇다. 그때 고려시대 백운 이규보의 ‘슬견설(蝨犬說)’이란 수필을 떠올렸다. 손님과 내가 대화하는 형식의 글이다. 손님은 “개(犬)가 죽는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이(蝨)라는 미물이 죽는 것은 하찮다.”라고 주장했다. “사람이 화로에 이를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 나는 다시는 이를 잡지 않겠다.”라고 내가 반론한다. 손님은 다시 “개는 크고 이로운 짐승이지만 이는 미물이고 해로운 것인데, 이를 개와 같다는 것은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그러자 “모든 생명은 크든 작든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한다. 개와 이의 죽음은 본질적으로 같다. 내가 당신을 놀리는 것이 아니라,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사물의 본질을 보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나는 대답한다. 크기와 이로움과 해로움이라는 사실(표면)만 보는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모든 생명체는 크기와 관계없이 소중하다는 보편적 깨달음, 사물의 본질(이면)을 보라는 이야기이다. 이 고전 내용을 잘 알면서도 나는 아직 본질을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언제쯤 철이 들까? 여든이 넘어도 철이 들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훌쩍 시간이 흐른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일찍 수성못에 도착했다. 살랑거리며 바람은 불지만, 햇살이 따스해 겨울 같지 않다. 상화동산의 상화시비 곁을 지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를 눈으로 감상한다. 주말의 행사 준비로 무대장치를 만든다고 쿵쾅거린다. 못 둑을 천천히 걸어본다. 눈 가는 곳 따라 마음도 시원하고 맑다. 아름답다. 좋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하랴. 유럽 이름난 어떤 호수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곳이 아닌가. 일렁이는 물결에 윤슬이 반짝이고, 물가 가장자리 허리 굽혀 인사하는 억새들의 몸짓에 미소로 화답하며 산책길을 어슬렁거린다. 평일 한낮이라 사람이 적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소근대며 걷는 발걸음 소리에 을사년은 천천히 저물어간다. 멋지게 단장된 데크길 사이로 보이는 노랗게 물든 가로수의 물결은 한 장의 겨울동화이다. 그때 저쪽에서 얼굴이 익은 사람이 걸어온다. 같이 근무한 S 교장이 아닌가.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를 물었다. 근처 파동 코오롱 아파트에 사는 S 교장은 운동 겸, 도보로 지하철 3호선 수성못역으로 가는 길이란다. 서문시장 ‘선아 칼국숫집’에 모임이 있다고 한다. 내가 가까운 파동에 살 때는 수성못에 자주 왔지만, 이사로 몸이 멀리 떠나니 마음도 멀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올 수 있지만 현실은 어렵다.
낮 12시. 식당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넘친다. 북적거리는 서문시장 노점의 국숫집에 온 것 같다. 초밥코너에 줄이 길게 이어져 있다. 오찬 25,900원. 온갖 종류의 초밥 음식이 있지만, 적지 않은 금액이다. 우리나라가 정말 잘 사는 것 같다. 아니, 잘 사는 사람만 여기 오겠지. 점심 약속을 대부분 11시 30분 정도로 잡기에 사람이 벌써 넘친다. 나도 지금 여기 있지만, 자본주의의 속성을 보는 것 같아 좀 씁쓸하다. 새벽 운동을 나갈 때 간혹 마주치는 파지 줍는 노인의 얼굴이 떠오르고, 이따금 K 복지관에서 점심 먹을 때 긴 줄을 이루는 노인들의 표정도 되살아난다. 빈익빈 부익부가 대를 이어가니 어쩔 수가 없다. 이젠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해야지. 세 테이블에 10여 명이 자리 잡았다. 여자 동기 일이고 평일 낮이라 여자 친구가 많이 왔다. 남자는 겨우 4명. 평소 소식하는 체질이지만, 본전 생각이 나서 접시에 몇 번 담아오니 과식했다. 후회하고 반성하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는 시간이다. 식탐은 크게 없어도 고치기가 어렵다. 오늘 음식 중 ‘앙크루트 스프’가 색다르다. 친구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아름답다. 철학박사인 풍수 대가 N의 조상 모시기와 명당 이야기도 재미있고 수긍이 가지만, 20년, 50년 후의 세상을 그려보면 고개를 갸웃한다. 은행 지점장 출신인 K의 생활철학도 좋고, 종친회 회장을 맡아 문중의 궂은일을 원만하게 해결하며 지내는 H의 보람 있는 삶도 자랑스럽다. 다들 세월의 흐름에 물결이 되어 건강하게 살아간다. 다시 창밖으로 수성못이 안긴 수성호텔 ‘카페 NOC’로 자리를 옮겼다. 카푸치노와 라테 한잔으로 뒤풀이하며 살아가는 삶을 풀어낸다. 자질구레한 잡담과 수다도 즐겁다. 고희를 훌쩍 넘긴 세월이 아닌가. 동기들의 지난 추억의 일도 돌아보니 아스라하고 재미있다. 내가 쓴 ‘따뜻한 외로움’을 자세히 읽은 친구가 소감도 간단히 전해주며 격려해 준다.
A 의 승용차로 ‘용지’ 역에 내렸다. ‘수성 6번’을 타고 시지로 귀가하니 어느덧 오후 4시다. 오늘 모임을 주선한 L에게 고마움을 보낸다. ‘청춘탁구클럽’에서 출석하라고 연락이 왔지만 피곤해서 그냥 쉬었다. 아직 완쾌되지 못한 몸이라 조심한다. 쉬엄쉬엄 어슬렁어슬렁 살아가자. 이런 주문을 자주 외우면 실천하리라 생각된다. 기적은 고목에 꽃이 피는 것이 아니다. 별일없이 어제처럼 아침마다 눈 뜨고 감사한 하루를 여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자잘한 기적의 시간을 보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