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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11
1. 인천 공항 / 청사 출입구 ( 저녁 ) E1
자동문 열리고 사람들이 나온다. 서류 가방을 든 60대 초반의 백인 남자, 두리번거린다.
택시 승차장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향하는.
태호 : (소리) 캐나다 말하는거야, 지금? 강세훈 양아버지가 여기 왔다구?
2. 카페 안 ( 저녁 ) E1
멈칫, 해서 노려보는 정민.
정민 : 태호씨... 그 사람 뒷조사까지 했어?
태호 : 강세훈도 알아?
정민 : (어이없는) 어디까지 조사한 거야?
태호 : 강세훈도 알구 있냐구! 양아버지 오는 거!
정민 : 세훈씨 위해 준비한 서프라이즌데, 왜 태호씨가 놀라구 그래?
태호 : (심각하다 싶은, 말문 막히고) ...
3. 달리는 택시 안 ( 저녁 ) E1
간선 도로를 달리는 모범 택시.
조금 긴장한 듯 보이는 세훈 양부, 지나치는 풍경을 바라본다.
4. 카페 안 ( 저녁 ) E1
만들어진 미소를 머금은 세훈, 태호와 정민이 앉은 자리에 다가온다.
세훈 : 소개시켜 준다는 사람이 장태호씨였어요?
태호 : (멈칫 돌아보는) ...
세훈 : (빙긋 웃으며) 하긴, 새로 소개 받을 필요는 있네. 비지니스는 집어 치우고, 구남친 대 현남친으로... (정민에게 찡긋) 맞죠?
정민 : 아뇨. (태호를 보며) 태호씨는 지금 일어날 거에요.
세훈 : (의아한) 네?
혼자만 초조한 태호, 하는 수 없이 일어난다. 의아해서 보는 세훈.
태호, 세훈 옆으로 지나치다가 멈추고.
태호 : (정민은 들리지 않게, 귀에 대고 나즈막히 경고) 당신... 이제 엿됐어. ...곽흥수.
세훈 : (쿵!! 눈동자가 커지는, 어떻게 내 정체를) ...!!
큰 걸음으로 카페를 나가는 태호. 세훈, 굳은 채 바라보는데.
정민 : (의아한) 왜 그래요, 세훈씨?
세훈 : (겨우 표정 수습하고 자리에 앉는, 조심스럽게) 장태호씨랑... 무슨 얘기 했어요?
5. 카페 앞 / 주차장 ( 저녁 ) E1
황망히 걸어나오는 태호, 문득 멈춰선다. 카페를 돌아보면, 창가 자리에 마주 앉은 정민과 세훈, 뭔가 대화 중이고.
태호 : (핸드폰 꺼내는) 영칠아, 난데... 그때 조사한 한중그룹 강세훈 자료 좀 찾아줘.
아니, 전부는 필요없구, 캐나다에 그 양아버지 이름만 알면 돼.
통화하면서 다시 카페로 시선 돌리는 태호.
정민이 뭔가 얘기하자, 세훈이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다. 어지간히 충격 받은 표정.
태호 : (지켜보면서 덩달아 초조해지는) 시간없어! 빨리 찾아 봐!
여전히 태호 시선으로 보이는 카페. 탁자를 짚고 간신히 자리에 앉는 세훈.
정민이 계속 설명하는데 세훈은 충격으로 멍하게 굳어 있다.
6. 카페 근처 / 차도 ( 저녁 ) E1
모범 택시가 멈추고 세훈 양부가 내린다.
낯선 느낌으로 두리번거리는 양부, 저만치 카페 간판을 발견한다. 그쪽으로 향하려는데...
양부 앞에 다가서는 사내, 태호다. 경계하며 쳐다보는 양부.
태호 : (英-정중하게) 미스터 핸더슨? Mr. Handerson?
양부 : (英) 네? Yes?
태호 : (英) 미스터 강이 절 보냈습니다. 약속 장소가 바뀌었으니 제가 안내 하겠습니다.
Mr. Kang sent me here to pick you up. The venue has been changed. I will take you there.
양부 : (긴가민가해서 보는) ...?
태호 : (예의 바른 미소로 보는) ...
7. 폐건물 / 창고 ( 밤 ) N1
앞 씬에서 미소짓는 태호가 이글거리는 눈빛의 태호로 바뀐다. 팔을 뻗어 권총을 겨눈 자세.
총구 너머에는 흥삼이 싸늘하게 웃고 있다.
흥삼 : 실망이야, 장태호. 둘러댈 거면 좀 더 그럴 듯한 스토리가 많잖아.
태호 : 믿으셔두 됩니다. 사실이니까요.
흥삼 : 내 머리에 총까지 겨누고 믿으라는 놈, 나 못믿는다.
태호 : 이거라두 없으면... 들어주지도 않으셨겠죠. 그 남자는 회장님 앞마당에 데려다 놨습니다.
(한 손으로 주머니 더듬거려 카드키를 꺼내는) 세영호텔 504호.
흥삼 : (씨익 웃는) 그래! 이제 좀 그럴 듯 하구나. 사마귀나 독사가 가서 확인하는 틈에 날 인질로 빠져 나가겠다?
태호 : 그건... 총알이 남아 있을 때 얘기죠.
흥삼 : (표정) ...?
방아쇠에 힘을 주는 태호. 총구 정면에 서 있는 흥삼, 설마...하는 순간, 탕!! 총성이 울린다. 벽에 패이는 총알 자국.
못박힌 듯 서 있는 흥삼. 이내 문을 박차고 뛰어드는 독사와 사마귀, 독사 부하들.
사마귀 : 회장님!!
독사 : (동시에) 형님!! (하다가 권총을 든 태호 보자 멈칫) ...!!
흥삼 : (태호를 노려보며) ...빈 총이다.
독사 부하들, 한꺼번에 달려들어 태호를 제압한다.
태호, 총을 뺏기고 양 팔이 뒤로 꺾인다. 무릎까지 꿇린 채 꼼짝 못하는 태호.
태호 : (이를 악물고 고개 치켜들며) 확인해 보십쇼!!
흥삼 : (냉랭하고) 한 시간 더 살아봤자, 달라지는 거 없다.
태호 : 세영호텔... 504홉니다...
흥삼 : (여전히 싸늘하게 보면서) ...마귀야.
사마귀 : 네, 회장님.
흥삼 : ...가봐라.
사마귀, 바닥에 떨어진 카드키를 들고 돌아선다. 당장이라도 해치우고 싶은 눈빛으로 태호를 노려보는 독사.
바닥에 꿇린 채 흥삼을 응시하는 태호. 흥삼은 감정없는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8. 호텔 객실 ( 밤 ) N1
문이 열리고 사마귀가 들어선다. 실내 풍경을 보자 멈칫!
세훈 양부가 수건으로 재갈이 물린 채, 의자에 결박돼 있다.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인 눈빛으로 노려보는 양부, 읍!읍! 겨우 소리를 낸다.
무표정하게 보다가 핸드폰을 꺼내는 사마귀.
9. 폐건물 / 창고 ( 밤 ) N1
전화를 받고 있는 흥삼, 표정이 변한다. 핸드폰 끄고 돌아본다.
여전히 독사 부하들에게 붙잡힌 채 꼼짝못하고 쳐다보는 태호.
흥삼 : (묘한 미소로 보는)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군.
태호 : (웃음기 없는) ...
흥삼 : ...놔줘라.
독사 : (뜻밖인) 그냥... 풀어 줍니까?
흥삼 : (못들은 척, 태호에게) 내일 들어와라. 남은 얘긴 그때 하자.
돌아서서 창고를 나가는 흥삼.
김새는 독사, 부하들에게 눈짓한다. 풀려난 태호, 일어나서 옷을 터는데.
독사 : 큰형님하구 무슨 일이냐? 사마귀 자식, 누굴 찾으러 간 거야?
태호 : 알구 싶어요? 호기심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데.
독사 : 뭐?
태호 : (무시하고 지나쳐가는)
세훈 : (태호 뒷모습 위로 - 소리) 장태호가... 어디까지 알구 있는 거에요?
10. 펜트 하우스 ( 밤 ) N1
흥삼, 거울 앞에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 중. 세훈이 뒤편에 서 있고.
흥삼 : 우리가 형제구, 니 신분이 미국에서 바꿔치기 됐다는 거. 한중그룹이나 윤일중에 대해선 아직 모르는 눈친데...
그 녀석 머리 돌아가는 속도면 조만간 알아내겠지.
세훈 : (긴장하는) ...
흥삼 : (거울 너머로 넘겨다 보며) 윤회장 딸내미는?
세훈 : 양부하고 연락이 안돼서 걱정하길래, 대충 달래서 보냈어요.
흥삼 : 너에 대해서 눈치챈 건 아니고?
세훈 : 이번 깜짝 이벤트, 절 위해서 한 일이에요. 다른 속셈은 없을 거에요.
흥삼 : 사람 마음 놓구 장담하지 마라. 마지막까지 방심하면 안돼.
세훈 : (언짢지만 참고 보면서) 그보다... 장태호부터 처리해야죠.
흥삼 : (표정, 거울에서 돌아서는) ...
세훈 : 다 된 밥에 재 뿌릴 순 없잖아요. 이번에 아예 묻어 버리든가...
흥삼 : (말 자르며) 흥수야. 장태호 아니었으면 너 오늘, 끝장났어. 다른 건 몰라두 그 녀석 충성심은 내가 확인했고.
세훈 : 사람 마음, 장담하지 말라면서요?
흥삼 : (꿈틀) ...!
세훈 : 똑똑할진 몰라도 믿을 만한 상대 아닙니다, 장태호...
흥삼 : 너 요새 불평불만이 늘었다? 내 앞에서 훈장질까지 하구.
세훈 : (멈칫)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흥삼 : 너, 한중그룹 기전실장 강세훈이다. 앞으론 묻어 버리네, 어쩌네 그따위 양아치같은 소리, 입에 담지 마라. 알아 들었니?
세훈 : (어금니를 깨무는) ...
흥삼 : 강.세.훈.씨... 알아 들었습니까?
세훈 : (노려보다가 휙 돌아서서 가는)
흥삼 : (버럭) 흥수야!
세훈 : (멈춰선다. 냉랭하게 돌아보는) 시키신 일이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2단계 설계도는 며칠 안으로 끝내죠.
흥삼 : (미간을 찌푸린 채 응시하는) ...
11. 상가 사무실 ( 밤 ) N1
어두운 사무실에 들어서는 태호, 불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몸을 던진다.
몸도, 마음도 바닥난 듯 멍한 시선으로 천장을 보는 태호. 가까스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깊은 한숨...
12. 폐차장 ( 아침 ) D2
화면 분위기 바뀌면서... 작업복을 입은 종구가 버스에서 내려선다. 아직 한밤중인 노숙자들 향해 쩌렁쩌렁 외치는.
종구 : 둥근 해가 떴습니다! 윗니 아래 이 닦자! (발로 박스를 차고 지나가며) 기상! 기상!!
양씨 : (부스스한 몰골로 쳐다보며) 저기 말야, 류씨...
종구 : (멈추고 보는) ...?
양씨 : 거, 현장 일... 아무래도 난 나이도 있구, 뼈마디두 시원치 않아서 빠질까 싶은데...
종구 : 억지루 하라는 거 아니에요. (둘러보며) 니들두 일하기 싫은 사람은 안가도 돼! 배중사한테 끌려 나가던 작업 동원 아니다!
서로 눈치 보며 뭉개는 노숙자 10여명. 답답한 시선으로 보는 종구.
13. 거리 일각 ( 아침 ) D2
승합차가 대기 중이고 오십장이 두리번거리며 기다린다.
그 옆에서 찢어지게 하품하는 해진과 잠이 덜 깬 채 졸고 있는 영칠.
해진 : (툴툴거리는) 이게 뭐하는 짓거리야, 대체. 꼭두새벽부터 사람 멱살을 잡아 끌구 나와야겠어?
오십장 : 사무실 휴가람서? 하루 왼종일 팽팽히 놀믄 뭐할 것이여? 일당 벌이라두 혀야지.
해진 : 그 일당 없어도 살거든요?
오십장 : 고따구 정신머린 게 여지껏 노숙자 신센겨. 사람이 내일을 바라보구 살아야제! 암만!!
(시계 보고 초조하게 두리번) 근디... 우째 안오는겨?
해진 : 댁같으면 오겠수? (코웃음) 내일은 커녕 한시간 앞두 관심없는 인생들인데.
그때, 저만치서 종구와 최군, 노숙자 둘이 다가온다.
오십장 : (환하게 손 흔드는) 뭣허는겨! 사타구니에 방울 소리나게 뛰잖구!
해진 : (표정 짜게 식으며) 얼라려... 왔네...
종구 : (오십장에게) 대 여섯 명은 나설 줄 알았는데, 우리 뿐이다.
오십장 : 나가 딱! 감잡고 여그 대타들 데불구 왔당게요.
종구가 쳐다보면 해진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영칠을 발로 툭 차는 오십장. 영칠, 화들짝 잠이 깨서 침 닦는다.
오십장 : (승합차 문 열고, 기운차게) 수원까지 가야 허니께 싸게들 타라고!
주섬주섬 차에 오르는 사람들. 오십장이 조수석에 오르자 승합차가 출발한다.
길 건너에서 지켜보는 시선, 껀수를 발견한 표정으로 히죽거리는 악어, 그리고 부하들이다.
14. 무료 병원 / 병실 ( 낮 ) D2
나라, 조회장 팔뚝에서 주사를 빼고, 알콜솜을 문지른다.
얕은 기침하며 소매를 내리는 조회장.
나라 : 하루 이틀 입원하시는 게 좋은데... 여름 감기 조심하셔야 되거든요.
조회장 : 부하 직원들은 땡볕에 구슬땀 흘리러 갔는데, 회장이란 사람이 팔자 좋게 누워 있으면 쓰나.
나라 : (그 말에 킥킥 웃는) 오십장 아저씨 대단해요. 해진 아저씨까지 끌구 나갈 줄 몰랐네.
조회장 : (미소) 그렇게 시작하면 되는 게야.
나라 : 네?
조회장 : 땀으로 만드는 밥 한그릇... 세상에 그보다 귀한 게 없지. (씁쓸한 탄식) 이만큼 나이가 들면, 일하고 싶어도 못해.
나라 : (안스러운, 일부러 밝게) 근데 회장님, 요즘은 왜 중매 얘기 안하세요?
하버드 유학간 김장관님 아들, 언제 소개시켜주실 건데요?
조회장 : 자네 교제하는 사람 있지 않나?
나라 : (어리둥절) 제가요?
조회장 : 장태호 이사 말야.
나라 : (화들짝) 아, 아니에요, 회장님! 그 사람 완전 밥맛이거든요?
15. 무료 병원 / 복도 ( 낮 ) D2
냉큼 병실 나오는 나라, 괜히 볼이 빨개지는 기분이다. 그러다 혼자 피식 웃는데...
동료 간호사가 다가온다.
동료 간호 : (울상이 된) 어떡하니, 나라야?
나라 : (멈칫) 왜요?
동료 간호 : 병원... 닫을 지도 모른대. 후원회 사정이 어렵게 됐나봐.
나라 : (충격) ...!!
16. 펜트 하우스 ( 낮 ) D2
책상에 앉아 있는 흥삼, 장부를 검토한다. 소파에 그린 듯 앉아서 차를 마시는 미주.
흥삼 : 매상이 신통치 않아.
미주 : (남일처럼 심드렁히) 경기가 바닥인데 어쩌겠어요? 영업 전화 돌려두, 다들 앓는 소리부터 해요.
흥삼 : (장부 덮으며) 대마불사야. 잔챙이들이 죽어나갈 수록 큰 손들은 더 커지게 돼 있어.
미주 : 큰 손 누구요? 한중그룹 후계자같은 사람 말이에요?
흥삼 : (삐딱하게 보는) ...
미주 : (일어나며) 갈께요.
흥삼 : 류씨는 좀 어때?
미주 : (멈칫, 돌아보는) ...
흥삼 : (책상에서 일어나는, 다가오며) 요새 변했다며? 어디가 어떻게 달라진 거야?
미주 : 그거... 나쁜 습관이에요, 회장님.
흥삼 : (표정) ...?
미주 : 서울역 돌아가는 거, 손바닥 위에 놓고 훤히 들여다보면서... 아저씨 일은 항상 저한테 물어보잖아요.
알면서도 떠보는 습관, 고치는 게 어때요?
흥삼 : (태연하게 웃는) 돌다리도 두들겨봐야지. 류씨에 대해선 나보다 니가 더 정확하잖아.
미주 : (가만히 보다가) 아저씨가 뭘 하든, 어떻게 변하든... 회장님한테 맞서는 일은 없을 거에요.
흥삼 : 그런 일이 있으면 안되지, 우리 셋을 위해서라도...
미주 : (표정) ...!
흥삼 : (무게를 실어서) 그날 아침, 우리 집 정원에서 했던 얘기... 허투루 듣지 마라.
조만간 일이 마무리될 때 쯤, 니 대답도 준비돼야 할 거다.
미주 : (진심이었구나, 긴장하는) ...
17. 공사 현장 ( 낮 ) D2
벽돌짐을 나르는 종구. 눌러쓴 안전모 아래로 땀이 뚝뚝 떨어진다.
힘겹지만 한걸음씩 내딛는 모습이 고행 중인 수도자같은...
18. 펜트 하우스 / 복도 ( 낮 ) D2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태호가 내린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마귀를 보자 멈칫!
용건이 있는 표정으로 다가서는 사마귀.
사마귀 : 미스터 핸더슨은 아침 비행기로 출국했습니다.
태호 : (표정) ...!
19. 호텔 객실 ( 과거, 밤 ) N1
결박이 풀려 있는 양부, 겁먹은 눈빛으로 보는데...
사마귀가 태블릿 피시를 터치하고 있다. 영문으로 된 외국 은행 사이트.
사마귀, 십만 단위의 달러를 이체하는 중이다. 일련의 화면 위로 들리는.
사마귀 : (소리) 강세훈은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대신... 무례하게 감금한 일은 사과하며,
캐나다에서 길러준 수고에 대해 감사 표시는 하겠다.
사마귀가 태블릿 화면을 양부에게 보여준다.
의심스럽게 보던 양부, 이체된 금액을 보자 놀라면서 동시에 탄성.
20. 펜트 하우스 / 복도 ( 낮 ) D2
얘기 계속하는 사마귀.
사마귀 : 순순히 거액을 받아가더군요. 다시는 연락하지 않는 조건으로...
태호 : (냉소적인) 돈보다 칼을 잘 쓰는 줄 알았는데?
사마귀 : 명령대로 했을 뿐입니다.
태호 : 회장님에 대해 모르는 것도 없고, 충성심도 대단하고... 부럽네. 강세훈 일도 진작에 알고 있었나?
사마귀 : 이젠 장태호씨도 알게 됐으니... 처분은 회장님이 내리실 겁니다. (묘한 미소) 이번엔 돈 대신 칼을 쓰게 될 지도 모르죠.
태호 : (표정 굳는) ...!
21. 펜트 하우스 ( 낮 ) D2
창가에 서 있는 흥삼. 긴장한 태호, 그 뒤에 기다리며 서 있다.
흥삼 : (창 밖을 보며, 감정없는) 딱 세 가지만 물어볼 거다. 대답은 짧고 간단하게... 어설픈 수작 부리지 말고.
태호 : (각오하고, 담담하게) ...네.
흥삼 : (천천히 돌아보는) 작두가 남긴 메모... 내가 모르는 내용이 더 있니?
태호 : 복사본이었습니다. 강세훈씨하고 재미교포 브로커에 대한 인적사항만 적혀 있었구요.
원본은 회장님이 가져가신 거 아닙니까?
흥삼 : 질문은 내가 하구 있다.
태호 : (주춤, 입 다무는) ...
흥삼 : 그 메모 내용이나 우리 형제에 대해서... 태호 너 말구 아는 사람은?
태호 : 로커 열쇠는 종구 형님이 전해줬는데, 내용에 대해선 모릅니다.
흥삼 : (가늠하듯 응시하는) ...
태호 : (담담하게 보는) ...
흥삼 : 그럼 마지막... (한발 다가서고) 강세훈 양부가 입국하는 건 어떻게 알았니? 누구한테 들은 거야?
태호 : (멈칫, 세훈이 정민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구나 파악하는) ...
흥삼 : (기다리는, 매서운 눈빛) ...
태호 : 이메일이나 SNS... 추적하려고 들면 얼마든지 움직임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입국 사실은 바로 직전에 확인했구요.
흥삼 : 어쩐지... 전부 믿고 싶은 대답이구나.
태호 : 회장님이 믿지 않으셨으면 전 벌써... 수술실에 누워 있겠죠.
물끄러미 보던 흥삼, 턴테이블로 간다. LP에 바늘을 올려놓자 ‘들장미’가 흐르고...
가만히 지켜보다가 입을 여는 태호.
태호 : 이번엔 제가 질문할 차롑니다.
흥삼 : (흘끔 돌아보는) ...?
태호 : 회장님을 알아야 회장님을 지켜 드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단단히 벼르고) ...이유가 뭡니까?
친동생의 이름을 바꾸고, 그걸 협박한 누군가는 살해되고... 대체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달려오신 겁니까?
흥삼 : (묵묵히 보는) ...
태호 : (이글거리며 기다리는) ...
흥삼 : 대답은... 지금 듣고 있지 않니?
태호 : (표정) ...?
흥삼 : (볼륨 높이며) 이게... 내가 싸우고, 버티고, 살아남은 이유다.
(눈빛 날카로워지면서) 재계의 거물, 세계 경영의 개척자... 윤일중...
태호 : (뜻밖의 이름에 의아한) 한중그룹... 윤일중 회장 말입니까?
흥삼 :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별명도 있지. 우리 형제만 기억하는 윤일중의 진짜 이름... (어금니를 깨무는) ...살인자.
태호 : (충격) ...!!
22. 윤회장 저택 / 서재 ( 낮 ) D2
소파 상석에 몸을 묻은 윤회장, 지긋이 눈을 감고 있다.
그 앞에 앉아있는 재성, 서류를 보다가 고개 드는.
재성 : 이게... 강세훈 실장이 보고한 내용이에요? (다시 서류 보는) 별로 특별한 건 없는데요?
윤회장 : (가만히 눈을 뜨는) 그러니까 니가 따로 알아봐. 기획전략실하고 별개로 조용히.
재성 : (갸우뚱) 친구분 아들이라면서요? 미래도시 사업에도 투자했구... 근데 뭐가 걸리시는 거에요?
윤회장 : (낮게, 힘을 실어) 그걸 찾아내란 얘기다. 내가 아직 모르고 있는 게 뭔지..
재성 : (표정) ...
23. 펜트 하우스 ( 낮 ) D2
충격으로 굳어있는 태호. 결연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흥삼.
태호 : (놀라움, 혼란스럽고) 윤회장에게 복수하고... 한중그룹을 손에 넣겠다... 그게... 회장님 계획이란 말입니까?
흥삼 : 아버지가 억울하게 빼앗긴 회사를 우리 형제 손으로 되찾는다... 그게 핵심이야.
태호 : (정색하는) ...무모한 계획입니다. 상대가 너무 강해요.
흥삼 : 뒷골목에서 약배달하던 똘마니 시절에도 서울역 우두머리는 꿈같은 목표였다.
태호 : (답답한) 이건 주먹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한중그룹이에요! 윤일중 회장이라구요!
흥삼 : (피식) 한줌도 안되는 오너 일가가 수 천, 수 만명을 거느리는 게 재벌 구조야.
급소만 파고들면 주인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
태호 : 그 임무는 강세훈 실장이 맡았구요?
흥삼 : (눈빛 번득이는) 이제... 한방에 찌르는 일만 남았다.
태호 : (질린 듯이 보는) ...미쳤군요. 아주 제대로 미쳤어요.
흥삼 : (멈칫 본다, 그러더니 큭큭... 새된 웃음이 터져 나오는) ...
태호 : (서늘한 기분으로 지켜보고) ...
흥삼 : (웃음기 담은 채) 태호 니가 선택해. 미친 놈하고 끝까지 갈래, 아니면 여기서 빠질래?
태호 : 제가 빠지면... 절 제거하시겠군요.
흥삼 : (묘한 미소) 니 충성심을 아니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는데... 혹시 모르지. 샤워하다가, 어쩌면 차 타고 가다가...
갑자기 널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두.
태호 : (긴장하는 표정) ...
흥삼 : (은근한) 태호야... 니가 갖고 싶은 거, 내 손에 쥐고 있다. 여기서 그만 두면 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야.
서울역에 처음 왔을 때, 그 형편없는 밑바닥으로... 결국 류씨처럼, 서울역에 흔해빠진 낙오자가 되겠지.
(조여드는 듯한) 그 무리에... 돌아가고 싶니?
태호 : (흔들리는 눈빛) ....
24. 공사 현장 ( 낮 ) D2
휴식시간이다. 나무 그늘 아래, 안전모를 베고 누워있는 종구. 옆에선 해진과 오십장 등등이 빵과 음료수를 나눠 먹는다.
해진 : (수건으로 털며) 아우, 서걱서걱해. 모래 요정 바람돌이도 아니고...
영칠 : (먹던 빵을 가리며 찡그리는) 형은 뭐 일두 안했잖아요. 탱자탱자하다가 작업반장한테 계속 깨졌으면서.
해진 : 짜샤! 내가 워낙 곱게 자라서 그래! 막노동 체질이 아니에요.
오십장 : 아따, 체질 따져가며 밥벌이하는가! 그려도 오랜만에 땀 흘려 일하니께, 빵맛이 꿀맛이구먼. 그쟈?
해진 : (코웃음, 종구를 돌아보며 빵을 내미는) 꿀맛이라는데, 맛 좀 보슈.
종구 : 됐다. 니들이나 먹어.
종구, 그냥 누운 채 나무를 올려다본다. 얕은 바람에 솨아~ 소리내며 흔들리는 나뭇잎들. 그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
땀 흘린 뒤에 휴식을 즐기는 동료들.
종구, 가만히 눈을 감는다. 평화롭고 충만하다.
25. 할매 식당 ( 낮 ) D2
뚝배기에서 김이 오른다. 수저 들 생각 없이 멍하게 지켜보는 태호.
/ 11부 23씬.
펜트 하우스에서 태호를 설득하는 흥삼.
흥삼 : (은근한) 태호야... 니가 갖고 싶은 거, 내 손에 쥐고 있다. 여기서 그만 두면 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야.
서울역에 처음 왔을 때, 그 형편없는 밑바닥으로...
/ 1부 41씬.
찌개를 한수저 맛보더니, 허겁지겁 퍼먹는 태호. 걸신들린 사람처럼 밥과 찌개를 먹는.
/ 다시 현재.
그때와 같은 자리, 같은 메뉴. 태호는 여전히 멍한데...
할매 : (주방에서 나오며) 뚝배기 모셔놓구 고사 지낼겨!
태호 : (정신 차리고, 웃으며 수저 드는) 근데 다들 어디 갔어요?
할매 : (다른 테이블 치우며) 몰러. 공사판에 일 간대나 뭐래나... 새벽 댓바람부터 눈꼽두 안떼구 몰려 나갔응게.
태호 : (의아한) 공사판이요?
할매 : (코웃음) 고 잡것들이 어느 세월에 사람 구실 허겄냐? 뽕밭이 바다가 되는 것이 빠르제.
(문득 일손 멈추며) 근디... 대관절 워쩔 것이여?
태호 : (표정) ...?
할매 : 넘의 집 귀한 손녀 맴을 싱숭생숭 흔들어 놨으믄 뒷감당을 해얄 거 아녀?
태호 : (난처한) 할머니, 그런 게 아니구요...
할매 : (으름장) 나라 눈에서 피눈물만 나게 혔단 봐, 기냥! 다리 몽댕이를 작신 부러뜨릴겨!
태호 :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애매한) 아...
26. 구청 앞 ( 낮 ) D3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나라, 맥이 풀린 표정이다.
구청직원 : (소리) 구청 복지 예산으로는 민간 병원까지 지원할 여력이 없어요. 시청이나 다른 자선 단체를 찾아가 보시든가요.
걸음 멈추는 나라, 낮게 한숨 쉰다.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한...
그때 ‘시청’ 표시된 시내 버스가 지나간다. 눈빛이 반짝거리는 나라, 영차! 기운내더니 버스 정류소를 향해 뛰어가는.
27. 공사 현장 ( 낮 ) D3
작업이 끝난 듯, 인부들이 하나 둘 퇴근한다.
에고고, 허리 잡고 엄살 피우며 승합차로 가는 해진. 영칠과 오십장은 뭐라고 퉁박주며 따라간다.
종구도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옷을 털며 승합차로 향하는데... 최군과 폐차장 노숙자 둘이 다가온다.
최군 : (만원짜리 몇 장 내밀며) 형님. 이거...
종구 : (삐딱하게 보는) ...?
최군 : 형님 덕분에 일당두 벌구... 저희들 성의니까 받아주세요.
종구 : (으르렁) 이런 정신 빠진 새끼들...
최군, 노숙들 : (당황스럽고) ...?
해진, 영칠등 : (승합차 타려다 돌아보는) ...?
종구 : (최군의 어깨를 쿡쿡 찌르며) 니 벽돌을 내가 날랐냐? 내가 니 대신 삽질했어? 느이들이 죽을 똥 싸게 일해서 벌었으면
십원 한장까지 다 니들 꺼야, 알어? (다른 노숙자들 향해) 쎈 놈 눈치 봐가며 상납 바칠 놈들은 독사나 악어 밑으로 꺼져!
휙 돌아서는 종구. 얼떨떨한 최군과 노숙자들.
종구가 다가오자 씩 웃는 해진, 승합차 문을 드르륵 열어주며 정중하게 타시라고 손짓.
뜨악하게 흘끔 보고 차에 오르는 종구.
28. 공원 일각 ( 낮 ) D3
골판지에 그린 장기판. 성한 장기알은 몇 개 없고, 페트병 뚜껑에 매직으로 ‘車, 包, 卒’ 써놓고 장기 두는 조회장과 양씨.
양씨 : (한 수 놓고, 걱정스러운) 저는 아무래도 사달이 나지 싶네요.
조회장 : (수를 고민하며, 심드렁히) 뭐가?
양씨 : 공사장 일 다니는 거 알게 되믄, 상납 바치라구 난리칠 게 뻔한데...
조회장 : 그거야... (말하다가 쿨럭대며 기침하는)
양씨 : 병원은 댕겨 왔어요?
조회장 : (끄덕이고, 기침 진정되자) 구더기가 무서워도 장은 담궈야지. 뜯기는 게 겁나서 일까지 못하면 쓰나?
알아서들 수를 낼 게야. (고개 들어 미소짓는) 자네는 외통수지만.
양씨 : 예?
조회장 : (호기롭게 장기알 때리며) 장이야!!
29. 상가 사무실 ( 낮 ) D3
들어서는 태호, 멈칫 본다. 테이블에 발 올리고 팔자좋게 기대앉은 종구, 쓰윽 고개 돌린다.
종구 : 이제 오냐?
태호 : (경계하며) 여기서 뭐해요?
종구 :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는) 워낙에 바쁘신 분이라 직접 찾아뵈러 왔지.
태호 : (책상으로 가며) 공사장 나간다면서요? 해진씨랑 다들 데리고.
종구 : 할 만 하더만. 사람 패는 것보단 쉽더라.
태호 : (흘끔 보는) ...
종구 : (다가서는) 어떻게 됐냐?
태호 : 뭐가요?
종구 : 작두가 남긴 열쇠... 찾아 봤어?
태호 : (표정) 갑자기 그건 왜요?
종구 : (뜨악하게 보는) 임마, 키를 가져갔으면 열어 봤는지, 열었으면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보고를 해야할 거 아냐?
태호 : (시선 피하며 컴퓨터 앞에 앉는) 별 거 아니에요.
종구 : (짜증스러운) 너... 자꾸 물어보게 할래?
태호 : 그냥, 곽회장 비리에 관한 메모였어요. 상납받는 구조랑, 명의 팔아치우는 사업같은 거.
(일부러 심드렁히) 어차피 경찰두 몰라서 손 놓고 있는 거 아니잖아요. 곽회장이 쥐약 뿌려 놨으니까 냅두는 거지.
종구 : ...그게 다야?
태호 : (태연하게 올려다보는) 그럼 뭘 기대했는데요?
종구 : (미심쩍게 보는) ...
태호 :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작두 형님은 떠났구, 서울역도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잖아요.
종구 : (냉소) 그럭저럭 굴러가? 몇 달 만에 서울역 도사가 다 됐다, 너?
태호 : (미소) 겨우 제 밥그릇이나 챙기는 수준입니다.
종구 : 흥삼이가 흘려준 밥풀떼기로?
태호 : (웃음 속에 언짢은) 그것두 모으면 제법 배 부르거든요.
종구 : (씁쓸히 웃는) 태호야... 이 나이 먹고, 이 꼬라지로 살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 쥐뿔도 없다.
그 대신... 단순하게 바라는 건 있지. (웃음기 거두고) 처음처럼 멀쩡해질 순 없어두, 더 이상 망가지진 말자, 그런 거...
태호 : 형님은 그렇게 사세요. 전 망가져도 살아남을 테니까.
종구 : (안스럽게 보다가) 이 사무실에서 불났던 얘기, 들었냐? 흥삼이가 여기 불 지르기 전에... 딱 너같은 눈빛이었다.
태호 : (팽팽한) 그 덕분에 서울역 꼭대기에 올라선 거죠. 아닙니까?
종구 : (담담하고) 그 꼭대기, 별 거 아니다. 발판에 금이 가면 한꺼번에 무너지게 돼 있어.
태호 : (멈칫, 표정) 그게... 무슨 뜻입니까?
종구 : (결기를 담은) 차차 알게 될 거다.
태호 : (무겁게 응시하고) ...
30. 구멍가게 앞 ( 낮 ) D3
해진과 오십장, 영칠, 최군 등, 가게 앞에 둘러서있다. 음료수를 나눠 마시고, 봉투 안에 일당을 세보며 히히덕거리는데...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악어와 부하들 두 어명.
멈칫, 긴장하는 해진 일행.
악어 : 워디서 돈냄새가 폴폴 나는가 혔더니... 꿀단지가 여 있었구먼? (넌지시 넘겨다보며) 워매... 킹 세종두 기시구,
미세스 신사임당두 반갑네 잉? (영칠이 돈봉투를 뒤로 감추자) 시방 뭐하는겨?
희망차고 건강한 서울역을 만들라믄 임자들이 양심적으루다 상납을 혀야지?
오십장 : (꿈틀! 나서려는데)
해진 : (싸움을 피하려는, 오십장 대신 한발 나서며) 불만있으면 종구 형님한테 가서 따져요.
우리가 번 일당은 상납안해두 된다고 했으니까.
악어 : 그려? 고것은 미처 몰랐구먼. (일순 싸늘해지며) 헌디... 종구 성님이 큰성님보다 서열이 윗대가리여?
서울역 상납은 큰성님이 정해놓은 규칙인디?
해진 : (멈칫) ...!
오십장 : (참다 못해 으르렁) 서열이구 규칙이고 모르것응게, 군침 고만 흘리고 꺼져라잉?
악어 : 하이고... 이 잡것들은 꼭 육체의 교훈을 줘야 반성한다니께...
일전 각오하고 주먹을 쥐는 오십장. 악어가 눈짓하자, 일순 고함치며 오십장에게 달려드는 부하들.
오십장, 악착같이 맞서지만 열세다. 조금 떨어져서 눈치만 보는 해진과 최군 등등.
오십장이 위험하자 에라 모르겠다! 영칠이 악어 부하의 다리를 잡고 늘어진다. 보기좋게 걷어 채이는 영칠.
그 모습에 울컥한 해진, ‘썅!’ 소리와 함께 달려든다. 최군과 나머지도 이판사판!
플라스틱 의자가 날아다니고, 다리 가랑이 잡고 물어 뜯고... 폼은 안나도 필사적인 싸움.
의외로 강력한 저항에 당황스러워지는 악어, 주춤하는 순간... 얼굴 정면에 날아드는 오십장의 주먹. 퍽!!!
31. 펜트 하우스 ( 낮 ) D3
퍽!! 소리 이어지며 바닥에 뒹구는 악어. 흥삼이 한대 후려갈겼다. 그 옆에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독사.
악어가 비틀비틀 일어나 다시 선다. 앞 씬의 싸움으로 이미 상처가 나 있는 악어의 얼굴.
흥삼 : (노기등등한) 명색이 서열 5위라는 놈이 길바닥 떨거지들한테 꼬리를 내려? 그러고도 곽흥삼 부하입네, 거들먹거릴 거냐?
악어 : (억울한) 이것들이 단체루 약을 빨았는지 여간 드센 게 아녀유. 전에는 눈만 부라려도 알아서 기던 놈들인디...
꿈틀! 치미는 흥삼, 악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인트를 깐다. 어구구... 주저 앉아 낑낑대는 악어.
뒤편에 서서 지켜보는 사마귀, 한심한 눈빛이고, 독사는 죽을 맛이고...
흥삼 : (독사를 노려보며) 마귀야.
사마귀 : 예. 회장님.
흥삼 : 오늘 치 털어봐.
사마귀, 독사 옆에 놓인 가방을 들고 테이블 위에 쏟는다. 구겨진 지폐들이 나풀거린다. 딱 보기에도 부실한 액수.
흥삼 : (기가 막힌 듯, 쓴웃음) 이걸 왜 갖구 왔니? 니들 껌이나 사먹지.
독사 : (괴롭지만 변명조로) 요즘... 수술실에도 재료가 없어서...
흥삼 : 없긴 왜 없어? (독사의 배를 쿡쿡 찌르는) 심장, 간, 콩팥... 여기 많이 들어있네.
(순간 손가락 두 개로 독사의 눈을 찌를 듯) 이것두!
질끈 눈을 감는 독사.
흥삼, 싸늘하게 보다가 소파로 가서 앉는다. 참담한 표정으로 기다리는 독사와 악어.
흥삼 : (한풀 누그러진, 그래도 경고하듯) 니들 계급장 놀이하라구 서열 매기고, 임무 나눠준 거 아니다.
내가 신경을 못쓰면 니들이 서울역을 끌구 가야지. 그게 시스템이야, 알어?
독사 : (벼르던 말을 꺼내는) 그거 말입니다... 서열.
흥삼 : ...?
독사 : 이렇게 서울역 개판된 거, 종구 형님이 그 놈들 뒤를 봐줘서 그렇습니다.
파티만 허락하시면... (눈빛 번득이며) 종구 형님 제껴도 되겠습니까?
악어 : (놀라서 독사를 보는) ...!
사마귀 : (흥미롭게 지켜보고) ...
흥삼 : (표정없이 보다가, 입가를 비틀며 웃는) 허락하면? ...파티해서 이길 자신은 있냐?
독사 :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 ...
32. 펜트 하우스 / 복도 ( 낮 ) D3
복도로 나서는 독사와 악어. 굳은 표정으로 앞서가는 독사를 악어가 얼른 따라 붙는다.
악어 : 머덜라고 쓸데없는 소릴 해유?
독사 : (멈춰선다, 악어를 노려보는)
악어 : 기냥 죄송헙니다, 알겄습니다... 허구 끝내믄 되는디.
독사 : 서열 2위가 그 지랄인데, 우리가 죄송할 게 뭐야? 동네북도 아니고, 니미...
(독기 서린) ...이판사판이야. 앞으로 상납 개기는 놈들은 무조건 곡소리나게 조져!
33. 할매 식당 / 안채 ( 저녁 ) N3
별 소득이 없었는지, 힘이 쭉 빠진 나라, 들어서다가 멈칫 본다.
평상에 걸터앉은 해진과 영칠, 오십장이 약 발라주고, 반창고 붙여주고.
나라 : (다가오는) 어떻게 된 거에요? 얼굴이 왜들 그래요?
해진 : (소독약에 찡그리며) 나라짱은 어떻게 된 거야? 병원 갔더니 임시 휴진 붙어 있던데, 원장님 어디 가셨어?
나라 : (주춤했다가) ...그럴 일이 있어요.
영칠 : (슬그머니) 그럴 일이... 무슨 일인데요?
나라 : (화제 돌리며 오십장의 상처 살피는) 대체 누구랑 싸운 거에요?
오십장 : 베룩이 간 뽑아 먹을라는 싸가지들 땜시 푸닥거리 좀 혔네. 암시랑토 안혀.
나라 : (어이없는 듯) 서울역이 싸움판이에요? 다들 더위 먹었나봐, 진짜!
(안 채로 가며) 기다려 봐요. 타박상에 잘 듣는 연고 있으니까.
34. 할매 식당 / 안방 ( 저녁 ) N3
나라, 화장대 서랍을 뒤적이며 연고를 찾는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 꾀죄죄한 비닐에 들어있는 은행 통장과 도장.
나라, 의아해하며 통장을 꺼낸다. 빛바랜 통장 표지에 삐뚤빼뚤 써 있는 할매의 글씨. ‘나라 겨론(결혼) 통장’.
속지를 열어보면 매일 오천원, 혹은 만원씩 입금된 기록.
나라, 눈가가 뜨거워지는 느낌에 휴... 한숨 쉬며 허공을 본다.
화장대 위 액자, 교복 입은 나라가 뚱한 표정의 할매를 끌어안고 환하게 웃는 사진이 보이고...
35. 폐차장 ( 저녁 ) N3
폐버스에 기대서 팔짱을 끼고 있는 종구, 표정이 무겁다.
종구가 지켜보는 곳, 아까 싸움했던 최군과 노숙자들이 한쪽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있다.
눈치 살피며 다가오는 양씨.
양씨 : 쌈박질했다구 쫓아낼 건 아니지? 좀 두들겨맞긴 했어두 용케 일당은 안뺏겼대.
답답한 듯 머리 긁으며 돌아서는 종구.
그때 뚜벅뚜벅 다가오는 구두 소리. 쉬고 있던 노숙자들, 라면 먹던 최군 등등이 쳐다본다.
돌아보는 종구. 사마귀가 무표정하게 다가와 종구 앞에 선다.
사마귀 :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종구 : (담담한) 왜 안오나 했다. ...가자.
사마귀를 지나쳐 앞서가는 종구.
사마귀, 노숙자들을 둘러본다. 긴장해서 쳐다보는 노숙자들.
사마귀, 싸늘한 눈빛 속에 스치는 경멸...
36. 더 클럽 / 내실 ( 저녁 ) N3
상석의 흥삼, 그 옆에 측근처럼 앉아있는 태호.
느긋하게 술잔 기울이는 흥삼과 달리, 태호는 단단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낮춘다.
태호 : 한중그룹은 말 그대로 공룡입니다. 급소를 한방에 찌르지 못하면 도망칠 틈도 없이 밟혀 죽을 거에요.
흥삼 : (미소와 함께, 입술을 축이고) 내가 밟히면 너도 찌그러지겠지. 한 배를 탄 운명이 그런 거 아니겠냐?
태호 : 그래서... (낮고, 은밀하게) 지금까지 강세훈 실장이 파악한 내용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룹 재무상태, 인사구조... 공식, 비공식적인 데이터 전부요.
흥삼 : 그래야지. 헌데 지금은 아냐.
태호 : (표정) ...?
흥삼 : 한중을 파고드는 건 마지막 스텝이다. 이번 단계는 실탄 확보를 위한 작전이 될 거야.
태호 : (난감한) 그건 무립니다. 종목 찾고, 설계하는 것만 해도 몇 달은 걸려요.
흥삼 : 설계는 거의 다 끝났어. 태호 넌 액션만 들어가면 돼.
태호 : (놀라는) ...!
흥삼 : 지금은 한중을 상대할 자금을 긁어모아야 하는데... (말 끝에 찌푸리는) 요즘 서울역 상납액이 반토막난 거, 알구 있냐?
태호 : (긴장하는, 설마) ...
37. 더 클럽 / 홀 ( 저녁 ) N3
사마귀 뒤를 따라 들어서는 종구.
VIP 테이블에서 접대하던 미주, 무심코 시선 돌리다가 굳는다. 무표정하게 미주를 일별하고 내실로 향하는 종구.
미주, 손님이 말을 걸자 미소로 뭔가 대답하고 다시 내실 쪽을 본다. 불안한 눈빛이 어리는.
38. 더 클럽 / 내실 ( 저녁 ) N3
종구, 문가에 장승처럼 버티고 선다. 테이블 건너편에 흥삼, 태호와는 명백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구도.
사마귀는 조용히 뒤를 지키고...
흥삼 : (다정한) 이러다 얼굴 잊어 버리겠어, 류씨!
(태호를 보며)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구만. 펜트하우스때 우리 셋, 꽤 화끈했잖아?
태호 : (씁쓸한 미소) 죽다 살아났죠.
흥삼 : (종구에게) 일루 와서 앉으쇼. 그날 무용담 안주로 술이나 하지.
종구 : (담담한) 술은 끊었구, 부르신 용건 아니까 짧게 끝내죠.
흥삼 : (슬쩍 스치는 불쾌함) ...
종구 : 욱하는 애들 몇이 악어하고 시비가 붙었다구 들었습니다.
태호 : (미처 몰랐던, 놀라고) ...!
종구 : 서열 무시하고 싸움질한 놈들, 제가 혼구멍 내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더 키우지 마시죠.
흥삼 : (피식 웃으며) 혈기왕성한 녀석들이 몇 대 치고 받은 거 갖구 문제는 무슨...
(지긋이 바라보는) 오히려 조직 일에 류씨가 나서주니까, 내가 좀 편해지겠다 싶네. (사마귀 향해) 상납액은?
사마귀 : 빈 손입니다.
흥삼 : (예상했음에도 짐짓 종구를 삐딱하게 보는) ...?
종구 : (각오한 바다) 앵벌이한 것도 아니고, 지들 손으로 피땀 흘려 벌었습니다. 최소한 그런 녀석들만이라두 상납에선 빼줍시다.
흥삼 : (싸늘하게 노려보는) ...
종구 : (차분하게 기다리고) ...
태호 : (내심 초초한) ...
흥삼 : (냉랭한) 류씨... 산수가 영 젬병인데? 오늘 열 명을 빼줬다, 그러면 다음 달엔 백 명으로 늘어나게 돼 있어.
그 다음엔 또 몇 명이 빠져 나갈까? 오백 명? 천 명?
종구 : (미동없이 보는) ...
흥삼 : 악으로, 깡으로 다져놓은 서울역 시스템인데, 그런 식으로 구멍내겠다고 나오면 내가 좀 섭하지.
태호 : (서둘러 끼어드는, 흥삼에게) 방법이 있을 겁니다. 상납 비율을 조절 하든가, 다른 식으로 벌충하면...
종구 : (말 자르는) 아니.
태호 : (돌아보는) ...?
종구 : (흥삼을 응시한 채) 이건 더 내고, 덜 내고... 그런 문제가 아냐.
자기 힘으로 일어서겠다는 놈들, 꺾어서 주저앉히는 짓은 하지 말자... 그런 얘기다.
태호 : (어떻게든 중재해보려는) 형님!
종구 :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팽팽한 눈빛으로 부딪히는 흥삼과 종구. 긴장감에 초조한 태호.
그때 미주가 들어선다. 삭막한 분위기를 직감하고 멈칫! 하는데...
흥삼 : (낮고 단호한) ...꿇어.
종구 : (꿈틀) ...!!
태호 : (당황스럽고) ...!!
흥삼 : 내 앞에 무릎 꿇고... 진심으로 간청하는 거야. 넘버원이, 넘버투를 위해 호의를 베풀 수 있도록...
태호 : (난처한) 회장님...
흥삼 : (여전히 종구 향해) 다른 놈들 일으켜 세우려면 자기 무릎 정도는 꺾어야지. ...간단하잖아.
타들어갈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는 종구. 싸늘한 표정으로 기다리는 흥삼.
태호와 미주는 일촉즉발, 위기감으로 지켜보는데...
종구 : (순간 표정 풀어지며, 피식 웃는) 집어 치웁시다, 까짓 거.
흥삼 : ...!
종구, 돌아서서 내실을 나간다. 미주, 저도 모르게 따라 나가려는데.
흥삼 : ...미주야.
미주, 돌아보면 흥삼, 얼음만 남은 빈 잔을 달그락, 흔들어보인다. 옆에 와서 따르라는 명령.
망설이는 미주. 날카롭게 보는 흥삼.
미주, 결국 체념하고 흥삼 쪽으로 다가온다.
황급히 일어나는 태호.
태호 : 제가 얘기해보겠습니다.
흥삼 : (더 이상 관심없는 표정) ...
39. 더 클럽 / 홀 ( 저녁 ) N3
어느새 출입구까지 간 종구. 태호가 뒤쫓아온다.
태호 : (가로막고 선다, 다그치듯) 싸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종구 : (귀찮은 표정이고) 싸우겠다고 한 적 없다.
태호 : 그럼 아까 작두 형님 얘긴 왜 물어봤어요? 회장님 약점 쥐고 맞서 보겠다, 처음부터 그렇게 맘 먹은 거 아닙니까?
종구 : (부인하지 않고 보는) ...
태호 : 들어가요. 가서 사과하고, 상납금 문제두 적당히 해결봐요. 내가 거들 테니까.
종구 : (덤덤하게) ...태호야.
태호 : (치미는 기분을 삼키며) 압니다! 내가 이러는 꼬라지, 형님이 보기엔 기도 안차겠죠. 그거 아는데...
난 무슨 똘마니 짓을 해서라두 곽회장하고 같이 갑니다. 그 앞에서 형님이 얼쩡거리다 찍혀나가는 꼴, 보구 싶지 않아요.
종구 : (쓴웃음 지으며) 혹시 우리가 파티 붙게 되면...
태호 : (표정) ...!
종구 : 그땐 나... 사생결단으로 싸울 거다. 충고가 아니라 경고야.
태호의 뺨을 툭 쳐주고 지나가는 종구. 태호는 굳은 채 바라보고.
40. 더 클럽 / 내실 ( 저녁 ) N3
술을 따르고, 얼음을 더 채워주는 미주.
흥삼은 등받이에 고개를 젖힌 채, 피로한 듯 눈 감고 있다. 미주, 그 모습을 가만히 본다.
흥삼 :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지는) 요즘도 그 습관, 여전하냐?
미주 : ...네?
흥삼 : 말일마다 기차역 가서 류씨 기다리는 거.
미주 : (멈칫, 그러나 목소리 가다듬고) 진작에 그만 뒀어요.
흥삼 : (눈을 뜬다, 말갛게 쳐다보는) ...한번 뿐이다.
미주 : 뭐가요?
흥삼 : 니가 류씨하고 도망칠 수 있는 기회.
미주 : (표정) ...!!
흥삼 : 웬만하면... 들키지 마라.
미주 : (표정 고치고) 도망치지 않아요. 회장님하고 한 약속, 지킬 거니까.
흥삼 : (믿음인지, 의심인지 알 수 없는 미소) ...
41. 편집 화면
/ N3 폐버스 안.
우두커니 서 있는 종구, 선반에 놓인 챔피언 벨트를 본다. 그러다 뽀얗게 앉은 먼지를 손으로 쓱 훑어낸다.
담담한 눈빛 속에 엿보이는 투지.
/ N3 어두운 거리 일각.
태호, 착잡한 표정으로 걸어온다. 흥삼의 계획, 종구 문제 등 머리 속이 뒤죽박죽인데...
문득 멈추는 태호, 보고 싶은 얼굴이 떠오른다.
/ N3 무료병원 복도.
출입문에 붙어 있는 ‘임시 휴진’ 안내문. 주위를 둘러보는 태호, 무슨 일인지 걱정스러운.
/ N3 할매 식당 안방.
가지런히 모은 무릎에 턱을 걸친 나라, 물끄러미 할매를 내려다본다.
고단한 듯 입을 쩝쩝대며 자는 할매. 피 한방울 안섞인 우리 할머니... 고맙고 미안하다.
할매 곁에 가만히 눕는 나라, 아기처럼 웅크리며 할매를 끌어 안는다.
42. 거리 일각 ( 아침 ) D4
전날처럼 승합차가 대기 중이다. 찢어지게 하품하는 해진과 선 채로 졸고 있는 영칠.
두리번거리던 오십장, 눈이 커진다. 저만치에서 나타난 종구와 최군, 그리고 어제보다 늘어난 대 여섯 명의 노숙자들!
오십장 : (다가오는 종구를 반기며) 워메! 낼부텀 차를 두 대 불러야 쓰것네!
영칠 : (눈 비비고, 오십장에게) 그럼 전 빠져두 돼요?
오십장 : 정신 빠진 소리허구 자빠졌네. 일루 와!
영칠의 귀를 잡는 오십장. 아아, 엄살피우며 차로 끌려가는 영칠.
최군과 노숙자들도 차곡차곡 타는데.
해진 : (은근히 걱정스러운) 악어 그렇게 됐는데, 위에서 별 얘기 없어요?
종구 : 무슨 얘기?
해진 : 곽회장 성격에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잖아요. 하다 못해 독사 애들이 설쳐댈 수도 있구.
종구 : (피식) 뒷일 무서운 녀석들이 겁도 없이 들이받았냐?
해진 : (히죽 웃는) 뜯기구 사는 게 당연하다구 생각했는데, 한번 눈 돌아가니까 뵈는 게 없더라니까.
(웃음기 사라지고, 다시 걱정되는) 정 뭐하면 태호씨한테 부탁해 볼까요? 뒷탈 안나게 말 좀 잘해 달라구.
종구 : (표정) 별 도움 안될 거다.
해진 : ...?
43. 상가 사무실 ( 낮 ) D4
재킷 걸치고 나갈 준비하는 태호.
노크 소리 나고, 빼꼼히 고개 들이미는 나라.
태호 : (뜻밖이지만 반가운) 나라씨?
나라 : (조심스레) 어디 나가는 길이에요?
태호 : 그렇긴 한데... (시계를 보고) 아직 시간 있어요. 들어와요.
나라 : (두리번거리며 혼잣말처럼) 태호씨가 여기서 먹구 자구 하는구나...
그러다 나라 시선에 보이는, 옷걸이에 널어놓은 러닝 셔츠와 팬티.
당황한 태호, 얼른 다가가서 빨래를 주섬주섬 치운다.
태호 : (민망해서 말 돌리는) 근데... 병원에 무슨 일 있어요? (속옷을 서랍에 대충 처넣고) 임시 휴진이던데?
나라 : 언제 왔다 갔어요?
태호 : (멋적게) 나라씨 야근하나 싶어서 잠깐 들렀죠.
나라 : (잠깐 망설였다가) 실은... 그 일 땜에 왔어요.
태호 : ...?
나라 : 태호씨가 모시는 회장님, 돈 아주 많다면서요?
태호 : 네?
44. 무료 병원 / 복도 ( 낮 ) D4
기침 쿨럭거리며 다가오는 조회장. 여전히 ‘임시 휴진’ 안내문이 붙어 있다.
허어... 난감한 듯, 낮게 한숨 쉬는 조회장.
45. 상가 사무실 ( 낮 ) D4
소파에 마주 앉아 있는 태호와 나라.
나라 : 원장님두 후원회랑 뭐, 여기저기 알아보구 있는데... 상황이 어려운 거 같아요. 알콜 중독자, 아니면 게으른 낙오자...
그런 노숙인들을 공짜로 치료해 줄 필요가 있냐... (씁쓸해지며) 다들 냉정하더라구요.
태호 : (위로하듯) 세상 사람들이 다 나라씨같진 않아요.
나라 : (새삼 쳐다보는) ...?
태호 : 나라씨 오지라퍼잖아요. 서울역 수호 천사.
나라 : (그제야 약간 웃는) 그래서 나... 염치없지만 태호씨한테 떼 쓰러 온 거에요. 저번에 그랬잖아요. 내가 하구 싶은 거,
어떻게든 할 수 있게 도와 주겠다구. (눈빛 간절해지며) 배고파도 힘든데, 아프면 더 서러워지는 게 노숙자들이에요.
그 사람들... 도와줘요, 태호씨.
태호 : (묵묵히 보다가) 방법이 있을 겁니다. 최선을 다해 볼께요.
나라 : (한숨 돌리며 미소) ...안심이다.
태호 : (나라 미소에 마음이 푸근해지는) ...
나라 : (그 시선이 멋적고... 일어난다) 미안해요. 바쁠 텐데...
태호 : (따라 일어나며) 종구 형님 따님은 만나 봤어요?
나라 : (멈칫, 봤다가) 아뇨. 생각해보니까 태호씨 말이 맞았어요. 아저씨는 준비두 안됐는데 제3자가 끼어드는 건,
너무 오바잖아요. 남 일엔 오지랖 떨면서 할머니 소원풀이도 못해 드리는 주제에...
태호 : 그게 뭔데요?
나라 : (멀뚱) 에? 뭐가요?
태호 : 할머니 소원이요.
나라 : (뜨끔, 당황하는) 뭐래니, 나? (파닥파닥 손 내저으며) 그냥 헛소리에요. 지인~짜~ 아무 것두 아니에요.
태호 : ...?
46. 거리 일각 ( 낮 ) D4
도망치듯 종종걸음으로 걸어오는 나라, 멈춰선다. 조금 전 일을 떠올리자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 창피해’ 자기 뺨을 두드리며 진정시키는데... 무심코 보다가 표정!
길 저편에 나타나는 한 무리의 사내들. 인상을 잔뜩 구긴 독사와 악어, 그 뒤를 따르는 부하들이다.
갈림길에 닿자 악어, 꾸벅 인사하고 자기 부하들과 함께 서둘러 간다. 독사도 패거리 이끌고 다른 방향으로 멀어지고...
불길한 느낌으로 보는 나라.
47. 지하도 ( 낮 ) D4
악어 부하들, 누워있는 노숙자는 발로 걷어차고, 기대 앉은 노숙자는 멱살을 움켜쥐어서 얼굴을 확인한다.
평소와 달리 표정이 살벌한 악어, 수첩에 적힌 명단을 들여다보고, 고개를 드는.
악어 : 저번에 개떼처럼 몰려와서 명의값 뜯어간 잡것들! 비명횡사하기 전에 알아서 자수혀라!
(눈치보며 뒷걸음질치는 노숙자를 발견하고) 얼음! (노숙자가 멈칫 서자, 다가가서 그대로 걷어차며) 땡이다! 이누무시캬!
48. 공원 일각 ( 낮 ) D4
조회장과 양씨가 장기를 두고 있다. 쿨럭대며 기침하는 조회장.
양씨 : 어째 점점 심해지시네. 장기는 나중에 두고, 병원부터 가보세요.
조회장 : 이 사람, 묘수가 안떠오르니까 꾀를... (다시 기침) ...쓰는구먼.
양씨 : (안스럽게) 어이구... 기다려 보세요. 물이라두 떠다 드릴께.
양씨가 물 뜨러 가고, 조회장은 장기판 들여다보며 골똘히 연구.
그때, 한쪽에서 독사 패거리가 나타난다.
웅크리고 있는 노숙자의 목덜미를 잡아 일으키는 독사 부하. 아직 젊은 축이다. 고개 젓는 독사.
다른 부하가 늙고 병약한 노숙자를 잡아챈다. 독사, 끄덕인다. 그렇게 하나 둘씩, 재료(?)를 수집해가는 독사패.
독사, 조회장을 발견하고 부하에게 눈짓하는데...
독사 부하 : (조심스런) 저 늙은이... 장태호 패거립니다.
그 말에 새삼 조회장을 보는 독사, 표정 싸해지더니 다가간다.
독사 : (맞은 편에 앉는) 장기 두는 사람 어디 갔나?
조회장 : (눈을 껌뻑이며) 누구... 시더라?
독사 : 나? (씨익 웃는) 장기 구하러 온 사람.
조회장 : (못알아듣고) ...?
/ 일각. 페트병에 물을 담아오는 양씨, 깜짝 놀라서 몸을 숨긴다.
늙은 노숙자 몇이 독사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가는데, 그 중에 조회장도 어리바리 따라간다.
장기 두던 자리에 떨어져있는 조회장의 수첩...
49. 카페 안 ( 낮 ) D4
테이블 위로 서류 봉투를 내미는 세훈. 덤덤하게 보는 태호,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는데...
세훈 : 나중에 검토하시죠. 보는 눈도 있고.
태호 : (흘끔 쳐다보고, 선선히) 그러죠, 그럼. (서류를 도로 넣으며) 설계도랑 같이 회장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일어나려는데)
세훈 : 장태호씨.
태호 : ...?
세훈 : 정민씨 얘기는... 왜 안물어봅니까? 한때나마 사귀던 여자니까, 내 정체를 폭로할 수도 있었는데요.
태호 : 내가 뭐 땜에요? 회장님 계획이 망가지면 나도 망합니다. 한때나마 사귀던 여자 때문에 내 인생, 또 한번 파토낼 순 없죠.
세훈 : (표정) ...!
태호 : (미소) 정민이는 속인다고 속을 여자가 아니에요. 강세훈씨가 진심이 아니었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세훈 : (웃지 않는) ...고맙네요. 내 진심까지 알아주시고.
태호 : 게다가, 당신이 한중을 갖게 되면 정민이는 여왕이 될 수 있어요. 내가 아는 윤정민은
그 힘과 지위를 마다할 여자가 아니거든요. (순간 허를 찌르듯) 단, 강세훈씨가 배신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어야겠죠.
세훈 : (냉소) 진심을 알아주나 싶더니 금세 의심인가요?
태호 : (피식 웃고 일어나는) 정민이를 지키든, 버리든... 그쪽이 고민할 문젭니다.
난 지금... (봉투 흔들어보이는) 이거 해결하기두 벅차요. 그럼..
깔끔하게 자리를 뜨는 태호. 세훈, 질린 기분으로 쳐다보는...
50. 펜트 하우스 ( 낮 ) D4
테이블에 쌓인 낡은 LP들. 흥삼, 부드러운 융으로 꼼꼼하게 레코드판을 닦고, 다시 케이스에 집어 넣고...
LP관리는 자기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흥삼이다.
그러는 동안, 건너편에서 보고 중인 태호.
태호 : 지난 번, 정사장 작전때 멤버들로 팀을 꾸리겠습니다. 후보 회사들 실사 나가려면 인원도 필요하고, 또...
흥삼 : (말 자르는) 사람이든, 돈이든 태호 니가 알아서 갖다 써.
태호 : ...네. (두 개의 서류봉투 중 하나를 내밀고) 설계도 원본입니다.
(다른 봉투를 추스르고) 나머진 자세히 검토하고,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흥삼 : (끄덕) 더 필요한 건?
태호 : (잠시 망설이며 보는) ...
흥삼 : (LP 닦던 손을 멈추고 보는) 뭐야?
태호 : (이 참에 꺼내야겠다 싶은) 따로...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흥삼 : ...?
태호 : 서울역 건너편에 노숙자를 무상 치료해주는 병원이 있는데... 운영난이 심각한 모양입니다.
뜨악해서 보는 흥삼. 뒤편에 서 있는 사마귀, 표정이 살짝 스치고.
51. 무료 병원 / 진료실 ( 낮 ) D4
(근무 중이 아니라 사복 차림인) 나라와 동료 간호사가 선반에서 수액이나 의약품 재고를 확인하고 있다.
동료 간호 : (약품 박스 들여다보고) 이것두 재고가 달랑달랑하다, 야.
나라 : (체크 리스트에 적어넣으며) 주문 넣어야 될 거, 다 표시해놔요.
동료 간호 :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병원은 문 닫게 생겼는데...
나라 : (격언 읊듯) 희망은 알과 같아서 품어야 낳을 수 있다! 신.나.라.
자기 말에 킥킥 웃는 나라.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
나라 : (다가가 문 열어주면서) 죄송해요. 당분간 임시 휴진이라... (하는데)
양씨 : (들어서서 기웃거리며, 다급한) 여기로들 왔어? 안왔지?
나라 : 왜 그러세요, 아저씨?
양씨 : (울음이 터질 듯한)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노약자 건강검진은 무슨...
새빨간 거짓부렁치구 수술실로 끌구 갔다니까, 전부!!
나라 : (표정) ...?!
52. 펜트 하우스 ( 낮 ) D4
태호가 계속 얘기 중이다. 턱을 괸 채, 물끄러미 듣고 있는 흥삼.
태호 : 병원이 작아서 큰 돈은 들지 않을 겁니다. 노숙자들 기반으로 굴러가는 조직이 그런 병원을 후원하면
대외적으로 명분도 좋구요.
흥삼 : (가타부타 없이 듣기만) ...
태호 : (살짝 초조해지고) 실은 저두, 그 병원 아니었으면 벌써 죽은 목숨이었을 겁니다.
사마귀 : (표정있게 지켜보는) ...
흥삼 : (가만히 보다가 몸을 숙이고 손짓한다, 가까이 오라는)
태호 : (흥삼 쪽으로 몸을 기울이면)
흥삼 : (조곤조곤 말하는)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와줘라, 그럼 그들이 다시 곤경에 빠졌을 때, 제일 먼저 당신을 떠올릴 것이다...
태호 : (표정) ...!
흥삼 : (다시 소파로 깊게 앉으며) 자선 그거, 일종의 위선이야. 내 것을 나눠주고 행복해진다 어쩐다, 씨알도 안먹히는 소리지.
태호 : (실망을 감추고) 회장님...
흥삼 : (흘끔 보며) 물론, 태호 니 부탁이니까... 한번 생각은 해보마.
태호 : (일말의 안도) 감사합... (하는데 핸드폰 진동한다, 얼른 번호 확인하는데, ‘신나라’ 이름 뜨는) ...?
흥삼 : (LP판을 다시 들면서) 가봐. 너 바빠야 되는 사람이잖아.
태호 : 그럼...
봉투 들고 일어나는 태호, 목례하고 서둘러 나간다.
문을 닫아주고 흥삼에게 다가오는 사마귀.
사마귀 : ...회장님.
흥삼 : (레코드를 닦으며) 음.
사마귀 : 장태호씨 부탁...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흥삼 : (고개 들어 보는) ...?
사마귀 : (차분하게 응시하는) ...
흥삼 : (그제야 기억나는) 그래... 사마귀 니가 그 노숙자 병원에서 태어났다구 했지? (재밌다는 듯) 니 고향이구나, 거기가.
사마귀 : (여전히 표정 변화 없고) ...
53. 거리 일각 ( 낮 ) D4
하얗게 질린 나라, 어찌할 바를 몰라 두리번거린다.
저만치에서 뛰어오는 태호. 나라, 뛰듯이 다가가 태호 앞에 서는.
나라 : (두렵고, 목소리 떨리는) 없어요! 가볼 만한 데는 다 찾아봤는데...
(조회장의 수첩을 보여주며) 공원에서 이것만 찾았구... 다들 어디로 갔는지 안보여요!
태호 : (나라 기색을 살피고) 진정해요, 나라씨.
나라 : (안들리는) 아, 역사 뒤편에 창고, 거기 안가봤나? (멍하게 고개 젓는) 아니... 금방 갔다온 거 같은데...
(머리 속이 엉키고) 가만 있어봐...
태호 : (진정시키려고, 차분히) 나라씨?
나라 : (순간 히스테리컬해지며) 다섯 명이나 데려갔대요! 수술인가 뭔가 시킨다구... 거기다 회장님까지...
(울음이 터질 듯한) 어떡해요? 태호씨... 우리, 어떻게 해야 되죠? 네?
태호 : (두 손으로 가만히 나라의 어깨를 잡아주는) 나라씨... (차분한 목소리로, 가라앉혀주며) 내가 찾아 볼께요.
아무 일 없을 거에요. 회장님두, 다른 사람두... (나라 눈을 들여다보며) ...날 믿어요. 내가 찾아서 모시고 올께요.
나라 : (조금 진정되며 보는) 태호씨...
태호 : (다독이는 눈빛으로) 식당에 가서 기다려요. 알았죠?
겨우 끄덕이는 나라. 태호,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보여주고 돌아서는데...
불현듯, 태호의 손을 잡는 나라. 태호, 멈칫 돌아보면...
나라, 불안하고 먹먹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꼭 찾아오라는 무언의 당부를 담아...
태호의 손을 힘주어 잡는 나라. 굳게 고개를 끄덕이는 태호.
54. 폐건물 / 창고 ( 낮 ) D4
독사 부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숙자 팔뚝에서 차례로 혈액 샘플을 뽑는 불법 의사.
이미 피를 뽑은 조회장은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벽을 보고 멍하게 앉아 있는 노인, 웅크리고 누워서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사내,
또 다른 누군가는 연신 온 몸을 긁으며 부들부들 떨고...
독사 : (들어서는) 준비 됐어?
독사 부하 : 피 검사만 끝나면 마취 들어간답니다.
독사 : (의사 향해) 서둘러! 다섯 푸대 처리하려면 날밤 까야 돼! (둘러보다가 조회장을 보고) 1번 타자는 저 영감이다.
조회장 : (닥쳐온 죽음을 모른 채, 두리번거리만 할 뿐) ....
55. 거리 일각 ( 낮 ) D4
승합차가 멈추고, 종구와 해진 등 일 나갔던 노숙자들이 우루루 내린다.
전날처럼 땀에 절고 몸은 무겁지만 표정들은 밝다. 장난치고 잡담하며 막 흩어지려는 참인데...
양씨가 허겁지겁 달려온다. 뭔가 직감하고 표정이 굳는 종구.
56. 폐버스 안 ( 낮 ) D4
쿵쾅거리며 올라서는 종구, 침상 밑에서 복싱화를 꺼낸다.
분노로 이글거리며 복싱화 끈을 묶고 / 빠르고 힘있게 붕대를 손에 감고 / 주먹을 쥐며 우두둑, 뼈 소리를 내고 /
일련의 컷이 빠르게 이어지는.
57. 폐차장 ( 낮 ) D4
버스를 내려서던 종구, 멈칫 한다.
해진, 오십장, 영칠, 최군 등등... 십여 명의 노숙자들이 각자 무기를 하나씩 들고 서 있다. 모두들 분노로 타오르는 눈빛.
종구 : 뭐하냐, 느이들... 미쳤어?
영칠 : (용기내서) 우리도 갈래요!
종구 : (착 가라앉은) 전부 꺼져.
오십장 : (울컥) 회장님두 끌려갔다 안허요! 근디 우덜이 가만 있을 거 같소?
종구 : 가만 있지 않으면 뭘 어떡할 건데?
오십장 : 싸워야지라! 고 잡노무시키들헌티 뽄때를 뵈줘야 한당게요!
종구 : (싸늘히 노려보는) 고삐리들 주먹싸움인 줄 알어? 독사 밑에 있는 애들, 연장질하구 송장 치우는데 도가 튼 놈들이야.
영칠 : 하... 하나도 안무서워요!
종구 : (다가가서, 영칠의 뺨을 툭툭 치며) 임마, 걔들하고 붙어봤자 운 좋으면 불구, 까닥하면 뒈지는 거야, 니들...
해진 : (냉랭한) 지금은 불구 아뇨?
종구 : (돌아보는) ...
해진 : (평소 모습과 달리, 결기가 서린) 사람 도리 못하고, 인간 취급 못받고... 그러다 서울역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졌는데...
여기서두 이따위로 밟히구 살라 그러면... (울컥 치미는) 난 이제 그 짓, 못하겠수다.
종구 : ...
묵묵히 보던 종구, 돌아본다. 오십장, 영칠, 최군 등등... 하나같이 분노와 억울함, 서러움으로 폭발 직전인 표정들.
종구 : (마침내 어금니를 깨무는) ...가자.
종구, 성큼성큼 앞서 간다. 묵직한 분노를 담아 그 뒤를 조용히 따르는 십 여명의 노숙자들.
58. 폐건물 앞 ( 낮 ) D4
초조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태호, 출입문에 다가선다. 손잡이를 돌리는데 잠겨 있다. 힘껏 비틀어봐도 요지부동.
난감한 태호, 두리번거리다 서둘러 건물 뒤편으로 향한다.
59. 폐건물 뒤편 ( 낮 ) D4
부서진 창문이 있다. (혹은 현장 상황에 맞춰) 몸 하나가 겨우 빠져나갈 만한 틈.
태호, 상자를 딛고 올라서서 낑낑대며 창문을 통과하는.
60. 폐건물 / 복도 ( 낮 ) D4
발소리를 죽이고 걸어오는 태호, 주위 기척을 살핀다. 불길한 정적만 흐르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쇠파이프. 득템이다!
태호, 파이프를 꼬나쥐고 계속 걸어간다.
61. 폐건물 / 수술실 ( 낮 ) D4
조심스레 들여다보는 태호. 비닐이 깔린 수술대 위, 조회장이 죽은 듯 누워 있다.
흠칫 놀라서 다가가는 태호.
태호 : (낮게) 회장님, 회장님?
쇠파이프를 내려놓는 태호, 얼른 조회장의 호흡을 확인한다. 마취가 들어가서 의식이 없는 조회장.
태호, 조회장을 부축하려고 몸을 숙이는데... 번쩍! 태호의 목에 닿는 메스날. 일순 굳어버리는 태호.
독사 : (메스 겨눈 채) 남의 업장을 방문할 땐 벨을 눌러야지, 새꺄.
태호, 천천히 돌아선다. 독사와 그 뒤에 버티고 선 부하들 두 명. 힘으로 제압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독사 : (비릿한 미소) 견학 왔냐? 수술대 눕는 거, 예습하려구?
(태호 코 앞에서 메스로 휙휙~ 공기를 가르는) 궁금하면 지금 누워 보든가.
태호 : (침착하게) 과로하지 마. 하루에 다섯 명은 무리같은데... 회장님이 아시면 좋은 소리 안나올 거야.
독사 : (미소가 더 번지며) 이 새끼, 이거 순 헛똑똑이네. 서울역 느슨해졌다면서 잡도리하라구 오다내린 게 큰형님이야, 임마.
태호 : (표정) ...!!
독사 : (자조와 냉소) 넌 꽃밭에서 꽃놀이하고, 나랑 악어는 시궁창에서 진흙 파먹고... 이게 다 큰형님의 큰 뜻 아니겠냐?
태호 : (막막하다, 흥삼의 명령이라니) ...
독사 : (부하에게 버럭) 야! 돌팔이 어디 갔어! 후딱 작업을 끝내야 장태호가 염을 할 거 아냐!
(조회장을 흘끔 봤다가 태호에게) 너, 이 영감하구 친하다며? 염은 니가 맡아라.
태호 : ...!!
태호, 꿈틀! 주먹을 움켜쥐는데...
독사 부하가 다급히 들어선다. 낮게 속삭이는 부하. 순간 미간을 찌푸리는 독사, 태호를 노려본다.
영문 모른 채 바라보는 태호, 뭔가 벌어졌구나!
62. 폐건물 근처 ( 낮 ) D4
살기등등해서 걸어오는 종구! 그 양쪽으로 무기를 꼬나쥔 오십장, 해진, 영칠, 최군! 그 뒤로 대 여섯이 더 따라온다.
일전을 각오한 종구 패거리의 눈빛과 표정, 거친 호흡!!
63. 펜트 하우스 ( 일몰 즈음 ) E4
석양이 비쳐 들어 불그스름한 실내. 창가에 서 있는 흥삼의 얼굴도 붉게 물들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미주.
미주 : (사무적인) 한중 윤재성 부사장이 회원 등록을 했어요. 주말에 정,재계 VIP들 모실 거라구, 예약도 잡았구요.
흥삼 : (창 밖에 시선 고정한 채, 코웃음) 너한테 보여주고 싶다 이거지. 자기가 이런 수컷이라구.
미주 : (일어나면서, 냉소) 그런 수컷들, 별루 재미없어요.
흥삼 : (돌아보는) 난 어느 쪽이냐?
멈칫 보는 미주.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호한 미소로 보는 흥삼.
미주, 시험에 드는 기분이라 언짢아진다. 대꾸없이 문가로 가는데...
엇갈리며 들어서는 사마귀, 다급히 흥삼에게 다가간다.
사마귀 : 종구 형님이 사고를 칠 거 같습니다.
흥삼 : ...!!
미주 : (문가에서 흠칫 돌아보는) ...!!
64. 폐건물 앞 / 공터 ( 저녁 ) N4
어느새 어두워졌다. 폐건물이 보이는 위치.
험악한 분위기로 나타나는 종구 일행. 그와 동시에 건물 쪽에서 몰려 나오는 독사 패거리.
종구가 멈춰서자 다들 그 옆으로 펼치고 선다. 대조적인 분위기의 두 패거리, 엇비슷한 숫자로 팽팽하게 대치한다.
날카로운 시선이 부딪히는 종구와 독사. 그때...
태호 : (황급히 나서며) 기다려!!
종구와 해진, 오십장... 태호 등장에 어리둥절하다.
싸움을 막으려는 태호, 두 패거리의 가운데에 버티고 선다.
해진 : 뭐야? 태호씨가 왜 거기서 나와?
태호 : 회장님 모시러 왔어요! 무사합니다!
오십장 : (안도하며) 잉! 고것이 참말이여!
영칠 : 근데 왜 혼자에요? 회장님은 어디 계시는데요?
독사 : (불쑥) 그 영감, 주사 맞구 뻗었어. 좀 이따 수술 들어간다.
해진 등등 : ...!!
태호 : (독사에게 으르렁) 닥쳐!!
독사 : (어깨를 으쓱) ...
태호 : (종구네를 향해, 설득하려는, 초조하고) 이렇게 싸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냐! 내가 책임지고 모실 테니까,
(종구 향해) 형님은 사람들 데리구 돌아가세요.
종구 : (무표정하게 보기만) ...
태호 : (조바심이 나는) 형님!
해진 : (참다 못해) 왜 이래, 태호씨! 회장님부터 모시고 나와야지!
오십장 : 사설 집어치우고 일단 들어가잔게! (한걸음 나서려는데)
독사 : (여차하면 붙을 태세고)
태호 : (버럭) 멈춰!!
오십장 : (주춤) ...!
태호 : (입술이 타는 느낌으로) 여기서 부딪히면... 전부 끝장이야. 곽회장이 가만히 둘 거 같아?
해진 : (표정 싸해지며) 거... 듣다 보니까 찝찝하네? 태호씨,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야?
태호 : 뭐?
해진 : 내가 아는 장태호였으면... 이런 상황에서 제일 먼저 치고 나갔을 텐데... 지금 태호씨 뭐하는 거냐구?
태호 : (순간 말문 막히는) ...
종구 :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한발 나서는, 타이르듯 조용히) ...태호야. 이제 알겠냐?
곽흥삼 오른 팔이 되고 싶으면 착한 척을 하지 마.
태호 : (흔들리는 눈동자) ...
종구 : 우린 착한 척, 사람다운 척 하려고 여기 온 거다. (조용하지만 힘줘서) 이건... 니가 막을 수 없는 싸움이야.
태호를 꿰뚫듯 응시하는 종구.
태호, 맥없이 고개를 떨군다. 그렇게 몇 초 생각하는가 싶더니...
태호 : (고개 떨군 채) 그럼... 차라리 다른 싸움을 하죠.
종구 : ...?
태호 : (천천히 고개 드는, 서늘하게 바뀐 눈빛으로) 형님하구 저... 일대일로 붙읍시다, 파티.
종구 : (표정) ...!!
말문이 막히는 해진과 오십장, 영칠. 독사는 이것봐라, 싶은 표정으로 지켜보고...
태호의 서늘한 눈빛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종구.
태호 : 내가 이기면 얌전히 그냥 돌아가고, 형님이 이기면... (생각하려다 귀찮다는 듯) 그 담은 형님 맘대로 하세요.
(가만히 보다가 씨익 웃는) ...콜?
바짝 당겨진 태호와 종구의 시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