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깁슨의 영화 "패션 어브 크라이스트" (그리스도의 수난)를 보고 왔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나사렛 예수의 최후의 12 시간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숨막히는 긴장감과 함께 두 시간 동안 전개하던 영상이더군요. 그래서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마 기독교 영화사에 고전으로 남을만한 작품이 될 듯합니다.
우선 이 영화가 단순히 예수님의 일생을 자서전식으로 전달하려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이런 류의 영화가 대개 그랬거든요.
이 영화는 뭐랄까... 자못 신학적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에 관한 성서의 기록에 충실하면서도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멜 깁슨의 신학적인 이해를 깔고 있었습니다. 물론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이나 성서 본문에 대한 감독의 지나친 해석이 군데 군데 등장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대체로 성서적이자 신앙적이고 신학적입니다.
첫째, 이 영화 <패션 어브 크라이스트>는 주님의 고난을 철두철미 사탄과의 영적 전투의 연장선에서 읽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시는 폭력의 이면에 우주적인 선과 악이 대립하고 있다고 본 것이지요. 이 영화 첫 장면, 그러니까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부터 사탄은 등장합니다. "네가 이 죄까지 지려느냐? 그에 대한 형벌까지 받으려느냐"고 야유하며 회유합니다. 이런 사탄는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80대의 채찍을 맞으실 때에도 나타나고, 십자가를 지고 "비아 돌로로자"(슬픔의 길)을 올라가실 때에도 나타나 예수님을 괴롭힙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다 이루셨다"고 선포하자 사탄은 울부짖으며 결국 파멸하게 됩니다. 이처럼 이 영화는 예수님의 고난을 사탄과의 영적 싸움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탄은 어쩌면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사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가 사탄을 이기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이 영화는 주님의 고난이 구약의 예언의 성취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이 "그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라는 이사야서 53:5 말씀인 것이 그것을 드러냅니다.
셋째, 이 영화는 자칫 폭력적으로 비쳐집니다. 예수님이 당하는 고난을 무저항적인 것으로, 체념적인 것으로 보게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몸이 쇄 갈고리 채찍으로 갈기갈기 찢기다가 마침내 십자가에 박히게 되면서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예수님의 고난을 무저항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낭자하게 흘리신 예수님의 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다"(히 9:22)는 말씀을 기억하세요. 그러나 그 피흘림이 강도들의 피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흘리심입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인류의 죄를 사하시는 속죄제물을 이루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징계을 받으시고 우리가 받을 징벌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신 것이지요. 이 영화를 단순히 폭력적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넷째, 이 영화는 예수님의 부활을 짧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장면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영화 감독 멜 깁슨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하나님이 슬퍼하신 것을 하늘에서 떨어진 큰 눈물 방울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시는 십자가의 고통 자체가 하나님의 아픔이라는 것이지요. 이 영화는 골고다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하늘이 어두워지고 지진이 나고 성전의 휘장이 둘로 갈라지게 되었다는 식으로 십자가의 승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후 전개되는 승리의 역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써 나가야 된다는 것을 암시하기라도 하듯이 부활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관객의 상상에 맡기고 있습니다.
다섯째, 이 영화는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회복시키는 화목제물이라는 것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물 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우리와 우리 사이에 "사랑"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우리가 마시고 먹음으로 우리는 새 언약에 따라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묘사하는 장면 사이 사이에 예수님이 돌아가시 전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이 오버랩되고 있는 것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이 영화가 지나치게 카톨릭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온 몸으로 감싸 안는 마리아의 모습이 지나치게 절제되어 있는 것이 자못 카톨릭적이더군요. 고난을 결코 무시하지 않지만 부활을 더 강조하는 개신교와는 달리(개신교의 십자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고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카톨릭의 십자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달려 있습니다!) 카톨릭 신앙이 고스란히 배여 있더군요.
그럼에도 이 영화는 고난에 대한 기독교인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고난 없는 기독교신앙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빌 1:29). 고난을 잃어버린 기독교 신앙은 더 이상 기독교적이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대사는 모두 아람어와 라틴어로 진행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의 언어(아람어), 로마 사람들의 언어(라틴어)를 사용함으로서 예수님의 고난 당하심, 죽으심, 부활하심을 그만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멜 깁슨이 미국 시카고에서 5천명의 목회자들 앞에서 가진 시사회에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는 필경 비평가들의 혹독한 비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저는 헐리우드에서 제 자신의 세속적 유토피아를 꿈꿔왔지만 그것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으로 인해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며 여러분이 그 분을 믿든 믿지 않든 그 분의 죽으심이 지금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