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학상식 (譜學常識) 보학(譜學) 개념 보학(譜學)이란 보첩(譜牒)에 관한 학문이다. 이를 연구함으로써 그 자체의 향상발전은 물론 보첩의 이해가 증진된다. 보첩은 족보로 만든 모든 문헌의 총칭이며, 족보란 한 겨레붙이의 세계(世系)를 기록한 문헌으로서 보첩의 대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세계란 말은 대대의 계통, 즉 가계를 일컫는 말이다.
보첩(譜學)의 기원 중 국 : 3∼5세기의 육조(六朝)(오:吳, 동진:東晉, 송:宋, 제:齊, 양:梁, 진:陳)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10세기에 이르러 소보(蘇譜)로써 체계를 갖추었다. 한 국 : 13세기 고려말엽부터 족보가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그것이 오늘에 전해진 것은 하나도 없고, 단지사대부의 집에는 겨우 가승(家乘)이 마련되어 오다가 가장 체계를 갖춘 족보는 15세기 후반인 성종 7년(서기 1476)에 비로서 안동 권씨의 성화보(成化譜)가 인간된 것이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이며, 그후 명종 20년(서기 1565)에는 문화유씨의 가정보(嘉靖譜)가 간행되었다. 그 당시에는 자녀의 차별없이 나이순으로 수록하였으며, 친손과 외손을 동등하게 다른 것이 특이하다. 소 보 : 북송(北宋)의 대문장가인 소순과 그의 아들 소동파 소철 형제에 의해 편찬된 이 족보는 매우 뛰어나, 이를 포본으로 삼아왔기 때문에 소보라고 전해오고 있다.
보첩의 의의 보첩이란 한 종족(種族)의 계통을 부계(父系) 중심으로 알기 쉽게 체계적으로 나타낸 책으로, 동일혈족(同一血族)의 원류를 밝히고 그 혈통을 존중하며 가통(家統)의 계승을 명예로 삼는 한 집안의 역사책이다. (1) 가문의 정치사요, 생활사이다. (2) 혈통의 실증과 혈족여부를 가늠하는 문헌. (3) 소목(昭穆)의 서열 및 촌수의 분간(分揀). (4) 존조경종(尊祖敬宗) 정신의 앙양. (5) 혈족간 화목단결의 강화
보첩의 종류
(1) 가승(家乘) 가승의 승은 사기승자(史記乘字)로서 한 가족의 사기를 국승(國乘)이라 하거니와 가승이란 한 가문의 사기(史記)라는 뜻이다.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직계존속과 직계비속에 대한 세계를 체계적으로 사적(事蹟)을 갖추어 기록한 문헌이다.
(2) 파보(派譜) 어느 1파에 대한 보첩으로서 시조로부터 파속 전체를수록한 보첩이다.
(3) 세보(世譜) 한 지역에 거주하는 1파 또는 각 파속들이 한데 어울려 합동으로 편찬한 것을 세보라 하는데, 세지(世誌)라는 말도 이와 같은 것이며, 파보라는 말 대신에 세보라 하기도 한다.
(4) 족보(族譜) 관향(貫鄕)을 단위로 같은 씨족의 전체를수록한 보첩으로서 한 가문의 역사를 표시하고 가계의 연속을 싫증하는 문헌인데, 모든 보첩의 대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5) 대동보(大同譜) 같은 비조(鼻祖)아래 분적된 시관조(始貫祖)마다 각기 다른 관향(貫鄕)을 가지고 있는 혈족관의 동보로써 종합편찬한 족보를 일컫는 것인데 바꿔 말하자면 비록 관향은 각각 다를지라도 비조가 동일한 혈족들이 동보로 편찬된 보첩을 일컫는 말이다.
(6) 계보(系譜) 한 가문의 혈통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명?휘자만을 계통적으로 나타낸 도표로서 한 씨족 전체가 수록되었거나 어느 한 부분만이 표시되었다. 할지라도 이는 계보에 속하는 것이다.
(7) 가보, 가첩(家譜, 家牒) 가보나 가첩이란 말은 그 편찬된 형태의 표현이 아니라 각자 집안에 소장되어 있는 보첩이란 것을 일컫는 말이다.
(8) 만성보(萬姓譜) 만성대동보(大同譜)라고도 하며 모든 성씨의 족보에서 큰 줄기를 추려내어 집성(集成)한 책으로 족보의 사전이라고도 한다.
(9) 종보(縱譜)와 횡간보(橫間譜) 보첩을 편찬하는 방식에 있어서 크게 나누면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행용 줄보라고 일컫는 종보인 것이요, 또 하나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횡간보인데, 이를 간보(間譜) 또는 단보(段譜)라고도 일컫는다.
보첩의 용어해설
1, 시조(始祖), 비조(鼻祖), 중시조(中始祖) 시조(始祖)란 제일 처음의 선조(先祖)로서 첫 번째 조상이며, 비조(鼻祖)란 시조 이전의 선계조상(先系祖上)중 가장 높은 사람을 일컫는다. 중시조(中始祖)란 시조 이하 쇠퇴한 가문을 일으키거나 나라에 큰공을 세운 분을 공론(公論)에 따라 추존(追尊)한다.
2, 선계(先系)와 세계(世系) 선계란 시조 이전 또는 중시조 이전의 조상을 일컫는 것이고, 세계란 대대로 이어가는 계통의 차례를 가르킨 것이다.
3, 세(世)와 대(代) 시조를 1세로하여 아래로 내려갈 경우에는 세(世)라하고, 자신을 빼고 아버지를 1대로하여 올라가며 계산하는 것을 대(代)라 한다. 또한 자기의 조상을 몇대조(代祖) 할아버지지라 하고, 자신은 시조 또는 어느 조상의 몇세손(世孫)이라고 한다.(예: 증조할아버지(曾祖父)는 나의 3대조 할아버지이시고, 나는 증조할아버지의 4세손이라 한다.)
4, 이름자 아명(兒名): 어렸을 때 부르던 이름.
자(字) : 20세가 되면 요즘 성년식 같은 관례(冠禮)를 거행하는데 여기에서 식을 주관하신 분이 예식을 거행하면서 지어준 이름을 말한다.
항명(行名): 항렬자(行列字)에 따라 족보에 오르는 이름
별호(別號): 이름 말고 따로 부르는 이름
함자(銜字): 살아계신 웃 어른의 이름자 를 칭할때
휘자(諱字): 돌아가신 분의 이름자를 칭할때
5, 사손(嗣孫)과 사손(祀孫) 사손(嗣孫): 한 집안의 종사(宗嗣), 다시 말하면 계대(系代)를 잇는 자손을 말한다. 사손(祀孫): 봉사손(奉祀孫)의 준말로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자손을 말한다.
6, 후사(後嗣)와 양자(養子) 후사(後嗣)란 뒤를 잇는다라는 뜻으로, 계대(系代)를 잇는 자손을 말한다. 만약 계대를 이을 후사가 없을 경우: 무후(无后) 양자(養子)로 출계(出系)하였을 경우: 출후(出后) 서얼(庶 :첩의 자손)로서 입적(入嫡:적자로 돌아옴)되었을 경우: 승적(承嫡:서자가 적자로 됨) 후사가 확실하지 않아 확인 안되는 경우: 후부전(后不傳)등으로 그사유를 보첩(족보)의 이름자 및에 작은 글씨로 명기한다. 본래 큰아들은 양자로 출계할수 없는데 관(官)의 허가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집안에서 결정하여 출계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였다.
항렬(行列)과 항렬자(行列字)
항렬이란 같은 혈족사이에 세계(世系)의 관계를 분명하게 하기위한 문중(門中)의 법이며, 항렬자란 이름자 중에 한글자를 공통으로 사용하여 같은 세대를 나타내는 돌림자를 말한다.
우리의 선조들께서는 자손들의 항렬자와 배합법까지 미리 정해서 후손들이 그것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가문과 종파에 따라서 차이가 많으나 대개의 경우는 아래와 같은 방법을 사용 한다.
1. 오행상생법(五行相生法)으로 쓰는 경우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의 변을 사용하여 순서적으로 쓰는 경인데 이를 제일 많이 쓰고있다.
2. 십간(十干)순으로 쓰는 경우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를 순서적으로 쓴다.
3. 십이지(十二支)순으로 쓰는 경우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를 순서적으로 쓴다.
성씨와 본관
성씨란 본시 혈통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한 일종의 부호로서 혈연의 관계를 나타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을 무렵, 즉 씨족 중심을 벗어나 부족사회(部族社會), 또는 부족국가(部族國家)로 형성 발전하면서 서로의 가통을 호칭하기 위한 방법으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본은 본관(本貫), 본향(本鄕), 관향(貫鄕), 관적(貫籍), 선향(先鄕)등으로도 부르며, 시조의 출생지나 정착지 등으로 본을 삼았다.
성과 본관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관계가 있다.
① 동조 동본 동성(同祖同本同姓) 같은 시조에 같은 본, 같은 성을 사용하는 경우로 이것이 가장 전형적인 형태이다.
② 동조 동본 이성(同祖同本異姓) 같은 시조에 같은 본이나 성을 하사 받거나 그 밖의 이유로 성이 달라진 경우이다. 가락국의 수로왕 후손으로 김해의 본을 쓰면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金海許氏)등으로 갈려 사용하는 경우다.
③ 동조 이본 동성(同祖異本同姓) 같은 시조의 후손이면서 본을 다르게 쓰고 있지만 성은 같은 경우다. 파평 윤씨의 시조 신달(莘達)의 후손이면서 남원(南原), 함안(咸安), 덕산(德山), 신령(新寧)등으로 각각 다른 본을 사용하고 있으나 성은 같은 윤씨를 사용한다. 또 신라 알지왕의 후손으로 강릉, 광산 등 본은 달라도 성은 같은 김씨를 사용한다.
④ 동조 이본 이성(同祖異本異姓) 원래 동족이지만 성과 본관을 다르게 쓰고 있는 경우다. 김해 김씨와 양천 허씨, 인천 이씨와 문화 유씨, 연안(延安)차씨 등이 그 예이다.
⑤ 이조 동본 동성(異祖同本同姓) 시조가 다르면서 본과 성이 같은 경우이다. 수로왕계의 김해 김씨와 일본계로 임진왜란때 귀화한 김충선(金忠善)계 김해 김씨가 그러하며, 남양 홍씨(南陽洪氏)에는 시조가 다르다 하여 당홍(唐洪)이라 부르는 남양 홍씨와 토홍(土洪)이라 부르는 남양 홍씨가 있다.
⑥ 이조 동본 이성(異祖同本異姓) 시조가 각각 다르므로 성도 다르지만 시조의 발상지가 같아서 본이 서로 같은 경우이다. 경주 이씨(慶州李氏)와 경주 손씨(孫氏), 청주 이씨와 청주 한씨 등의 경우가 그러하다.
⑦ 이조 이본 동성(異祖異本同姓) 시조가 다르므로 본도 다르나 성이 같은 경우다. 파평 윤씨와 해평 윤씨(海平尹氏), 안동 장씨와 덕수 장씨, 광주 이씨(光州李氏)와 연안 이씨등이 그러하다. 이족이라면 성과 본관을 다르게 쓰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한 지방에 여러 성씨가 연고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성씨의 유래(由來)
성씨의 발생근원은 정확한 기록이 없거니와 전해지는 자료도 많은 부분 소실(燒失)되어 상세히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중국 성씨 제도의 영향으로 고조선시대부터 왕족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족 국가시대가 도래하면서 집단의 지배자가 생겨나게 되고 다른 부족과 구별 하기 위하여 호칭의 형태로 성이 생겨나고 그 세력이 점차 커짐에 따라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성은 초기에는 왕실, 귀족에 국한되어 사용되다가 국가에 공을 세운 사람이나 귀화인에게 사성(賜姓)을 하면서 점진적으로 확대되었다.
시대별로 성씨 현황을 살펴보면,
1)고구려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성을 사용했다. 삼국사기 제 13권 고구려 본기에 시조(始祖)인 주몽은 고(高)씨를 사용했고, 건국공신인 재사에게는 극(克)씨를, 무골에게는 중실(仲室)씨를, 묵거에게는 산실(山室)씨를 사성한 기록이 있다. 그 외에 일반적으로 사용한 것으론 을(乙), 예(禮), 송(松), 마(馬), 동(童), 예(芮), 목(穆), 연(淵), 우(于), 주(周), 손(孫), 을지(乙支), 명임(明臨)이 있다. 그리고, 왕이 신하에게 사성(賜姓)한 경우 중 중국의 사신으로 가 활약하여 얻은 경우가 있는데 고구려 때에도 장수왕은 중국으로 보낸 사신들에게 고익(高翼), 마루(馬累), 손수구(孫材仇), 동등(童謄)의 성을 주었다.
2)백제
백제의 시조(始祖)인 온조는 부여(扶餘)씨로 되어 있으나 이는 문헌상으로 성을 사용한 4세기 근초고왕때의 기록이다. 이 외에 일반적으로 사(沙), 연(燕), 협(?), 국(國), 묘(苗), 목(木), 흘(屹), 왕(王), 진(眞), 해(解), 직(直), 장(張), 사마(司馬), 흑처(黑處)씨 등이 있다. 이는 자연 발생적이라기 보단 왕이 지방 세력을 규합하여 중앙집권화를 이루는 과정 중 회유책으로 사성(賜姓)이 이용 되었다고 사려된다. 성이 문헌상 정비되고 출현한 것이 백제의 중앙집권을 이루던 전성기때임은 이를 증명한다.
3)신라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삼국시대 성은 왕과 소수의 귀족 계급과 중국을 왕래한 사신들이 사용하였다. 신라도 역시 그러했는데 특히 김인문, 최치원, 장보고, 김지량, 박계업등은 유명하다. 신라의 박혁거세(朴赫居世)는 박(朴)씨, 경주 김씨의 시조(始祖)인 김알지(金閼智)는 김(金)씨로 되고, 그 외 경주의 여섯 마을의 촌장들에게 회유의 목적으로 사성(賜姓)하였다.
시조(始祖)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은 6개의 금란(金卵)에서 제일 먼저 나왔다고 해서 왕으로 추대하고 김(金)씨로 하였다.
5)고려
족보의 발생시기와 맞물려 성으로써 사람의 혈통을 구분하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더구나 고려 초기 문종왕 9년(1055) "성이 있는 자에게만 과거시험에 응시 할 자격을 준다."하여 지배층을 형성하는 요건으로 성의 역할도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서 성씨 개념이 확립된 것은 고려 초 중기로 보아야 한다. 이 때에 이르러서야 법적 제도적 여건이 零받침되고, 일반 사람들에게 뿌리 의식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으로 국가 구성원의 힘이 가문 중심의 벌족 세력 단일로 개편되고, 문벌의 세력 구조가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는 권력구조에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왕건은 고려 개국공신(開國功臣)인 홍술(弘述)에게 홍(洪)씨를 백옥(白玉)에게 배(裵)씨를 삼능(三能)에게는 신(申)씨를 복사귀(卜沙貴)에게는 복(卜)씨를 사성(賜姓)하여, 각각 홍 유(洪儒), 배현경(裵玄慶),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知兼)으로 개명(改名)하였다. 재밌는 사실로는 충주(忠州) 어(魚)씨의 시조 어중익(魚重翼)은 원래 지(池)씨 였는데 태어 날 때부터 체모(體貌)가 기이하고 겨드랑이 밑에 비늘 셋이 있어 고려 태조가 친히 불러 보고나서 어(魚)씨로 사성(賜姓)하였다고 한다. 또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보면 태조가 고려를 건국한 후 목천 사람들이 자주 반란을 일으키자 태조의 미움을 사서, 각기 우(牛), 마(馬), 상(象), 장(獐)씨 등의 짐승이름으로 사성하였는데, 후에 우(于), 상(尙), 돈(豚), 장(張)씨 등으로 변성(變姓)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성이 생긴 원인 중 하나인 임금이 노(奴)하여 신경질적으로 지어준 성의 경우이다.
이렇게 고려 시대는 과거 제도의 영향과 족보의 생성으로 일반 서민에게도 성이 확대되는 중요한 시대이다.
5)조선
조선 시대는 천민까지도 성을 갖게 된 시기이다. 이유는 임진왜란(壬辰倭亂)때 군인을 징발하기 위해 병역 의무가 시행되면서 호적법에 따라 시행된 것이다. 이로서 우리 나라는 모든 국민이 바뀌지 않는 자신이 고유한 성을 갖게 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265가지 성이 기록되어 있고, 조선 영조때 도곡 이의현이 지은 도곡총설에는 298가지 성이, 정조 때 양엽기에는 486성이, 영조 46년에 편찬되어 정조 6년에 증보를 시작한 증보문헌비고에는 조선초에 무려 4296성이었던 것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에는 289성으로 줄어들었으며 다시 496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성씨에 관한 문헌으로는 동국여지승람과 양성지의 해동성씨록, 조중운의 씨족원류, 정시술의 제성보등이 있었다.
6)근대
1909년 민적법이 시행되면서 전 국민이 성을 호적에 등록하게 되었다. 1930년 총독부 조사에 따르면 250성으로 조사되었다.
공신
공신이란 국가니 왕실을 위하여 공을 세운 사람등에게 주던 칭호이며 이러한 공신들에게는 공을 세운 정도에 따라 영작(榮爵:영예스러운 작위), 토지, 노비, 금 등을 지급하고 자손들에게도 후대 하였다.
1) 개국공신(開國功臣) 1392년(태조원년) 태조가 송경의 수창궁에서 즉위하면서 조선 개국에 공이 많은 신하들에게 3등급으로 공신을 책록 함.
2) 정사공신(定社功臣) 1938년(정종 즉위년) 정도전(鄭道傳), 남 은, 유만수 등이 정종의 동생인 방 석(芳 碩)을 세자로 옹립하려다가 주살(誅殺)되고 난 뒤, 그에 대한 공이 큰 신하들에게 2등급으로 공신을 책록 함.
3) 좌명공신(佐命功臣) 1400년(태종원년) 회안대군(懷安大君:방간(芳幹))의 난을 평정시킨 신하들에게 4등급으로 나누어서 공신을 책록 하였다.
4) 정난공신(靖難功臣) 1453년(단종원년) 수양대군(首陽大君)이 황보인, 김종서 및 안평대군 등을 주살하여 세종의 총신(寵臣)을 제거한 공으로 책록됨.
5) 좌익공신(佐翼功臣) 1454년(세조원년) 정인지, 한명회, 권 남 등이 단종을 폐하고 세조(世祖)를 추대시킨 공으로 책록 됨.
6) 적개공신(敵愾功臣) 1467년(세조13년) 길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이시애 난을 평정한 공으로 책록 함.
7) 익대공신(翊戴功臣) 1468년(예종 즉위년) 남 이, 강 순 등이 반역을 음모한다 하여 이들을 처단하는데 공을 세운 신숙주, 한명회 등에게 내린 훈명(勳名)
8) 좌리공신(佐理功臣) 1469년(성종2년) 신숙주, 한명회 등의 신하들이 임금을 잘 보좌하고 정치를 잘하였다 하여 공으로 내린 훈명(勳名)
9 )정국공신(靖國功臣) 1506년(중종원년) 박원종, 성희안 등이 연산군을 폐출하고, 진성대군을 추대하여 중종반정을 이룬 공으로 책록 됨.
10) 정난공신(定難功臣) 1507년(중종2년) 이 과(李 顆)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책록 됨.
11) 위사공신(衛社功臣) 1546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를 일으키고 윤 임, 등 대윤파를 몰아낸 공으로 내린 훈명.
12) 광국공신(光國功臣) 1590년(선조23년) 종계변무(宗系辨誣) 즉 명나라 역사에 이씨 세계가(世系)가 잘못기록된 것을 고친 공으로 내녔던 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