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는 20세, 1미터 70센티, 57키로의 WBC 페더급 세계 챔피언이다.
평양에 살며 권투를 배우다 04년에 탈출해 한국에 왔고 08년 세계챔피언이 되어
지금은 18,000여명 탈북자들의 영웅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세계챔피언 3차방어전이 4.30 수원 성균관대 체육관에서 거행되었는데,
탈북자회에서 초대장을 보내와 생전 처음으로 권투 세계타이틀의 현장을 직접
보게되었다.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가 이름을 날리던 중학교 시절에 이미
수업을 빼먹고 교감선생님 사택에 숨어 흑백TV를 통해 알리의 경기를 훔쳐보던
팬이었는데 이제서야 실전을 보는 행운을 얻은 거다.
경기장에는 1,500명 정도의 관객이 입장했는데 유제두, 장정구, 김태식, 유명우,
지인진 등 10여명의 기라성 같은 전직챔피언들이 초청되어 일일이 인사를 하는 등
그 열기가 참으로 고조되어 있었다. VIP석이라 링사이드 바로 아래 첫줄에 앉아서
경기의 진행을 정확하게 볼 수 있어 채점을 하라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도전자는 1미터 50센티 남짓한 왼손잡이 31살의 아르헨티나 선수 로페즈다.
여자경기는 2분 10라운드 방식인데 중반까지 열띤 접전이 이어졌지만, 키가 훨씬
크면서도 준비가 부족한 듯 최현미는 계속 밀렸고 후반에 가서는 거의 그로기
상태까지 가면서 챔피언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나는 탈북영웅 최현미가
지기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재미없는 일방적인 경기가 될까봐 줄곧 로페즈를
응원했는데 접전을 넘어 거의 그녀가 완승하는 분위기로 10라운드가 끝났다.
문제는 판정인데 결과는 2:1로 최현미의 승리다.
한국심판 2명은 짜맞춘듯 96:95로 최현미 우세, 외국심판 1명은 98:93으로
로페즈 우세로 판정한 것이다. 옛날 우리 선수들이 외국가서 KO가 아니면
다 이기고도 타이틀을 가져오지 못하던 억울한 게임을 보는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고 이래서는 스포츠선진국이 될 수 없으리라는 자괴감도 들었다.
앞으로 시비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판정은 내려졌고 최현미는 운좋게(?)
타이틀을 유지하고 탈북자들의 우상으로, 우리나라의 유일한 세계챔피언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게는 되었다. 하지만 본인의 말대로 10차 방어까지 성공하려면
좀더 근성을 키우고 체력을 강화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처음 세계타이틀매치를 본다는 기대감으로 막히는 1시간 이상의 수원길이
지루하지 않았으나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씁쓸한 생각을 지우지 못한다.
첫댓글 김기수도 살아있었으면 이제 원로로 그자리에 있었을터인데
영웅되면 북한의 타켓이 되는데, 감동을 주려면 실력을 좀더 쌓아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