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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원고-2015. 여름호-백우선 특집
오늘의 시인, 백우선
1. 칼라사진 10장
2. 대표작 10편
3. 신작시 3편
4. 시론이나 시 관련 산문
5. 자술 연보
[1] 칼라사진 --이곳엔 생략함.
[2] 대표작 10편
사람 얼굴 무늬 수막새
웃는 수막새
웃고 있는 수막새
한쪽 턱을 잃고도 웃는 얼굴
한쪽 턱을 잃고도 웃고 있는 사람 얼굴
언제적부터던가
이 땅에서 주고받는
얼굴 무늬 수막새
한쪽 턱을 잃고도 웃고 있는 사람 얼굴
전신을 잃으면 무엇으로 웃나?
얼굴 무늬 수막새
사람 얼굴 무늬 수막새.
—제1시집 《우리는 하루를 해처럼은 넘을 수가 없나》 1990년
노점
꽃은 핀다
부딪치는 사람들의 발뒤꿈치에, 옷자락에
꽃은 핀다
가는 곳마다 기웃거리며
고개 숙이며
낯 붉히던
그것들이 모여서
꽃은 핀다
바람 불어 흔들리는 그곳에
손발 시리디 시린 그곳에
꽃은 핀다
휩쓸리다 굽이치는 시가대로(市街大路) 모퉁이
그 흐름의 여백에
옹기종기 모여 들어
꽃들은 핀다
봄에 피는 꽃이
일년 내내 여기저기
낯설게 핀다
—제2시집 《춤추는 시》 1994년
열쇠 노인
세상 한 구석
냉랭한 눈빛의 알루미늄 틀 속에서
열쇠를 깎고 자물쇠를 푼다
주렁주렁 걸린 열쇠로도
전란이 닫아버린 한쪽 눈을 아직 열지 못하고
몸의 길을 환히 열지 못하고
식구들의 막힌 길을 찰칵찰칵 열어 젖히지 못하고
자물쇠의 맺힌 가슴 녹여내는 그 손끝으로
한 평짜리 노점이나 열고
식은 도시락이나 열고
차들에 휙휙 날리는 자전거길이나
열고 간다
한 생의 온몸이 열쇠가 되어
세상의 어두운 자물쇠 구멍으로
비빗비빗 비집고 들어간다
—제3시집 《길에 핀 꽃》 1999년
다산의 사랑
―거중기*
들어올려야 할 때
들어올리는 것
도저히 안 들릴 것 같아도
도르래에 도르래를 달고
줄에 줄을 걸면서
들어올리고야 마는 것
들어올려서는
성을 쌓고
용연을 파고
방화수류정을 세우는 것
전쟁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몰아내고,
구렁에 들어박힌 삶을
기어이 들어올려서는
화성華城처럼 빛나게 하려는 것
*擧重機,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기계로 다산 정약용이 만들어 수원 화성(華城) 축조 등에 이용함.
—제4시집 《봄비는 옆으로 내린다》 2002년
어떤 번개
―주재환 유화 ‘자장면 배달’
오토바이 바퀴가 자장면 그릇이 되도록 달려
몸뚱어리에서 자장 볶는 불꽃이 일도록 달려
머리카락이 자장에 비벼진 면발로 휘날리도록 달려
목구멍으로 면발 미끌 넘어가듯 사람들 비집고 달려
*
천둥 번개의 장대비 속도 달리고, 폭설의 눈발 속도 달리고, 수화기에서 튀어나오듯 들이닥치는, 자기 돈으로 양장피와 고량주도 얹어내는, 경마에 수천만 원을 날린, 연변 처녀와 늦장가를 든, 이제는 딸아이의 아버지가 된, 웃음 띤 인사를 꽃잎처럼 바람에 날리는……
—제5시집 《미술관에서 사랑하기》 2004년
저돌
멧돼지는 호랑이를 몰아내고 산의 왕이 되었다.
세상까지 차지하려고 농작물을 먹어치우고
사람들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도심으로 내려와 슈퍼마켓에서 아이쇼핑을 즐기고
지하 룸카페에 양주나 한 잔 해볼까 하고 들렀다가는
마담의 허벅지를 송곳니로 슬쩍 그어 연정을 표하기도 했다.
강남 아파트 투기를 위해 한강을 건너다가
경쟁자들의 집중 총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하기도 했다.
더 빨리, 더 많이 갖기 전투가 정말 저돌적이다.
업자들이 제공하는 집과 음식에 몸을 바친 동료들이
불판 위에서 지글거린 지가 오래되었다.
인간의 멧돼지화를 위한 살신성인의 결실일까?
사람의 눈에서는 동족의 독기만이 시퍼랬다.
멧돼지의 세상은 이미 이루어져 있었다.
—제6시집 《봄의 프로펠러》 2010년
월드컵 골
공은 골그물에 걸리고 만다.
아무리 강력한 골, 절묘한 골이라도
공은 골그물에 걸리고 만다.
줄줄이 늘어선, 골문 뒤의 골문에는
골인하지 못한다.
힘없고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는 여전히 바늘에
손가락을 찔리며 공가죽을 꿰매야만 한다.
텅 빈 밥그릇을 멍하니 바라보아야만 한다.
무차별 폭격에 가족을 잃고
팔다리가 잘려야만 한다.
무성한 여름숲의 캄캄한 겨울 응달에서
오돌오돌 떨어야만 한다.
—제6시집 《봄의 프로펠러》 2010년
운주사 돌부처
단칸집의 등을 댄 둘을 빼고는
다 집도 없다.
일어나 세상을 일으키려는
노부부는 여태껏 누운 채 마음뿐이고
어찌해 보자는 이도 없다.
가족도 누구도 없이 홀로 살거나
가족이든 남이든 함께 살아도
눈, 귀, 코, 입, 팔, 다리의
한둘이나 전부가 없고
아예 머리나 몸이 없다.
그래도 원형이든 사각형이든
항아리형이든 행복을 비는
자기 탑, 가족 탑, 모두의 탑일까?
여기저기 제각각으로
탑은 쌓아 놓고 산다.
—《현대시학》 2013년 4월호
백범 성좌
경교장 임시정부 주석실 유리창에는
하수인이 쏜 흉탄 중 두 발의 파열흔이
지금은 대낮에도 성좌로 빛난다
번개우레좌로 번쩍이며 쩌렁댄다
아직도 남북으로 분쟁 중이냐며
아직도 그 하수인들의 세상이냐며
아직도 아름다운 나라와 멀어지느냐며
—《시안》 2013년 가을호(종간호)
닫힌 문
사람이 죽은 뒤 거의
백골로 발견되는 일이 이어졌다.
60대 여자는 5년,
50과 60대 남자 둘은 5개월 만이었다.
셋 다 홀로 살던 세입자였다.
옷을 껴입고서
이불 속에 모로 누워 웅크리고
부엌 바닥에 엎드리고
주검째 철거된 주택 폐기물 처리장에
해체돼 버려진 채였다.
사람의 장례에 벌레들뿐이었고
부고는 전혀 없었거나
늦게나마
문틈으로 기어 나온 구더기,
쓰레기로 흩어진 자기 몸이 전부였다.
—《시와표현》 2014년 봄호(분연 수정)
[3] 신작시 3편
고드름
온 가족이 흘리고 흘린 눈물이 깊고 어두운 집집에 가득가득 차올라 넘쳐 처마에서 뚝뚝 떨어졌네.
날로 더 흐리고 추워지자 얼어서 창이 되었네.
그치지 않는 눈물과 한숨에 길어지는 창의 끝은 그들의 머리를 향해 점점 내려왔네.
하느님 모녀
내 하느님은 절망에서 태어난다.
참혹, 불안, 공포에서 탄생한다.
그래서 그러는지
자기 어머니는 어쩌지 못하고
나만 다독거린다.
사람들만 둘러본다.
모녀가 닮아 보이지는 않는다.
괜히
그냥 편히 살게 할 걸
괜히 시를 쓰게 했다며
세상을 앓게 했다며
여든이 다 되신 은사님은
술김에 울먹이셨다.
아니 선생님 덕분에 행복합니다라고 했지만
나도 목이 메어 제대로 말씀드리지도 못했다.
너무 잘 쓰려고도 하지 말고
많이 발표하려고도 하지 말고
천 명이 한 번 읽는 시보다
한 명이 천 번 읽는 시를 써.
사람들의 입맛을 따라가지 말고
쓰고 싶은 대로 쓰되
오래 남을 시를 써.
그냥 편히 살게 할 걸 괜히…
댁으로 모시는 차에 오르면서도
그 말씀을 덧붙이셨다.
[4] 시론
압골과 졸성*
글이 사람이라는 말은 적어도 내 경우에는 비교적 잘 맞는 말일 것이다. 나는 평소에도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며, 말을 하더라도 꼭 필요한 만큼 뼈만 골라 분명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하면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말을 할까 하고 말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가다듬는 편이다. 미리 준비할 겨를이 없으면 말할 때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하면서 말한다. 이왕이면 이해하기 좋게, 군더더기 없이 적확하게 하려는 노력도 기울인다. 말에서도 비문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정확하게 하려는 게 내 기본이다. 듣는 사람을 염두에 많이 두는 편이며, 글을 쓸 때에도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면서 재점검을 하기도 한다.
간단히 운만 떼어 암시하거나 에둘러서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나 정확도를 중시하다 보니까 시의 내용이 뻔한 것이거나 깊이가 별로인 경우도 생겼을 것이다. 압축을 너무 심하게 하다 보면 오히려 무슨 말인지 의미 전달에 방해가 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호흡이 길고 치렁치렁 흐르며 감칠 맛 나는 시, 삶의 깊은 비의를 담은 시, 극적인 사건을 잘 녹여 담은 시도 써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체험의 빈곤도 문제다. 어렸을 때의 농경생활, 청소년과 청년기 얼마간의 방황이나 반항과 연애와 결혼, 그 뒤의 직장 생활과 자녀 양육 등의 가정생활, 미온적인 역사의식과 또 그러한 사회생활, 성인으로서 겪은 경제적인 어려움 등 말고는 평범하고 거의 모범적(?)인 사회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으니, 이러한 삶의 시에서 우러나오는 향기가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은 당연하다. 능력 부족과 생업으로 인한 학문적 천착이나 독서를 통한 탐구의 모자람도 그대로 내 시에 반영되고 있을 것이다. 여행이나 현지답사도 시의 진정성을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할 텐데, 그것도 상당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부단한 관심과 학습으로 갖게 된 기본 문장력, 상식을 약간 웃도는 정도의 상상력으로 결국은 겨우 낙제나 면하는 시를 쓰고 있다는 자괴감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용기도 시 쓰기에 필요한 것일 텐데, 이해를 고려하다 보면 과감한 비유나 표현을 쓰지도 못한다. 천재지변이 화가 된다면, 풍조우순의 정감어린 시를 써내야 할 텐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선에서 맴돌고 있는 형편이다. 용이 못 되면 이무기는 돼야 하지 않겠는가. 뱀도 아닌 미꾸라지 정도로 작고 흐린 도랑물에서 아가미를 헐떡이고 있는 느낌이다.
처절한 슬픔이나 아픔도 없고, 날고 뛸 기쁨도 없고, 깊거나 높은 깨달음도 없이 평범한 수질의 우물로서 자리를 지켜온 느낌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물길이 끊어지지는 않은 점이라고나 할까.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어떠한 물로 사람들을 맞게 될지는 잘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처음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소위 절차탁마를 게을리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과분한 말일 수도 있지만, 종종 구도자를 생각한다. 모든 존재의 희로애락을 생각하면서, 부족하더라도 성취의 정도에 연연하지 않으며 쉽게 포기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남이야 뭐라 하든 그저 내 길을 묵묵히 가려고 하는 것이다.
* 처음 제목은 ‘정확한 뼈만 남기기’였으나, 신영복의 “담론”에서 만난 이 말들이 아주 적절해서 바꾸었다. 압골(壓骨)은 ‘압축한 뼈’, 졸성(拙誠)은 ‘졸렬한 성실’을 뜻한다.
단상
눈이 내린다. 쌀가루, 떡고물 같은 따스하고 포근한 것으로나 유리, 운모 조각 같은 냉랭하고 건조한 것들로나 눈은 반짝이며 내린다. 옷에 내리면 금방 스며들기도 하고 자국 하나 안 남기고 그냥 떨어져 내리기도 한다. 그런데 눈을 볼 때마다 그 속까지 생각나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눈이 먼지를 그 결정의 핵(응결핵, 빙정핵)으로 삼는다는 사실이 자꾸 떠오른다. 눈이 녹으면 그 물이 깨끗하지 못한 것도 그 먼지 입자들 때문이다. 먼지를 둘러싼 물방울이 하얀 꽃으로 피어나는 승화력은 찬탄할 만하지만, 순백의 꽃 속에 먼지를 감추고 있다는 표리부동의 실상이 개운치 않은 점도 있다. 하지만 눈을 보면서 ‘먼지→물방울→얼음→눈’을 생각해보는 것은 바로 예술화 과정의 확인이고, 대상의 전체와 중핵을 다 놓치지 않으려는 진지한 탐구 자세이며, 아름다움과 현실적 본질을 함께 아우르려는 완미(전미) 지향의 발로이리라고 자위해 본다.
*
물의 변신은 놀랍다. 물이 증기가 되어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공중의 물방울들이 다시 모여 구름을 이룬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물방울은 얼음이 된다. 그러니까 구름은 물덩어리나 얼음덩어리, 또는 그 둘의 복합체다. 어쨌거나 구름은 물이 이루는 하늘의 물꽃밭이나 얼음꽃밭이다. 그것들은 가끔 복사꽃밭이나 장미꽃밭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대개는 배꽃밭이나 백매화밭이다. 그 꽃들이 질 때 꽃잎들은 여름이면 물방울로 쏟아져 내리지만, 겨울엔 대개 꽃잎 그대로 흩날려 내린다. 온 지상을 덮어 이루는 배꽃이나 백매화의 꽃밭, 사람들은 그걸 눈밭, 백설 세상이라 하지 않는가. 눈은 사람들이 좋아 눈사람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을 미끄러뜨리거나 미끄럼을 태우면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낸다. 그러다가는 또 서서히 물로 돌아가 땅속 깊이 뿌리에게로 다가가서는 풀과 나무로 푸르게 일어선다. 형형색색의 꽃으로 피어나고 열매로 둥글게 익어간다. 물의 이러한 변신은 물이 쓰는 시라고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
찻집에 가도 커피를 마시지는 않지만, 커피에 따라 나오는 각설탕이 참 예쁘다. 찻잔엄마의 옷자락을 못 놓는 막내둥이 같기도 하고, 찻잔이 가져온 작은 선물상자 같기도 하다. 흰 바탕에 가운데는 넓은 홍색, 홍색 양끝에는 가는 녹색 줄로 띠를 두른 각설탕이 볼 때마다 앙증스러워 남는 것이 있으면 호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러고는 그 즐거운 비밀칩을 생각하거나 만지작거리면서 흐뭇한 시간을 남몰래 누린다. 집 책상 위에 놓아두고 함께 지내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그것에서 시를 생각하게 되었다. 설탕의 귀여운 크기와 모양과 멋진 포장―시 한편 한편의 형태와 색상(이미지)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느껴 보았다.
아포리즘
․ 만유화락, 우주 만물의 화평과 즐거움이 고지다.
․ 지극함과 진정성이 시의 힘이고 감동의 뼈대다.
․ 감탄보다 감동이다.(서커스보다 그 예인들의 삶이듯이)
․ 동심이 시의 원천이다.
․ 곡비나 무당처럼 울고 푼다.
․ 열의와 무심을 왔다 갔다 한다.
․ 가장 적절한 말들로 가장 잘 생긴 항아리를 빚는다.
․ 말을 놓을 때 소리의 조화와 무게 균형을 잘 맞춘다.
․ 리듬은 뜻을 더 깊고 높고 길게 해 준다. 말들이 어울려 꽃무늬로 빛나게 하며, 자연스런 흐름을 타게 한다.
․ 실험실의 불을 끄지 않는다.
․ 경계를 허물며, 초월을 꿈꾸고, 불가시 세계도 보아낸다.
․ 높고 깊고 넓은 곳으로 가는 쉽고도 즐거운 길을 낸다.
․ 단순, 선명, 함축의 차도 마신다.
․ 입상진의(立像盡意), 이미지(심상, 心象/像)를 내세워 의미를 다 표현한다.
․ 사막을 맨몸으로 헤쳐 나아가며 흔적을 남기는 뱀을 따른다.
․ 지구와 태양을 안고 영겁을 본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탑을 쌓는다.
․ 시는 이름 짓기나 꿈꾸고 해몽하기다.
․ 심심파적의 콧노래에서 제멋에 겨운 흥타령, 펄펄 뛰고 나는 신명까지가 시의 한 옥타브다.
․ 비보(裨補), 도와서 모자람을 채운다.(신라 도선 풍수는 좋은 땅을 고르는 게 아니라, 결함이나 병통을 고쳐서 쓸모 있는 땅으로 만들고자 했던 비보 풍수였다고 한다. 흠투성이인 중생에 대한 사랑과 통하는 마음이었으리라)
․ 모든 것이 다 중심이다.
․ 천하무무명(天下無無命), 천하에 목숨 없는 것은 없다.
․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고 새 것을 창조한다.
․ 시는 내 눈, 귀, 코, 혀, 살, 가슴, 머리 들이다. 활짝 열어놓은 내 몸 모든 줄들의 팽팽하거나 느슨한 울림이다.
․ 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군자는 조화하나 뇌동하지 않으며, 소인은 뇌동하나 조화하지 못한다)의 '不同而和'를 '같지 않으나 조화한다'로도 읽는다.
․ 자기에의 內察, 이웃에의 연민, 공동 언어를 쓰고 있는 조국에의 대승적 관심, 나아가서 태양의 아들로서의 인류에의 연민을 실감해 봄이 없이 시인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신동엽 시인)
[5] 자술 연보
1953.1.(음) 전남 광양시 봉강면 석사리 385번지(명암 마을) 출생
1960.3.-1966.2. 광양서초등학교
1966.3.-1972.2. 순천중‧고등학교
1972.3.-1973.2. 대입 재수
1973.3.-1977.2.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
1977.3.-1978.5. 경기도 포천군 영북종합고등학교 근무
1978.5.-1980.8. 육군 사병 복무
1980.8.-1981.12. 《현대시학》 2회 추천 완료
1980.9.-1982.2.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종합고등학교 근무
1982.3.-1985.2. 경기도 남양주시 동화고등학교 근무
1982.3.-1984.2.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수료)
1985.3.-2012.2. 서울 단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근무
2012.3.-현재. 시 전업
1980.8. 《현대시학》 8월호에 ‘기침’, ‘사과 꼭지에 맴도는 운’, ‘꽃’으로 박용래 시인의 첫 추천을 받음. 그때는 2회 추천제였음. 친분이 깊은 조재훈 교수님의 주선의 결과임. 8월 박용래 시인을 대전 오류동 댁으로 찾아뵘. 11월 별세, 만남은 짧게 끝남.
1980.9. 남양주 금곡종합고등학교로 복직. 12월 결혼, 처음엔 구리시에서 6개월간 살다가 금곡으로 이사해서 1985년 4월 초 서울로 이사하기 전까지 삶.
1981.12.《현대시학》에 ‘장’(‘장날’로 개제), ‘고희의 마을’, ‘가을’로 추천이 완료되어 시인이 됨. 박용래 시인과 아주 가까운 김구용 시인이 역시 가까운 조재훈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해주신 마무리 추천임. 같은 달에 무남독녀 근영이가 태어남, 동시 창작의 샘이 됨.
1980년대. 수년간 구순희, 장종권, 강성철, 박일 시인과 동인 활동을 함.
1985.4. 근무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함.
1986-7. 어머니와 형님 별세.
1988.5-8. 신영복 선생의 옥중 서신 중 《평화신문》에 4회 소개된 것과, 1990년 11월에 출판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크게 감명 받음. 그 뒤 발간되는 《엽서》,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1,2),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신영복 함께 읽기》, 《변방을 찾아서》, 《담론》 등을 계속 탐독함.
1990년대. 수년간 임승천, 임찬일, 오만환, 김여초, 권정순, 윤주헌, 천지숙, 이재호, 송미정 시인과 ‘뉘들’ 동인 활동을 함.
1998.12. 제1회 ‘서울문예상’ 받음(강남문인협회 주관. 수상작 ‘열쇠 노인’, ‘검은 사내’)
1999.11. 강남시문학회 결성.
2006.5. 성남 남한산성 근처로 이사함. 처음으로 ‘내 집’에서 살게 됨.
1990.4. 제1시집 《우리는 하루를 해처럼은 넘을 수가 없나》
1994.3. 제2시집 《춤추는 시》
1999.9. 제3시집 《길에 핀 꽃》
2002.4. 제4시집 《봄비는 옆으로 내린다》
2004.7. 제5시집 《미술관에서 사랑하기》
2010.8. 제6시집 《봄의 프로펠러》
1995.1. 《한국일보》신춘문예 동시 당선(작품 ‘아빠 손가락’, ‘이른 봄’. 심사위원 이오덕, 김종상 시인). 등단 시인으로서 동시 응모가 꺼려지기도 했지만, 써놓은 동시에 호적을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응모함. 당선 사실을 들은 김구용 시인은 몹시 서운해 했지만(성인시를 버렸다고 판단한 듯), 조재훈 시인은 호의적이었음. 정채봉 동화작가는 노동시의 동시 진입은 곤란하다며 자기가 심사했으면 안 뽑았을 것이라고 함.
2009.7. 제1동시집 《느낌표 내 몸》
2010.3. ‘오늘의 동시문학상’ 받음.
2015.5. 제2동시집 《지하철의 나비 떼》
첫댓글 여여한 선생님과 몸으로 글에 가슴이 저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