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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가미가제에 대한 시 | 서정주의 전두환 56회 생일에 바친 송시 |
우리들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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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평화의댐이 남북을 살리고 육천만이 지지한다니... 이런 사고는 분명히 정상은 아니다. |
그들은 중국의 몰락에 충격을 받고 민족주의나 중국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진주만과 싱가폴에서 일제의 서양에 대한 승리에 고무되어 기꺼이 일제의 대동아공영권을 기정사실화했던 것이다.
이러한 문인들의 나치즘에 열광한 하이데거식의 지배권력에 대한 인식은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청산되지 않고 해방후 우리사회에 그대로 남아 친일의 근간이 되었으며 그들은 당연히 언론과 학계를 장악하고 역사에 대한 왜곡과 대중의 지성과 언론을 조작하게 된다.
고 은(고은태)도 일제당시 소극적 은둔시인 조지훈의 추천에 의해 문단에 등단하게 되었다.
또, 이승만의 독재와 박정희의 군사정권에 의해 일제 저항 문학의 배척과 친일 문인들의 왜곡에 의한 척박한 식민사관은 장기군사독재에 저항하던 학생운동권 출신의 문인과 프롤레타리아 출신 문인들의 좌우를 오가는 곡학아세의 뿌리가 되어 지성인의 시대적 소임을 혼란스럽게 하고 진부한 영향을 주입하기까지 한다.
김지하 → 진중권 → 박홍 → X막말 점입가경 ☞ 미디어다음 2009.09.30 문제의 글은 김지하가 지난 25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 김지하는 "정운찬 총리의 경제노선을 잘 안다"면서 총리 인준청문회에서 Y사 사장에게 돈을 받았다고 시인한 그를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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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쥐하! 쥐뎅이 닥치라!
엘뤼아르의 ''자유''를 표절하여 ''타는 목마름으로''로 출세했던 김쥐하도 이러한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군사독재시절 운동권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우라"며, 자기정체성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박노해랑 같이 좌빨 운운하다가... 하나는 성현군자처럼 반전을 떠들며 입국이 금지된 바그다드에 잠입한척하며 참여정권 이라크파병 까대고... 쥐하는 장모 박경리랑 노공이산님을 히틀러니 경포대니 아마추어정권이니 하며 독재자라 씹어대며, 정신이 나가 오락가락 잠꼬대 하다 이제는 정운찬이 천만원때문에 억울한듯이 옹호하며 빨아대는데, 천만원이 아니라 3억6천만원이 넘는 것을 축소하며 소위 쥐성인이 국민앞에 쌍욕을 공개적으로 하기도 한다.
그래서 욕 하나 반사하는데, 인초니 완장이랑 친한척하다 운차니 더 높은 완장 차니 갑자기 들러붙냐? 저렴한 X가튼 색희..... - -
엘뤼아르(Paul Eluard) | 자유 | 김쥐하 타는 목마름으로 |
초등학교 시절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페이지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상(彫像) 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과 사막 위에 새 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로움 위에 일상의 흰빵 위에 결합된 계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누더기가 된 하늘의 옷자락 위에 태양이 곰팡 슬은 연못 위에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리고 그늘진 방앗간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새벽의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배 위에 미친 듯한 산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구름의 거품 위에 폭풍의 땀방울 위에 굵고 무미한 빗방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모든 것 위에 여러 빛깔의 종들 위에 구체적인 진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깨어난 오솔길 위에 뻗어나간 큰 길 위에 |
넘치는 광장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불 켜진 램프 위에 불 꺼진 램프 위에 모여 있는 내 가족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둘로 쪼갠 과일 위에 거울과 내 방 위에 빈 조개껍질 내 침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게걸스럽고 귀여운 우리 집 강아지 위에 그 곤두선 양쪽 귀 위에 그 뒤뚱거리는 발걸음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 문의 발판 위에 낯익은 물건 위에 축복받은 불의 흐름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화합한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놀라운 소식이 담긴 창가에 긴장된 입술 위에 침묵을 넘어선 곳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무너진 내 등댓불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욕망 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되찾은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 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
(쥐하는 엘뤼아르의 시에서 불타는듯이 반복되는 자유에 대한 목마른 절규에 큰 감동을 받아 제목을 이렇게 정한 듯하며, 자유를 민주로 바꾸는 형식으로 대부분의 언어 이미지를 우리의 현실에 맞추어 거의 다 응용하고 있다.)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발자국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싶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김쥐하와 황석영과 침묵하는 고은은 이제 언급할 가치조차 없이 커밍아웃하고, 바야흐로 적그리스도가 부활하는 한국적민주시절이다. |
그리고 또 한 사람...
바그다드의 봄
박노해
이것은 누가 써 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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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는 무잠마 바그다드(바그다드行)라는 표지판의 사진으로 바그다드라하며 오른쪽의 현장詩를 보내왔지만 나눔문화 회원의 맨 아래 부연 설명에 의하면 진입만 시도하고 있었다. 즉 전쟁의 참상과 거리가 먼 인접국가에서 현장시를 쓴 것인데 상상이라해도 시인으로서 기본적인 양심이 결여된 것이며, 첫 귀절의 연인들의 애무나 포탄이 떨어진 뒤에 다시 축구를 한다는 것은 사실과 동떨어진 낭만이며, 아마도 인접국의 자신이 접촉하던 곳들의 풍경과 보도되는 전쟁의 참상을 억지로 연관시켜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또 자신을 알지도 못하고 한국의 이라크 파병에 적대적인 요르단대학을 설득하여 강의를 허락받아 이슬람 지식인들에게 자신을 인식시키려 노력했다. 실제 여대생들의 한국에 대한 예리한 질문에 답한 다음의 언사를 보면 교묘하게 완화된 서술과 달리 극단적인 비판으로 그들의 환심을 사려한 정황이 엿보인다.
"한국은 아시아의 강대국인 중국의 오랜 종속국이었다. 또한 앞선 근대화를 이룬 경제 군사 강국 일본의 식민지였다. 그러나 한국은 남북전쟁의 폐허 위에서 급속한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 실현을 이루고, IT 강국과 월드컵 개최로 세계에 자기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의 오랜 종속국이라니... - -
대한민국의 정치적인 문제나 노동과 양극화문제보다 지구시민이라는 조금은 허황된 글로벌리즘을 강조하며 나눔문화라는 반전활동과 문화나눔활동을 하며 詩聖인듯한 발언들을 하지만 과거의 정체성으로 볼때 비현실적인 느낌이다. 사실에 대한 인식의 결여는 상황판단에 오류를 일으키고 늘 거짓을 과대포장하게 되고 결국 미몽에 빠지게 되는 것조차 모르게 된다.
그나마 그가 바그다드에 안전하게 들어가 소위 '평화통신'을 보낸시기는 이미 미군이 바그다드를 장악한 이후였으며, 참여정부를 망신시킴으로써 반대급부를 충분히 달성한 듯하다. 그런 그가...노공이산님 서거에 편승하여 "'바보'와 사랑을 했네~"라고 한 다리 들이밀다니 아이러니하다... |
너무도 착한 그의 행적을 살펴보자
‘못난 내 나라’를 대신하고 있는 한국의 반전활동가들
(아무리 2mb가 뻘짓을 했다고 가정해도 '못난 내나라'는 민족 자존심에 어폐가 있다. 차라리 '못난 대통령'이라면 모를까..)
이곳 시위현장에서 한국의 반전-평화 팀(파병 반대 보수단체들?)과 민주노총에서 파견된 분들, 한겨레신문 기자분들을 시위 현장에서 만났습니다. 이역만리 낯설고 위험한 땅에서 만난 한국의 평화 운동가들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 반갑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걱정했습니다...
인쇄된 프랑카드를 중동인들이 신기해 했다고 자랑하는 박노해 일행
노무현 대통령의 전쟁 지지가 발표되자마자 중동의 민심은 가파르게 코리아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전쟁당일, 노대통령의 발표장면은 전 세계 방송을 타고 며칠동안 계속 되풀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13억 명의 중동지역 아랍인들이 시청하는 Aljazeera에서는 그 장면이 더욱 자주, 더 강조해서 방영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코리아는 13억 아랍인들에게 호감의 대상에서 증오의 대상으로 떠오를지 모르겠습니다. (일본파병에 대한 언급없이 노대통령 파병을 강조하는 의도가 과장 되어 있다.)
우리는 70년 대 중동에서 돈을 벌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이루었습니다. 그럼에도 중동과 이슬람에 대한 이해와 문화다양성의 존중에는 성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무슬림들이 자유롭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몇 안 되는 나라입니다.(마치 참여정부가 이슬람 문화를 배척하고 종교탄압을 하는듯이 모략하고 있다.)
신경림도 웃기는 사람이네요.ㅎㅎ
번호 101955 글쓴이 ㅎㅎ 조회 54 누리 5 (5-0, 0:1:0) 등록일 2009-12-13 14:15
[추모詩]당신의 부활, 그 찬란한 부활 - 前대통령 노무현님 영전에 ㆍ신경림
당신은 부활하고 있습니다
거리와 골목과 광장을 뒤덮은 흐느낌을 타고
당신의 눈이 되살아나고 꿈이 되살아납니다
말이 되살아나고 노래가 되살아납니다
당신의 아픔을 우리는 안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당신의 외로움 당신의 괴로움을 안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아무도 원망하지 말자고 아무도 미워하지 말자고
그 말의 참뜻을 우리는 안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말들을 타고 당신은 부활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자던 그 뜻이 살아나고
살기 편한 세상을 만들자던 그 꿈이 살아납니다
백만 천만의 울음을 타고 발 구르며 우는
통곡을 타고 당신은 부활하고 있습니다
.....(중략)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81826515&code=990000
● 진보와 보수의 나눔은 무의미
▶ 현재 한국 상황에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선생님의 자리는 어디쯤입니까?
“나는 중도 좌파쯤 될까? 그러나 예술·문화의 영역에서 진보―보수의 나눔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진보냐 보수냐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봐요. 그런 것을 피해가면 욕도 먹게 되지요. 그러나 소아병적인 진보주의도, 그러한 보수주의도 문제입니다.
그들은 남을 전혀 이해할 줄 모릅니다. 적어도 문학이나 예술의 영역에서 그러한 소아병적 입장은 아무 것도 얻을 게 없습니다. 주위에서 강요하는 분위기도 문제입니다. 내 친한 친구로 문학평론가 유종호가 있습니다. 그는 원래 진보적인 주장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보수주의적인 입장이 강고합니다. 그는 우파 중에 중도적이고, 나는 좌파 중에 중도적이어서 통하는 바가 많습니다.
그가 간혹 친일파에 대해 너그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충청북도에서 유명한 항일운동 집안이기 때문에 가능한 처신입니다. 말로는 반일反日한다는 사람이 옛날 실제 행동에서는 더했던 사람이 많습니다. 유종호는 친일을 어느 정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고향에서 가장 존경받는 집안 사람입니다. 유종호에게는 동생이 있는데 그는 상당히 진보적인 민주교수협회를 이끌고 있는 유광호 교수입니다. 그에게 형이 보수주의자라고 말해주면 우스워 죽겠다고 합니다. 나는 유종호와 함께 대학시절 하숙을 했습니다. 그가 나보다 한 살 위인데 그냥 말을 텄습니다. 싸움도 많이 했지요. 가령 밥 먹은 후 누가 상을 내갈 것인가로 다퉜습니다. 그는 집이 유족한 편이 아니었는데도 이웃을 참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때부터 이어 내려온 습관입니다. 지금 보면 남을 위하는 마음 없이 진보주의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남을 위해 손끝 하나 까딱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유종호 같은 사람은 진보주의가 말로 하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노무현 씨의 인기가 하락하고 있는 것도 나는 이렇게 봅니다. 그 사람을 내가 잘 모르지만, 진보를 위해 몸바쳐 일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실망이 있는 것입니다.”
http://www2.mhj21.com/sub_read.html?uid=21926§ion=section37
추모시 내고 한거는 어거지로 다 쇼한거로 보이네요.
추모시 낸 작자들 중에 진심으로 추모한 사람들 많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인간노무현따로 대통령노무현 따로 평가해야한다는 말이나하죠.
단지 인간 노무현에 대해만 추모했다는 건데
노대통령의 죽음이 인간 노무현이었기때문에 죽은게 아니라는 걸... 그들은 정말 몰라서 이럴까요?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01955
첫댓글 하지만 일반인들은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를 기억하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을 노래합니다. 그런 이들의 가슴 속에 남은 시인은 결코 배반당하지 않는 법이지요.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또한 얼마나 많이 불리워지는지요. 그게 바로 일반화이고 대중적 성향인데 그 흐름을 바꾸기가 쉬울까요? 더 이상 알려고 하지않고 고민하지 않으려는 일반인들이 대부분인데... 노공이산님은 그 일반화의 오류가 만든 장벽앞에서 산화하신 겁니다.
맞습니다. 이미 광범하게 유포되어 생활화 되어 온 거짖과 불의에 맞선다는 것은 이란격석(以卵擊石) 입니다. 화두를 던진 사람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4대강민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격적인 개독교라고도 합니다.
정작 교회다니는 이들이 더 귀를 막고 울타리를 만들고 그들만의 성전을 짓기에 골몰하지요. 예수의 사랑은 세상의 모든 정신적, 물질적 벽을 허물기였건만...ㅡ.ㅡ;;
저도 한 때 집사였고 목회자인 친구에게 노동자들의 쉼터인 개척교회를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신이나 천국따위는 믿지 않는 종교심이 있는 무신론자입니다. ^ ^
노무현대통령님 당신이 오늘따라 보고싶읍니다 지금권력에 휘둘리는 국민들을 보고 계신지요 ~너무 그립읍니다 권력은 있되남용하지 말자든 님이 그립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