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집에서 나오면서 준이머리 깎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곤 하지만 하루 바쁜 일과 속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 며칠째입니다. 일부러 집에서 나올 때 준이에게 '오늘은 꼭 머리깎자'라고 말하면 준이는 늘 그렇듯 '네'라고 대답은 잘 하지만 곧 머리에서 지워버리는 듯 합니다. 그러면 제가 되묻습니다. '오늘 뭐한다고 했지?' 그러면 답변을 못합니다.
기억의 과정은 선택과 집중입니다. 내 눈과 귀에 들어오는 정보가 넘쳐나지만 그 중에서 내가 필요하고 좋아하고 알아야하는 정보만을 선택한 후 이 정보를 기억이라는 저장소에 넣어 놓습니다. 내 눈과 귀에 들어오는 정보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는 정보가 가진 의미를 덧붙여주는 전정감각과의 통합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의 뇌는 오감을 통해 유입되고 유출되는 정보를 해석하고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작업을 전정에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정감각 회복은 전두엽 발달에 필수 중에 필수입니다. 길거리를 지나다가 부딪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아는 사람은 구분하고 기억합니다. 그래서 전정기능이 약한 경우 사람의 가치의미가 파악되지 않아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쉽게 다가가거나 따라가기도 합니다.
어제 만보 중에 잠시 쉬어간 넓은 빌레. 거기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련의 아저씨들이 일을 마치고 쓰레기를 끌고 나오는데 완이가 딱 따라갑니다. 어딜가든 모르는 사람에게 확 안기거나 가까이가는 제스츄어를 여전히 하는 경우가 많아서 늘 이 부분을 경계해야 합니다. 태균이도 어릴 때 이런 점이 있었습니다.
다시 준이로 돌아와서 준이에게는 사실 아직 의미있는 계획들을 머리로 새기고 기억하는 기전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머리를 깎아야한다는 계획을 들려주었을 때도 그건 TV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수많은 대사 중의 하나 정도의 비중입니다.
그런 반면, 태균이는 이런 점에서 훨씬 나아가긴 했습니다. 오늘 머리깎아야 한다고 말을 건넸으면 종일 머리깎는 제스츄어를 해보이면서 강박적으로 상기시켜줍니다. 자신과 관련된 일은 거의 정확히 기억하고 다 수행해야지 안도를 느낄 정도로 판단과 기억기전이 과도하게 돌아 갑니다.
물론 특별한 계획이 많지않고 이걸 스스로 처리할 능력이 안되기에 엄마에게 주로 강요하지만 암튼 전두엽이 그래도 가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매일의 야외활동도 도저히 할 수가 없는 날조차도 꼭 운동하자는 의사표현은 하고 넘어갑니다. 과거와 달리 설명을 해주면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상당히 쿨해져서 강박에서 엄청 벗어나기까지 했습니다.
요즘은 자신의 일 뿐 아니라 준이나 완이에게 제가 해주어야하는 일까지 강박적으로 해결하라고 하곤해서 좀 피곤하지만 그만큼 사회성 발달도 확대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완이가 옷을 벗고있거나 식사시간에 빨리 오지않거나 하면 칼같이 지적하곤 합니다.
완이는 아직 진정한 기억 기전을 발동하기에는 풀어야하는 전정감각과의 통합이 큰 숙제입니다. 하지 말아야하는, 해서는 안되는 행동에 대해 악을 쓰고 제지를 해야 겨우 알아채는 수준이 지금 단계입니다. 그 전에는, 하지 말아야 하고 해서는 안되는 행동에 대한 아무런 개념이 없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곤 했지만 요즘은 그런 행동을 하려고 하다가도 잠시 주춤하고 제 눈치를 살피곤 합니다. 그것만 해도 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막무가내 행동에 대한 생각이 조금 생겼다는 증거니까요.
암튼 모든 의미있는 추상적 개념들 (시간과 공간개념, 사람과의 관계성 특정, 간단한 학습과 시각적 청각적 정보이해 등등)의 근저에는 기억력이라는 것이 기본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그 기억력은 반드시 의미있는 것은 취하고 의미없는 것은 버리는 선택과 집중 기전과 맞물려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세 녀석의 행동으로 돌아와서 비교를 해보자면 태균이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부분이 꽤 많이 작동하지만 자신과 관계없는 것은 아직 분별하고 기억하는 기전까지는 하지 못합니다. 엄마 아빠 준이 완이 모두 자신과의 관계성에서 필요한 요구나 대응을 합니다. 아직 의미있게 청각적 시각적 정보를 받아들이는 작업이 많이 필요합니다.
준이는 의미해석이라는 전정개념 완성에 큰 걸림돌이 묵혀둔 시각정보 처리 기능입니다. 오래된 시각정보 처리기능의 어려움으로 인한 훌륭한 청각처리기능이 비사회적 방향으로 너무 나아갔습니다. 지연반향어 폭발할 때 정말 옆에 있다는 것이 고문이다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요즘은 전두엽과 측두엽의 연결고리가 조금은 발전하려는지 언어강박이 심해져서 같은 문장을 백번 이상 내지를 때도 있습니다. 빨리 이 시기를 벗어나야 제대로 된 기억력 기전이 가동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억력 기전이 아직 가동되지 않으니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꼭 제가 아니더라도 양육자와 같은 사람관계의 절대성도 없습니다.
완이는 아직도 전정의 신체조절 기능을 더 많이 회복해야만 합니다. 전정감각의 신체조절 기능이 안되면 감각추구/감각방어 기전행동이 너무 강해 비사회적 행동으로 일관하게 되는데 이제 겨우 이 시기를 벗어났을 뿐입니다. 스스로 의미있게 행동하고 조절하는 신체활동 기능이 훨씬더 개선되어야 지적활동과 정신을 지배할 수 있는 전정기능으로 갈 수 있습니다.
기억력이라는 인간으로써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한 기초 정신적 작업은 우리 아이들에게는 감각추구에서 자기신체인지 라는 대명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부모님들이 버려야하는 오해 중 중요한 것이 바로 카메라기억입니다.
카메라기억을 해도 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기억저장소로 넣어야 하는지 선별작업이 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치 준이가 수없이 들은 애니메이션 대사를 의미없이 반복하는 지연반향어와 똑같은 원리입니다.
카메라기억은 특히 태균이처럼 귀가 어두어서 눈이 밝아진 경우 강해질 뿐입니다. 카메라기억이 강한 아이들은 빨리 듣기기능을 고쳐야만 합니다. 태균이도 듣기기능이 상당히 호전되면서 (토마티스 훈련 휴지기없이 2년간 줄창 했음) 더욱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기억기전, 그것을 자극하는 일은 결국 빨리 전정기능을 회복시켜 전두엽 발달을 재촉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팁! 강박시절을 거쳐야 이 기전이 개선된다는 것, 강박을 결코 힘들게 생각하지 말고 잘 넘기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과거 잠시 돌보았던 멜보이란 7세 아이를 좋게 평가했던 이유가 바로 그 아이의 지독한 강박을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그림이도 강박적으로 몇가지에 호불호가 양극단으로 치달아 생떼로 표현됩니다.
대표님의 글에서 팁을 많이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