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500 한 박스의 위력
남상선 / 수필가
새벽 미사를 드리기 위해 열심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재촉하는 종종걸음의 잽싼 발걸음엔 먼지가 일 정도였다. 여명으로 어둠이 걷히는 그 시간에 웬 가죽지갑 하나가 시멘트 바닥 위에 떨어져 있었다. 바빠서 그냥 지나치려다 잠시 발을 멈추고 바로 지갑을 주웠다. 지갑을 확인해 보았다.
지갑 속에는 현금 69,000 원과 신용카드 한 장, 친목회 회원 전화번호가 들어 있었다. 신용카드에 나와 있는 이름으로 지갑 분실자를 알아냈고 친목회 회원 연락처를 훑어내려 읽다가 분실자의 폰 번호를 확인해 냈다.
그걸 보는 순간 신용카드와 면허증이 들어 있는 지갑을 분실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심란해했던 바로 몇 달 전의 일이 떠올랐다.
순간 이 지갑의 분실자는 얼마나 불안해하고 심란해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속히 연락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분실자에게 연락을 주려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폰을 꺼내려 하였다. 허나 찾고 있는 폰은 호주머니에 없었다. 바삐 나오는 바람에 집에다 그냥 놓고 온 것이 분명했다. 가던 길 되돌려 집에 가서 폰을 가지고 올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만 미사 시간에 늦을 것 같아 곧장 성당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빨리 가서 성당 사무실 전화를 사용할 심산이었다.
성당에 도착해서 사무장한테 자초지종 이야길 하고 사무실 전화로 분실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연결이 되었다. 분실자는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옆 동 아파트 주민이었다. 얘길 들어보니 새벽 산책 길 나왔다 지갑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우선 주운 지갑을 내가 보관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미사 끝나고 가는 길에 들러 전해 주겠다고 했다. 분실자는 안도의 숨을 쉬며 감사하다고 했다. 무척 좋아하는 표정을 전화 목소리였지만 읽을 수 있었다.
미사가 끝났다. 지갑 분실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귀가(歸家) 발걸음을 서둘렀다.
확인해 두었던 동 호수를 찾아 초인종을 눌렀다. 지갑 주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 농사를 짓다 온 분 같았다. 피부색은 거무스름하게 타고 순박한 표정에 무뚝뚝한 말투는 경상도 사람인 것 같았다. 옷 입은 매무새에 구김살 없는 표정과 가식 없는 생김새 하나하나는 옛날 고향에서 마늘 장수 밤 장수를 하시던 작은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아니, 내가 살던 촌 동네 순박한 사람을 보는 느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지갑 주인은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잠시 후 무얼 들고 나왔다. 비타500 한 박스였다.
그는 말 주변 없는 단순하고 투박한 말투로 한 마디 했다.
“ 고마워서 샀으니 이거 받아줘요.”
투박한 말투에 말주변은 없었지만 거기엔 고마워하는 마음과 가식 없는 순수에 진실한 마음이 숨 쉬고 있었다.
순간 옛날 내 살던 고향의 이웃 사람들 모습이 떠올랐다. 마늘 밭 매는데 도와 줬다고, 아까운 줄 모르고 열무 단을 소쿠리 채 가져왔던 병구 엄마의 티 없는 순박한 얼굴이 떠올랐다.
고구마 캘 때 도와줬다고 고구마 한 삼태미에 고구마보다 더 많은 정을 듬뿍 담아가지고 와서 씩 웃던 길용이의 모습도 떠올랐다.
외지 직장 생활로 자주 가진 못해도 고향 가는 길에,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찾아뵙던 어머니 아버지 친구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 생각에 두 근, 세 근도 안 되는 달랑 쇠고기 한 근 들고 찾아뵙던 어머니 친구 승목이 자당님과 춘부장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나타났다.
별 것도 아닌 쇠고기 한 근이 그렇게 고마워서 내가 좋아하던 그 쓰디쓴 머위를 한 자루씩 뜯어 주시던 모습도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아니, 아들보다 낫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며 그 비싼 참깨 됫박도 아까운 줄 모르고 퍼 주시던 어머니 친구 승목이 자당님의 거칠고 뭉툭한 손길이, 소박한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 음성을 많이 닮았던 정감어린 승목이 자당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지갑 찾아주고 감사의 의미로 받은 비타500 한 박스의 위력이었다.
비타500 한 박스의 위력!
이건 그냥 마시는 음료수가 아니었다. 거기엔 감사와 순수가 묻어 있는 따뜻한 가슴이 숨 쉬는 사람냄새가 있었고, 옛날이 오늘 되게 하는 마력의 힘을 가진 것이었다.
아니, 그것은 한 소쿠리 열무단도, 정이 많았던 병구 엄마의 얼굴도, 고구마 삼태미를 놓고 씩 웃던 길용이 모습도, 내가 좋아하던 쓰디쓴 부대자루의 머위도, 그 비싼 참깨도 아깝지 않게 주시던 승목 엄마의 얼굴도, 모두 떠오르게 하는 위력을 가진 것이었다.
비타500 한 박스 !
이것은 열무 단 소쿠리, 마실 잘 오시던 정이 많았던 병구 엄마, 씩 웃는 모습으로 우직하기만 했던 길용이, 쓰기는 했지만 정이 넘친 머위자루, 바리바리 쌌던 참깨봉지와 들기름 병, 풋고추 싼 봉지들, 승목 엄마, 그 아버지한테서 물씬 풍기던 사람냄새를 그대로 느끼게 하는 요물이었다. 이것은 바로 비타500 한 박스만이 가지는 위력이었다.
문득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때 배웠던 염록체 식물의 탄소동화작용이 떠올랐다.
식물이 공기 중에서 섭취한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흡수한 물로 엽록체 안에서 탄수화물을 만드는 바로 그 식물의 탄소동화작용이 떠올랐다.
비타500에 들어 있는 감사하는 마음이 이산화탄소가 되고 ,그 사람냄새의 순수가 물이 되어 인정으로, 사랑으로 승화된 탄소동화작용이 우리 인간에게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탄소동화작용 덕분에 인정과 사랑으로 도배된 그런 삶이 지구촌 너와 나의 삶이었으면 좋겠다.
비타500 한 박스의 위력!
감사하며 사는 마음이 이산화탄소가 되고, 따뜻한 인정이 물이 되어 사람냄새 풍기며 사는 따뜻한 가슴이 탄소동화작용의 또 다른 열매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기에 배려와 인정과 순수와 진실에 사람 냄새까지 더 보태고 도금하여 열 제곱 스무 제곱으로 사는 우리 지구촌 가족이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훈훈한 이웃사랑 이야기네요~ 한번쯤은 잃어버렸을 우리의 지갑!! 무척 당황되고 뭐부터해야하나? 우왕좌왕이죠
특히나 주말에는 일처리가 더 어려워 마음만 타들어가기도 하구요~~
저도 한번 경찰서에 분실된지갑을 주워 가져다준적이 있어요.
선생님은 모범적인 시민이고 이웃이세요~~그러니 선생님들 주위에도 좋은분들만 모이는것 같아요
오늘 왠지 비타500이 땡깁니다.ㅎㅎ
역시 서미라 천사님이시군요 견물생심이라 했는데 습득한 지갑을 경찰서까지 가지고 가서 신고해서
찾아주려고 하시다니 정말 훌륭하십니다. 저도 양심에 가책 받는 일은 참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어려운 일을 하고나면 마음이 편해져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 선하게 또 도움
받은 일에는 감사하고 사는 우리 모두의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미라님 감사합니다.
지갑 잃어버리신 분도 평소에 덕을 많이 쌓고 지내셨나봅니다 선생님께서 발견한걸 보면요^^ 얼마나 감사했을까요 저도 지갑을 잃어버린적이 있습니다 지갑을 잃어버린장소에 다시 가보았지만 결국 못 찾고 집에 돌아온 기억이나네요 ,, 그분께는 선생님의 전화가 선물처럼 느껴졌을꺼같아요^^ 오늘도 따뜻하게 하루를 시작할수있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고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아가면서 느끼곤 합니다. 감사하고 사는 삶엔
또 감사할 일이 생긴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두운 밤에 하는 어떤 일이라도 모든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대낮처럼
생각하고 양심에 가책 받지 않고 사는 우리 모두의 삶이었으면 합니다.
. 김정아님 댓글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어렸을 때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게 떠오릅니다. 어린 여동생과 제 손을 꼭 잡고 골목길에 서서 남겨주신 사진 한 장이 왜이리도 선명하게 남아 있을까요..개인택시를 하시는 아버지께서는 정말 법이 없어도, 누가 청렴에 대한 연수를 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법이고 청렴이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모범을 보이시는 분이세요. 세상이 각박해져서 그런지 가끔 전 손님이 흘리고간 분실물을 새 손님 태우기를 포기하시고 가져다 주어도 그 마음을 모른 척하고 물건만 받고 사라져 버리는 각박한 모습들이 가끔 저를 속상하게 합니다. 그래도 웃으시며 선행과 봉사를 실천하시는 모습을 보며 저도 오늘 하루 또 화이팅합니다!
이동헌 선생님 글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해 주시어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가 따
뜻한 가슴으로 밝은 세상 만들어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동헌 선생님 댓글 성원 고
맙습니다,
비타 500이 아니라
비타 50000이라도 남 작가님의 善행에 모자라지요.
지갑을 잃었을 때의 그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속 상하고 힘든데, 고스란히 찾아다주신 그 손길이 제가 다 고맙습니다.
늘 손수 모범을 보이시는 남 작가님! 날개를 어디다 두고 다니실까...?
참으로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훈훈합니다.🙇
아름다운 한국입니다!
민주시민으로 해야할 당연한 일하고서 과찬의 말씀 들으니 많이 쑥스럽고 부끄럽습니다.
보다 훈훈한 가슴으로 사람냄새 풍기며 사는 사회 만드는데 일조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높들꽃님 힘이 나는 보약 많이 고맙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6.09 19:33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6.10 1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