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책 냄새일까요? 그냥 종이냄새일까요? 종이와 잉크 냄새가 뒤섞인 묘한 향기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새 책 냄새도 좋은데 청계천 헌책방 냄새는 추억을 소환
하는데 그만입니다. 70년대 잡지계의 ‘빅3’는 ‘어깨동무’, ‘소년중앙’, ‘새 소년’이었습니다.
길 창덕 ‘꺼벙이’, 이상무의 ‘독고 탁’, 박수동의 ‘고인돌’, 신문수의 ‘도깨비감투‘, ’신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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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아홉째 문‘도 생각이 나지만 오늘은 어깨동무 별책부록으로 나온 ’손오공“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 집은 신문도 안 보는 집이라 ‘일일공부’ 한번 구독한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자녀교육이라는 자체를 알지 못했고 2살 터울의 5남매를 그냥 방목했을 것입니다.
막내는 늦둥이라서 없었고 초등학교에 형제4명이 줄줄이 다녔지만 문교부에서 어떤 헤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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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 않았습니다. 제 기억으로 3학년 땐가 일일공부 맨 아래 칸에 연재된 신 동우 선생님의
‘차돌바위’보다 더 재밌는 만화책이 나왔습니다. 500페이지정도의 분량이었던 것 같은데
‘어깨동무‘별책부록으로 나왔어요, 어른이 돼서 그것이 ‘서유기‘원판을 따서 만든 김 원빈
(1935-2012)작가의 책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 양반 5-6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제가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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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글자와 그림의 신비에 빠져 20권정도 되는 책을 그 자리에서 다 보았습니다. 이후에
‘타잔‘, ’주먹대장‘ ’우주소년 빠삐’ ‘아톰’ 로버트 태권 V, 마징가 Z, 월드디즈니의 뽀빠이,
마루치,아라치 같은 애니메이션들이 제 호기심을 자극하긴 했지만 어느 것도 완독을 못했고
운 좋게 손오공만 마스터를 했습니다. 물론 50년 전 일이지만. 그때 사오정, 저팔계, 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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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를 본떠 그리는 짓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 혼자 했어요. 아마 비망록에 200컷
이상 스케치를 했을 것입니다. 설마, 열 살 무렵에 포트폴리오를 시작한 사람을 본적이
있나요? 우리 두 딸내미가 미술을 전공하고 글 빨이 있는 것은 순전히 아비의 유전자 때문
이라고 생각하는데 동의해 주시라. 서론이 길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불교,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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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가르침이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헬라철학과 성경은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았지만, 불교와 성경의 키워드가 동일한 줄은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은 원래 원숭이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힘이 세고 난폭해서
금방 원숭이의 대장이 됩니다. 돌 원숭이에 불과했던 손오공은 자신이 타고 다니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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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두 운)과 무적의 무기 여의봉을 가지게 되어 무소불휘가 돼요.
결국 석가모니에게도 반항을 하게 되는데 석가에게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36계를
합니다. 그러나 석가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벌을 받아 500년 동안 오행 산에
갇히게 되지요. 이쯤 해서 찬스 판이 나옵니다. 삼장법사를 도와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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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입니다. 삼장법사는 천방지축인 손오공을 통제하기 위해 머리에 ‘금고아’를 씌웁니다.
제 기억이 맞다 고 하면 ‘우랑바리따라마까로웅무따라까따라마까뿌라냐’정도 될 것입니다.
손오공이 육체의 본성대로 나가려고 할 때 삼장 법사가 기도로 그 금고아를 조입니다.
그러면 손오공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게 되고 비로소 정신을 차려 본래의 소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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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요괴를 무찌릅니다. 그렇게 손오공은 악의 존재인 돌 원숭이로 태어났지만 자기
본성을 죽이고 붓다의 소명을 따를 때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요.
원숭이가 ‘하늘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는 자‘란 뜻의 ’제천대성‘이 된 이유는 구름을 타고
여의봉을 휘두를지를 알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 욕구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서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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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힘은 끊임없이 산 밑으로 자신을 가둬 인생이 공포영화가 되게 만듭니다. 그러니
원숭이를 손오공이 되게 한 것은 삼장법사가 씌워준 머리 띠(금고아)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께서 메어주시는 멍에(십자가) 때문에 내가 원숭이 인간에서 하나님의 아들(성도)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근, 십자가를 메고 소명을 따라야 합니다. 그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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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로 날뛰는 것보다 행복하고 편안한 삶이 아닙니까? 그러나 사람은 돈, 쾌락, 권력,
명예 따위의 욕심에 사로잡혀 평생의 시간을 다 허비합니다. 그것이 노예생활이라는 것도
모르고 다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착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각자의 욕구로 종
살이를 하고 있는 겁니다. 결국 사단의 노예생활은 나의 삶을 공포영화로 만들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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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그것을 가지려고 혈안이 되거나, 이미 가진 것을 잃게 될까봐 두려움에 떨며 사는 것
같아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모두 내게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우라.“ 붓다는 머리띠로(해탈),
예수는 십자가(자기부정)로 인간을 새 창조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결국 '자유의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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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 합니다. 저 같은 손오공(소시오 패스)들은 길들여지는 걸 아주 싫어하거든요.
제가 어떻게 아직까지 개신교 신앙을 갖고 있는지 참으로 미스테리합니다.
오이디푸스가 모든 것을 알고 난후, 직접 자신의 눈을 찌른 행위는 더 이상 운명에 놀아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내가 직접 컨트롤하겠다는 치기이며, 자신의 상벌을 신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다는 것입니다. '후,~,'자유의지' 점점 더 모르겠네요.
2020.2.19.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