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카페에 본성-양육 논쟁에 대한 투표를 게시한 바 있습니다. 다음 토탈워 카페, 유로파 카페, 그리고 네이버의 무신론 카페에 글을 올렸는데, 대체로 유전보다는 환경의 영향력이 강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고, 몇몇 분은 강경한 환경결정론에 투표하셨습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서 본성-양육 논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번 글에서 '유전자가 동일한 체세포들이 각 신체기관마다 다른 기능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란 질문이 곧 본성-양육 논쟁에 있어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위의 질문은 곧, '유전자는 어떻게 신체를 만드는 것일까?'란 질문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이후로 미루도록 하겠고, 일단 본성-양육 논쟁의 틀을 바꾸게 된 프랑스의 실험연구를 소개하려 합니다.
대장균에게 있어서 글루코오스란 당(이름에 너무 연연하실 것 없습니다..ㅎㅎ;; 걍 이런게 있다 치면 됩니다.)은 굉장히 섭취하기 쉬운 당입니다. 때문에 글루코오스가 풍부한 환경에서는 다른 당을 분해하는데 들이는 대신, 글루코오스를 섭취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자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높이려 합니다. 하지만, 글루코오스가 없고 락토오스만 있는 환경에선 베타-갈락토시다아제(역시나 이름에 연연하지 마시길..ㅎ)란 효소를 생산함으로써 락토오스를 섭취 가능한 글루코오스와 갈락토오스로 분해시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대장균은 어떻게 해서 글루코오스가 부족한 환경에서 베타-갈락토시다아제란 효소를 생산하는 것일까요?? 바로, 락토오스만 있는 환경에서 베타-갈락토시다아제 효소를 합성하는 유전자 스위치가 '켜지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드리자면, 베타-갈락토시다아제 유전자 근처에 짧은 DNA서열이 존재하는데, 이 서열에 효소 생산을 억제하는 단백질이 결합될 수 있습니다. 이 억제 단백질이 DNA 서열에 결합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유전자 스위치가 꺼진 상태로, RNA 전사나 번역과정이(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드린다면, DNA에서 RNA를 구성하는 과정을 '전사', RNA에서 단백질을 합성하는 과정을 '번역'이라고 합니다. 유전자는 이렇게 단백질을 합성함으로써 신체를 구성하게 됩니다.)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주변 환경에 있어서 락토오스가 등장하게 될 경우, 이 억제 단백질은 DNA서열에서 떨어져 나가고 이 유전자에서 RNA전사가 시작되어 베타-갈락토시다아제 효소가 생성되게 됩니다.
-션 캐럴의 <이보디보>. p.92. 주변 환경이 어떻게 해서 특정 유전자를 키거나 끄도록 만드는지에 대한 모식도입니다.
이 발견을 한 자크 모노와 프랑수아 자콥은 1965년에 노벨상을 받게 되었는데요. 이 발견은 본성-양육 논쟁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을 제공해줍니다. '유전자는 환경에 의해 켜지거나 꺼질 수 있다.' 실상, 유전자 스위치 개념은 인간의 발달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줍니다. 서로 다른 신체기관에 존재하는 세포들은 모두 동일한 DNA서열을 가지고 있습니다(뭐 암세포같은 망나니는 무시해놓고..). 하지만, 각 기관 세포마다 발현되는 유전자는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세포들마다 발현되는 유전자가 다르게 하는데에 있어서 화학물질농도(그라디언트)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다소 혐오스런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마, 이 사진을 보면 밤에 편히 자기 힘들 것입니다.
이 불행한 새끼 양은 어미가 사이클로파민이란 독소가 들어있는 풀을 먹음으로써 눈이 하나 뿐인 채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것은 전뇌와 눈이 쌍으로 되는 대칭구조를 이루는데 결정적인 시기에, 독성 화학물질에 노출됨으로써 유전자 스위치 작동에 방해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즉, 태내에서의 환경이 태아의 유전자 발현에 결정타를 입힌 것이지요. 이런 사례는 인간에게도 흔히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입덧 처방제로 개발된 탈리도마이드란 약물인데, 임산부가 임신도중 특정 시기에 이 약물을 섭취하게 될 경우, 아이의 팔다리 형성과 관련된 유전자 발현을 방해함으로써 팔다리가 없는 아기가 탄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임산부에게 담배나 알코올을 섭취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도, 이 화학물질이 태아의 유전자 발현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회환경에 있어서도 환경이 유전자의 스위치를 작동시키거나, 억제시키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코르티솔 분비와 관련된 유전자가 작동됨으로써, 스트레스반응을 일으키고 면역력이 약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이런 유전자 스위치 개념은 두뇌 회로 재배선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자주 자극이 이루어지는 신경 연결에 대해선 연결이 강화되도록 유전자 스위치가 켜지고, 세포자살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억제시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에릭 칸델. <기억을 찾아서>. 깊게 설명드리기엔 지금 제 지식이 일천해서 모식도만 보여드리겠습니다.ㅎㅎ;; 쉽게 설명드리면 반복적인 자극은 유전자 스위치를 킴으로써 신경 연결을 강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 유전자가 환경에 의해 작동되는 사례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동시에 우리의 학습 자체는 '학습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형성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학습은 우리의 학습 유전자가 존재함으로써, 두뇌 회로가 재배선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전 본성-양육, 그리고 환경과 유전자에 대해서 일반인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유전자는 결코 '선천성'을 대변하지 않고, 환경은 '후천성'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유전자는 우리가 태어난 이후 평생에 걸쳐서 영향을 미치며, 유전자가 존재해야만 인간의 신체는 물론, '양육'자체가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환경은 우리가 선천적인 차이를 일으키는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맷 리들리가 <본성과 양육>이란 책에서 말한 '본성에 의한 양육, 양육에 의한 본성'이란 문구는 이렇듯, 유전자와 환경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 오래된 논쟁의 종지부를 찍는 문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전자와 환경, 그 둘은 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고문헌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에서 감명받았던 점 중 하나가, 참고문헌을 설명할 때, 그 문헌에 대한 코멘트를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이해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점이지요..ㅎㅎ;;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을 따라하는 의미에서 참고문헌에 대해 나름의 코멘트도 달아보겠습니다..ㅎㅎ;;)
션 캐럴. <이보디보>: 진화발생생물학에 대한 책입니다.ㅎㅎ 다소 어려운 편에 속합니다만, 번역아예 이해가 불가능한 책은 아닙니다. 진화론에 발생학을 접목시킨 '이보디보'란 신학문을 재미있게 소개하는 책이죠. 요근래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네요.
에릭 칸델. <기억을 찾아서>: 군소의 뉴런 가소성 연구를 통해 '기억'연구에 혁신을 일으켰던(그리고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에릭 칸델의 책입니다. 자서전 성격이 강한 책이지만, 자신의 연구에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 꽤나 쉽게 풀어 써준 책입니다.
조지프 르두. <시냅스와 자아>: 뉴런 시냅스의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의 자아를 파해치려는 책입니다. 결코 쉬운 책이 아니죠..ㅜㅜ 그럼에도, 저에게 있어서 인간의 정신에 대한 생각을 크게 전환시켰던 책입니다.
요하임 바우어. <몸의 기억>: 독일인 의사가 쓴 책인데요.. 스트레스가 인간의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미침으로써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살아있는 유전자>: 저자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관계로..ㅎㅎ;; 번역에 문제가 있는지, 원래 글이 그런지는 몰라도 읽기가 매우 힘든 책입니다. 발생과정에서 유전자의 역할을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 권의 책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ㅎㅎ;; 나중에 이 주제에 대해서 더 자세하고 풍부한 내용이 담긴 글을 쓸 생각입니다.(그 때엔 유전자 뿐만 아니라, 사회가 한 개체에 미치는 영향까지 다루려 합니다.) 그 때에 나머지 책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ㅎㅎ;; 이상, 제 볼품없고 성의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p.s 에궁... 내용은 이과적이지만, 실상 전 몇 년 전까지는 인간의 염색체가 몇 쌍인지 조차도 몰랐던 평범한 문과생이었습니다..ㅎㅎ;;; 때문에 내용에 있어서 오류가 있을 수 있는데, 발견되는 오류를 알려주시면 겸허히 받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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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진 줄 알았더니 옮겨진 것이었군요. 유전자 스위치설이 있다는 것은 얼핏 들었는데, 그게 벌써 45년이나 전에 나온 것인줄은 첨 알았네요... 이렇게 중요한 연구가 왜 그리 대중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인지에 대해서라면... 유전자의 문제가 논쟁이 될경우 논쟁이 산으로 가는게, 이게 사회의 구성에 대한 "이데올로기" 와 매우 강한 연관을 갖기 때문이라고 봐요. 사실에 대한 선택적 수용이야 새털처럼 많이 벌어지는 일이지만, 유전자의 경우는 애초에 사람들이 그러한 "선입견" 이 강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실질적으로 두뇌 뉴런 가소성(회로구조나 성질이 바뀌는 것)에 대한 연구 결과가 명확해진 것은 80년대부터입니다. 실질적으로 이 때에 이미 학계 수준에선 본성-양육 논쟁에 있어서 전체적인 틀은 결론맺게 되었다는군요(물론, 세부적인 측면에서 논쟁은 활발하지만, 유전과 환경을 단칼로 나눌 수 없다는 것 자체는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문제는 이게 아직 일반인 수준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며, 동시에 한국의 관련 학과생이 아닌 사람에겐 더더욱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때문에 한국 인터넷 공간 상에서 몇몇 곳을 제외하면 본성-양육 논쟁은 과학 논쟁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논쟁이 되어버리더군요.
때문에 전 본성-양육 논쟁과 관련해서 '환경에 의해 조절되는 유전자'란 개념과, '두뇌란 물질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신', '끊임없이 바뀌는 두뇌'(이 두 개념은 위 글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이 개념은 '환경에 의해 조절되는 유전자'란 개념을 기반으로 해서 더 깊은 설명이 필요하거든요..-.- 이 것은 차후에 여유가 있으면 글로 쓸 생각입니다.)란 개념을 일반인에게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덕분에 정말 좋은 논의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말씀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오, 저도 평범한 문과생이라 저런건 몰랐네요.... 저에게는 참 참신한 이론인데, 무려 45년전에 나온 것이라니(.,..)
오래전에 비슷한 논지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이해도 되고 확실하게 와 닿는군요.
이런 내용은 인문학과 자연과학 모두 상당히 의미있는 내용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