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6월 28일
서귀원 성도는 마음씨가 정말 착한 분이다. 털어도 먼지가 안 날 것 같은 순박한 분이다. 남의 것 욕심내지 않고 땀 흘려 일했고 뿌린 대로 거두어 사는 정직한 농부로 살았다. 노부모님과 아내와 자녀들과 오붓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착하기 짝이 없는 가장이었다.
행복이 별거던가? 농사꾼이라면 온 가족이 사랑하면서 성실하게 땅을 일구며 사는 것이 행복이다. 농사 지어 부자 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온 가족이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 도우면서 살면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
감사하게도 그의 아내도 심성이 곱고 자녀들도 착하고 공부도 잘했다. 우리의 눈에 보기에도 참 보기 좋은 가정이었다. 이런 가정을 두고 스위트 홈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부자가 되려고 욕심부릴 필요가 없다. 먹고 입고 잠잘 곳이 있으면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가족들 간에 우애를 나누는 삶이면 더 바랄 것 없다. 서귀원 성도의 가정이 바로 그런 가정이었다.
하지만 행복을 얻는 일보다 지키는 일이 더 어려웠을까? 서귀원 성도님께서 갑자기 눈을 감았다.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 세상을 떠났으니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하룻밤 사이에 가정의 행복은 균열이 생기고 말았다.
이제 간신히 신앙을 갖게 된 사람이다. 그의 아내도 역시 새신자 티를 벗지 못한 어린 신앙인이었다. 내 살붙이가 아니어도 그 가정이 겪은 아픔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 가족들이 느끼는 아픔은 내가 느끼는 아픔과 차원이 다르다. 그의 가족들이 겪는 아픔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으리라.
그래도 어린 신앙인들인데 믿음에서 이탈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 하나님께 왜 이러셨냐고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가정의 행복을 빼앗아간 것이 하나님이라면서 억지를 부릴 수도 있었다. 내게 주어진 일이라면 너그럽게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너무하셨다는 말이 절로 나왔을 것 같다.
더구나 서귀원 성도님은 성실한 분이다. 다른 사람에게 흠 잡힐 데 없이 착하게 살아온 분인데 단명하다니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날 추운 날씨 속에서 논에서 과하게 일을 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뇌출혈이 심함으로 잠을 자면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뜻에 반하는 일을 당하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수납하기 어려운 일이라 해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은 항상 선하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신자에게 주시는 고난은 유익함을 주려는데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가족들에게 어떤 답을 주셨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죽은 자나 남은 가족들이나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