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양주는 성종 14년 전국을 10개도로 나누고 양주, 광주 소속 주, 현은 관내도에, 충주, 청주 소속 주, 현은 충원도에, 공주, 운주 소속 주, 현은 하남도에 각각 소속시켰다고 고려사 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다.
남경 유수관 양주는 원래 고구려의 북한산군(남평양성이라고도 한다)인데 백제의 근초고왕이 빼앗아서 25년(370)에 남한산으로 부터 이곳으로 수도를 올기고 한성이라고 불렀다.
개로왕20년 고구려 자비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한성을 포위 하므로 개로왕이 성을 벗어나 달아나다가 고구려 군사에게 살해당하였으며 이 해에 개로왕의 아들 문주왕이 수도를 웅진으로 옮겼다.
그 후 신라 진흥왕15년(554) 북한산성에 이르러 국경을 정하고 경덕왕 14년(755)에 한양군이 되었다.
대륙의 양쯔강.
삼협댐을 올라 크루즈를 타고 사천성 중경을 향해 나아가다보면 충주란 옛 지명이 곳곳에 남아있다.
예전에는 이 곳을 충주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가하면 사천성 성도의 이곳 발음이 청뚜이다, 충칭, 청두....
즉, 충주와 청주로 옛 충청도 지역이다.
대륙의 고려는 사천성 성도에 도읍을 정하고 개경이라고 부르고 송악산 남쪽에 개주라고 하고 궁궐을 세웠다.
후에 광종 11년(960) 개경을 황도라고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