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사의 - 顧名思義]
이름은 자기의 정체성을 담은 자신의 상징으로서, 남이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사람으로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의지를 담은 자신의 명칭이다. 비록 자신의 것이지만 자신이 직접 만들지 못하고 자신보다 남이 더 많이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한자 언어권에서는 한 사람에게 하나의 이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이름이 부여된다. 태어나기 전부터 갖는 ‘태명’에서 시작하여 ‘아명’을 거쳐 ‘실명’을 갖게 되고 성년이 되면 비로소 ‘자(字)’를 갖게 된다. 이때까지는 타의에 의해 명명된 이름이지만, 자신의 철학이나 의지 등을 담아 스스로 지을 수 있는 이름이 바로 ‘호(號)’이다.
유학의 경전 가운데 『춘추(春秋)』라는 책이 있는데, 여기에 작명에 관한 기사가 있다. 노나라 환공(桓公) 6년 조에 당시 사람들이 이름을 짓는 기준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권장하는 이름으로 다섯 가지 유형을 들었다.
“이름에는 다섯 종류 있으니, ‘신(信)’ㆍ‘의(義)’ㆍ‘상(象)’ㆍ‘가(假)’ㆍ‘유(類)’이다. 출생할 때의 특징을 사용해 이름 짓는 것이 ‘신(信)’이고, 덕행(德行)을 나타내는 글자를 사용해 이름 짓는 것이 ‘의(義)’이고, 유사한 물체의 이름을 사용해 이름 짓는 것이 ‘상(象)’이고, 물명(物名)을 가차해 이름 짓는 것이 ‘가(假)’이고, 부친과 관계가 있는 글자를 사용해 이름 짓는 것이 ‘유(類)’이다.
또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이름으로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기준을 제시하였다.
“국가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며(不以國), 관직명을 사용하지 않으며(不以官), 산천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며(不以山川), 질병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며(不以隱疾), 축생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며(不以畜牲), 기물과 폐백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不以器幣)”
다시 말해 ‘김미국’, ‘이장관’, ‘박하늘’, ‘최간암’, ‘정염소’, ‘조목탁’ 등으로는 이름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자 문명권에서는 이름 자체가 공경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상대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꺼리는 ‘휘(諱)’ 문화가 생겨났다. 휘(諱)란 본시 천자의 명(名)을 이르는 말로써 제왕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후대에 와서 일반인도 고인(故人)이 된 뒤에는 명(名) 대신에 ‘휘(諱)’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인이 된 조상의 명(名)을 말할 때, “휘 ○자, ○자”라고 하게 된 것이다. 또한, 국왕이나 조상, 성인 등 존중을 받아야 할 대상의 이름을 함부로 범하지 않는 것을 ‘피휘(避諱)’라고 하였다.
‘함자(銜字)’라든가 ‘존함’, ‘명함’, ‘직함’이라 할 때의 ‘함(銜)’은 ‘재갈 함’ 자이다. 말에 재갈을 물려 말을 다루는 것처럼,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뜻에서 입에 재갈을 물린다는 의미로 ‘함자’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전통시대에는 성년이 되면 함부로 쓰지 않는 이름자 대신 호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된 것이다.
호를 짓는 방법에는 대략 몇 가지의 방식이 있는데, 첫째는 ‘소처이호(所處以號)’이다. 자신이 처한 곳의 지명을 호로 삼는 경우이다. 율곡(栗谷), 다산(茶山), 퇴계(退溪), 송강(松江), 연암(燕巖) 등이다. 현대인으로는 통천군 아산리의 ‘아산(峨山)’ 정주영, 신안군 후광리의 ‘후광(後廣)’ 김대중, 거제도와 부산의 지명을 딴 ‘거산(巨山)’ 김영삼 등이 지명을 호로 사용한 경우이다.
둘째는 ‘소완이호(所玩以號)’이다. 애완하는 것으로서 호를 삼는 경우이다. 도연명은 집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 스스로 칭하기를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하였다. 구양수는 ‘육일거사(六一居士)’라 하였는데 장서, 금석문집록, 거문고, 바둑판, 술, 그리고 자신까지 포함하여 ‘육일(六一)’이라 하였다.
셋째는 ‘소지이호(所志以號)’이다.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지나 신념을 나타내는 경우이다. ‘신사임당(申師任堂)’은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스승으로 삼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고, ‘신독재(愼獨齋)’ 김집은 ‘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이 언행을 삼간다.’라는 의미로 「중용」의 ‘신독(愼獨)’에서 차용하여 자신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추사의 또 다른 호 ‘완당(阮堂)’은 완원(阮元)을 스승 삼는다는 의미이고, ‘보담재(寶覃齋)’는 담계(覃溪) 옹강방(翁方綱)을 보배롭게 여기는 서재라는 뜻이다.
넷째는 ‘소우이호(所遇以號)’이다. 고문 후유증으로 앉은뱅이가 된 심산 김창숙의 만년의 호는 앉은뱅이 늙은이라는 뜻의 ‘벽옹(躄翁)’이다. 벼슬하지 않고 은둔해 산다는 ○○居士, ○○處士 또는 세상일 버리고 한가히 산다는 ○○散人 등이 대체로 이러한 유형이다.
나의 호 하전(霞田)은 ‘자줏빛 노을 아래 밭에 김을 매다’라는 뜻으로 ‘자하운전(紫霞耘田)’이라는 문장을 만들고, 그 가운데 주요 의미인 노을 ‘하(霞)’ 자와 밭 ‘전(田)’ 자를 떼서 ‘하전(霞田)’이라는 호를 지었다. 그 의미는 ‘노을에, 석양에, 해 질 녘에 밭에 김을 매다.’라는 뜻으로서 만학하는 자신의 처지를 빗댄 말이다.
지혜라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고통을 겪고, 실수도 하고, 젊은 날의 열정도 식고, 가진 것도 내려놓고, 일련의 아집과 집착이 풀어져서 세상에 대한 관조가 시작될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에서 얻은 것이다. 마치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해가 져야 비로소 날개를 펴고 날 듯이 말이다.
간혹 내게 호나 이름을 지어 달라는 분이 계신다. 생면부지의 분들이 부탁해 오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개는 지인들이 폼 좀 나게 지어달라는 요구가 많다. 나름대로 심사숙고하여 작호기를 써주었다가 그 중 더러는 이름값 못하는 위인을 볼 때, 호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할 때가 있다. 그나, 나나 모두가 다 이름값 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설령 그렇다 한들, 쥐뿔도 없는 것들이 가오 마저 빠지면 뭔 재미로 산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