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1장의 첫 본문은 주기도문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6장에 수록된 주기도문과는 조금 다른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1 예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기도를 마치셨을 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말하였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말하여라.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오며, 나라가 임하게 하시오며,
3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마태와 누가의 주기도문이 큰 틀에서는 같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납니다. 우선 마태보다 누가의 기록이 훨씬 짧고 소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런 경우에 소박한 쪽이 원형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차이는, 예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시게 된 동기가 양쪽이 완전히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는데 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걸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요청해서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예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동기를 제자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스스로 제자들이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기도를 본받을까 염려해서 ‘그렇게 기도하지 말고 이런 내용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과 표현에 있어서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은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부르면서 기도를 시작하는데, 누가는 그냥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또한 마태에는 ‘나라가 임하게 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라고 되어 있는데, 누가에는 ‘나라가 임하게 하시오며’ 라는 말만 있고 그 다음 말, 그러니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라는 말은 없습니다. 마태의 궁극적 관심이 ‘장차, 저기’에서 이루어질 ‘하늘’에 있는 반면에, 누가의 궁극적 관심은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져야 할 ‘현실’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본문이 되겠습니다.
이어지는 본문들은 모두 마태복음과 겹치는 내용들입니다. 귀신에 관한 논쟁은 마태복음 12장에,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5~6장에, 바리새인들과의 논쟁도 마태복음 2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들에 대한 설명은 다시 하지 않겠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마태복음의 해당 강해를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