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르씨는 우리 현대몽골연구원에서 발행한 20세기 한국몽골관계사에 추천사를 써준 인물입니다.
몽골의 40대까지 많은 지식인, 학생, 정치인들이 바바르의 열렬한 팬이며, 이 분은 WHO IS WHO(монголын маш чухал 50 хүн / 2008년) 과 GRAND Хүмүүс(2012.5 / АДМОН 사)에서 각각 등장한 인물입니다.
저도 이분과 몇 마디 나누어 보았지만, 한국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갖고 한국과 몽골의 협력이 강화된다면 어떠한 형태라도 도움을 주고 싶단 의사도 밝히셨지요. 이분이 2008년에 한 인터뷰가 있어 시리즈로 공개합니다.
법을 통한 공동생활을 만들 순 있어도 이를 동물적 본성으로 다루어선 안된다.(2008. 4월)
몽골의 사상적 거인, 이 시대의 교육자이자 명망있는 논설가라는 찬사를 받는 그에게 몇 마디를 얻기 위해 방문했다. 뛰어난 유머감각, 지식과 지혜 거기에 걸맞는 거친 성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지나치게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미스터 바바르와의 이번 인터뷰는 정치와는 구분짓고 개인적 삶의 영역에 접근되길 원했다. 언론을 포함한 비공개적이고 특정 분야에 한정한 기사가 우리 잡지에 인터뷰 되길 젊은층은 원하고 있고 이를 통한 그의 힘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에 먼저 밝혀둔다.
기자 : 당신의 저서 "훌륭한 젊은 동생에게(Дори идэр дүүдээ)"를 대학생 시절 읽고 당신의 팬이 되었습니다. "내 동생이 18살이 되었다"고 시작하는 이 책이 많은 몽골젊은이에게 교양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바바르씨는 18살때에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 시절의 바바르를 지금 이 시점 높은 곳에서 되돌아보면 정말 이상할 것 같은데요.
바바르 : 그냥 평범한 아이였지요. 저는 18번 학교를 졸업했어요. 그 시절엔 울란바타르 도심 바깥에 떨어진 학교라 여겨지던 그런 학교였어요. 우리 동네는 12만 가구가 살았는데 10학년을 마치자 우등상을 받고 외국유학을 갔지요.
기자 : 그 책에 씌여진 모든 책들을 그 시대에 모두 읽었던 건가요? 이 책을 쓰겠다고 했던 동기를 갖게 된 것이 언제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내요.
바바르 : 학생 시절 외국, 문명세상은 금지 되었어요. 스스로를 완성시켜 가는 과정에서 터득한 교훈이랄까요. 우리의 그 시절에는 이러한 류의 책은 나온적이 없었어요. 대부분은 출간이 금지되었죠. 중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외국어는 전혀 알지 못했어요. 그러다 대학에 가면서 내에게 주어지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기 위해 고뇌하고 깨닫고 때로는 잃는 과정에서 오늘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이것이 더 좋습니다, 이는 필요없네요, 이것은 이렇게 바라보세요 라고 쓴 책입니다. 두번째로 모든 책들을 다 소유하려 하지마시기를 강조했습니다. 과거의 책에서 얻을 수 있었던 지혜를 오늘날에는 영화 많은 문화, 인터넷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얻을 수 있음을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모든 사회에서 오로지 적은 비율의 사람들만이 높은 교육을 받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학자, 박사, 교수가 되어 버리면 누가 책상, 의자를 만들어 그들에게 줄 수 있겠어요 그죠? 이런 이유로 고등교육을 받길 희망하는 소수의 청년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책일 뿐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성이 있는 책이 아닙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이 책에 씌여진 모든 책들을 읽게하고, 영화도 보게 해 줘야지 하고 밀어붙인다면 제가 원하던 바가 아닙니다. 쉽게 말해 이는 모든 젊은이들의 꿈의 계획이 아닙니다. 어떤 사회도 고등교육을 받은 계층은 매우 적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미국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다섯명에 불과하답니다.
기자 : 바바르씨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음에게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숨겨진 분입니다. 사람들 마다 바바르라고 알고 있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 개인적인 분야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바바르 씨의 내적 세계를 소개해주고 싶지 않으신가요,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면 어떠시겠어요.
바바르 : 저에게 비밀같은게 있겠어요. 기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대답을 피하거나 도망갈 일은 없습니다. 저는 아르항가이 아이막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학교를 졸업하고 아르항가이 아이막로 떠났죠. 제가 집의 장남이에요. 엄마는 장남을 도시에서 낳겠다고 우체국 차량을 얻어타고 가는 바람에 좀 평탕한 길에서는 과속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조산을 하게 되었다 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자우항의 차강해르항 사람입니다. 위대한 학자였죠. 박사였고, 교수였고. 오늘날 일반적인 박사와는 다른 분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시골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학술서를 끊음없이 읽어 나이 오십이 되던때에 울란바토르로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제가 첫 돌이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울란바토르로 이사와서 여기서 세식구가 살게 되었죠.
기자 : 바바르씨는 어린 시절 어떤 아이였나요? 아마도 지독한 독서광과 같은 성향을 갖고 계셨을 것 같은데요.
바바르 : 어린 시절 좀 젊잖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집에서 잘 안나갔지요. 어머니는 나에게 "밖에 그렇게 나가기싫다면 집 주변이라도 크게 돌고 들어오렴" 이라고 하시곤 했어요. 그런 아이였지요. 훌리건, 갱단같은 시절은 없었어요. 그렇다 해도 사회성결여 환자는 아니었습니다.
기자 : 당신은 화학전공이잖아요. 전공을 선택하는데 누구의 영향이 있었거나 혹은 운명적 음성으로 당신이 스스로 선택한 건가요?
바바르 : 저는 화학자이죠. 그다지 드문 사례는 아닙니다. 중학교 고등반에 있을 때 화학적인 최초의 깨달음을 얻었어요. 우리 아버지는 생물학 박사에요.
기자 : 이 분야는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이 분야에 종사하신지 얼마되셨지요?
바바르 : 매우 오래되었네요.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화학이 아니라 생화학입니다. 생화학은 생명조직체 내에서 발생되는 반응들의 공통적 특징에 따른 생체세포 연구학입니다. 저는 생화학, 미생물학연구소에서 조교에서 시작해 선임연구원까지 했는데요, 이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죠. 연구성과가 인정받아 국제지적재산금상을 받았습니다. 키모트립신, 트립신이란 물질의 차이를 확인하여 물리화학적 특성을 연구하였습니다. 연구 초반에 연구소의 재정악화로 더 이상 연구를 할 수 없었는데요. 당시 몽골엔 260개의 연구소가 있었죠. 우리 연구소는 키모트립신, 트립신, 판크신 등 미립자들을 분류하여 이를 해외에 수출하였습니다. 이를 직접가지고 해외로 나가서 안면이 있었던 연구소에 팔았죠. 이런 연구소는 정말 유례없는 곳이죠. 모든 국가에서 사 갔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내는 유전자 공학자입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우리 모두 박사과정을 했었습니다. 자 보세요, 숨기고 사는 거 없습니다. (웃음)
기자 : 사모님은 지금은 뭘 하시나요?
바바르 : 기술대학('티스')에서 교수를 하다가 요즘은 사전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전에 옥스포드, 최근엔 콜린스 사전 작업을 했어요. 유전자 학자가 유전자 연구는 그만두고 거울만 보고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웃음)
* 설명 : 몽골어로 사전과 거울을 다 '터엃'이라 한다. 바바라씨는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농담을 즐겨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사전은 몽골에서 최초로 나오는 국제규격에 맞는 사전입니다. 철저한 감수과정을 거치죠. 사전에 대한 권리는 옥스포트, 콜린스라는 명의 때문에 매우 비싸게 판매됩니다. 이 두 사전만이 세계에서 영어로 출판되는 대형사전이 있죠.
기자 : 보통 삶에 있어서 전성기는 학생때 입니다만, 선생님의 이 시절에 대한 추억을 저희들에게도 좀 나눠주시죠.
바바르 : 참 좋았죠.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와 가족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독신의 삶을 처음 맛보았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적응하는 것 자체가 큰 수업이었습니다.
기자 : 시장경제 전환기에 어디서 뭘 하셨나요? 한번쯤은 돼지치고, 말안장 나르는 시기(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나요?
바바르 : 1990, 1991년에 나는 영국에 유학중이었습니다. 임페리알 칼리지라는 매우 우수한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죠. 내가 근무하던 때 그곳에 4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있었다고 해요. 아와모리(일본 류큐에서 생산되는 증류주)에서 미세당분을 분리하여 유전자연구를 하는 계획에 10여명이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이 저였습니다. 나와 같이 이 분야에 함께 연구하였던 생명공학 분야의 우수한 연구자들은 지금은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자 : 바바르씨도 외국으로 진출할 생각을 갖고 계시지 않나요?
바바르 : 당시와는 달라졌지요. 지금의 저는 많이 뒤쳐져 버렸으니까요. 이십육년, 칠년이 지났구요 지금은 비타민 A라는 용어조차도 모를 정도로 멀어졌지요. 과학이란 건 뒤쳐져버리면, 관심과 재능만 있다면 돌아가 다시 달성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매일같이 끊임없는 정열을 요구하는 분야죠. 지금 저를 아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당시와는 완전히 다르다. 또한 정치분야에서도 열심히 하다가 이 또한 멀어져 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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