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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미] 여혜영
S#1. 거리 (프롤로그)
오후의 화사한 햇살.
거리 한 곳에서 꺄아악 밀고 장난치며 우루루 떼를 지어 몰려 다니는 젊은 커플들,
떠들석한 웃음을 몰고 한 소극장의 매표소 앞을 지나는데
때마침 연극을 관람하고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과 부산하게 뒤 얽혀 더욱 소란을 떤다.
마찬가지로 연극을 보고 나오던 20대 중반의 여자 둘(수진과 혜경),
그 틈에 휩 쓸려 팔짱을 꼭 낀 채 가까스로 사람들의 무리를 뚫고 나온다.
화장끼 하나 없이 무척 청순해 보이는 인상의 수진과 선머슴처럼 털털한 모습의 혜경,
가방을 고쳐 메거나 옷깃을 바루며 나란히 전철역 쪽으로 걷는다.
혜경 : 젠장, 다들 쌍쌍이 난리를 치는구만.
수진 : (웃음) 또, 시작이다!
혜경 : 억울하잖아. 주말이면 뭐 하냐? 남자 하나 못 사귀어서 맨날 요 모양 요꼴인데.
수진 : 그렇게 억울하면 애인 하나 만들어. 심통만 부리지 말구.
혜경 : 누군 안 그러고 싶어 이래? 죽자고 눈 도장 찍어 봐야 쳐다도 안 보니 그게 문제지.
수진 : 되게 불쌍하네. 좋아, 찍어. 눈 딱 감고 내가 다리 놔 줄 테니까.
혜경 : (못 믿겠단듯) 진짜야? 니가?
수진 : (시계를 보며) 10초의 여유를 주겠어.
하자마자 급히 거리를 훑는 혜경,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넥타이를 멘 30대의 남 자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혜경 : 저 남자! 저 남자 어때?
수진 : (눈살 찌푸린다) 30점! 배가 너무 나왔어!
혜경 : 그래? (또 다른 남잘 가리키며) 저기 오는 저 검은색 바진? 꽤 괜찮은데?
수진 : (혜경을 흘기며) 아무리 급하기로 넌 기준도 없니? 애가 벌써 둘은 돼 보인다.
혜경 : 관 둬, 관둬! 너처럼 까탈 부리다간 평생 애인 못 구해, 기집애야. 그러니까 생긴 건 멀쩡한게 여태 남자 친구 하난 없지.
(어쩌구 투덜거리는 혜경을 급히 팔꿈치로 툭! 치는)
수진 : 저기! 저 남잔 어떠니?
혜경 : 누구?
수진 : (턱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저기 길 건너오는 남자 말야. 하늘색 셔츠 입은.
혜경, 수진의 시선을 쫓아 얼른 본다.
맞은편에서 막 횡단 보도를 가로질러 오는 훌쩍한 키의 남자, 멀리서도 한 눈에 매우 준수하고 스마트한 용모임을 알 수 있다.
혜경 : (시큰둥) 아서라. 저 정도 낯짝에 임자가 있어도 벌써 몇 트럭은 있겠다. (웃고 쫑알거리는 둘)
<전철역 입구>
전철 역 입구로 걸어와 서는 혜경과 수진.
혜경 : 갈게. 넌 버스 탈거지?
수진 : 음. 나중에 정 외로우면 전화해.
손을 휘이 내저으며 지하철 역 안으로 사라지는 혜경.
웃으며 잠시 보고 섰다가 휙 몸을 돌리는 수진, 순간! 뒤에서 오던 누군가의 가슴을 쾅! 들이받고 만다.
사정없이 엉덩방아를 찧는 상대방! 우습게도 수진은 끄떡도 없고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보는 수진.
놀랍게도 아까 수진이 찍었던 하늘색 셔츠의 남자(동우)고
동우가 들고 있었던 케익 상자가 동우의 손 밑에서 형편없이 짓 뭉개져 있다. 달려들어 얼른 동우를 일으켜 세우는.
수진 : 어머, 어떻해요? 괜찮으세요? (미안해 어쩔줄 모르는데)
수진을 향해 아파서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괜찮단듯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웃어주는 동우의 모습에서 화면 짧게 F.O 한다.
S#2. 암전
자막 메인 타이틀 떴다가 사라지면
이쁜 동요풍의 음악을 나지막한 콧 노래로 흥얼거리는 여자의 허밍음이 들리고
냉장고 문을 여닫거나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곧 위-잉! 요란하게 돌아가는 기계의 모터 소리가 겹친다.
S#3. 진숙의 집 부엌
믹서기 안에서 소용돌이치며 갈려지는 과일들. 믹서기의 동작 멈추면 여자의 느릿한 허밍음이 계속 이어지며
믹서된 주스를 유리 컵에 따르는 여자의 손, 쟁반에 담아 식탁으로 나르는 데서 화면 뒤로 빠지면
주스를 식탁에 준비되어진 잔 받침 위로 놓는 청바지와 스웨터 차림의 진숙,
50 대의 나이가 무색할만큼 젊고 스포티한 모습이고 식탁엔 이미 갓 구워진 토스트 와 오믈렛, 버터, 잼등이
새하얀 냅킨을 가지런히 깐 접시위에 놓여져 무척 정갈 하고 고급스럽게 차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은제 버터 나이프와 포크를 꼼꼼하게 닦아 그 옆으로 놓는 진숙.
이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소리 : 일어 나셨어요?
S#4. 동 현관
신문과 국화꽃 다발을 안고 부산스럽게 들어서는 진숙 또래의 여자(파출부).
파출부 : 세상에 불경기는 불경긴가 봐요. 꽃 시장이 어찌나 썰렁하든지...! (하다가 멈칫 본다)
보면 여자에게로 빠르게 걸어오며 쉬-잇! 조용히 하란 신호를 보내는 진숙.
파출부 : (힐끗 2층 쪽을 보며) 7신데 아직 안 일어났어요?
진숙 : (꽃을 받아들며) 요새 좀 그래요. 어제도 12시 다 돼서 들어왔어.
S#5. 2층 동우의 침실
어둑한 실내. 화면 가득, 설경을 배경으로 진숙과 20대 후반의 남자가 연인처럼 안고 찍은 사진 액자.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상큼한 미소를 띈 남자(동우) 매우 준수하고 스마트한 용모고
카메라, 액자에서 계속 옆으로 이동하면 침대를 끌어 안는듯한 자세로 곤히 자고있는 동우와
언제 들어왔는지 침실 창의 커튼을 젖히는 진숙이다. 일시에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살.
으음... 하며 이불속으로 더 파고드는 동우. 진숙, 동우의 뺨에 쪽! 소리나게 뽀뽀하며
진숙 : 동우, 그만 일어나야지? (하지만 꿈쩍도 않는 동우고) 이러다 늦겠어. 얼른! (하며 진숙이 이불 자락을 들추는데)
느닷없이 와락! 덤벼들어 진숙의 허리를 낚아채는 동우, 그대로 침대에 쓰러뜨린다.
진숙 : 너!
동우, 진숙의 겨드랑이와 허리 할 것 없이 마구 간지럼을 태우고 깔깔거리며 벗어나려는 진숙.
마치 애들처럼 뒹굴며 장난치는 두 모자.
S#6. 1층 식탁
화병 가득한 꽃. 새 소리. 식탁 위로 턱을 괴고 앉은 진숙, 천천히 커피를 음미하며
시선만은 왕성한 식욕으로 아침을 먹는 동우를 애정 가득한 눈으로 지켜본다.
진숙 : 천천히 먹어. 체 하겠다!
베이컨을 접시채 왕창 덜며 싱긋 웃어주는.
동우 : 네.
진숙 : (미소) 오늘 일찍 들어 올거지?
동우 : 왜요? 무슨 날이예요?
진숙 : 토요일이잖아. 같이 드라이브 한지도 꽤 됐고 오랫만에 데이트 좀 해야지.
동우 : 어떡하죠? 저 오늘 약속 있는데.
진숙 : 취소 해. 나 너랑 지낼려구 계획도 다 짜 놨으니까.
동우 : 안돼요, 어머니.
진숙 : 안..돼...?
하는 진숙의 표정에 실망보단 희미한 놀라움의 빛이 스친다.
동우 : 죄송해요. 중요한 약속이라서요. (빈 커피 잔을 내밀며) 커피 좀 더 주실래요?
진숙 : ...(일어나 커피 포트를 들고 오며) 그러고 보니... 요즘 수상해? 일 핑계루 매일 늦질 않나, 무슨 일 있는거지, 너!
하는 진숙, 빈 잔에 커피를 따르며 유심히 동우를 보면 어딘가 머쓱한 표정으로 웃는.
동우 : 하참, 역시 어머니 눈은 못 속이겠는데요?
진숙 : ...??!!.. (갑자기 긴장) 설마.. 너?
동우 : (그제사 싱긋 웃으며) 맞아요. 실은... 저 사랑하는 사람 생겼어요, 어머니.
순간 감전이라도 당한듯 멍하니 표정 얼어붙는 진숙! 그 위로.
소리 : (동우의) 몇 번 말씀드릴려구 했는데 아시잖아요, 이런 일 저한텐 태어나 처음이라 약간 쑥스럽기두 하고.
(하다가 갑자기 놀란 음성) 어머니...???
소리에 퍼뜩 정신 차려보는 진숙. 동우의 컵에 따르던 커피가 콸콸 넘치는데도 계속 따르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몹시 당황한다.
얼른 옆에 있던 수건으로 커핏물에 젖은 테이블 보를 허겁지겁 닦으려는 진숙.
그런 자신에게 화 난듯 거실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소리 지른다.
진숙 : 아줌마! 아줌마!!
S#7. 레스토랑
입구의 문을 열고 활기차게 들어오는 수진, 안을 둘러 보면 중앙 테이블에 앉아 손 번쩍! 드는 동우.
수진, 활짝 웃으며 바삐 걸어가 동우의 옆으로 앉는다.
수진 : 언제 왔어요?
동우 : 좀 전에. 야, 수진이 오늘따라 더 이쁘다?
수진 : 정말요? (하며 자신의 투피스 차림을 훑으면)
약간 들려진 수진의 옷 칼라를 다정하게 바로 해주는.
동우 : 정말이야. 어디가서 뽀뽀나 했음 좋겠다.
수진 : (얼른 주변을 두르며) 남들 들어요!
동우 : 들음 어때? 여기서 그냥 할까?
수진 : (황당) 점점?? 농담할 정신 없어요. 나 어젠 밤새 한 숨도 못 잤단 말예요.
동우 : 왜?
수진 : 동우씨 어머니, 나 맘에 안 드신담 어쩌나 해서요.
동우 : 그런 일 절대 없을거니까 걱정 말랬지? 내 맘에 든거면 어머니 맘에 든거나 마찬 가지야.
수진 : 말두 안 돼.
S#8. 진숙 집. 안 방
딸깍! 화장대 위로 브러쉬를 놓는 손.
화면 빠지면, 막 머리를 곱게 뒤로 말아올 린 진숙, 화장과 외출복까지 완벽하게 차려 입은 모습이다.
진숙, 머리 손질을 마무리 하며 표정없는 얼굴로 거울속의 자신을 물끄러미 들여다 본다.
S#9. 레스토랑
무슨 말인가에 웃다가 언뜻 생각난듯
수진 : 참, 동우씨.
동우 : 왜?
수진 : 나... 우리 부모님 두분 다 돌아가신거 말씀드렸어요?
동우 : 물론이지. 대신 오빠 밑에서 아주 씩씩하게 잘 자란 처녀라고 기대하시랬어.
수진 : 그랬드니 뭐라세요?
동우 : 뭐가?
수진 : 어른들 그런 걱정 있잖아요, 왜. 부모없이 컸다면
동우 : (말 자르며) 쓸데없는 소리. 그렇게 따지면 나도 아버지 없이 컸는데, 뭘 그래?
S#10. 진숙 집.
거실에서 안 방 따르르릉-! 따르르릉-! 화면 가득 쉼 없이 요란하게 울리는 거실의 전화벨 소리.
카메라, 거실의 전화통에서부터 열려진 안 방 문으로 천천히 팬 해서 들어간다.
보면, 외출 차림 그대로 여전히 화장대 앞에 꼿꼿이 앉아있는 진숙.
전화벨이 울리는 데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멍한 시선으로 거울속의 자신만을 꼼짝없이 들여다본다.
어느 순간 뚝! 끊기는 전화 벨 소리. 차츰 표정이 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하는 진숙.
S#11. 레스토랑
멀리 카운터에서 수화기를 내리고 걸어오는 동우를 지켜보며 긴장한 얼굴로 물을 한 모금 마시는 수진.
동우, 자리에 앉자마자
수진 : 안 계세요?
동우 : 계실리가 없지. 벌써 30분이 지났는데.
수진 : 그런데 왜 이렇게 늦으시죠?
동우 : 글쎄, 토요일이라 길이 많이 막히나?
수진 : (숨을 크게 내쉬며) 나 왜 이렇게 떨리죠?
동우 : 떨거 없다니까 그러네?
수진 : 자기 어머니니까 그렇지, 동우씨도 내 입장 돼 봐요. 떨리나 안 떨리나.
동우 : 글쎄 떨지마. 우린 무조건 결혼하게 돼 있어.
수진 : 그걸 어떻게 장담해요?
동우 : 그럴일이 있어.
수진 : 그럴 일이라뇨?
동우 : (싱긋) 나 수진이랑 결혼 못하면 죽어 버린다고 막 엄포를 놨거든.
수진 : (기가 막혀) 네에...?!!
S#12. 진숙 집. 안 방
화면 가득 화장대 거울속의 참담하게 일그러져 있는 진숙 얼굴. 뭔가 감정이 북 받치는듯 볼을 타고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리면
그 바람에 마스카라의 검은 물이 눈가로 흉측하게 번져 나간다.
감정을 참듯 부글거리는 입술을 질끈 깨무는 진숙, 화장대 위의 크리넥스를 홱! 잡아 빼더니
얼굴의 화장을 미친듯이 빡빡 닦아낸다. 얼굴의 메이크 업, 엉망으로 뭉개지고
어느 순간 입술을 비집고 신음처럼 터져 나오는 소리!
진숙 : 죽어..? 죽는다고?! 니가 내 앞에서 죽어?!!
하며 벌떡 일어나 발작적으로 화장대 위를 확! 쓸어 버리는 진숙, 동시에 주먹을 들어 화장대 거울을 퍼-억- 내려친다!!!
쩌억- ! 사방으로 금이 가며 핏물로 짓뭉개지는 거울의 표면.
S#13. 레스토랑
다 비어버린 물컵만 만지작 거리며 초조한 얼굴로 앉은 동우와 수진. 불안하게 자리를 뒤척이며 계속 출입구 쪽만 보는.
동우 : 정말 이상하네? 벌써 두시간이 다 됐는데 무슨 사고라도 난거 아냐?
수진 : 설마.. 다른 급한 일이라도 생기셨겠죠.
동우 : 사고 말고는 전화 못 할 급한 사정이 뭐 있겠어.
수진 : (걱정스럽게 보며) 집에 들어가 봐야 되는거 아녜요?
동우 : 글쎄...
하며 무심코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갑자기 표정이 밝게 펴진다.
동우 : 어머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동시에 입구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수진. 보면,
진숙!!! 긴 실크 스카프를 늘어뜨린 세련된 차림으로 얼굴 가득 여유있는 미소를 띄운채 또각또각 그들을 향해 걸어온다.
놀라서 후다닥 일어나는 수진, 얼른 머리와 옷 매무새를 고치며
수진 : 동우씨, 나 괜찮아요?
동우 :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최고야. 걱정마.
소용없이 바짝 긴장해서 진숙을 보는 수진. 진숙을 마중하는.
동우 :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어머니?! 우린 사고라도 난 줄 알고 걱정 했잖아요.
진숙 : 정말 미안해. 차가 막히는 바람에 좀 늦었어. (수진 보며) 아가씨가 바로 내 아들 혼을 뺀 장본인 인가?
하며 수진에게 악수를 청하는 진숙의 손에 검은 레이스로 된 우아한 장갑이 끼워져 있고 반사적으로 진숙의 손을 덥석 잡는.
수진 :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악수하면)
진숙, 손이 통증이 오는듯 하지만 표정 흔들림없이 지그시 눌러 참는다.
흐뭇한 미소로 지켜보는 동우의 얼굴위로 웨딩 마치가 장중하게 울려 퍼진다.
S#14. 야외 결혼식장
웨딩 마치 이어지며 싱그러운 초 여름의 햇살과 미풍.
동우의 팔짱을 낀 웨딩 드레스의 수진이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천천히 주례단을 걸어 나온다.
그 뒤로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진숙과 수진 오빠 내외, 각자의 친구나 친지들에게 둘러싸여 인사를 나누다가
서로 시선이 마주치면 정중히 절을 하는 모습이고.
수진의 옆을 따라가며 열심히 박수를 치는 털털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 수진의 친구인 혜경, 그리고 동우 회사의 동료들 모습.
S#15. 식장입구
결혼식의 느낌이 그대로 이어지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어느새 신혼복으로 갈아 입은 동우와 수진, 풍선등으로 요란하게 치장된 신혼차로 걸어 나오면
그 옆을 따르던 짖궂은 동우의 회사 동료들, 새 신랑 새 신부의 머리 위로 불시에 폭죽과 샴페인을 터뜨려 댄다.
분수처럼 흩뿌려지는 샴페인의 세례를 맞으며 수진을 급히 감싸안는 동우, 기다리고 선 신혼 차 안으로 얼른 뛰어들고
기겁해서 사방으로 흩어지는 하객들. 소란스런 웃음들. 눈부신 햇살 만큼이나 맑고 투명하게 빛나는 식장 풍경.
부웅! 출발해 떠나는 차창 밖으로 나란히 손 내밀어 흔드는 동우와 수진을 향해 마주 손 흔들어 주는 사람들.
그 틈에 서서 동우의 신혼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조금의 미동도 없이 꼿꼿이 지 켜보고 선 진숙.
얼굴 가득했던 웃음이 차츰 연기처럼 사그러들며 이내 돌처럼 싸늘하게 굳어 버린다. 그 얼굴 위로 화면 천천히 F.O 된다.
S#16. 비행장 활주로
(며칠 후 오후)
육중한 굉음을 지르며 활주로 위로 바퀴를 내리며 착륙하는 비행기.
S#17. 공항 국제선 출구
출구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틈으로 트렁크가 실린 포터를 밀며 나오는 동우와 수진.
수진 : 도착했다고 전화부터 드려야 되는거 아녜요?
동우 : 출발할 때 했음 됐지 뭐하러 그래. 금방 갈건데.
수진 : 그래두요.
동우 : 괜찮아, 글쎄.
하며, 청사 현관으로 향하는데 바로 뒤에서 들리는.
소리 : (진숙) 동우야!
깜짝 놀라 돌아보는 동우와 수진.
동우 : 어머니...?!
모자까지 쓴 우아한 귀부인 차림으로 환하게 웃으며 서있는 진숙, 곧 바로 팔을 벌려서 동우를 꼬옥 안는다.
소리 : (동우) 아니 어쩐 일이세요? 나오신단 말씀도 없으셨잖아요.
S#18. 도로. 진숙 차안
진숙 : (운전하며) 집에 가만히 앉아서 어떻게 기다려? 니들 오기만 눈 빠지게 기다렸는데, 그래 구경은 실컷 했니?
뒷좌석에 동우와 나란히 앉은.
수진 : 그렇지도 못했어요, 어머니. 동우씨가 잠만 자는 바람에요.
동우 : 대신 호텔비는 본전 뽑고 좋았잖아.
수진 : (당황해서 얼른 동우의 팔을 꼬집는) 아휴, 동우씨....!
진숙 : (빽 미러로 동우를 빤히 보며) 동우, 결혼하드니 말투가 어째 징그러워진 거 같다?
동우 : (몸을 앞으로 쑥 내밀며 농담하듯) 질투나세요?
진숙 : (웃음) 그걸 말이라구 해?!
따라웃는 동우와 수진.
S#19. 진숙의 집 앞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진숙의 차. 넓은 정원이 딸린 무척 고급스러운 2층 저택 앞으로 차가 멈추면
뒷문에서 내려 서는 동우와 수진. 수진, 흥분과 기대에 들뜬 표정으로 각오를 다지듯 집을 올려다 본다.
S#20. 2층 신혼 방 앞
방문을 여는 동우의 뒤를 따라 트렁크 들고 방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는 수진, 놀라서 우뚝! 숨을 멈춘다.
수진 : 어머...!!!
보면, 신혼 특유의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방 안 전체가 색색깔의 온갖 꽃바구니들로 치장되어져
마치 동화속의 꽃나라가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 같다!
홀린 듯 방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수진. 동우도 신기한듯 방 안을 둘러보며 수진을 본다.
동우 : 수진인 좋겠어? 어머니한테 이런 대접도 다 받고.
꽃냄새를 맡으며 황홀감에 젖어 어쩔줄 모르는 수진,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데.
소리 : (진숙의) 신경쓰느라 썼는데 맘에 드는지 모르겠구나?
보면, 그들의 뒤로 기척도 없이 다가와 서 있는 진숙. 달려가 진숙의 팔에 매달리며 감격에 목이 멘 음성으로.
수진 : 너무 너무 이뻐요, 어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진숙 : (빙그시 웃으며) 인사는 나중에 하고 옷 갈아입고 내려와. 저녁 준비해 놨으니까.
S#21. 식탁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신선로 냄비를 식탁으로 나르는 진숙 보면,
전문 한식집을 뺨 칠 정도로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에 입이 딱 벌어진 표정 들로 앉아있는 동우와 수진.
수진 : 이걸 다 어떻게 혼자 만드셨어요?
진숙 : (식탁의 중앙에 신선로를 놓아주며) 며느리한테 잘 보이려면 이 정돈 해야 하는 거 아냐?
수진 : 어머...!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 무안하다)
동우 : 솔직히 고백하세요. 이거 파출부 아줌마가 하신거 맞죠?
진숙 : (피식) 아줌마 내보낸지 벌써 3일째야. 내가 말 안 했니?
동우 : 아뇨, 갑자기 왜요?
진숙 : 이젠 집 안에 여자가 둘이잖아. 게다가 수진이랑 친해질려면 그게 더 나을 것 같았어.
여자들은 살림 나눠 하다보면 금방 친해지거든.
하며 진숙, 수진과 시선을 맞추고 다정하게 웃어 보인다. 몸 둘바를 모르고 수줍게 살풋 얼굴을 붉히는 수진.
동우 : 고부간에 이거 스타트가 너무 좋은거 아녜요?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요?
진숙 : 불길해지다니?
동우 : 두 여자분이 합세하면 나만 죽어날거잖아요.
마주보며 웃는 수진과 진숙...!
진숙 : 실없긴...! 어쨌든 절간같던 집이 니들 오니까 그래도 사람 사는데 같구나.
동우 : 조금만 기다리세요. 수진이가 벌집을 만들어 놀 테니까.
진숙 : 무슨 소리야, 그건?
동우 : 애 욕심이 보통이 아니거든요. 다섯은 기본이래요.
수진 : (민망) 내가 언제요...?
진숙 : ...애긴 천천히 생각해. 미리 가져 신혼 재미만 축 낼 이유 없잖니?
수진 : 저도 그럴 생각이예요, 어머니. 그리고 저... 어머니 실망하시지 않게끔 열심히 잘 할께요.
진숙 : (본다) 그래? 자신 있는거니?
수진 : (자신만만) 네, 어머니!
진숙 : 시원시원해서 좋구나. 우리, 금방 친해질 것 같지?
S#22. 2층 침실
웃고 떠들며 방안으로 들어서는 동우와 수진.
동우 : (문 닫으며 심각한척) 아무래도 나, 이 결혼 잘못한 거 같애.
수진 : 무슨 소리예요?
동우 : 어머니가 벌써부터 며느리만 챙기시잖아.
수진 : (기가 막혀) 그래서요?
동우 :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나 열 받았다고!
수진 : (놀리듯 다시) 그래서요.
동우 : 죽여 버리겠어! 일루와!
하며 수진을 번쩍 안아들고 침대로 몸을 던지는 동우.
꺄악-! 비명지르는 수진, 동우와 깔깔거리며 장난치다가 미처 생각 못했단듯 문 밖을 가리키며 얼른 조용하란 손짓한다.
쿡, 웃음 소릴 죽이며 서로의 눈을 지그시 응시하는 두 사람. 수진에게로 부드럽게 입술을 드리우는.
동우 : 사랑해.
하자마자 왈칵! 동우의 목을 부둥켜 안는 수진. 둘, 열정적으로 키스하며 불이 붙는다. 성급히 수진의 옷을 풀어헤치는 동우.
S#23. 1층 안방
질끈! 잠옷 가운의 끈을 동여매며 방의 형광등을 딸깍! 끄는 진숙, 방을 가로질러 침대 속으로 파고 들며 벽면에 기대 앉는다.
이불을 가지런히 다듬고는 침대 옆 탁자의 스탠드를 탁 켜고 탁자위에 놓였던 책을 무릎위로 펼쳐드는 진숙.
S#24. 2층 침실
켜진 스탠드 불 빛. 침대의, 이미 알몸이 된 서로의 몸을 탐해 나가는 동우와 수진.
동우, 수진의 목덜미에 고개를 떨구고 탐스럽게 애무하면 소리없이 탄성을 터뜨리는 수진. 이 때.
소리 : (진숙의) 동우 자니?
하며, 예고도 없이 벌컥! 열리는 문!!
기겁해서 떨어지는 두 사람, 다급하게 이불 자락을 끌어올려 자신들의 목 밑까지 감추고 본다.
보면, 문간에서 스스로 당황해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의.
진숙 : 어머, 미안! 정말 미안해. 습관이 돼서 그만...! (서둘러 도로 나가려는 진숙)
동우 : (재빨리 잠옷 가운을 집어 걸치며) 괜찮아요, 어머니!! 무슨 일이세요?
덩달아 허둥지둥 자신의 가운을 찾으려고 침대 밑을 더듬는 수진. 그런 수진을 황급히 손짓으로 만류하는.
진숙 : 야냐, 일어나지 마. 금방 갈거야. (동우에게) 미안하지만 수면제 좀 있니? 내껀 다 떨어졌어.
(하며 빨간 약통을 흔들어 보인다)
동우 : 또 잠이 안 오세요?
진숙 : 만성이지 뭐. 이럴줄 알았음 밖에 나가 약국이라도 찾는건데...!
동우 : 무슨 말씀이세요. 명색이 제약회사 다니는 아들 뒀다 어디 쓰시게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며 동우, 방의 한쪽 구석에 딸린 다용도실로 걸어가 문을 열고 안을 뒤진다.
둘만 남겨진 진숙과 수진.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어색하게 몸을 가누는 수진을 뭔가 묘한 열기가 가득찬 시선으로 차근차근 뜯어보고 선 진숙.
초조하게 동우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수진.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헤메다가 언뜻 진숙과 시선이 부딪히면
여전히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수진을 쏘아보듯 보는 진숙, 마치 수진의 알몸을 다 꿰뚫어 보는 것 같다.
수진 : ...??!!!..
갑작스런 수치심과 당황으로 바짝 몸이 오그라드는 수진, 무슨 말이든 할 테세로 입을 떼려는 순간
약 봉지를 찾아 들고 돌아서는 동우, 진숙쪽으로 걸어온다. 얼른 동우에게로 시선 돌리는 진숙.
동우 : 여기 있어요. 대신 한알 이상은 안되는거 아시죠?
진숙 : 고마워. 본의 아니게 방해해서 정말 미안한데? 잘자. (수진보며) 너두?! (문 닫아주며 간다)
수진 : (표정 한구석이 어딘가 찝찝하다) ...
침대로 돌아와 눕는 동우, 고개 돌려 문득 미안한 표정으로 수진을 본다.
동우 : 어떡하지? 다시 시작할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수진 : ...!!!...
둘, 서로를 빤히 보다가 쿡쿡 웃는다.
수진 : 시계나 줘요. 내일 일찍 일어날려면 타임벨 맞춰놔야 하니까.
동우에게서 시계를 건네받는 수진, 시간을 맞추고 타임벨 버튼을 누른다.
<타임커트> 깜깜한 실내. 창문으로 흘러드는 흐릿한 달빛.
카메라, 누군가의 시선처럼 침대의 자고있는 동우와 수진의 모습을 쭈욱 훑어 본다.
잠시후, 그들의 곁으로 옷깃 스치는 소리가 나더니 딸깍! 문 닫히는 소리 들린다.
그 소리에 설핏 눈 뜨는 수진, 곧 꿈인양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S#25. 진숙 집 전경
어둠 속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우뚝 선 진숙의 저택.
잠시 후 1층 진숙 방의 스탠드 불 빛, 탁! 꺼뜨려지며 완전한 어둠속으로 침잠하는 진숙의 저택.
그 위로 화면, 연속적으로 급격히 오버랩 되어 정원에서 말게 지저귀며 날아 오르는 새들과 뿌옇게 동이 트는 새벽의 청신한 햇살.
S#26. 집 안. 2층 침실
눈부신 햇살. 새소리. 뒤척이다가 어느 순간 번쩍! 눈 뜨는 수진. 후다닥 일어나 옆을 본다. 동우의 잠옷이 얌전히 개어져 있다.
믿기지 않는 얼굴로 얼른 탁자의 시계를 집어보는 수진. 9시를 넘기고 있는 시각이고 타이벨 버튼, 꺼져 있다.
S#27. 1층 거실
쿵쾅거리며 한달음에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수진, 파랗게 질려 1층을 둘러 본다.
수진 : 어머니? 어머니...?!
하지만 썰렁하니 쥐새끼 하나 없는 텅 빈 집안. 아무도 없다....!
수진, 거실 한 복판에 덩그러니 서서 황당한 얼굴로 실내를 두리번거린다. 이 때 찢어질 듯 울리는 전화벨 소리!
화들짝 놀라며 잡아채듯 수화기를 드는.
수진 : 여보세요?
필터 : (동우) 나야, 일어났어?
수진 : (울상) 동우씨! 나 어떡해요? 왜 나 안 깨웠어요?!
필터 : (동우) 늦잠 실컷 자라구 그랬지.
수진 : 그런게 어딨어요? 어떻게든 깨워야지! 시계 타임벨은 누가 껐어요? 동우씨가 껐어요?
S#28. 동우의 회사 약품 개발부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통화하고 있는.
동우 : (웃음) 생사람 잡지마. 난 누가 안 깨우면 둘러쳐도 모른다구.
동우, 현미경과 플라스크를 오가며 시약 테스트를 하는 등 쉬지않고 일하며 전화하는 모습이고
그 뒤로 동우처럼 흰 가운을 차려입은 동우의 동료들, 제각각 복잡한 실험기기나 컴퓨터 앞에서 씨름하는 등
부산한 연구실 분위기가 보여진다.
필터 : (수진) 이상하네? 난 분명히 안 껐는데...! 암튼 난 이제 첫 날부터 큰 일 났어요.
동우 : 뭐가?
필터 : (수진) 어머니한테 찍혔잖아요.
동우 : 찍히긴 나한테 찍혔지! 잘 할거라고 아주 호언 장담을 하더니? (웃음)
S#29. 진숙 집. 거실
잔뜩 미안한 얼굴로 수화기를 든
수진 : 정말 미안해요. 동우씨한테도 그렇지만 어머닌 이제 무슨 낯으로 뵈요.
필터 : (동우) 걱정 마. 어머닌, 내가 너 깨울려구 하니까 되려 말리시든데? 푹 자게 두라구.
수진 : 정말이예요?
필터 : (동우) 못 믿겠음 어머니한테 직접 물어보든지.
S#30. 진숙 집. 1층
진숙의 방 문 열리며, 진공 청소기의 소음과 함께 청소기를 밀고 들어오는 수진, 멈칫! 방 안을 둘러 본다.
흡사 어느 호텔 방에라도 들어선 착각이 들 정도로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방 안.
다소 살벌할 정도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묘한 얼굴로 망설이다가 내친 김이란듯 청소기로 바닥을 쓰는 수진.
무심코 장식 선반을 지나다가 사뭇! 놀라는 얼굴로 다시 돌아 본다.
보면, 선반의 전체가 일렬로 세워진, 똑같은 모양과 크기의 액자들로 빽빽히 진열 되어져 있다.
모두 동우와 진숙의 과거나 현재가 찍혀진 액자들이고
수진, 그 중에서 갓난 아기의 동우를 안은 젊은 진숙과 그녀의 곁에선 젊은 남자의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의 액자를 들고 본다.
서글서글한 미소의 남자, 지금의 동우와 놀라울 만큼 흡사한 모습이고 그 위로 불쑥
소리 : (진숙) 너 여기서 뭐 하는거니?
깜짝 놀라 돌아보는 수진. 어느새 돌아온 진숙이 잔뜩 의심하는 얼굴로 수진에게 다가온다.
얼른 액자를 제자리에 놓고 청소기를 끄는
수진 : 어, 언제 오셨어요? 소리도 못 들었는데.
진숙 : 여기서 뭐 했냐니까??!!
수진 : (당황!) 그냥, 청소하다가 사진이 있길래... (어색한 미소로) 전 동우씨가 어머닐 닮은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아버님을 그대로 닮았네요? (하는데)
표정 일그러지며 수진이 들고 보던 액자 앞으로 성큼 성큼 걸어와 서는 진숙, 탁! 소리나게 액자를 덮어 버린다.
움찔! 놀라는 수진. 보며 차갑게 씩 웃는.
진숙 : 앞으론 내 허락없이 이 방 드나들지마. 파출부 있을 때도 내 방 청손 내가 했어. 알겠니?
수진 : ...네.
진숙 : 나가 봐.
하곤 옷장 앞으로 걸어가는 진숙. 옷장 문 열고 옷을 훌렁 벗어 제끼며 갈아 입기 시작한다.
수진, 민망한듯 급히 눈길을 돌린다.
진숙 : (힐끗) 왜 그러고 섰어? 나 옷 갈아 입는거 구경할거야?
수진 : 아뇨, 저... 아침에 늦게 일어나 죄송해요, 어머니. 직장 다닐때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진숙 : 신경쓸 거 없어. 너 못 일어났다고 달라질 일 없으니까. 너만 괜찮다면 동우 아침은 앞으로 내가 준비할게.
둘이서 수선떨거 없잖아.
수진 : 어머, 아녜요. 제가 해야죠, 어머니! 낮에 동우씨한테 전화와서 핀잔을 얼마나 들었는데요.
또 당연히 제가 해야할 일이구요.
진숙 : ...(보다가) 좋을데루! 그럼 저녁 준비도 혼자 할 수 있겠지?
S#31. 부엌
음식 보글거리는 소리, 들어오는.
진숙 : 다 됐니?
보면 머리를 아무렇게나 틀어올린 수진이 땀을 뻘뻘 흘리며 해물탕쯤의 요리를 하고 있다.
수진 : 거의 다 됐어요, 어머니.
진숙 : (끓고 있는 냄비를 들여다 보며) 이게 뭐야?
수진 : (수줍게 웃는다) 해물탕이예요. 동우씨가 그러는데 어머니께서 좋아하신다 그래서요.
진숙 : 그래? 어디 볼까?
국자를 들어 한 모금 떠 먹어보는 진숙, 수진 기대에 찬 얼굴로 지켜본다.
수진 : 어때요, 어머니?
진숙 : (조용히 국자를 내려놓고) 넌 입도 없니? 맵고, 짜고 , 돼지 입에나 맞을까, 이런 걸 사람이 어떻게 먹겠어?
수진 : (황당) 그렇게.... 이상해요?
진숙 : 버리고 다시 해.
하며 수진이 뭐라 말 하기도 전에 냄비째 들어 개수대로 와락! 쏟아붓는 진숙. 순식간에 오물 찌꺼기와 뒤엉키는 해물탕!
수진 : ...(벙-!)..
진숙 : 다시 할 수 있지? (하고 휑하니 나간다)
수진 : ...(그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개수대만 멀거니 쳐다본다)...
S#32. 1층 안방
화면 가득, 핏 자국이 낭자한 어는 방 안을 어지럽게 비취 보이는 ENG카메라.
화면 빠지면, 뉴스를 보도하고 있는 TV스크린이고 자신의 가족을 무참히 살해한 50대 정신병 남자의 사건을
한창 떠들어 대는 리포터의 해설. 취조 당하는 남자와 살해 무기인 피 묻은 칼 등을 차례로 보여주는 TV화면.
소파에 푹 꺼질 듯 앉아 TV를 보고 있는 진숙.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소리 : (수진의) 어머니!
그러나 못 들은건지 무시 하는 건지 진숙, 계속 TV만 본다. 다시 들리는.
소리 : (수진) 어머니!
진숙 : ...(TV에 시선 꽂은채 리모콘 들어 볼륨을 높인다)
마침내 문을 열고 보는.
수진 : 어머니! 다 됐는데 간 좀 봐 주시겠어요?
순간 수진을 휙! 쏘아보는 진숙.
진숙 : (벌컥) 넌 요리 하나 혼자서 못 만드니?!
S#33. 부엌
보글 보글 새로 끓여지고 있는 해물탕 냄비. 국자로 간을 보는 진숙.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진숙의 눈치만 보고 선 수진.
수진 : 어떠세요?.. 짜요?
진숙 : (의외로) 됐어. 이 정도면 먹을만은 하겠어.
수진,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진숙 : 파랑 마늘만 좀 더 넣어. 맵댔더니 아예 맹탕을 만들었구나.
수진 : 네.
수진, 재빨리 파랑 마늘을 도마에 놓고 칼을 들다가 언뜻 자신없는 표정으로 망설이며 돌아본다.
수진 : 파 얼만큰 넣을까요, 어머니?
진숙 : (나가려다 말고 돌아보며) 한 뿌리면 되겠지.
수진 : 마늘은요?
하는데 진숙, 별안간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져선 달려들 듯 빠르게 수진에게로 다가온다.
덜컥! 두려움에 휩싸이는 수진.
진숙, 수진의 손에 든 칼을 거칠게 확! 뺏어들며...
진숙 : 이리 내! 차라리 나더러 하라지. 그 말을 그렇게 빙빙 돌려? 하기 싫은거 누가 억지루 하래?!!
(하며 쾅쾅 소리나게 파를 썰어댄다)
수진 : (핼쓱해지며) 그게 아니라 어머니...!
진숙 : 듣기 싫어! 하기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해! 내가 다 할 테니까!! 어디서 생색이야, 생색이!!
수진 : (겁에 질려) 어머니. 그건 오해세요. 전 어머니 입맛에 맞는지 자신이 없어서.
그 말에 우뚝! 수진을 쏘아보는.
진숙 : 그럼 니가 자신 있는게 뭔데?!
수진 : (대답할 엄두를 못내고 시선 떨군다) .... 죄송해요, 어머니.
코웃음치며 다진 파, 마늘을 끓고 있는 냄비에 무더기채 풍덩! 풍덩! 집어넣는 진숙, 칼로 아무렇게나 냄비속을 휘저으며
진숙 : 죄송하겠지! 요즘 젊은 것들, 하나같이 남편 가랭이만 차고 앉으면 그게 결혼인 줄 알고 까불어.
음식간 하나 못 맞추는 것들이!
수진 : (모멸감으로 굳은채 시선만은 냄비를 마구 휘젓는 칼과 진숙을 두렵게 번갈아 본다....)
<타임커트, 동 식탁>
소리 : (동우) 야! 정말 대단한데? 수진이 다시 봐야겠다? (식사하며 좋아서 표정이 찢어지는 동우)
진숙 : 그렇게 맛있니?
동우 : 그럼요. 전 또 맛 없으면 어떡하나 고민 했는데 이 정도 솜씨면 어머닐 능가하고도 남겠어요.
수진 : ...(고개 푹 숙이고 밥알을 세듯 뒤적이며 식사한다)...
진숙 : (의미있는 웃음) 누군지 음식 만든 사람은 기분이 아주 좋겠구나?
수진 : ...!!!... (의미를 알고 퍼뜩 표정 굳는다)
속도 모르고 떠드는.
동우 : 누구긴요. 저랑 결혼한 여자죠.
진숙 : (빙글거리며) 확실해?
수진 : ...!!!... (입술을 깨문다)
동우 : 어머닌 보시고도 그러세요?
수진 :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동우씨, 실은 내가 한게 아니라 어머니가 하신 거예요.
진숙 : (놀라지도 않고) 어머, 얘! 니가 한걸루 하랬잖아?
동우 : (...!!!...) 그럼 그렇지...?! 어쩐지 내 입에 꼭 맞더라!
속았단듯 웃음을 터트리는 동우. 수진, 같이 웃으려 애쓰지만 쉽지 않다.
그런 수진을 보며 고소를 머금고 일어나는.
진숙 : 먼저 일어날게. 난 방에서 TV나 봐야겠다.
동우 : 왜 더 안 드시구요.
진숙 : 많이 먹었어.
수진 : ...(표정 찝찝)...
S#34. 1층 안 방
의자에 앉으며 리모콘으로 TV를 켜는 진숙. TV의 채널을 연속극에 맞추고 느긋한 자세를 취한다.
S#35. 1층 부엌
뭔가 골똘히 생각에 빠진 표정의 수진. 물 흐르는 싱크대의 수도 꼭지를 잠그고 다 씻은 그릇을 건조대로 차곡차곡 쌓다가
도저히 계산이 안된다는듯 무거운 표정을 털어낸다.
설거지의 마무리를 하고 수건에 손을 닦는 수진. 점검하듯 안을 둘러보며 이윽고 부엌의 불을 딸깍! 끄고 나간다.
S#36. 1층 안 방 앞
문 앞에 선.
수진 : 저 올라 갈께요, 어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대답없이 TV소리만 흘러 나온다.
수진 : ....(떨떠름한 얼굴로 2층 계단을 오른다)
S#37. 2층 복도
계단을 꺽어 올라와 침실로 향하던 수진. 문득 빼꼼히 열려진 욕실 문 앞에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진 동우의 옷가지를 본다.
욕실 안의 샤워 물소리.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욕실 앞으로 가는 수진. 막 옷가지를 주워 드는데 안에서 나지막한 동우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멈칫! 뭔가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밀며 슬쩍 안을 들여다 보는 수진.
순간!!! 기절 초풍할 듯이 놀라 그대로 바짝 얼어 붙는다!!
보면, 완전히 발가벗고 선 뒷 모습의 동우와 동우의 벌거벗은 몸뚱이를 비누칠 해주고 있는 진숙!
충격과 경악으로 문간에 멍하니 선 수진을 언뜻 고개 들어 보는 진숙!
흠칫! 하지만 몸이 굳어 꼼짝도 할 수 없는 수진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빤히 보는 진숙.
시선을 아예 수진에게 못 박은채 보란듯 동우의 다리 사이를 천연덕스럽게 씻겨 주기 시작한다.
수진 : ...!!!...
경악해서 비틀! 한 걸을 뒤로 물러 나다가 어느 순간 홱! 몸을 돌리는 수진, 복도를 달려 정신없이 자신의 침실로 뛰어 들어간다.
S#38. 2층 침실
쾅! 문을 열고 미친듯이 안으로 달려드는 수진. 좀 전의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단 듯 우왕좌왕 하다가
털퍽, 침대로 주저 앉으며 부들거리는 두 손을 꼭 모아 쥐고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다.
그 때 수건으로 대충 몸을 감싼 동우가 허겁지겁 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동우 :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하며, 수진의 어깨로 손을 뻗으면 질겁하는.
수진 : 저리가요!!
마치 더러운 벌레라도 되듯 재빨리 동우의 손을 털어내는 수진, 얼른 자리를 옮겨 앉으면.
동우 : (황당한 표정으로) 너...?! 미쳤어? 왜 그래?
수진 : (휙 쏘아본다) 미쳤냐구요? 내가요??
놀란 눈으로 수진을 쳐다보는 동우, 물기를 뚝뚝 흘리며 섰다가 문을 닫고 돌아 선다.
동우 : 갑자기 소릴 지르니 그런 생각이 안 들어? 무슨 일인데 그래?
수진 : 당신 방금...!!! (하다가 곧 감정을 수습하고 최대한 음성을 낮추며 빠르게) 방금 어머니랑 욕실에서 뭐 했어요?
동우 : (눈 둥그렇게 뜨고) 뭘 하다니? 샤워하고 있었지. 왜?
수진 : ...!!!... (어이가 없다) 몰라서 이래요? 어떻게 다 큰 남자가 어머니 앞에서...! (차마 말을 못한다)
동우 : (!) 난 또 무슨 큰일 난줄 알았네. 그래서 이러는 거야?
수진 : (뻥) .. 뭐라구요?
동우 : 다 큰 남자라도 어머니 앞에선 어린애일 뿐이야. 도대체 지금 무슨 상상을 하는거야?
수진 : 상상이 아니라 눈에 보인 그대로를 묻는 거예요. 난 아직도 내 눈이 의심스러운데 동우씬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부끄럽지도 않냐구요!!
동우, 그런 수진을 되려 이해할 수 없단 듯 본다.
동우 : 부끄럽다니?
S#39. 문 밖
화면 가득 문 턱에 발 뒤꿈치를 붙이고 선 실내 슬리퍼의 두 발. 그 위로
소리 : (동우) 어머니가 자식 몸 씻어주는게 왜 부끄러워? 부끄러운게 더 이상한거지. 별 일도 아니잖아.
소리 : (수진) 별 일 아녜요? 결혼까지 한 남자가 아직 엄마가 씻겨줘야 목욕을 하는게 별일이 아니라구요?!
소리 : (동우) 이제껏 그래왔던 일이야. 수진이 넌 어렸을 때 엄마랑 같이 목욕 안 했어?
소리 : (수진, 평정을 잃고 폭발한다) 건 경우가 틀려! 난 여자고 동우씬 남자야! 동우씨 말대로람 다 큰 여자라도
자기 아버지 앞에서 발가벗고 씻겨 달란거나 똑같단 소린데, 맞아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하는 소리들에서 카메라, 그대로 위를 비추면
문에 등을 기대 선채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진숙, 비웃듯 한쪽 입술을 차갑게 비틀어 올리며 화면 밖으로 쓰윽 빠져 나간다.
S#40. 2층 침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단듯 노려보는 동우와 수진.
동우 : ...(먼저 풀며) 알았어. 앞으론 절대 안 그럴게. 됐지?
수진 : 난 지금 하라마라는걸 따지는게 아녜요. 문제가 뭔질 동우씨가 정확히 알라는 거지.
동우 : 알아.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해. 내가 안 그러면 될 걸 갖구 꼭 그렇게 화를 내야겠어?
수진 : ...!!!... (입을 다물어 버린다)
동우 : (달래듯) 다신 그런 일 없을거야. 맹세해. 응? (하며 수진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동우)
그러나 혼란스러운 얼굴로 꼿꼿하게 선 수진.
S#41. 부엌 안 (다음날 아침)
위-잉! 돌아가는 믹서기의 작동 버튼을 눌러 끄는 손. 믹서된 주스를 컵에 따르는데.
소리 : (수진) 어머, 어머니!!
소리에 화면 빠지면 깔끔하게 아침 단장을 한 진숙, 이미 식탁을 준비하고 있다가 돌아본다.
깜짝 놀란 얼굴로 막 부엌에 뛰어드는.
수진 : 언제 일어 나셨어요?
진숙 : 좀 전에. (하곤 하던 일 계속한다)
수진 : (당황해서 허둥거리며) 그럼 절 깨우시지 그러셨어요.
진숙 : 뭐하러?
하는 진숙, 부드러운 음성이지만 수진을 보는둥 마는둥 무시해 버리고 바쁘게 혼자 손을 놀린다.
수진 : (당황해서) 제가 일 해야죠. 이리 주세요. 제가 할께요. 어머니.
하며 주스 잔들이 얹힌 쟁반에 손을 뻗는데 순간 수진의 손목을 탁! 잡는
진숙 : (미소로) 됐어. 30년 가까이 하던 일이라 너보단 내가 더 나아. 내가 할 테니까 넌 가서 니 일이나 보든지 해.
수진 : ....!!!... (머쓱! 해서 쟁반에서 손을 뗀다)
진숙, 자신이 쟁반을 들고 돌아서며
진숙 : 미안하지만, 좀 비켜 줄래?
수진 : (얼른 비켜나며) 네...!
식탁위로 쟁반을 놓는 진숙을 보며 웬지 소외당하는 느낌의
수진 : 제가 뭐... 도와 드릴 일 없어요, 어머니?
진숙 : (쳐다도 안 보며) 없는 것 같지?
수진 : (어정쩡) ...그럼 올라가서 전 동우씨 깨울께요.
하는데 고개 돌리고 수진을 보는 진숙.
진숙 : 정원에 나가보면 신문이 와 있을거야. 그거 좀 안으로 들여 놓을래?
그 말에 기뻐서 얼굴 빛이 환해지는.
수진 : 네, 어머니! (깡총거리며 나간다)
S#42. 2층 침실
수진의 베개를 부둥켜 안고 여직 자고 있는 동우. 그의 뺨 위로 살풋 입술을 부비는.
진숙 : (속삭임) 이제 일어나야지?
음... 하며 팔로 진숙의 목을 끌어안아 당기는 동우.
동우 : 몇 시야, 수진아? (하고 부시시 눈을 뜬다) 어머니...??
진숙, 곱게 눈 흘기며 동우의 팔을 푼다.
진숙 : (삐진척) 수진이 아니라서 실망이겠구나?
동우 : (털썩 웃으며) 그럴리가 있어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어머닌데!
하며 언젠가처럼 진숙의 허리를 낚아채 침대로 쓰러뜨리는 동우. 간지럼 태우며 깔깔거리는 두 사람.
침대를 구르며 장난하다가 문득 방 입구 쪽을 본다.
열려진 문 입구에 수진이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얼굴로 뻥-해서 서 있다.
동우 : (싱긋) 수진이, 잘 잤어?
하는 동우의 엉덩이를 톡톡 치며 서둘러 몸을 일으키는.
진숙 : 얼른 씻고 아침 먹어야지.
동우 : 네, 마마!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동우, 수진의 옆을 스치며 장난스럽게 수진의 볼을 살짝 꼬집는다.
동우 : (놀리듯)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동우 나가면 딱딱하게 굳어서 진숙만을 보는 수진.
마찬가지로 수진을 일절 무시 해 버리는 진숙, 옷장 앞으로 걸어가 문을 활짝 연다.
수진 : ...???...
진숙 : 어디 보자.... 회색 양복이 좋을까?
하며, 혼자서 자연스럽게 동우의 양복과 와이셔츠를 골라내는 진숙, 입기 좋게 침대 위로 착착 펼쳐 놓는다.
수진 : ...!!!... (기가 막혀서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그저 멍청하게 서서 본다)
옷장 문 닫고 이번엔 서랍장 앞으로 척척 걸어가는 진숙, 서랍장의 서랍을 잡아 당겨 동우의 팬티와 런닝까지 골라서 챙겨 든다.
수진 : ...!!!...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듯 진숙의 옆으로 얼른 다가오는 수진, 진숙의 손에 든 동우의 속옷을 재빨리 가로채며
수진 : 주세요, 어머니.
순간, 표정이 팍! 굳는 진숙.
진숙 : 뭐 하는 짓이야, 이게?
수진 : (웃으려 애쓰며) 그렇잖아요. 제가 할 일까지 어머니가 다 하시면 전 뭐해요. 이런건 제가 하겠어요, 어머니.
하며, 돌아서는 수진.
표정이 급격히 싸늘하게 얼어 붙는 진숙, 수진의 뒷모습을 차갑게 쏘아본다.
S#43. 동네 세탁소 (그 날 오후)
여자 : 아! 그 댁 며느리 되시는구나!
수진에게서 블라우스 등을 건네받는 30대 세탁소 여자.
수진 : 네.... (씁쓸하다) 그럼 부탁드려요. (나가는데)
여자 : 힘들지 않아요?
수진 : (깜짝 놀라며) 네...?
여자 : (웃으며) 아줌마가 입버릇처럼 그랬거든요. 그 집 며느리 될 사람 누군지 엄청 힘들거라구.
수진 : 아줌마...라뇨?
여자 : 아, 전에 그 집에서 일했던 파출부 아주머니 말예요.
수진 : 네에.... 근데 힘들다니 그게 무슨 뜻이예요?
여자 : 그 쪽 시어머니, 아들 사랑이 너무 유별나다구요. 아들 바라보고 사는거야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도가 지나치면 것도 병이잖아요, 왜!
수진 : ...!!!...
여자 : 며느리쪽에선 그런 시어머니 만나면 고생이지. 그쵸?
하며, 힐끔 수진의 눈치를 살피는 여자.
수진, 기분이 언짢아지며 표정 굳는다.
수진 : 그렇지 않아요. 저희 어머니, 저한테 잘해주세요. 일도 많이 거들어 주시구요.
S#44. 현관
언짢고 찝찝한 표정으로 들어서는 수진. 앞날이 캄캄하단듯 한숨을 푹 내쉬며 안 방을 흘낏 스쳐 보고는 부엌 쪽으로 걸 어간다.
그 때 윗층에서 뭔가 쿵!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깜짝 놀라 얼른 2층쪽을 보는 수진.
S#45. 2층 거실
바닥으로 자빠져 있는 거실 의자. 그 옆으로 휙 스쳐 지나는 실내 슬리퍼.
S#46. 2층 계단
뭔가 하는 얼굴로 다급히 계단을 올라오는 수진, 막 2층 위로 올라서는 순간!!
수진의 앞으로 난데없이 불쑥!! 나타나는 진숙! 눈 깜짝할 사이에 퍽-! 수진을 떠다민다.
미처 비명 한 번 지를 새 없이 순식간에 계단 아래로 떼굴떼굴 굴러 떨어지는 수진, 계단 참의 구석으로 쳐박혀 버린다.
충격과 통증으로 짧게 비명 지르는 수진,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쓰며 믿기지 않는 눈으로 진숙을 올려다 본다.
수진 : 어머니...???
계단 위에서 싸늘하게 지켜보던 진숙, 신음 흘리며 일어나는 수진에게로 천천히 걸어 내려오며.
진숙 : 무슨 애가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 앞을 보고 다녀야지 눈은 뒀다 뭐하니?
수진 : ...???... (무척 혼란스럽다)
진숙 : 담 부턴 조심해.
수진 : ...네.
하는 수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찬 바람을 일으키며 쌩하니 아래 층으로 내려가는 진숙.
수진 : ...(황당)...
분명 진숙이 민 것 같은데 너무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확실치도 않은 표정의 수진, 설마... 하는 표정.
S#47. 2층 침실
문 열고 퇴근 차림으로 들어오는 동우와 그 뒤를 따라 여전히 긴가민가 찝찝함이 배어진 표정으로 들어서는 수진,
문 닫고 돌아서면 이 순간을 기다렸단듯 수진을 와락! 안는.
동우 : 나 안보고 싶었어?
하는데 악! 비명을 지르며 어깨를 감싸 안는 수진. 깜짝 놀라 어리둥절하게 보는.
동우 :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수진 :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 끄덕인다) 어깰 좀 삐었어요.
동우 : 어디 봐!
동우, 얼른 수진의 셔츠를 벌려 보면, 시퍼렇게 큰 멍이 들어 있다.
동우 : 이런...?! 어쩌다가 이랬어?
수진 : 그냥... (혼란스럽지만) 실수로 계단에서 넘어졌어요.
동우 : 조심하진 않구선? 그렇다고 이렇게 두면 어떻해, 파스라도 발라야지!
수진 : 아까 다 했어요. (셔츠를 바로 한다)
동우 : (속 상한) 어떻하냐? 나을려면 며칠은 가겠다. 많이 아파?
하는 동우를 뭔가 갈등하는 눈초리로 보는.
수진 : 괜찮아요, 이제. 근데 동우씨.
동우 : ...??... (본다)
수진 : 어머니 말예요.
동우 : 어머니가 왜??
수진 : (조심스럽게) 이런 말 하긴 뭣 하지만 어머니 좀 이상하세요.
동우 : (동그래진다) 이상해? 뭐가?
수진 : (시선 피하며) 그러니까... 동우씨 없을 때 나 대하시는 행동이 첫날 하곤 달라지신거 같아요.
동우 : 어떻게?
수진 : 그냥 느낌이 그래요.
동우 : (대수롭지 않게 풀썩 웃으며) 그거야 당연하지.
수진 : ..??..
동우 : 생판 남남이던 사람들이 갑자기 한 지붕 밑에 사는데 그럼 이상하지 안 이상해? 당연히 서로 이상하겠지.
수진 : 그렇다기 보다... (하는데)
동우 : (수진의 어깨를 다독여 주며) 아직 서로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좀 지나면 나아질 거야.
수진 : ... (애가 타지만 뭐라고 더 말할 순 없다)
S#48. 혜경의 오피스텔
울리는 전화벨. 쿠당탕! 문 열고 뛰어드는 소리와 함께 컴컴했던 실내의 불이 확 켜지며
침대위로 다이빙하듯 해서 급하게 전화기를 낚아채는 여자, 다름아닌 결혼식에서 보았던 수진의 친구, 혜경이다.
혜경 : (헐떡이며) 네?
필터 : (수진, 웃음) 막 들어온 모양이구나?
혜경 : (일어나 앉으며) 아쭈! 결혼하고 죽은줄 알았더니 웬일이셔? 이제야 친구 생각이 나데, 이 야박한 기집애야?
S#49. 진숙 집. 2층 침실
수화기를 든
수진 : 그러지 마. 맨날 생각은 했는데 며칠간 정신이 좀 없었어. 미안해.
하며 침대 탁자에 놓여진 첫 날 진숙이 선물한 꽃바구니의 온통 누렇게 시든 꽃을 하나씩 빼서 휴지통 속으로 던진다.
필터 : (혜경) 어련 하겠어? 신혼 깨가 마구 쏟아지나 보구만!
수진 : (피식) 신혼 깨는 무슨...!
필터 : (혜경) 그래, 부잣집 며느리 된 기분이 어떠니? 시어머닌 잘 해주셔?
꽃을 뽑아서 버리기 귀찮단듯 바구니 채 들어 휴지통속으로 처 박는.
수진 : ... 글쎄 뭐, 그렇지 뭐.
필터 : (혜경) 무슨 대답이 그래? 잘 해준다는 거야, 못 해준다는 거야?
수진 : (피하듯) 잘 해주셔. 넌 요즘도 많이 바쁘니?
필터 : (혜경) 아무리 바빠본들 너 만날 시간은 항상 비워놨으니까 한 번 보자. 니 남편이랑 같이 보면 더 좋구.
수진 : 그래. 동우씨 시간 봐서.
필터 : (혜경) 남편, 지금 옆에 있니?
수진 : 아니, 아랫층에서 어머니랑 있어.
S#50. 1층 식탁
소리 : (동우) 첵!
식탁 위에 펼쳐진 체스 판에서 자신의 말로 진숙의 말을 먹는 동우, 진숙을 보며 여유있게 웃는다.
동우 : 빨리 하세요.
진숙 : (낭패한 표정) 한번만 물려줘, 응?
동우 : 안돼요.
진숙 : 딱 한번만.
동우 : 절대 안돼요. 혼자 연습 많이 하셨다면서요?
진숙 : 좋아. 그럼 다시 해. (하며 체스 판을 새로 까는 진숙)
동우 : (풀썩) 아예 밤을 새실 작정이세요?
진숙 : 두고 봐. 밤을 새서라도 기필코 넌 이기고야 말 테니까.
동우 : (졌단 듯 체스의 말을 고르며) 그럼 수진이도 불러서 같이 하죠, 어머니.
그 말에 우뚝! 손을 멈추고 동우를 빤히 보는.
진숙 : 너 결혼하고는 참 많이 변했다?
동우 : 뭐가요...??
진숙 : 나랑 둘만 있는게 싫으니?
동우 : 어머니두 참! 그게 아니라 수진이 혼자 심심할거잖아요.
진숙 : 심심하긴. 걔 지금 아픈 애야. 차라리 자게 두는게 좋아. (하며 다시 손을 놀려 체스의 말을 세운다)
동우 : 하긴...! 계단에서 굴렀다는데 저만하길 정말 다행이죠?
진숙 : (무뚝뚝하게) 운이 좋았지. 얼굴이라도 다쳤음 어쩔뻔 했니.
동우 : 그럼 안돼죠. (하다가 번뜩 생각난듯) 참! 오늘 회사에서 미인 마누라 콘테스트 했단 소리 제가 해줬어요?
진숙 : (털썩) 건 또 무슨 소리야? 뭘 어떻게 했단건데?
동우 : (흥분) 전부 와이프 사진들 내서 뽑았는데요. 거기서 수진이가 일등했단거 아녜요!
진숙 : ...!!!... (표정이 갑자기 얼음처럼 싸늘하게 식는다)
그러나 자기 기분에 들 뜬 동우, 자리를 들썩이며.
동우 : 내가 왜 그걸 깜빡했지? 잠깐만요, 어머니! 수진이한테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전해주고 올 테니까
제 것까지 좀 깔아 노세요, 네?
하며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뛰쳐 나가는 동우.
진숙 : ...!!!... (하얗게 질리며 체스의 말을 콱! 움켜 잡는다)
S#51. 대형 수퍼 마켓 (며칠후 낮)
빠른 속도로 바닥을 구르는 수레의 금속 바퀴. 화면 오르면, 이미 생선이나 고기 등으로 꽉 찬 수레고
어딘가 황당한 표정으로 급히 수레를 미는 수진, 야채 칸 진열대를 돌아 가면
바쁜 듯 잰 걸음으로 걸어가는 진숙의 뒷 모습이 보인다.
마치 눈에 보이는데로 사는 것처럼 온갖 야채를 집어들어 보지도 않고 수진의 수레로 던져 넣는 진숙.
받아서 떨어지지 않도록 바쁘게 정리해 담는 수진, 진숙을 따라가기 조차 벅차지만
상관없이 눈길도 주지않고 앞서 총총히 걸어가는 진숙!
진숙의 딱딱한 눈치만 보며 시종 말없이 뒤쫓는 수진, 끝도 없이 사재는 물건을 보며 점점 더 해지는 궁금증으로
얼른 진숙의 뒤로 바짝 따라 붙는다.
수진 : 저, 어머니!
진숙 : ...(무시)...
수진 : 뭐 만드실 건데 이렇게 많이 사세요?
진숙 : ...(우뚝! 걸음을 멈춘다)...
수진 : ...(찔끔! 하는데)...
진숙 : ...(돌아보며 수진을 표독스럽게 쏘아본다)...
수진 : ...!!!...(입 다물어 버린다)...
S#52. 동. 엘리베이터 안
엄청난 부피의 쇼핑 봉투를 힘겹게 들고 선 수진, 자꾸 손가락 밖으로 빠질려는 봉투 끈을 단단히 조여 매며
옆의, 앞만 보고 선 진숙의 눈치만 본다. 진숙, 아무 것도 없이 핸드백만 메고 서 있다.
곧 땡! 하며 지하 주차장으로 도착하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진숙의 뒤를 따라 낑낑 거리며 걸어 나가는 수진.
어느 순간 짜증스럽게 휙! 돌아보는.
진숙 : 무거우면 여기 서 있어. 차 갖고 올 테니까.
수진 : (순간 표정 고맙게 펴지며) 네, 어머니.
<동. 진숙의 차안>
시동 걸어 차를 후진하는 진숙. 핸들을 꺾어 방향을 바꾸고 천천히 주차장 기둥을 돌아 나간다.
기둥을 돌면, 차 전방으로 멀리 엘리베이터 입구에 짐을 내려놓고 서 있는 수진.
수진, 진숙의 차를 발견한 듯 바닥에 내렸던 쇼핑봉투의 끈을 하나씩 손가락에 건다.
그 주변으로 아무도 없는 주차장 안.
진숙 : .... (힐끗 백미러를 보는 진숙의 무표정한 얼굴. 뒤쪽에도 역시 아무도 없다)
순간, 진숙의 얼굴에 악마의 속삭임처럼 어떤 유혹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순간! 서행하던 차의 엑셀을 콱! 밟는 진숙! 부-앙! 요란한 엔진음을 터트리며 무서운 속도로 튀어 나가는 진숙의 차!
소리에 기절할 듯이 놀라 고개드는 수진의 모습! 진숙, 얼굴에 경련이 일며 위험한 미소로 입을 앙다문다.
커다랗게 열려지는 수진의 두 눈! 과열되는 차 엔진 소리! 피할 생각도 못하고 꼼짝없이 얼어 붙어 선 수진!
사정없이 깔아 뭉갤 듯 달려드는 진숙의 차! 수진을 치어 버리기 일보 직전...!!!
핸들을 확 틀어 급 브레이크를 밟는 진숙이다.
끼이이이익-!! 찢어지는 타이어 음을 내지르며 수진의 옆으로 덜컹!!! 급 정지하는 진숙의 차.
수진, 석고상처럼 새햐얗게 질려 천천히 고개 돌려서 운전석의 진숙을 본다.
진숙 : (보며) 안 탈거야?
수진 : ...!!!...
S#53. 진숙 집 앞
달려와 멎는 진숙의 차. 운전석에서 내리는 진숙, 뒷 좌석의 수진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먼저 집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화도 안나는 얼굴로 힘들게 쇼핑 봉투를 추려안는 수진,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차에서 내린다.
S#54. 집 안, 1층 부엌
끄응-! 식탁 위로 봉투들을 내려놓는 수진.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 방울을 훔쳐내며 봉투를 열고 안의 물건들을 식탁 위로 부리는데 들어오는 진숙.
진숙 : 빠진거 없겠지?
수진 : 네.
진숙 : (시계 보며) 2시간 정도 있으니까 시간은 충분할거야. 생선부터 씻어두고 야채도 전부 다듬어서 씻어 놔.
난 요 앞에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쌀 씻어서 밥 앉혀 놓고. 그건 할 수 있지?
수진 : 네.
진숙 : 나 없다고 꾀 부리지 말고 얼른얼른 움직여. (나간다)
수진 : ...네.
어딘가 꺼림직한 얼굴로 진숙의 뒷 모습을 보는 수진. 무거운 한숨을 푹 내쉬곤 바쁘게 손을 놀린다.
<화면 디졸브>
깨끗이 씻겨 채에 받쳐진 생선과 다듬어져 조리대 위로 수북히 쌓인 야채들,
쌀을 씻어 밥솥에 앉히는 수진, 취사 버튼을 누른 후 언뜻 시계를 본다. 오후 1시.
<화면 디졸브>
화면 가득 2시가 다 된 시계에서 화면 빠지면, 밥이 다 되어 김을 펄펄 내뿜는 전기 밥솥과
불안한 얼굴로 연신 식탁 의자에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수진, 초조해서 미칠 것 같은 표정이다.
이 때 울리는 무선 전화기, 급히 수화기를 드는.
수진 : 네?!
필터 : (동우) 준비 다 됐지?
수진 : (얼결에) 네! 아뇨, 그게 동우씨... (갈팡질팡 하는데)
필터 : (동우) 알았어. 지금 가고있는 중이니까 좀 있다 봐.
수진 : 잠깐만요, 동우씨!!
하지만, 이미 끊겨 버린 전화고 안 되겠는지 재료가 준비 되어진 부엌 안을 급히 휘둘러보는
수진, 급한김에 재료들을 싸안고 뭔가 해보려 하지만 도대체 엄두를 못 내고 급기야는 울음을 터트린다.
손에 든 야채를 바닥으로 홱! 집어 던지며 의자로 털퍽! 주저 앉는 수진.
S#55. 영화관 안
화면 가득 폭소를 터트리는 진숙. 보면, 코메디 영화인듯 스크린을 보며 깔깔 웃어대는 사람들.
그들 틈의 객석에 앉은 진숙, 배를 잡고 웃어댄다!
S#56. 현관
동우를 위시해서 떠들썩하니 우루루 몰려 들어오는 대 여섯명의 동우 회사 동료들과 연구실 실장.
옷도 못 갈아 입고 허옇게 사색이 되어 그들을 맞이하는 수진, 얼굴 빛이 말도 아니다.
동우, 의아한 얼굴로 수진을 살펴본다.
S#57. 부엌
놀랍게도 우뚝 보는.
동우 : 하나도 준비가 안됐다니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거야?
수진, 스스로도 황당하단듯
수진 : 어머니가 다 하신다고 하구선 여태 안 들어 오시잖아요.
하는데 거실에서 외쳐대는 소리들.
소리 : (동료) 어이, 이 박사! 미인 와이프 얼굴 좀 보자구!
소리 : (동료) 둘이서 뭐해요? 저희들 배 고픈데 밥부터 주면 안돼요?
와르르 웃음들, 소리 들으며 낭패감에 어쩔 줄 모르는.
동우 : 어머닌 어디 가셨는데?
수진 : 몰라요. 것두 말씀 안 하셨어요.
동우 : (벌컥) 그렇다고 가만히 있음 어떡해!? 어머니가 안 계시면 혼자라도 어떻게든 해야할 거 아냐.
수진 : (원망하듯 본다) 재료도 어머니가 다 골랐는데 무슨 요릴 어떻게 해요? 물어도 말씀도 안 하시고...!
동우 : 지금 어머니...! (소리 낮추고) 어머니 탓만 하면 일이 해결이 돼?
집들이 한답시고 사람들 다 불러 놓고 지금 이러면 어떡하잔거야, 대체!
밖에서 사정도 모르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 소리.
참담하게 일그러지는 수진. 하얗게 질리는 동우, 그때
소리 : (진숙의) 어머, 벌써들 와 계셨어요? 안녕하세요, 실장님. 결혼식날 변변히 인사도 못 드리고 죄송했어요.
부산스럽게 인사 나누며 가까워지는 진숙의 소리에 뻣뻣하게 긴장해서 서로 눈치 만 보고 있는 동우와 수진.
웃으며 부엌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진숙, 수진과 대조적으로 곱게 단장된 모습이다.
진숙 : 손님들만 두고 동운 여기서 뭐해? (수진 보며) 음식 다 장만 됐니?
수진 : (못 알아듣고) 네....???
동우 : 이제 오시면 어떡해요, 어머니? 수진인 어머니만 기다렸다는데.
진숙 : (멀뚱하게 본다) 나만 기다려? 그게 무슨 소리야? (하며 부엌을 둘러보고 깜짝 놀란척)
아니...! 너 이게 어떻게 된거야? 음식은?
수진 : (황당)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어머니께서 하신댔잖아요.
진숙 : (더 황당한 척) 뭐라고?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 니가 다 알아서 한다고 그랬잖아.
수진 : (뻥!) 네..? 제가 언제요?
진숙 :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얘 좀 봐? 너 지금 말 바꾸니? 분명히 니가 다 한다 그래서 내가 나간거잖아.
수진 : ...???... (혼돈과 경악)
동우도 무척 혼란스런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본다.
진숙 : 그래놓고 이제와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짓이야 너? 니가 정신이 있는 애니 없는 애니?!
진숙, 너무나 놀란척 너무나 태연자약하게 연기를 해댄다.
수진 : (넋이 빠져) 어머니 왜 그러세요? 제가 언제...?
하는 수진을 밀치며 다급한 표정으로.
동우 : 어쨌든 이제 어떡하죠, 어머니?
진숙 : 뭘 어떡해? 아무 요리집에나 빨리 시키든지 해야지! (수진을 사납게 쏘아보며) 어쩐지 큰 소리 뻥뻥 치더라니
별 우습지도 않은게 집안 망신 시키구 있어!
수진, 악몽속을 헤매는 얼굴로 멍하니 섰고 진숙, 동우와 함께 서둘러 밖으로 나 간다.
S#58. 거실
교잣상 위로 화려하게 차려지는 최고급의 중국 요리들. 사람들 앞에서 미안한 얼굴로 선.
진숙 : 정말 죄송해서 어떡하죠? 원래는 집에서 정성껏 만들어 대접해 드려야 하는데...!
동료 : 글세 말예요. 우린 오늘 미인이 만든 요리 솜씬 어떤가 그거 보러 왔는데! (하는 동료1의 옆구리를 툭! 치는)
실장 : 아닙니다. 이것도 저희들한텐 과분하죠, 뭐.
진숙 : 아네요. 무슨 말씀이세요. (걱정이 태산같은 자상한 시어머니의 얼굴로) 우리 며늘애가 생긴건 안 그런데
하는 짓이 좀 맹해요. 그래두 저따나 해볼려구 용은 쓴거 같으니까 너무 흉보진 마시구요.
실장 : (이해한다는듯) 흉은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다 그렇죠.
동우 : 죄송하게 됐어요.
동료2 : 걱정마 이 사람아. 우린 미인들 흉은 절대 안 보잖아. 안 그래, 지선씨? (하고 유일하고 못 생긴 여자 동료를 본다)
여자 : 그 소리 좀 고만 하세요, 선배님. 인물이 밥 먹여줘요?
진숙 : 그럼요. 날 보세요. 이쁜 며늘애 들여 봐야 망신만 당하잖아요. (웃음들) 모처럼 오셨는데 달리 내 드릴건 없구요.
(하며 거실 한 쪽에 있는 양주가 가득한 카드를 밀고 오며) 술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실컷 내서 드세요.
동료2 : 야! 이거 전부 귀한 술인데...! 정말 저희가 다 따도 되는 겁니까?
진숙 : 물론이죠. 내 아들 위해서면 뭘 못 드리겠어요?
실장 : 이 박사, 이제보니 어머니 빽이 확실한데 그래?
동우 : ...(진숙을 보며 감사하단듯 웃어보인다)...
S#59. 부엌
쟁반에 잔 받침과 술잔들을 준비하는 수진, 금방이라도 고함을 빽 지를 것 같은 얼굴이지만 안간힘을 쓰며 버텨 낸다.
냉장고 냉동실의 얼음을 꺼내 얼음통 속으로 쏟아붓는 수진. 그 위로
소리 : (실장) 이 집에 아들 하나 더 있었음 딱 좋았을텐데.
소리 : (진숙) 무슨 말씀이세요?
소리 : (동료1) 사돈 맺을려고 그러시죠 뭐. 실장님한테 아직 시집 안간 딸이 하나 있거든요.
소리 : (진숙) 어머! 그럼 진작 귀띰이라도 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랬음 제가 실장님 딸을 며느리로 삼았죠.
소리 : (동료1) 근데 그 딸이 아직 중학교 3학년 이예요.
소리 : (진숙) 네에?
어쩌구 웃는 소리들. 모멸감에 이를 악무는 수진.
그때 부엌으로 들어오는 진숙.
진숙 : 잔이랑 얼음은?
수진 : ...!!!... (감정을 애써 누르며 돌아본다)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어머니?
진숙 : (수진의 앞으로 서며) 뭘?
수진 : 아시잖아요.
진숙 : 모르겠는데? 뭘 말하는거야?
수진 : ...!!!... (입을 꽉 다물고 얼음통과 잔이 든 쟁반을 든다)
심술궂게 웃으며 보던 진숙, 쟁반으로 손을 뻗으며.
진숙 : 이리 줘. 내가 가져 갈 테니까. (하는데 쟁반을 휙! 뒤로 빼는 수진, 신경질적으로)
수진 : 됐어요! (하다가 곧 표정 추스리며 공손하게) 제가 가져 갈께요, 어머니!
진숙 : ...(같잖단듯 보다가 가볍게) 그래, 그럼.
진숙을 스쳐 부엌 밖으로 나가는 수진. 그 뒤를 조용히 따르는 진숙.
S#60. 거실
허공으로 불쑥! 치켜 들리는 두 개의 고급 양주병에서 화면 빠지면 양주 병을 들어 보이며 좌중을 둘러 보는.
동료1 : 어느 거부터 먼저 딸까? 일단 비싼 순서대루 조져야 되는거 아냐?
하는 남자에게 제 각각의 야유나 찬성을 터트리는 사람들 저 편으로
부엌에서 쟁반을 들고 나오는 수진과 그 뒤를 따라 나오는 진숙의 모습이 보인다.
<동. 부엌 앞>
술잔이 부딪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걷는 수진과 그 뒤로 걸어 나오는 진숙.
진숙, 힐끗 거실의 사람들을 보면 양주 병들에 정신이 팔려 웃고 떠들어 댄다. 시선 돌려 앞서 걷는 수진의 등을 본다.
어느 순간 수진의 등 가가이 소리없이 따라 붙는 진숙, 수진의 발을 재빨리 휙! 걸어 버린다!!
순식간에 와장창!! 엎어지는 수진! 놀라서 일시에 수진을 보는 사람들.
바닥으로 다이빙하듯 넙죽! 엎어진 수진과 박살 난 술잔들과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얼음 조각들!!
실내, 일시적으로 숨 죽인듯 얼어 붙는다.
충격과 아픔으로 일순 꼼짝도 않던 수진, 신음 흘리며 천천히 고개 든다.
제일 먼저 수진에게로 달려드는.
진숙 : 얘, 아가! 괜찮니?! 안 다쳤어!!
엄청 놀라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돌변해서 수진을 부축하는 진숙이고
그제사 일제히 일어나는 사람들, 괜찮냐! 어쩌구 하며 수진에게로 달려와 수진을 에워 싼다!
수진 : ...!!!...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진다!)
S#61. 2층 침실 스탠드 불 빛.
방 한쪽 구석에 구겨져 무릎에 얼굴을 박고 앉은 수진. 무릎팍이 약간 까여져 반창고가 붙여져 있다.
그 앞에 잠옷 차림으로 마주 쪼그리고 앉은.
동우 : 그만해. 응? 그런 걸로 누가 널 바보 취급했다구 그래? 다들 많이 안 다쳤냐고 걱정하면서 갔는데.
수진 : ...(꼼짝도 않는다)...
동우 : 무릎은 이제 괜찮아?
수진 : ...(움직임 없다)...
동우 : ...(미심쩍다) 요 며칠 정말 왜 이러냐? 계단에서 넘어지질 않나...! (짧게 한숨 쉬며 수진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암튼 다 잘 끝났잖아. 사람이 실수 할 수도 있지.
순간 고개를 치켜드는.
수진 : 동우씬 그게 실수라고 생각해?
하는 얼굴이 눈물로 범벅되어 있고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다.
동우, 수진의 말보다는 수진의 눈물에 깜짝 놀란다.
동우 : 울고 있었어?!
수진 : (감정을 삭이려 애쓰며 손등으로 얼른 눈물 쓱 훔치며) 만약에 어머니가 내 발을 걸어 넘어진 거라면 동우씨 그 말 믿어?
동우 : (...???...) 어머니가 발을 걸다니? (황당한 웃음) 무슨 말이야, 그게?
수진 : ...!!... (얼굴 굳으며) 됐어요. 암것두 아녜요.
동우 : 아니 어머니가 뭐 때문에 니 발을 걸어?
수진 : (버럭) 됐다잖아요!
동우 : (당황) 수진아...??
수진 : (시선 돌리며) 미안해요. 좀 피곤해서 그래.
동우 : 그래. 그러니까 이러지 말구 그만 자자. 나도 술을 먹었더니 정말 피곤해.
수진 : ... 먼저 자요. 난 좀 있다 잘게.
동우 : (살피듯 불안하게 보며) 화 난거 아니지?
수진 : (마지못해 고개 끄덕여 준다) ...
동우 : (일어나며) 얼른 와. 나 혼자 쓸쓸하게 만들지 말고.
동우, 수진의 머리를 장난치듯 한번 헝클어 버리고는 침대로 걸어가 속을 파고 든다.
어이없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한 표정으로 멀거니 동우를 보는 수진.
S#62. 1층 안방. 창가 테이블(다음날 아침)
화면 가득 복숭아 빛깔의 매니큐어가 곱게 칠해지고 있는 손톱. 그 위로 똑똑 노크 소리 들린다.
탁자에서 매니큐어 칠을 하고 있는.
진숙 : 들어와.
문 열고 쟁반에 주스가 든 컵을 들고 들어오는 수진, 뭔가 결심이라도 한 긴장된 표정이다.
진숙 : (힐끗) 내가 언제 주스 먹겠다고 그랬니?
상관없이 다가와 주스 컵을 탁자로 놓는.
수진 : 저 어머니한테 한가지 여쭤볼 말이 있어요.
진숙 : 뭔데?
수진 : 제가 혹시 어머니한테 뭐 잘못한게 있어요?
진숙 : 무슨 말이야?
수진 : 저한테 안 좋은 감정을 가지신 것 같아서요.
진숙 : 감정이라니? 내가 왜 너한테 감정을 가져? 니 눈엔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니?
수진 : ...!!!... (답답) 그럼 저한테 왜 그러세요? 어머닌 제가 맘에 안 드세요?
진숙 : (기가 막히단듯) 너 맘에 들어 결혼한건 동우지 내가 아냐? 시덥잖은 소리 할거면 나가, 나 지금 바빠.
무시하고 정성껏 매니큐어 칠에 열중하는 진숙.
수진 : ...!!... (맘을 다 잡고) 어머니 심정 저 충분히 이해해요.
진숙 : ...(우뚝! 수진을 보다)...
수진 : 평생 동우씨만 보고 사셨으니 어머니로선 제가 어머니한테서 동우씰 뺏은 거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어요.
진숙 : (그 말에 핏! 웃으며) 너 지금 소설 쓰니? (하며 다시 매니큐어 칠 한다)
수진 : ...(개의치 않고) 그렇지 않다는 걸 말씀 드리는 거예요. 전 정말이지 어머니한테 잘 하고 싶어요. 근데 하는 일마다
왜 이렇게 틀어지는 지 전 잘 모르겠어요. 저 좀 가르쳐 주세요, 어머니. 하라시는데로 무조건 따르겠어요.
진숙 : ...(코웃음치며 무시할 뿐)
수진 : (절박하다) 정 맘에 안드시면 절 며느리가 아니라 딸처럼 생각하시면 되잖아요, 어머니.
하는데 자못! 흥미롭단듯 수진을 보는.
진숙 : 뭐? 딸...??
수진 : 그렇게 생각해 주세요, 어머니. 그럼 어머니께서 더 편하실거예요.
진숙 : (뭔가 생각) 맞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수진 : ...(긴장해서 살피듯 본다)...
진숙 : (빙긋!) 니가 그렇게 말해 주니까 갑자기 기분이 좋구나? 나도 한땐 딸이 하나 있었음 했거든.
수진 : 어머니...! (수진, 고마움과 희망에 부풀며 밝게 웃는다)
S#63. 식탁 (저녁)
웃음 소리. 식사하는 진숙과 동우, 수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진다.
동우 : 여자들은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진숙 : 뭐가?
동우 : 서로 웃는가 싶으면 울고 돌아보면 또 웃고있고. 변덕이 죽 끓듯 하잖아요.
진숙 : (본다) 그렇게 보이니?
동우 : (놀리듯) 그럼 아녜요?
수진 : (웃음) 그러지 마요, 동우씨. 다 어머니께서 이해해 주신 덕분이니까. (하는데)
수저를 소리나게 탁! 놓는 진숙. 뭔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힘들게 참는단듯 입술을 바들바들 떨더니
급기야는 눈물까지 주루룩 흘린다. 어리둥절해서 서로를 보는 동우와 수진.
동우 : 왜 그러세요, 어머니?
진숙 : 그래. 나 하나 입 닥치고 살면 된다니까 그렇게 해야지.
하며 벌떡 일어나 나가는 진숙, 깜짝 놀라 동시에 튕겨 오르듯 일어나는 동우와 수진.
S#64. 거실
휘적 휘적 방으로 걸어가는 진숙을 뒤쫓아와 얼른 돌려 세우는.
동우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입을 닥치고 살다니?
진숙 : 입 닥치고 죽은듯이 살라더구나. 나만 그러면 니들 둘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동우 : ...!!!... (입이 딱 벌어지며 수진을 돌아보면)
부엌 문간에 그대로 얼어 붙어선 수진, 동우와는 다른 이유로 입을 쩍 벌린다.
진숙 : 내가 너 결혼할 때 반대 안 한건 니가 선택한 며느릴 믿었기 때문이지 행패나 당할려구 그랬던건 아냐.
진숙, 처연하게 울며 쓰러지듯 동우의 품으로 안긴다.
동우 : 행패...라구요?
수진 : (생각이 정리가 안된다) 어머니,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진숙 : 너 아까 낮에 나한테 뭐랬니? 이제 이 집 안 주인은 저니까 난 쓸데없이 니들 일에 끼어들지 말라며?
수진 : (황당! 경악!!) 또, 또 그러시는 거예요? 어제도 그러시드니 또...?!!
진숙 : (무시하고 동우만 바라보며) 그래도 난 절 딸처럼 생각해 볼려구 날 친 엄마로 생각하면 안되겠냐니까.
수진 : ...(아연실색!)...
진숙 : 친 엄마도 아닌데 내가 왜 저 엄마냐구. 미친 소리 작작 하라구...!
진숙, 터지려는 울음을 참듯 손으로 입을 틀어 막으면
도저히 믿을 수 없단듯 표정 험악하게 일그러지는 동우. 진숙과 수진을 번갈아 혼돈스럽게 본다.
억장이 무너져 마침내 분통을 터뜨리는.
수진 : 도대체 왜 이러세요, 어머니?! 무슨 심정으루 이러시냐구요!! 왜 자꾸 거짓말을 하세요?!!
저 미치게 만들려구 작정하신 거예요?! 네?!!!
진숙 : (황당하단 듯 수진을 보며) 너야말루 왜 자꾸 동우 앞에서 말을 바꾸는 거야? 왜 날 정신 병자로 몰아?
수진 : (이성을 잃고) 어머니...!!!
하는 수진에게로 재빨리 다가와 수진의 팔을 붙드는.
동우 : 잠깐 나 좀 보자.
수진 : (뿌리치며) 놔요! 어머니 말 믿지 마요! 동우씨 오기 전까진 말짱하시다가 갑자기 저러시는 거라구요!!
당장이라도 미칠 것 같은 표정의 수진, 진숙에게로 달려가 두 팔을 붙들고 사정조로.
수진 :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 어머니!! 아깐 안 이러셨잖아요. 우리 정말 좋았잖아요!!
수진의 모습, 영락없이 실성한 사람처럼 보여지고.
진숙 : (두렵단듯 보며) 좋았다니. 나더러 지금 없는 말이라도 지어 내란거야?
수진 : (꽥! 진숙의 팔을 흔들며) 그만 하세요, 제발!
진숙 : 얘가 왜 이래!?
하며 진숙, 수진을 확 떠다밀면 사정없이 바닥으로 쿵! 나가 떨어지는 수진.
파랗게 질려 서 있던 동우, 그제서 번쩍 정신이 들며 황급히 수진에게로 달려와 일으켜 세운다.
동우 : 그만하고 따라와, 얼른!
동우, 수진을 부둥켜 안듯 싸 안고 얼른 2층 계단쪽으로 끌고 간다. 동우의 손에 경황없이 끌려 가면서도 악에 받힌 음성의.
수진 : 놔요! 동우씨도 알건 알아야 해!! 어머니 말 몽당 거짓말이야!! 몽땅!!!
S#65. 2층 계단
발버둥치는 수진을 어금니 꽉 다물고 힘껏 계단위로 끌어 올리는 동우. 거세게 저항하며 동우를 손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는.
수진 : 자긴 그 자리에 없어서 몰라! 이거 놔! 놔 봐요, 좀!!
S#66. 1층 거실
경악에 찬 수진의 비명과 쾅!! 문 여닫히는 소릴 들으며 화면 가득 소름 끼칠 것 같은 미소가 천천히 걸려지는 진숙의 얼굴.
곧 너무 쉽게 끝났단듯 표정 시들해지며 빙글! 돌아서 안방으로 들어간다.
S#67. 2층 침실
소리 : (수진) 놔!!!
동우의 손을 사납게 팽개치는 수진.
힘겹게 호흡을 고르며 문 입구에 혼란스러운 얼굴로 선 동우.
동우 : 진정해. 진정하고 우리 차분하게 얘기해 보자.
수진, 분해서 치를 떨며 동우를 휙! 쏘아본다.
수진 : 얘기할 것도 없지만 해도 마찬가지야! 당신 어머닌 정상이 아니야!
동우 : (표정 하얗게 굳는다) 말이 너무 심한거 아냐?
수진 : 심해요? 그럼 내가 비정상이란 말야?! 동우씨 이제까지 날 거짓말이나 하는 그런 이상한 여자로 봤어요?! 그래요??!!
동우 : ...!!... (침착하려 애쓰며) 제발 소리 좀 낮춰. 정말 왜 이러는 거야?
수진 : (꽥) 왜 이러는지 지금 몰라서 물어요?!!
동우 : ...!!!... (질려서 입을 딱 닫는다)
수진 : 어머니 속셈은 뻔해! 동우씨 눈에 날 나쁜 여자로 만드는 거니까! 말해봐요. 둘중에 하난 분명히 거짓말을 했어요.
누가 거짓말을 한 거라고 생각해? 어머니예요, 나예요?!
동우 : (혼란과 당황!!) 나한텐 어머니도 너도 똑같이 소중한 사람들이야. 어떻게 누굴 믿고 안 믿고 그러란 거야?
수진 : 그단거 필요없어! 대답이나 해요! 어머니예요, 아님 나예요?!!
분노에 휩쓸려 사정없이 동우를 몰아부치는 수진. 당혹감으로 표정이 엉망으로 일그러지는.
동우 : (벌컥) 도대체 날 더러 뭘 어쩌란거야?! 니 말대로 난 그 자리에 없었어! 없어서 잘 몰라, 모르겠다구! 됐어?!!
하며 문 쾅! 열고 방을 뛰쳐 나가는 동우.
수진 : ...!!!... (찬 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싸늘하게 얼어붙는다)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는 동우의 화 난 발소리. 뻣뻣하게 걸음을 움직여 방문을 딸칵! 닫는 수진.
침대로 걸어와 온 몸의 진이 다 빠진 사람처럼 스르르 주저 앉고는 참담하게 바닥을 노려 본다.
그러다 왈칵! 울음이 터지며 얼굴을 싸 안는 수진.
S#68. 1층 안방
장식 선반의 동우와 진숙의 사진 액자들을 쭈욱 훑어 나가는 화면. 그 위로 속삭이듯 나직나직 들려지는.
소리 : (진숙) 공연히 추한 모습을 보여서 미안해, 동우야.
소리 : (동우, 힘없는 음성) ...아녜요.
소리 : (진숙) 같은 여자 입장에서 난 니 처 맘 충분히 이해해. 한창 신혼에 내가 걸리적거리는게 당연하지.
하는 소리들에서 카메라, 팬 다운 하면 진숙의 침대에 코가 닿을 듯 마주 보고 누운 동우와 진숙.
다정한 오누이처럼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진숙 : 아무리 화가 나도 내가 참았어야 했는데 널 보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정말 미안해.
동우 : (혼란스럽다) 그런데 어머니... 수진이가 정말루 어머니한테 그랬어요?
진숙 : (시선을 내리깔며 연약자 연) 그래. 내가 당하고도 못 믿겠는데 넌 두말 할 것도 없지.
동우 : ...(혼란만 가중된다!!!)...
진숙 : 관두자. 좋지도 않은 일 말 해봐야 뭐 하겠니. 다신 그런 일이 없기만 바래야지.
동우 : ...(위로하듯) 그런 일... 다신 없을거예요.
진숙 : 글쎄... (한숨) 사는게 왜 이렇게 점점 불편해 지는지 모르겠어. 예전에 우리 둘 뿐 일땐 아무 문제도 없었잖아?
동우 : 시간이 지나면 다 잘될 거예요. 어머니.
진숙 : 난 자신이 없어. 왠지 불안해 지기만 하고...!
동우 :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맘 약한 모습을 보이세요? 어머니 답지 않게!
진숙 : (풀기없는 웃음) 나도 나이가 들었나 봐. 옛날 생각만 자꾸 나는게.. 너 결혼하기전에 우리가 자주 가던 레스토랑 기억나?
동우 : 기억 나죠. 거의 주말마다 갔었잖아요.
진숙 : 그래. 우리 둘이서 참 신나게 쏘다니곤 했지. 그땐 참 좋았는데...
동우 : (안된듯 보며) 까짓 이번 주말에 가실래요?
진숙 : 정말?
동우 : ...(고개 끄덕거린다)...
진숙 : 예전처럼 우리 둘이서만?
동우 : (웃으며) 어머니가 원하시면요.
S#69. 2층 침실(새벽)
방 안 가득 새벽의 푸른 기운. 잠들지 않고 여전히 침대에 걸터 앉아있는 수진.
동우는 그대로 진숙의 방에서 잠든 듯 혼자서 참담하게 바닥만 노려보고 있는 수진.
S#70. 레스토랑 건물 앞(며칠 후 이른 오후)
건물 앞으로 미끄러져 오는 동우의 차. 건물을 지나쳐 그대로 주차장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S#71. 레스토랑 로비
콤팩트 거울에 보여지는 진숙의 곱게 화장한 두 눈. 깔끔하게 다듬고는 콤팩트를 탁! 닫는 진숙.
핸드백에 넣고 고개 드는데 갑자기 얼굴빛이 환해지며 어딘가를 본다. 보면, 회전문을 열고 막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동우다.
로비의 소파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는 진숙, 급히 동우에게로 걸어가며
진숙 : 동우야! (레스토랑 안으로 향하던 동우, 휙! 돌아본다)
동우 : 어? 왜 안에서 안 기다리시구요?
진숙 : (다가가 동우의 팔짱을 꼭 끼며) 이게 얼마만의 데이튼데 나 혼자 들어가니? 청승맞게!
동우 : (웃음) 그러고 보니 오늘 무척 아름다우신데요?
진숙 : 얘는..!! (하면서도 수줍은 소녀처럼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동우 : 가시죠. 원하시는 대로 제가 근사하게 에스코트 해드릴 테니까.
동우, 정중하게 격식을 갖추듯 바로서면 동우의 팔짱 낀 채 듬직한 눈으로 동우를 보며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는 진숙.
S#72. 동. 레스토랑 테이블
동우가 빼주는 의자에 우아하게 앉는 진숙. 동우, 테이블을 돌아 맞은편으로 앉으면.
진숙 : 오늘 하루 다 비워 논 거지?
동우 : 물론이죠. 누구 명이시라구요.
진숙 : 흐음! 그 말도 정말 오랫만에 듣는 말인데?
동우 : 앞으론 자주 해드릴께요. 스케줄은 다 짜셨어요?
진숙 : 그럼. 식사 끝나면 연극을 보러 가는거야. 표는 오전에 미리 사놨거든. 그 담엔 멋들어진 까페를 찾아서 커피를 마신후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는거야. 또 백화점에서 니 양복도 좀 사고 서점에서 시집도 한 권 사고 싶어. 어때?
진숙, 흥분과 기대로 눈을 빛내며 동우를 본다.
동우 : 시집이요?
진숙 : (웃음) 너한테 선물해 줄려구.
동우 : (짐짓 난색을 표하며) 전 만화책이 더 좋은데요?
진숙 : (곱게 흘기며) 낼 모레면 너 서른이야.
동우 : 알았어요. 근데 그 굉장한 스케줄을 하루만에 다 할 수 있겠어요?
진숙 : 그러니까 시간을 쪼개 써야지.
하는데 그들의 곁으로 서며 메뉴 판을 내려놓는 웨이터.
웨이터 : 주문 하시겠습니까?
진숙 : 그래요. 우선 주문부터 하자. (메뉴판을 펴 드는데)
동우 : 잠깐만요, 어머니. (웨이터 보며) 한 사람 더 올거니까 그때 시키죠.
웨이터, 깎듯이 절하고 간다.
진숙 : (???) 한 사람이 더 오다니, 누구?
동우 : (겸연쩍게 웃으며) 여자예요.
진숙 : (놀란다) 여자...??!!
동우 : 아! 저기 오네요.
돌아보는 진숙, 갑자기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진다. 보면, 막 입구를 들어서는 수진, 그들을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걸어온다.
믿을 수 없단 듯 휙! 동우를 돌아보는 진숙, 간신히 입술만 달싹이며
진숙 : 어떻게 된거야?
동우 : 제가 전화했어요, 나오라구.
진숙 : (또 충격!) 뭐라고...??!!
동우 : (애원하듯) 두 분이 그만 화해 하세요, 어머니. 수진이도 그러길 원해요. 네?
진숙 : ...!!!... (석고처럼 굳어버린다)
그 옆으로 다가와 서는.
수진 : 시간 맞춰 왔는데 벌써들 와 계셨네요?
동우 : 우리두 막 온거야. (자신의 옆 자리를 가리키며) 앉아.
수진, 자리로 앉으며 진숙 손에 펴 든 메뉴판을 본다.
수진 : 음식 주문하시려던 참이었나봐요, 어머니?
하며 진숙을 보면 진숙, 대답없이 노골적이 적개심에 이글거리는 표정으로 수진을 무섭게 쏘아본다.
그러나 꿈쩍도 않고 담담하게 마주 보는 수진. 동우도 애써 그런 진숙을 모른척, 무시하며 메뉴판을 펴 든다.
동우 : 식사는 뭘로 해요, 어머니?
진숙 : ...알아서 해.
동우 : (수진보며) 우리 A코스로 통일할까?
수진 : 그게 어떤 건데요?
하는 수진과 머릴 맞대는 동우, 메뉴판의 어느 한 곳을 가리키며 설명해 준다.
표정 꿈틀! 하며 점점 더해지는 분노로 손에 든 메뉴판을 꽉 끌어쥐는 진숙, 어느 순간 둘이 메뉴 판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얼른 수진 근처의 유리로 된 꽃병을 실수처럼 툭! 쳐 버린다. 꽃송이와 함께 단박에 수진의 옷을 흠뻑 적시는 물!
동우와 수진, 놀라서 진숙을 보면 진숙, 아무런 미안한 기색도 없이
진숙 : 어머, 옷 많이 버렸니?
수진 : ...(생긋) 아뇨, 괜찮아요. (물이 줄줄 흐르는 옷을 대충 털어내며 동우에게) 잠깐 다녀 올께요.
S#73. 동. 화장실
휴지를 빼내 꾹꾹 눌러서 옷의 물기를 없애는 수진.
문 열리는 소리에 힐끗 거울을 보면 수진과 시선을 마주치며 빠르게 수진의 옆으로 걸어와 서는.
진숙 : 미안하지만 넌 여기서 빠져 줘야겠다.
수진 : (놀라지도 않고) 왜요, 어머니?
진숙 : 몰라서 물어? 오늘은 동우와 내가 둘이서만 보내기루 한 날이야. 니가 낄 자린 없어.
수진 : 그럴순 없어요, 어머니.
진숙 : (우뚝! 놀라본다) 뭐...? 그럴 수 없어?!
수진, 이제까지완 다른 결연한 표정으로 진숙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수진 : 네. 어머니와 어떻게 약속이 됐든 저도 오늘 재밌게 보내기루 동우씨랑 약속 했거든요.
진숙 : ...!!!... (표정 일그러지며 씹어뱉듯) 넌 첨부터 내 주말을 망치더니 지금도 그러는구나.
수진 : ..??..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본다)
진숙 : 어쨌든 난 너랑 같이 다닐 맘 없어. 그러니 니가 양보해.
수진 : 안 되겠는데요.
진숙 : ..!!.. (하얗게 질린다) 너 지금 내 말을 거역하는거야?
수진 : (침착하게 본다) 그동안 저 많이 당했어요, 어머니. 어머니도 하실만큼 하셨구요. 이젠 저 그만 인정하세요.
들으며 점점 기가 막힌 표정이던 진숙, 눈빛이 싸늘하게 굳으며 수진을 죽일듯이 쏘아본다.
진숙 : 못하겠다면?
수진 : 죄송스런 말슴이지만 그래두 전 상관없어요. 어차피 동우씨 한 사람 보고 결혼 한거니까 동우씨만 좋으면 돼요.
어머니가 어쩌시든 전 이제 신경쓰지 않겠어요. 또 더 이상 당하지도 않을거구요. (순간!!)
진숙 :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하며 뺨을 칠 듯 손을 휙! 쳐드는 진숙. 순간 진숙의 팔목을 덥석! 잡는.
수진 : (눈 하나 깜짝 않고) 제발 현실을 직시하세요. 어머니가 이러실수록 제일 괴로운 사람은 제가 아니라 동우씨예요.
진숙 : ...!!!... (뻥-! ) 뭐야...?
수진 : (조용히 진숙의 손을 내려 놓으며) 어머니도 동우씨가 고통받는건 원치 않으실거라고 생각해요.
진숙 : ...(할 말을 잃는다)...
수진 : 먼저 나가겠어요, 어머니.
말 끝내고 공손하게 고개 숙이며 나가는 수진.
혼자 남겨져 분노와 모욕감으로 부들부들 떠는 진숙, 수진이 나간 문짝을 휙! 쏘 아본다.
S#74. 동. 복도
레스토랑 입구로 걸어가는 수진의 뒷모습. 누군가의 시선처럼 그녀를 덮칠 듯 급격히 치닫는 화면,
어떤 느낌에 수진, 퍼뜩 돌아보면 몸으로 쾅! 부딪히며 수진을 휙 스쳐 지나는 진숙.
짧게 비명지르며 한 순간 몸의 균형을 잃는 수진, 얼른 벽면에 의지해 서서 보면 어느새 레스토랑 안으로 사라진 진숙이다.
S#75. 동. 실내
어느새 핸드백을 울러메고 빠르게 입구로 걸어오는 진숙, 감정을 눌러 참느라 파랗게 경직된 얼굴이고
당황한 모습으로 허겁지겁 진숙을 쫓아오는
동우 : 왜 그러세요, 어머니?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하며 얼른 진숙의 팔을 잡는 동우. 우뚝 차갑게 동우를 돌아보는.
진숙 : 난 오늘 정말 너한테 실망했어.
동우 : ..!!.. (서둘러) 전 그냥 좋은 분위기에서 수진이랑 화해하시라구 그랬죠. 언제까지 서로 모른척 지낼순 없잖아요, 어머니.
진숙 : .....
진숙, 터질듯한 분노를 누르고 대꾸없이 빤히 동우를 노려본다 민망함과 당황으로 어쩔줄 모르는 동우.
동우 : (사정하듯) 어머니.......!
보다가 동우의 손을 훽 뿌리치는 진숙, 그대로 팽하니 몸을 돌려 입구의 문을 여는데 뒤늦게 입구로 들어오던 수진과 마주친다.
수진 : ..!!..
표정없이 수진을 한번 훑어 보고는 쌩하니 그 옆을 스쳐 나가는 진숙. 허겁지겁 진숙을 뒤쫓아 나가는.
동우 : 어머니!
순간 동우의 팔을 탁! 잡는.
수진 : 나랑 얘기 좀 해요. 동우씨!
동우 : 잠깐만. 어머니 화가 많이 나셨어.
하고 동우, 다시 급히 진숙을 뒤쫓아 가려는데 동우의 팔을 단단히 붙들고 놓지 않는.
수진 : (심각하게 본다) 중요한 얘기예요. 어머님에 관한.
동우 : ...???... (수진과 진숙의 뒷모습을 혼란스럽게 번갈아 본다)
S#76. 레스토랑 주차장
운전석의 문을 왈칵! 열어 젖히고 뛰어들 듯 안으로 올라타는 진숙!
조수석으로 핸드백을 사납게 내팽개치며 운전석의 도어를 쾅! 닫고 차 시동 건 다! 부웅-! 급 출발하는 진숙의 차.
S#77. 한강 고수 부지
화면 앞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와 멎는 동우의 차.
<차 안> 운전석의 동우와 그 옆의 수진. 동우, 시동 끄고 핸드 브레이크를 올리면 침착한 얼굴로 동우를 돌아보는.
수진 : 동우씨, 나 사랑해요?
동우 : (동그랗게 본다) 무슨 말이 그래? 사랑하니까 결혼했지!
수진 : 그럼 우리 당분간 나가서 살아요.
동우 : 나가 살다니? 무슨 소리야?
수진 : 동우씨 아까 봤잖아. 어머니가 날 저렇게까지 싫어하는데 우리가 계속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들으며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는 동우, 벌컥!
동우 : 도대체 왜들 이러는거야? 둘 간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이건 해도 너무 하는거 아냐?
수진 : 너무한 건 어머니예요. 어머니가 왜 날 미워하는지 동우씨 알아요?
동우 : ...???... (본다)
수진 : 동우씨 때문이야.
동우 : 뭐...?
수진 : 어머니가 저러시는건 순전히 동우씨 때문이라구요. 동우씰 너무너무 사랑한 나머지
날 며느리가 아니라 연적처럼 생각해요. 그러니 내가 미울 수 밖에 더 있어요?
동우 : (혼란!) 그렇지 않아!
수진 : 모른척 하지 말아요, 제발! 동우씨가 그러면 그럴수록 어머닌 더 하신다구요!
S#78. 진숙집. 안방
주먹을 불안하게 쥐었다 폈다 하며 화면 앞을 빠른 걸음으로 왔다갔다 하는 진숙.
우리에 갇힌 성난 짐승처럼 어깨를 잔뜩 곧추 세우고 으르렁거리듯 방 안을 오간다.
S#79. 한강 고수 부지. 동우의 차 안
이해하기 힘든 얼굴로 수진을 보는 동우. 수진, 꼿꼿하게 시선을 받아낸다.
동우 : ...(한숨) 그래. 그렇다고 쳐. 사실이 그렇다 해두 집을 나가는 것 밖엔 방법이 없는 거니? 날더러 어머닐 버리란 말야?
수진 : 그럼 내가 당신이랑 헤어져요?
동우 : (..!!..) 그런 말이 어딨어!!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야, 지금?!
수진 : ...(고개 돌리고 창 밖을 본다)
동우 : (애가 달아) 찾아보면 틀림없이 다른 방법이 있을거야, 수진아. 내 입장도 좀 생각해 줘야지.
아무리 그래도 나한텐 날 낳고 기른 엄마야.
수진 : (본다) 좋아요. 그럼 동우씨 나한테 몇가지 약속해 줄 수 있어요?
동우 : 뭔데?
수진 : 약속부터 해요. 그럴 수 있어요?
동우 : 약속할게.
수진 : 첫째,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머니 방에서 자지 마요.
동우 : ...!!!... (머쓱해진다) 알았어.
수진 : 또 우리 방에 절대 어머니가 들어오시게 해선 안돼요. 당신 혼자 있을 때라도 마찬가지야.
동우 : ...그래.
수진 : 마지막으로 아내랑 엄마의 역할을 구분해 줘요. 나랑 결혼한 이상 내가 해야 할일과 어머니가 해야 할일은 엄연히 달라요.
어머니한텐 말이 통하지 않으니 동우씨가 나한테 협조해 줘야 돼요.
동우 : 그럴게.
수진 : (새끼 손가락 내밀며) 약속?
동우 : 약속! (힘차게 손가락을 건다)
S#80. 진숙 집
까닥 까닥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빠졌다 하는 진숙의 얼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표정이고,
그 위로 딩동딩동! 끊임없이 울리는 현관 벨 소리. 그러나 눈 하나 깜짝않는 진숙. 연신 울려대는 현관 벨 소리.
S#81. 집 대문 앞
한 손에 케익 상자를 든채 대문 앞에서 벨을 누르는 동우, 아무런 응답이 없자 갸우뚱한다.
동우 : 어디 나가셨나?
수진 : 나한테 열쇠 있어요.
하며 수진, 가방을 열고 곰 인형이 달린 집 열쇠를 꺼내 든다.
S#82. 집 안, 현관
현관 문 열고 들어오는 동우와 수진, 안으로 들어서다가 흠칠! 놀라서 본다!
보면, 거실의 흔들 의자에 앉아 창밖의 정원을 보며 앉아있는 진숙,
동우와 수진의 기척에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그저 까딱 까딱 흔들 의자만 타고 있다.
다소 당황하는 동우와 수진.
동우 : 어머니, 집에 계셨네요?
진숙 : ...(꼼짝도 않는다)...
동우 : ...(더욱 당황해서 수진을 본다)...
안심시키듯 얼른 동우의 팔짱을 끼는 수진, 진숙을 향해 쌩긋 웃으며
수진 : 동우씨가 어머니 드시라고 케익 사 왔어요.
그 말에 퍼뜩 자신의 손에 들린 케익 상자를 의식하는
동우 : 참!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케익이예요. 지금 드실래요?
하는데 흔들 의자에서 불쑥 일어나는 진숙, 그대로 쓱 몸을 돌려 안방으로 들어 간다. 문 닫으며 조용히 딸깍 문 잠기는 소리.
진숙의 여운처럼 혼자서 계속 끄덕끄덕 움직이고 있는 흔들의자.
동우 : ...!!!...
수진 : ...!!!...
어정쩡 서로를 보는 동우와 수진.
S#83. 2층 침실
어딘가 죄책감에 짓눌린 얼굴로 들어와 침대에 풀썩 앉는 동우와 뒤따라 들어와 그 옆으로 앉는 수진, 동우를 본다.
수진 : 불안해요?
동우 : 약간. 우리 이래두 정말 괜찮은거야?
수진 : (표정 굳는다) 하루도 안 지났는데 벌써 흔들리는 거예요?
동우 : 흔들리는게 아니라 괜히 맘이 이상하잖아. 어쩐지 어머니한테 죄짓는 느낌도 들고.
수진 : ...(보다가 동우를 살며시 안으며) 조금만 참아요. 오래가진 않을 거예요.
동우 : (털썩!) 참 우습지? 그냥 행복하게만 살자는데 뭐가 이렇게 복잡한지!
S#84. 식탁 (아침)
아침의 햇살. 식탁에 둘러 앉은 세 식구.
시선을 내리깔고 토스트와 주스를 묵묵히 열중해서 먹는 진숙, 어제와 다름없이 무표정한 얼굴이고
전전긍긍 진숙의 눈치만 보는 동우와 포크로 달걀 후라이만 말없이 먹는 수진.
그릇 딸깍이는 소리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식탁.
어색해서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는 동우, 괜히 헛 기침을 한번 하고 용기를 내어 진숙을 본다.
동우 : 아침은 잘 안드시면서 오늘은 웬일이세요?
진숙 : ...(쳐다도 안 보고 식사할 뿐)...
동우 : ...(머쓱!)...
수진 : 동우씨 커피 더 줘요?
동우 : 아냐, 난 됐어.
수진 : 어머닌요?
하는데 어느새 접시를 깨끗이 비운 진숙, 포크를 내려 두고 냅킨으로 입가를 살 짝 닦더니 일어나 조용히 밖으로 나간다.
마치 귀먹은 장님처럼 여유있게 자기 할 일만 하는 진숙,
한편 안도하면서도 한 편 불안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진숙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동우와 수진.
S#85. 대문 앞
출근하는 동우와 배웅하는 수진.
동우 : (대문 열고 문득) 미안해.
수진 : 뭐가요?
동우 : 전쟁터에서 나만 도망쳐 나가는 것 같아서.
수진 : (웃음) 별 소릴 다 듣겠네. 늦겠어, 얼른 가요.
동우 : 대신 뭐 먹고 싶은거 있음 말해. 올 때 사 가지고 올 테니까.
수진 : 난 당신만 있음 돼요. 회사 끝나고 곧바로 오기나 해요.
뭉기적이는 동우를 내몰 듯 대문 밖으로 떠다미는 수진, 문 닫고 돌아서 집 현관으로 걸어간다.
그러다 언뜻 1층 거실의 유리창을 보고 멈칫 선다. 보면, 가운 차림으로 서서 언제부턴가 표정없이 수진을 보고 있는 진숙.
수진, 순간적으로 진숙을 향해 어색하게나마 웃어 보이려는데 쓱- 돌아서 창가로부터 사라지는 진숙.
수진 : .....
표정 안타까워지며 자책감으로 어두워지는 수진. 그러나 곧 맘 독하게 다져먹듯 어깨를 쭉 펴고는 현관 안으로 들어간다.
S#86. 2층 침실
오디오에서 흐르는 경쾌한 세미 클래식. 모든 걱정을 떨치듯 방의 창문을 활짝 여는 수진.
상큼한 미풍을 폐부 깊숙히 받아들이듯 크게 숨을 들이 내 쉰다.
한결 기분이 나아진 얼굴로 바람에 날리는 커튼 자락을 잡아 고정시키는 수진,
활달하게 움직여 침대의 시트를 벗겨내기 시작한다.
S#87. 어딘가의 욕조
문 열고 들어오는 여전히 가운 차림의 진숙. 표정 무뚝뚝한채 욕조로 걸어간다.
바깥에서부터 희미하게 들려오는 수진 방의 클래식 음악 소리.
진숙, 욕조 바닥의 물 마개를 닫고 수도 꼭지를 틀면 음악 소리를 지우며 세차게 터져나오는 수돗물.
점점 차오르는 욕조의 물을 멍하니 응시하며 욕조 위로 걸터앉는 진숙.
S#88. 2층 침실 안과 밖
침대 둘레를 돌며 새롭게 깐 시트의 가장자리를 안으로 접어 넣는 수진.
마찬가지로 새 베갯 닢으로 갈은 베개와 이불을 하얀 시트위로 가지런히 정리해 깔고는 만족스럽게 보며 손을 탁! 턴다.
수진, 세탁할 시트와 베갯 닢들을 안아 드는데 똑! 똑! 노크 소리.
언뜻 보는 수진, 얼른 세탁할 뭉치들을 내려놓고 긴장한 얼굴로 문으로 걸어간다.
수진 : 네?!
문 열면 바로 앞에 팔짱을 낀채 우뚝 서 있는 진숙, 수진을 가만히 바라본다.
수진 : (...???...) 무슨...?
하는 순간!! 두 손을 번개처럼 뻗치고 달려드는 진숙! 수진의 머리채를 콱! 휘어잡고 그대로 앞으로 화악! 잡아당긴다.
수진 : 아악---!!
비명 지르며 앞으로 쿵-! 엎어지는 수진을 한치의 틈도 주지 않고 사정없이 방 밖으로 끌어내는 진숙,
눈 하나 깜짝 않고 힘껏 2층 욕실로 끌어당겨 간다.
너무나 순식간이 일이라 미처 대항할 기력을 잃은 수진,
정신없이 발버둥치며 머리채를 움켜 쥔 진숙의 손을 미친듯 할퀴고 잡아 뜯는다.
수진 : 아악!! 왜 이래요?! 어머니!! 이거 놔요! 노세요, 어머니!!!
그럴수록 더욱 주먹을 단단히 끌어쥐는 진숙, 거실을 가로질러 문 열려진 욕실로 있는 힘을 다해 수진을 끌고 들어간다.
S#89. 2층 욕실 안
잠그지 않은 수도 꼭지와 물 철철 넘치는 욕조.
아아아악~!!! 몸부림치는 수진을 씩씩거리며 끌고 들어오는 진숙. 공포에 질려 격렬하게 저항하는.
수진 : 놔요!!! 왜 이래요?!!
하자마자 진숙, 수진을 욕조 쪽으로 확 내팽개친다. 앞으로 내달리듯 쓸려가 욕조에 쾅! 몸을 부딪는 수진.
바닥에 쿵! 나동그라 진다. 널브러져 신음 지르는 수진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진숙. 천천히 수진에게로 다가가며
진숙 : 감히 니가 동우랑 날 이간질 시키려 들어? 그동안 동울 생각해 곱게 봐줬드니
뭐? 나더러 뭐라고? 현실을 직시하고 널 인정해?!
수진 : ...!!!... (경악!)
아득해지는 정신을 수습하며 서둘러 욕조르 짚고 상체를 일으키는 수진.
하지만 그 옆으로 서며 그대로 수진의 등을 찍어 누르는 진숙, 수진의 머리채를 잡고 홱 제끼더니
물 가득한 욕조로 무자비하게 퍽!! 박아 버린다.
비명을 삼키며 욕조 속으로 깊숙히 쳐박히는 수진, 두손을 첨벙거리며
자신의 머리 채를 틀어 쥔 진숙의 손을 다급하게 쥐어 뜯지만...!
진숙, 끄떡도 없이 있는 힘껏 수진의 머리를 누르면서도 표정은 오히려 조금의 흔 들림 없이 냉정하고 침착하다.
진숙 : 당할만큼 당해서 더는 못 당한다고?! 못 당하면 어떡할거야, 니가! 진짜 당하는게 뭔지 가르쳐 줄가? 가르쳐 줘?!
욕조의 수면으로 부글부글 솟구쳐 터지는 공기 거품! 고통스럽게 퍼덕여 대는 수진!
어느 정도 됐다싶자 수진의 머리채를 왈칵! 물 밖으로 꺼내는 진숙!
커-억!! 참았던 숨을 한껏 들이키는 수진!! 그러나 내 뱉기도 전에 다시 되풀이해서 물 속으로 퍽-! 쳐박는
진숙 : 분수도 없이 니가 누구한테 덤벼?!! 나랑 한 번 해보겠단거야, 뭐야? 왜 날 이렇게 만들어??!! 왜!!
말하며 점점 이성을 잃는 진숙, 수진의 머리채를 사납게 뒤로 제껴 반복적으로 물 속에 퍽! 퍽! 쳐박아 댄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진숙의 얼굴! 지푸라기라도 잡을 듯 필사적으로 허공을 내젓는 수진의 두 손.
이를 악물고 수진을 틀어박는 진숙.
언젠가부터 격렬히 몸부림치던 수진이 아예 짚으로 만든 인형처럼 아무렇게나 진숙의 손에 휘둘려 댄다.
어느 순간 수진의 머리채를 들어 바닥으로 휙! 팽개치는 진숙이고 털퍼덕-! 바닥에 모로 나가 떨어지는 수진.
호흡을 고르며 흐트러진 자신의 머리와 가운 매무새를 바로하는 진숙, 수진을 내려다 보며.
진숙 : 명심해. 한번만 더 까불었다간 그땐 정말 가만 안 둬.
하며 발로 수진의 몸을 한번 퍽! 차는 진숙. 젖은 가운 소매를 걷으며 빙글! 몸을 돌리다가 언뜻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지며
두렵게 도로 홱 돌아본다. 조금의 꿈틀거림도 없이 죽은 시체처럼 숨도 안 쉬고 자빠진 수진.
진숙 : ...???...
진숙, 조심스럽게 발로 수진을 툭! 건드려 보지만 허사고 정신이 번쩍! 드는 얼굴로 당황한다.
S#90. 병원 복도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하얗게 질려서 복도를 달려오는 동우, C.T.검사실이란 푯말 을 따라 급히 복도를 꺾어 달린다!
동우 : 어머니...!!!
보면, 검사실 앞의 대기 의자에 초조하게 앉아있던 진숙, 돌아보며 벌떡 일어난다.
동우 : 어떻게 된 거예요?! 수진이 어떻게 됐어요?!
흥분하는 동우를 진정시키듯 또박또박 말에 힘을 줘서 말하는.
진숙 : 걱정 마. 폐까지 물이 들어가진 않았데. 것만 아니면 아무 위험이 없다니까 일단 안심해도 좋다는 구나.
동우 : (검사실 안으로 들어가려 하며) 이 안에 있어요?
진숙 : (동우를 잡고) 들어가면 안돼. 외부인 출입 금지야. 다른 이상은 없는지 그냥 하는 검사라니까 조금 있으면 끝날거야.
동우 : ..??!.. (황당한 표정) 어떻게 된건지 다시 설명해 보세요, 어머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목욕하다가 욕조에 빠지는 사람이 어딨어요?
진숙 : (덩달아 황당한 표정) 난들 알겠니? 그나마 내가 발견했으니 하늘이 도운거지 안 그랬음 정말 큰일 날뻔 했어.
동우 : 어떻게 그런 일이 다 있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진숙 : 일어낟가 어딘가 머릴 부딪혔든지 수가 있었겠지. 재수 없으면 접시에도 코 박고 죽는다잖니.
동우 : ...(믿을 수 없단듯 고개를 절레 절레 저으며) 깨나고 직접 물어보면 알겠죠.
진숙 : ...(표정 싸늘하게 식으며 동우를 살피듯 본다)...
동우 : 언제 나온데요?
진숙 : 곧 나오겠지. 점심은 먹었니?
하는데 검사실 문 열리며 나오는 의사.
S#91. 병실
화면 전체가 뿌옇고 흐릿하게 보여지는 누군가의 시선이 되어 혼미하게 주위를 두르는 가운데
멀리서 들려지는 것처럼 빠르고 아련하게 들려지는 수군거림들
소리 : (동우) 정말 괜찮겠어요?
소리 : (의사) 하루만 지나면 훨씬 양호해질 거예요.
소리 : (진숙의 조심스런 음성) 언제쯤 깰까요?
순간 서서히 밝아지는 화면이고
그 앞으로 카메라를 들여다 보듯 쑥 다가오는 동우의 걱정스런 얼굴과 그 뒤로 보여지는 진숙의 얼굴.
동우 : 나야, 수진아. 괜찮니?
하는데서 수진, 도로 의식을 잃은듯 화면 다시 까마득하게 어두워지며 암전한다.
<타임커트>
새소리. 이른 아침의 햇살이 비스듬히 비쳐드는 속에서 링겔을 꽂은 채 괴로운듯 뒤척이다가 어느 순간 번쩍! 눈을 뜨는 수진.
눈을 깜빡이며 왜 자신이 거기에 있는지 생각나지 않는듯 천천히 안을 둘러본다.
보다가 갑작스럽게 팍! 얼어 붙으며 숨을 멈추는 수진!
보면, 진숙이 병실 구석의 의자에 꼿꼿이 앉아 유리알 같은 눈을 차갑게 번들거리며 수진을 똑바로 지켜보고 있다.
왈칵! 공포와 불안에 휩싸이는 수진, 경련을 일으키듯 온몸을 부들거리며 도움을 구하듯 급히 안을 휘두른다.
그러나 진숙과 자신 둘 뿐이다.
수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침착하게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다가오는.
진숙 : 정신이 좀 드니?
수진, 두 눈이 두려움으로 커다랗게 벌어지며 얼른 몸을 움직이려 애쓰지만 공포감에 굳어 꼼짝도 않는다.
수진 : 저리가요! 가까이 오지 마...!!
하는 수진의 음성, 목 졸린듯 거의 들리지 않고 무시하고 바로 수진의 곁으로 서는 진숙.
잠시 살피듯 수진을 내려 보다가 수진의 귓가로 자신의 입술을 바싹 갖다댄다.
수진 : ...???... (허옇게 굳는다)
진숙 : 경고하는데 정신 병원에 안 들어갈거면 입 조심해. 어차피 본 사람도 들은 사람도 없으니 누가 니 말을 믿겠니?
너만 더 피곤해질 뿐이야.
수진 : ...!!!...
달콤한 밀어라도 속삭이듯 자근자근 말하는 진숙.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 열고 들어오는 의사와 인턴들.
인턴1 : 아침 회진입니다.
구세주를 만난듯 그들에게로 급히 시선을 던지는 수진.
입을 벌려 고함을 지르려 하지만 꺽꺽 거릴뿐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 수진을 보며 씨익 웃는 진숙, 걱정 가득한 시엄마의 표정으로 돌변하며 의사 들을 향해 빙글 돌아선다.
수진 : ...!!!... (눈 감고 고개 돌려 버린다)
S#92. 진숙 집. 부엌 (다음 날 오후)
콧 노래를 흥얼거리며 부산하게 조리대를 오가는 진숙. 야채를 썰고 고기르 다지는 등 신이 나서 뭔가 요리를 한다.
냄비에 물을 받아 렌지에 올리는 진숙. 가스 렌지의 버튼을 탁! 켜는데 딩동! 울리는 현관 벨 소리.
S#93. 현관
현관 안으로 들어서는 동우와 동우를 반갑게 마중하는
진숙 : 오늘은 웬일루 일찍 왔네? 아직 저녁도 다 안 차렸는데.
동우 : 수진이 퇴원하는 날이잖아요. (진숙의 뒤를 보며) 수진인요?
진숙 : 지 방에 있겠지. 빨리 씻고 내려와. 저녁 맛있는 걸루 준비했으니까.
S#94. 2층 침실
문 열고 들어서는 동우, 들어서자마자 어딘가 보며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못 박힌다.
보면, 발치에 트렁크를 붙이고 서서 동우를 기다리고 있는 수진.
동우 : 뭐 하는 짓이야, 이게?
수진 : 집을 나가겠어요.
동우 : (경악) 뭐라구?!!
수진 : 그냥 갈수도 있었지만 동우씨한테 말하고 가고 싶었어.
동우 : ...!!!... (표정이 엉망으로 구겨진다) 또 왜 그래? 어머니랑 또 무슨일이 있었어?
수진 : (피곤) 더 이상은 긴 말하지 않겠어요. 어머니랑 나 둘중에 한 사람을 선택해요.
동우 : 이런 법이 어딨어?! 이러지 않기루 했잖아!
상관없이 트렁크를 들고 문 앞으로 또박또박 걸어오는 수진, 동우의 앞으로 서서 손에 들고 있던 종이 쪽지를 건네며
수진 : 이건 내가 있을 곳 전화 번호예요. 누구랑 살지 결정이 되면 전화해요. 기다릴게요.
하고 동우를 스쳐 나가려는데 수진의 팔을 거칠게 잡아채는.
동우 : 이럴순 없어. 난 시키는데루 다 했고 요샌 어머니랑 말도 제대로 안 했어. 근데 집을 나가겠다니 도대체 이유가 뭐야!
알아야 나도 생각을 할거 아냐?
수진 : ...(잠자코 보다가) 동우씬 내가 이 집에서 죽어 나가길 바래?
동우 : (황당) 죽어나가? 무슨 소리야, 그게?
수진 : 말하면 믿겠어요?
S#95. 1층 계단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부엌에서 손을 닦으며 나오는 진숙, 문득 계단 쪽을 본다.
트렁크를 든 수진이 혼자 내려온다.
진숙 : (아무렇지도 않게) 너 어디 가니?
수진 : ...(무시하고 현관으로 걸어 나간다)...
수진에게로 가가이 걸어가는.
진숙 : 꼴을 보니 집이라도 나가는 모양이지?
수진 : ...(신발을 신는다)...
진숙 : (힐끗 2층을 올려다보곤 낮고 빠르게 속삭인다) 니 맘대루 들락거릴 생각마. 다시 들어올 생각은 아니겠지?
그제사 조용히 고개 들고 진숙을 보는 수진. 담담한 표정, 한 구슥 측은함까지 엿보이는 표정으로
수진 : 설사 하늘이 두 쪽 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런 일은 절대 없을 테니 염려마세요.
하고 조용히 현관 밖으로 나간다.
피식! 차갑게 비웃으며 2층 쪽을 올려다 보는 진숙. 동우, 웬지 너무 조용하다.
약간 의심스런 표정으로 2층 계단을 올라가는 진숙.
S#96. 2층 침실
침대에 참담한 얼굴로 묵묵히 바닥만 내려다 보고있는 동우, 마치 넋이 빠진 사람 처럼 멍! 해서 앉아있다.
열려진 침실 문 안으로 활달하게 들어오는
진숙 : 동우, 뭐해? 저녁 먹어야지.
순간! 고개 치켜들고 진숙을 믿을 수 없단듯 험악하게 쏘아보는 동우.
진숙 : (주춤! 본다) 왜 그래?
동우 : (나직이) 어머닌... 수진이가 집 나간걸 몰라서 이러시는 거예요?
진숙 : 글쎄?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나가긴 하든데 그게 집 나간 거였니?
동우 : ...!!!...(진숙을 더는 마주 볼 수 없는듯 얼른 고개 떨군다)
진숙 : 나간 애는 나간 애고 우린 우리야. 그래서 저녁 안 먹을거야?
동우 : ...!!!... (입술을 질끈 깨문다. 씹어 뱉듯) 혼자 있게 해줘요.
표정 차갑게 굳는 진숙, 팽하니 돌아서 나간다.
동우 : ...(참담하게 가라앉는다)...
S#97. 혜경의 오피스텔
참담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는 수진. 그 옆에 서서 수진을 안스럽고 걱정스럽게 보는.
혜경 : 몸은 정말 괜찮은거야?
수진 : 음.
혜경 : 뭐 따뜻한 거라도 마실래?
수진 : 아냐. 됐어. 신경 쓰지마.
혜경 : ...(마침내 꾹 눌러 참았던듯 화를 폭발하는) 생각할수록 분통 터지네. 증말?! 뭐 그 따위 여자가 다 있어?!
넌 등신이야? 당하고만 있게!!
수진 : (풀기없는 웃음) 그래. 내가 생각해도 나 등신이야. 나 좀 누울게, 괜찮지?
하며 힘없이 일어나 침대로 걸어가는 수진. 무너지듯 침대위로 쓰러져 눕는다.
혜경, 표정 누그러뜨리며
혜경 : 오빠한테 전화 해야지?
수진 : ...(천장만 멀거니 본다) 싫어.
하지만 벌떡 일어나 전화통으로 걸어가며.
혜경 : 안돼. 전화 해. 당장.
수진 : (표정 굳으며 본다) 싫어. 하지마, 혜경아.
혜경 : 싫단 말이 나와? 일이 이 지경인데?!
수진 : (일어나 앉으며) 그래서 더 싫어. 괜히 걱정 시키고 싶지 않아.
혜경 : 그런 못 된 생각 버려, 너! 니 오빠가 널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데, 나중에라도 이 사실을 알아 봐. 나까지 욕먹어!
수진 : (벌컥!) 알아! 아니까 그만 해 제발!
하며 침대 아래로 튕기듯 내려서는 수진.
혜경 : 수진아...?
수진 : 나라고 오빠 생각 안 나겠니? 오빠 앞에서 펑펑 울고 싶어, 나두! 이제 나 어떡하면 좋겠냐고!
혜경 : ...!!!... (당황)
수진, 터지려는 울음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표정을 숨기듯 급히 돌아선다.
수진 : 말해서 금방 달려올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오빠 아니야. 그럴 처지도 못 돼. 빤히 알면서 뭐하러 쓸데없이 걱정 시켜?
혜경 : ...미안해. 나 화 나는 것만 생각하느라 니 기분 따질 여유가 없었어.
수진 : ...(눈물을 삭이려 애쓴다)
혜경, 다가와 말없이 수진을 안아주면 그제사 혜경의 품에 안겨 펑펑 울음을 터트리는 수진.
S#98. 진숙 집. 안방
화장대 앞에 앉아 수화기를 든
진숙 : 글세 말야. 어떡하겠니? 지발로 나가겠다는데 우리 동우만 불쌍하지, 뭐. 서로 정이 떨어졌으니 이혼한다 그러는 거겠지만
사회적 체면이란게 있잖니. 그래서 나 너한테 뭐 좀 부탁할려구. 늦어도 모레쯤, 머리도 식힐 겸 동우랑 유럽이나 한바퀴
돌까 싶어. 근데 비행기 표 구하기가 만만찮드라. 그래. 니네 남편 여행사 사장인데 그 정도 안될까 싶어서.
알았어. 이번 동창회 모임은 내가 주선 할 테니까 내 부탁 꼭 좀 들어줘. 그래 내일 다시 전화할게. 끊어.
흡족한 얼굴로 수화기를 내리는 진숙. 거울 보며 얼굴을 매만지고 일어난다.
침대로 돌아서다가 깜짝 놀라는 진숙! 보면,
언제부턴가 안방 문 입구에 서있는 동우, 진숙의 전화 통화를 다 들은듯 표정이 뻣뻣이 굳어 있다.
진숙 : (당황한 웃음) 놀랐잖니! 왜 그러구 서 있어?
동우 : (마치 낯선 사람을 살피듯 묘한 눈길로 진숙을 본다)...
진숙 : 안 그래도 너한테 갈 참이었어. 여행이라도 좀 다녀 오자 그럴려구. (하는데)
동우 : 결국 어머니가 원했던게 그거 였어요?
진숙 : 그거라니 무슨 말이야?
동우 : 나 이혼 시킬려구 결혼시킨 거냐구요.
순간 짜증스럽단듯 얼굴이 팍! 굳는 진숙, 동우를 차갑게 쏘아보며
진숙 : 응석 그만 부려. 그만큼 했음 충분해.
동우 : (기가 찬다) 응석이요??!
진숙 : 니가 원했던대로 다 해줬잖니. 결혼도 시켜줬고 걔랑 살게도 해줬어.
해봐서 알겠지만 너랑 나 사이에 니 결혼이란게 얼마나 안 어울리는 일인지.
동우 : (..!!..) 그럼 왜 첨부터 결혼 반대 안 하셨어요?
진숙 : (짐짓 기가 찬단듯) 몰라서 그래? 결혼 안 시켜주면 니가 죽는다 그랬잖아!
동우 : (황당!) 단지... 단지 그것 때문에 결혼시켰어요? 내가 죽을까봐.
진숙 : 그래.
동우 : 그럼 수진인 뭐예요?
진숙 : 무슨 소리야?
동우 : 수진이 감정은 생각도 안 하셨어요?!
그 말에 표정이 이해할 수 없단듯 일그러지는
진숙 : 내가 왜 그 기집애 감정까지 생각해? 걔가 나한테 뭐길래!
동우 : ...!!!...(표정 싸늘하게 굳는다) 저 집 나가겠어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하듯 입이 딱 벌어지는...
진숙 : (..???..) 뭐라고...? 너 방금 뭐라 그랬니?
동우 : 집 나가겠다구요.
진숙 : ...!!!...(충격!)
동우 : 어머니 때문에 제 결혼을 망칠 생각은 없어요. 전 수진이도 절대 포기 못해요.
말하고 차갑게 돌아서는 동우, 방으로 걸어가는데
진숙 : 거기 서!!
동우 : ...!!...(우뚝 서지만 돌아보진 않는다)
진숙 : 허락 못해. 못 나가!
동우 : (돌아선 채) 제 인생은 제가 결정해요.
진숙 : 너...?? (쥐어짜듯 힘겨운 음성) 그 기집애가 그렇게 꼬드기디? 저랑 살면 잘 살거라고?
동우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무시하고 다시 걷는데)...
진숙 : ...!!!... (꽥) 너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난 내 모든 걸 다 바쳤는데 넌 왜 책임을 안 지니?
동우 : (돌아본다) 무슨 책임이요?!!
폭발하듯 바락바락 악을 쓰는.
진숙 : 너한테 바친 내 모든 것에 대한 책임!! 내 시간, 내 젊음, 내 돈, 내 행복, 내 모든 걸 다 줬잖아. 근데 넌 왜 못 그래?
왜 내가 한 만큼 하질 않느냔 말야!!
동우 : (황당) 그 말은... 나더러 평생 어머니만 바라보고 모든걸 어머닐 위해 살라는 거예요?
진숙 : 그래! 난 그렇게 해줬잖아!
동우 : ...(냉담하게 본다) 전 못 해요.
진숙 : ...!!!...
단호하게 돌아서 가는 동우, 2층 계단을 쿵쿵거리며 올라가는 소리.
새파랗게 질려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진숙. 주먹을 꽈악-!! 끌어쥐는 손의 관절이 새하얗게 변해간다.
S#99. 2층 침실
벌컥! 옷장 문 열고 자신이 옷가지를 꺼내는 동우, 분노를 참느라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서 침대로 아무렇게나 옷을 던진다.
이 때 방 입구로 나타나 서는
진숙 : 너 정말 , 정말루 나갈거니?
보면, 어딘가 괴상하고도 당혹한 미소를 짓고 선 진숙.
동우 : (무시하고) 네.
파랗게 질렸던 진숙의 표정, 갑자기 무서운 속도로 침착해지며 차분한 어조로.
진숙 : 니가 원하는게 이런거야?
하며 등 뒤로 돌리고 있던 손을 앞으로 쓱 빼는 진숙. 손에 식칼이 들려있다.
동우, 이상한 느낌에 돌아보면 진숙, 동우를 빤히 보며 손에 쥔 식칼로 마치 파를 다지듯 다른 쪽 팔뚝을 썰어대기 시작한다.
경악하는 동우, 자신도 모르게 허-억! 숨을 삼키며 팍! 얼어 붙는다!
팔뚝 위로 금새 씨뻘건 핏물이 철철 흘러 내리는데도 전혀 고통스런 표정 하나없이 동우만을 빤히 보는
진숙 : 이런거 였어? 니가 원하는게?
하며 이번엔 가슴위로 칼을 들이대는 진숙, 칼을 획! 치켜드는 순간 번개처럼 달려 드는.
동우 : 어머니!!
동우, 칼을 든 진숙의 손목을 낚아채고 그대로 방 밖 거실로 함께 나동그라진다. 그제사 미친듯이 울부짖는
진숙 : 놔! 왜 내 맘을 몰라 주는 거야! 왜?!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온통 빨간 페인트로 칠해지듯 핏물로 흥건해지는 바닥.
칼을 뺏으려고 기를 쓰고 달려드는 동우 역시 진숙 팔의 핏물로 온통 핏칠갑이 된다.
동우 : 이리 줘요! 주세요, 어머니!!
피범벅의 팔을 휘두르는 진숙과 뒤얽혀 진숙의 손에서 필사적으로 칼을 낚아채는 동우!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공포스럽게 보며 얼른 구석 멀리로 던져 버린다.
발악이라도 하듯 바닥을 데굴데굴 뒹굴며 울부짖는 진숙. 진숙을 급히 꽉 부둥켜 안고 정신없이 일으켜 세우는 동우!
욕실을 향하다가 거실 바닥의 흥건한 핏물에 미끌려 도로 꽈당-!! 나동그라져 버린다.
비명지르며 마치 생지옥에서 허우적이는 사람처럼 혼이 나간 모습으로 다시 발딱 일어나는 동우,
진숙을 잡아 끌어 욕실로 들어가는데 사납게 발버둥치며 악을 쓰는
진숙 : 내 인생에서 남자라곤 오직 너 뿐이었어! 그런데 어떻게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니? 왜 내 맘을 모르는거야?
S#100. 욕실 안
세면대 앞으로 진숙을 잡아 세워 놓는 동우, 얼른 샤워 꼭지를 틀어 진숙의 피 범벅이 된 팔을 씻기는데
기진맥진해서 동우가 하는데로 몸을 내맡긴 진숙, 어린애처럼 엉엉 울며 계속 말을 이어간다.
진숙 : 30년이야! 30년간이나 난 벙어리 냉가슴 앓듯 살았어. 널 낳았단 죄 하나로 좋아한단 말 한번 못했어!!
힘겹게 진숙을 부축한채로 대충 팔을 씻긴 동우, 샤워기를 내던지고 듣는둥 마는둥 급하게 욕실의 선반을 뒤진다.
동우 : 알아요, 아니까 진정하세요, 어머니.
진숙 : 안다고? 니가 뭘 알아?
하는 진숙을 얼른 욕조에 앉히고 선반에서 꺼낸 응급약 등으로 신속하게 진숙의 팔을 소독해 주는 동우.
진숙 : 새파랗게 젊은 년이 들어와 그 더러운 손으로 널 함부로 만지고 부벼댈 때 내가 얼마나 그 년을 얼마나 저주했는지 알아?
순간 이마의 진땀을 닦던 동우, 흠칫 진숙을 올려다 보며 표정이 약간 이상해진다.
진숙 : 내 심정을 몰라주는 너도 미웠어! 날 니 엄마로 만든 신도 저주스러워!
왜 내가 니 여자면 안되는거야?! 정말 사랑하는데! 사랑해서 미쳐 버릴 것 같은데...!!!
들으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동우!
진숙, 욕조 바닥으로 철퍼덕! 주저앉으며 가슴이 미어 터지도록 흐으, 흐으으...윽 ...!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한다.
동우 : 어머니...!!! (하얗게 질리며 진숙을 공포스럽게 본다)
S#101. 혜경의 오피스텔
트렁크를 열고 수진의 짐을 함께 정리해 주는 혜경.
혜경 : 다른 짐은 어떻할거야?
수진 : ...동우씨 전화오면 그때 부쳐 달라지 뭐.
혜경 : 전화가 오긴 올거 같니?
수진 : ...(표정 어둡다)...
혜경 : 이런 말 도움도 안 되겠지만, 니 남편 나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 세상에 그런 남자 없어.
수진 : ...(긍정도 부정도 않고 묵묵히 짐만 밖으로 꺼낸다)...
그러다가 트렁크 속에서 삐죽 튀어 나오는 곰 인형이 달린 진숙 집의 열쇠 고리. 들고 보는 수진, 표정이 어수선해 진다.
혜경 : 무슨 열쇠야?
수진 : (찝찝) 그 집꺼야.
혜경 : (재수 없단듯) 버려.
수진 : 왜, 나중에 갖다 줘야지.
하며 갈색 손가방 안으로 열쇠고리를 넣는 수진.
S#102. 1층 안방
하얀 붕대로 칭칭 감아 올린 진숙의 왼팔. 화면 빠지면 파리한 얼굴로 침대에 누운 진숙과
그 옆에 서서 빨간 수면제 약병을 여는 동우, 약 한알을 꺼내 물컵과 함께 진숙에게 준다.
받아서 말없이 약을 먹는 진숙을 부축하는 동우. 시종 멍하니 넋이 나간 얼굴로 진숙을 본다. 둘 간의 적막과 고요!
자신이 쏟아낸 말 때문에 스스로 어색해 진듯 동우의 시선을 피하고 있던 진숙, 어느 순간 동우를 돌아보며 애써 미소 지으며
진숙 : 그만 올라가. 난 괜찮으니까.
동우 : ...(묵묵히 볼뿐)...
진숙 : 모레 여행 갈 수 있겠니?
동우 : 뒤로 미뤄요. 어머니 팔 다 나으면요.
진숙 : ...그래. (불안하게 본다) 너... 집 안 나갈거지?
동우 : 네.
진숙 : 정말이지? 믿어두 되지?
동우 : 그럼요. 걱정말고 주무세요. (하며 진숙의 손을 살며시 꼬옥 잡아준다)
동우를 애정과 사랑이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는 진숙.
S#103. 혜경 오피스텔
스탠드 불빛,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는 혜경과 수진.
혜경 : 잠 안 와?
수진 : 자야지.
혜경 : 불끌까?
하는데 따르릉! 울리는 전화벨. 화들짝 놀라는 혜경과 수진 울리는 전화벨의 수화기를 드는.
혜경 : 여보세요?
필터 : ...(아무 소리 없다)....
혜경 : 여보세요, 전화를 걸었음 말을 해야죠. (그 뒤에서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보는 수진)
필터 : ...(역시 묵묵 부답)...
혜경 : (신경질) 오밤중에 누가 전화루 장난질이야?! 쯧!
끊으려는데
필터 : (동우) 저... 수진이 좀 부탁합니다.
혜경 : ...!!!... (놀라서 얼른 수진을 돌아보면)
튕겨 오르듯 벌떡! 일어나는 수진.
S#104. 진숙 집. 2층 침실
화면 가득 수화기를 든 굳은 얼굴의 동우,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동우 : 짐은 싸 놨어. 일단 나가서 다시 전화 할게.
필터 : (수진)... (믿기지 않는듯)...
동우 : 듣고 있니.
필터 : (수진, 떨리는 음성) 진짜... 진짜루 결심한 거예요?
동우 : ...음.
S#105. 혜경 오피스텔
놓칠세라 두 손으로 수화기를 꼭 붙들고 선 수진, 흥분과 놀람에 들뜬 표정으로
수진 : 언제 나올 건데요?
필터 : (동우) 될수록 빨리. 기다릴 수 있지?
수진 : (눈물 글썽) 기다릴께요.
필터 : (동우) 그래. 그럼 끊는다?
수진 : (다급하게) 동우씨!
필터 : (동우) 왜?
수진 : 고마워요, 또... 정말 미안해요.
필터 : (동우, 힘없는 웃음) 짜식이! 그건 내가 할 소리야, 임마. 너 알기나 해?
수진 : 뭘요?
필터 : (동우)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야.
수진 : 네...!
필터 : (동우) 좋은 꿈 꾸고 잘 자.
끊기는 전화음. 수화기를 내리는 수진, 감격으로 얼굴이 환해지며 얼른 옆의 혜경을 와락! 안는다.
수진 : 됐어, 혜경아. 됐어.
혜경 : (짐작하고) 기집애! 1시간 전만 해도 세상 다 산 사람같드니 이제 좀 살만 하니?
하면서도 수진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혜경.
S#106. 진숙 집. 2층 침실
조심스럽게 수화기 내리는 동우. 천천히 고개 돌려 이젠 떠나는 사람의 심정으로 방 안을 찬찬히 훑어 보는 동우.
껍데기만 남겨져 안은 텅 비었을 가구들. 화장대 거울로 보여지는 자신의 초췌한 모습.
벽면에 패잔병처럼 걸려있는 수진과의 결혼 사진.
그러다가 문득...!! 침대 선반에 놓여진 진숙과 자신의 사진 액자(씬 5에서 보여진)에 우뚝! 시선이 꽂 힌다.
차츰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는 동우, 진숙에 대한 죄책감인듯 갑자기 벌컥! 소리없이 울음을 터트린다.
S#107. 1층 안방 (다음날 새벽)
방 안으로 새벽 6시를 말하는 거실의 맑은 뻐꾸기 시계 소리가 들려진다.
침대의 흠칠! 깨는 진숙의 모습 붕대가 감긴 손으로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어내며 일어나 앉다가
잘못 움직여 팔의 상처 부위를 삐끗한다. 끙! 통증으로 신음을 흘리는 진숙, 인상을 찡그리며 부시시 침대 아래로 내려 선다.
S#108. 1층 거실
아침 단장을 마치고 나오는 진숙. 팔의 붕대를 가리듯 긴 팔 블라우스의 소매 단추를 가까스로 꿰 맞추며 부엌으로 걸어 가다가
언뜻 2층을 바라보는 진숙. 생각을 바꿔 2층 계단으로 올라간다.
S#109. 2층
계단을 올라오는 진숙. 2층 위로 올라서 무심히 실내를 스쳐보며 침실 앞으로 서서 손을 든다.
노크를 하려는 순간 진숙, 갑자기!!! 두 눈이 커다랗게 벌어지며 뭔가를 본 듯 어딘가를 휙! 돌아본다!!
보면, 거실 허공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동우의 축 늘어진 시체!!
천장의 샹들리에에 하얀 침대 시트를 찢어 만든 끈으로 목을 매달아 죽어있는 동우고 그 아래로 나 뒹굴어 있는 의자등이
거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강렬한 햇살에 새하얗게 탈색되어 있다.
두 눈을 부릅뜨며 급속도로 표백되듯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진숙, 기절할 듯이 몸이 휘청한다.
진숙 : 안돼...? 안 돼, 동우야?
한 걸음 내딛는 진숙이지만 자신의 눈으로 보면서도 강하게 부정하는듯 바닥에서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고 어느 순간!!
눈이 확! 뒤집어지며 미친듯이 동우에게로 달려가는
진숙 : 안돼!!! 동우야, 안돼!!! 안 돼!!!
달려가 허공에 떠 있는 동우의 발을 잡고 처절하게 비명을 내지르는 진숙! "안돼" 소리만 연발하며
정신없이 의자를 세우고 위로 올라간다. 동우의 목을 조인 천 줄을 잡고 힘껏 잡아 당기는 진숙! 입술을 악 다무는 진숙!
순간 괴력처럼 샹들리에의 쇠고리가 툭! 끊어지며 진숙, 동우와 함께 바닥으로 우당탕! 나가 떨어진다.
동우를 안고 바닥을 뒹구는 진숙.
S#110. 집 전경
막 동이 터 오는 이른 아침의 햇살속에 우뚝 보여지는 진숙의 저택. 그 위로 아아아악--!!
소름 끼칠만큼 처참하게 터져 나오는 진숙의 울부짖음! 대기 속을 날카롭게 찢어 갈긴다.
S#111. 혜경 오피스텔(그날 아침)
따르르르릉---!! 찢어질 듯 울리는 전화벨 소리!!
카메라, 누군가의 시선이 되어 욕실에서부터 전화통으로 급하게 치달아 간다!! 휙! 수화기를 잡아 채는
수진 : 네!!
필터 : (혜경) 나야.
수진 : (순간! 실망하며) 으음. 왜?
필터 : (혜경) 기집애! 너 아침 먹었나 해서 전화했어! 니 남편 전환줄 알았구나?!
수진 : (미안한 웃음) 아니야.
필터 : (혜경) 아니긴?! 괜히 맘 졸려 있지 말구 아침 점심 꼭꼭 챙겨먹고 기다려. 알았지?
수진 : 그래. 끊어.
수화기를 내리는 수진의 모습위로 화면 짧게 F.O 한다.
S#112. 수진의 몽타쥬
오후의 햇살이 비쳐드는 혜경의 오피스텔. 전화통에 붙어앉아 멍청히 앉아있는 수진의 모습에서 화면 디졸브
저녁 식탁. 밥 먹으러 뭔가 신나게 수다를 떠는 혜경이지만 넋 나간 사람처럼 건성 건성 맞장구쳐 주는 수진,
젓가락으로 끄적거리기만 할 뿐 신경은 온통 전화 통으로 쏠려 있고 우뚝! 난감한 얼굴로 그런 수진을 보는 혜경.
화면 디졸브 불꺼진 한 밤중, 혜경의 침대에 나란히 잠 든 혜경과 수진의 모습에서 찢어질 듯한 전화벨 수리.
튕겨 오르듯 일어나 받는 수진과 부시시 스탠드 불 켜는 혜경이고 곧 엄청나게 실망하는 수진이 수화기를 혜경에게로 넘겨주면
수진을 안 된 듯 보며 전화받는 혜경 화면 디졸브.
S#113. 동네 수퍼 마켓
장바구니를 들고 뭔가에 쫓기듯 정신없이 장을 보는 수진.
S#114. 혜경 오피스텔
밖에서 급하게 열쇠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왈칵! 문 열고 뛰어 들어오는 수진.
식표품 봉투를 식탁에 올려 놓고 얼른 전화의 응답기를 확인한다. 삐! 소리 울리며 녹음된 메모가 틀어지는 응답기.
소리 : (혜경의) 나야.
긴장해 있다가 순간 맥이 탁! 풀리는 수진의 표정.
소리 : (혜경) 이틀동안 죽어라고 집에만 붙어 있더니, 어딜 간거야? 점심 같이 먹자 그럴라고 전화했는데!
들어오면 회사루 전화 해줘. 아냐, 내가 다시 전화할게. 그리고 있지... 일이 잘 안 되더라도 힘 내. 그깟 남자 뭐 대수니?
끊기는 응답음. 묵묵히 들으며 낙담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수진.
힘없이 식탁으로 걸어가 봉투에서 야채 등을 꺼낸다. 그때 따르르릉-!! 전화벨이 울리고 퍼뜩 보다가
이내 혜경이겠지! 싶은 얼굴로 다시 전화 통으로 걸 어와 수화기를 드는 수진.
수진 : 네.
필터 : ...(응답없이 낮은 숨소리만)...
수진 : (..??..) 혜경이니?
필터 : ...(역시 가늘게 내뱉는 숨결 뿐)...
수진 : (표정 이상해지며 얼른) 동우씨...?!
필터 : (진숙의 목 쉰 음성) 나다.
수진 : ...!!!... (놀람과 당황! 얼른 정신을 가다듬으며 차가운 표정) 무슨 일로 전화 하셨어요?
필터 : (진숙) 잠깐 좀 만날 수 있겠니?
수진 : 왜요? 이젠 서로 볼 일이 없는 걸로 아는데요.
필터 : (진숙) 내가 아니라 동우 일 때문이야.
S#115. 거리 공원
화면 안으로 쓰윽 프레임 인 되는 시커먼 선그라스의 진숙, 유령처럼 창백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면 착 가라앉은 음성.
진숙 : 내가 잘못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줄 순 없겠니?
보면, 약간 떨어진 곳에 서서 경멸과 불신 가득찬 눈으로 진숙을 노려보고 있는
수진 : 죄송하지만 동우씨가 어떻게 된건지나 말씀하세요. 그것 때문에 나왔으니까.
진숙 : 결국 나한텐 기회를 줄 수 없다는 거구나.
수진 : (싸늘하게 굳는다) 하실 말씀이 그거였다면 유감이네요. 안녕히 가세요. (돌아서 가는데)
진숙 : 동우가 자살을 기도했어.
순간 경악해서 돌아보는
수진 : 뭐라구요?
진숙 : 약을 먹었지만 천만 다행으로 근근히 살려는 놨다.
수진 : 왜..? 왜 그랬데요?! (새파랗게 질리면)
진숙, 잠자코 보다가 수진에게 쓱 등을 보이며
진숙 : 너랑 만나고 들어온 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야. 계속 너만 찾아. 보고 싶다고.
수진 : ...!!!... (일그러진다)
진숙 : 부탁한다. 다시 돌아올 수 없다면 가서 잠깐 얼굴이라도 보여줘. 동우 소원이야.
수진 : ...(심한 혼란과 갈등)...
진숙, 수진에게 계속 등을 보인채 마치 미끼를 던진 낚싯군처럼 조용히 수진의 반응을 기다린다.
어찌할 바를 몰라 잠시 허둥대던 수진, 이윽고 결심을 굳힌듯 진숙을 본다.
수진 : 그럴순 없어요. 어떤 이유로든 다신 그 집에 가고싶지 않아요.
진숙 : ...!!!...(표정 꿈틀! 한다)
수진 : 하지만 정 동우씨가 원한다면 밖에서 만날 테니까 그렇게 전해 주세요.
하는데 휙! 돌아서는 진숙! 별안간 수진의 앞으로 털퍽! 무릎을 꿇는다.
깜짝 놀라 보는 수진.
진숙 : 이렇게 무릎꿇고 사정할게! 동운 아직 환자야. 걷기도 힘들어 하는 앨 어떻게 밖으로 데려 나오란 거니?
니가 도와줘. 제발!
절이라도 하듯 두 손을 바닥에 짚고 애처롭게 수진을 올려다 보는 진숙, 선그라스 밑으로 굵은 눈물 방울이 주루룩 흘러 내린다.
수진 : ...!!!...(당황과 죄책감)
그러나 도저히 내키지 않는듯 표정 차가워 지는
수진 : 죄송해요. 돌아가 주세요. (딱딱하게 돌아서 간다)
S#116. 도로. 진숙의 차 안(늦은 오후)
무표정한 얼굴로 운전하고 있는 진숙. 한동안 말없이 운전만 하다가 불쑥!!
진숙 : 고마워.
하는데서 화면, 재빨리 옆으로 팬하면 놀랍게도 이미 조수석에 타고 있는 수진이다.
수진 : 오래 있진 않겠어요. 얼굴만 보고 나올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진숙 : ...그래.
하는 진숙, 수진을 대하는 모습에서 아까완 좀 달라진듯한 열의 없고 무관심한 느낌이고 운전에만 열중해 있다.
다소 찝찝한 표정으로 묵묵히 앞만 보는 수진. 숨 막힐듯한 침무과 고조된 차의 엔진음.
이때 차의 전방으로 사거리가 나타나고 직진 방향의 푸른등 신호가 막 붉은 불로 바뀌어 진다.
순간 사정없이 콱! 엑셀을 밟는 진숙! 고개가 뒤로 홱! 제껴지며 질겁하는 수진과 총알처럼 튀어나가는 진숙의 차.
수진, 눈 앞이 아찔해지며 질끈 눈 감으면 양쪽에서 스타트하던 차량들, 진숙의 차를 향해 미친듯이 클랙션을 두드려 댄다!
무시하고 건너편으로 쏜살같이 달려 들어오는 진숙의 차.
수진, 눈 떠서 얼른 뭐라 한마디 하려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저 운전에만 열중해 있는 진숙을 보며
입을 딱 닫아 버리고 만다. 긴장과 불안으로 뻣뻣하게 굳는 수진. 왠지 기분이 묘해진다.
S#117. 진숙 집 앞
집 앞으로 도착하는 진숙의 차. 핸드 브레이크를 확 잡아 당기는 진숙을 보며 전 씬의 느낌 그대로
수진, 뭔가 불 안한 표정을 떨칠 수 없다. 운전석 문을 열고 내리는
진숙 : 내려야지?
수진 :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머뭇거리면)...
믿는다는 듯 차 문 닫고 앞서서 총총히 집 대문으로 걸어가는 진숙, 핸드백에서 열 쇠를 꺼내 돌린다.
S#118. 현관
현관 문 열고 수진을 앞세워 들어오는 진숙. 수진, 안으로 들어서다가 멈칫! 휘둥그렇게 본다.
보면, 동굴처럼 어두컴컴하게 변해버린 집 안. 거실 커튼은 물론이고 온 집안의 햇빛이 들어올 구멍은 다 차단해 버린듯
아직 햇 살이 비쳐들 시간임에도 한밤중 같은 깜깜한 실내이다.
현관 문을 닫고 돌아서던 진숙, 수진이 걸음을 멈추고 들어가지 않자 수진의 뒤로 바싹 붙어 선다.
진숙 : 안 들어가구 뭐해?
수진 : (불길한 표정) 집 안이... 왜 이래요?
진숙 : 뭐 어떤데?
수진 : (돌아보며) 너무 어둡잖아요. 커튼을 왜 저렇게...(하는데)
진숙 : (말 자르며) 그냥 햇빛이 싫어졌어. 동우, 2층 지 방에 있으니까 올라 가 봐야지? 목 빠지게 기다렸을거야.
수진 : ...(이상 야릇)...
진숙 : 같이 가줄까? 아니면 혼자 만나 보겠니.
수진 : (마지 못해) 혼자 가겠어요.
하며 신발 벗고 거실로 올라서는 수진. 2층 계단으로 올라간다.
가만히 지켜보는 진숙.
S#119. 2층 방 앞
안을 두르며 올라오는 수진. 2층 거실도 역시 어두컴컴한 밤 중 같고 문득 천정 샹들리에가 있었던 자리에
보기 흉한 구멍만 뻥 뚫려 있는걸 보는 수진, 갸우뚱 하지만 곧 무시하고 침실 문 앞 으로 걸어가 노크한다.
수진 : 동우씨! (하며 문 열면)
갑작스럽게 역한 냄새라도 맡은듯 잔뜩 표정을 찡그리는 수진, 코를 막으며 방 안을 들여다 본다.
침대 발치로 옮겨저 있는 스탠드 불빛에 침대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가슴에 모은 채 반듯이 누운 자세의 동우 시체,
깊이 잠든 것처럼 보여지고 얼굴은 문 반대쪽으로 젖혀져 잘 보여지지 않는다.
코를 싸 쥘머쥐고 뭔지 감도 안 오는 표정으로 침대 가까이 다가가는
수진 : 동우씨...???
조금의 미동도 없는 동우.
점점 침대 옆으로 다가가는 수진. 어느 순간 허어억-!!!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며 나자빠질 듯이 뒷걸음질 친다.
그 때 뒤에서 퍽! 수진의 뒷통수를 가격하는 정원의 흙삽이고 단번에 푹 앞으로 고꾸라지는 수진.
진숙, 손에 든 삽을 천천히 내린다.
S#120. 진숙 집. 지하실
낮은 촉수의 형광등 불빛. 화면 가득 아래로 떨궈져 감긴 수진의 두 눈.
어느 순간 눈가가 움찔거리더니 뒷통수의 아픔으로 낯을 한껏 찌푸리며 스르륵 눈을 뜬다.
수진의 시각으로 자신의 발 앞에 마주보며 서 있는 맨발과 그 주변에 뭉텅! 뭉텅! 잘라져 흩어진 머리카락!
맨발을 따라 번쩍 고개 쳐 드는 수진의 얼굴에서 화면 빠지면,
머리칼이 멋대로 잘려져 나가 거의 빡빡 깎여있다시피 하는 수진의 머리고 의자에 앉혀져 팔과 다리가 뒤로 꽁꽁 묶여져 있다.
그 앞에 서서 축 늘어뜨린 두 손에 각각 날카로운 금속의 가위와 머리칼 한 줌을 든 가운 차림의 진숙,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 살피듯 수진을 내려다 보고 있다.
푹 패여진 진숙의 두 눈, 살아있는 사람의 것 같지 않게 시커먼 암흑처럼 열려져 있을 뿐인 눈동자이다.
수진 : ...???...
공포와 경악으로 돌처럼 급격히 얼어 붙는 수진, 혼란한 머릿속으로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위로
나직히 읊조리듯 입을 여는
진숙 : 나쁜 년! 니가 무슨 짓을 한건지 똑똑히 봤겠지? 너 때문이야! 니가 동울 죽였어! 니가 동울 죽였어!!!
하며 두 손을 꽈악! 끌어쥐는 진숙. 천정의 백열등 불빛에 번쩍! 빛을 반사하는 금속 가위.
수진 : ...!!!...(입을 열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진숙 : 널 어떻게 죽여줄까? 온 몸을 갈기갈기 찢어 줄까? 두 눈을 빼 버릴까, 아님 사지를 잘라버려?!! 널 통째로 씹어 삼켜?!!
내가 그렇게 말해줬는데도 왜 우릴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거야?!! 왜 자꾸 동울 유혹해?!
날 질투하는 거야? 동우가 나만 사랑하니까?
일순 두 눈의 초점이 풀리며 횡설수설하는 진숙, 가위를 쥔 두 손이 차츰 격하게 떨리기 시작하고
두려움으로 움쭉 달싹도 못하는 수진, 몸을 바싹 오그린 채 터지려는 울음을 참아내며 가위의 시퍼런 날만 바라본다.
점점 혐오스럽단 듯 표정 찌그러지느 진숙, 커다랗게 열린 눈에 불현듯 눈물이 주루룩 흐르며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진숙 : 동운 너 때문에 살 수가 없데. 니가 가만 두질 않아서! 넌 꿈 속까지도 나타나 계속 계속 쫓아 다니고...!!
(괴로움으로 헐떡이며) 왜 싫다는 사람을 못 살게 구니? 내 아길 괴롭히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그래?
왜 가만 두질 않아, 왜?!!
하며 순간적으로 가위를 휙! 치켜드는 진숙! 그대로 수진의 어깨를 푸욱!! 찔러 버린다.
끔찍하게 터져 나오는 수진의 비명소리!
S#121. 혜경의 오피스텔 안
껌껌한 실내. 화면 가득 밤11시를 넘기고 있는 시계 위로 딩동딩동! 벨 소리가 여러 번 울려 들린다.
카메라, 시계에서 옆으로 팬 하면 식탁 위에 수진이 꺼내다 만 야채와 부식품 등이 든 봉투.
잠시 후 열쇠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문 열리는 소리. 발자국 소리와 켜지는 실내 형광등.
보면 의아한 표정의 혜경이 안을 두리번거리며 걸어 들어온다. 식탁의 파헤치다 만 식료품을 보며 주춤 서는 혜경.
더욱 갸우뚱하는 얼굴로 전화 응답기로 걸어가 응답 메시지를 틀지만 아무런 녹음도 없다.
S#122. 진숙의 집. 지하실
피가 샘물처럼 솟구쳐 나오는 수진의 어깨. 고개를 떨구고 벌써 까마득히 기절해 버린 수진이고
표정없는 얼굴로 피가 뚝뚝 흐르는 가위를 들고 선 진숙, 마지막이란 듯
진숙 : 너한테 감정은 없어. 진심이야.
하며, 가위를 두 손으로 끌어잡고 천천히 허공으로 치켜든다.
피 범벅된 채로 가위를 힘껏 끌어쥐는 진숙의 두 손. 흉측하게 일렁이는 얼굴.
진숙, 수진의 정수리를 향해 아래로 확! 내려 찍으려는 찰나! 어디선가 갑자기 에코처럼 들려지는 동우의 음성.
소리 : 어머니!
순간! 동작이 일시에 냉동되며 표정이 비현실감으로 멍하게 탈색되는 진숙, 얼른 지하실 위쪽을 올려다 본다.
다시 들려오는 동우의 환청.
소리 : 어머니...???!!
소리를 확인하자 집어던지듯 가위를 내팽개치고 다급하게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진숙 : 그래, 기다려! 엄마 지금 간다, 동우야!!
계단을 미친듯이 쿵쾅거리며 달려 올라가는 진숙,
아니 이미 동우의 죽음이 가져다 준 충격으로 정신이 참혹하게 분열되어 버린 그녀다.
S#123. 2층 침실 앞
문을 벌컥! 열고 정신없이 안으로 뛰쳐 들어가는 진숙, 쾅! 문이 닫히면 바깥으로 들려지는 기괴한 소리들.
소리 : (동우의 에코음) 어디갔다 이제 와요, 어머니.
소리 : (진숙) 그래, 그래. 미안해. 왜애? 우리 아기 잠이 안 와?
소리 : (동우) 네. 아무데도 가지말고 옆에 같이 있어줘요.
소리 : (진숙) 알았어. 엄마 아무데도 가지 않을게.
소리 : (동우) 약속?
소리 : (진숙, 웃음) 약속! 자, 엄마가 자장가 불러 줄 테니까 우리 아긴 눈 감아야지?
잠시 후 나직나직 들려지는 진숙의 자장가 노래에 섞여 간간히 동우의 맑은 웃음소리가 문 밖으로 들려져 나온다.
S#124. 혜경의 오피스텔(이른 아침)
아침의 푸르스름한 기운이 밀려드는 창가.
화면 옆으로 이동하면 수진을 기다리다 잠든듯 이불도 덮지 않고 잠들어 있는 혜경의 모습 위로
어느 순간 요란하게 터져 나오는 시계의 타임벨 소리!
그 소리에 언뜻 눈 뜨는 혜경, 벌떡 일어나 얼른 침대의 옆 자리부터 살펴본다. 당연 수진은 없고!
황당한 얼굴로 시계를 보고는 침대 아래로 내려서는 혜경, 걱정과 불안 가득한 얼굴로 실내를 서성이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미친듯 황급히 수진의 트렁크로 달려가 트렁크를 연다. 안에서 수진의 갈색 손가방을 꺼내드는 혜경,
전화통으로 걸어가며 가방속에서 조그만 수첩을 꺼내든다.
S#125. 진숙 집. 지하실
지하실의 윗쪽에 뚫려진 손바닥만한 들창에서 뿌옇게 빛 줄기를 이루며 쏟아지는 아침 햇살.
하룻만에 끔찍한 몰골로 변해버린 수진.
엉망으로 깎여진 머리와 어깨에서부터 아래로 시꺼먼 핏덩이가 말라붙은 채 의자에 푹 꼬꾸라져 있다.
언뜻 정신을 깨는 수진, 고개를 들다가 순간 어깨의 통증으로 날카롭게 비명을 내 지른다.
뻣뻣히 굳은 손 발을 힘들게 꼼지락 거리는 수진, 의식을 가다듬으려 애 쓰다가 흠칫! 어딘가를 본다.
보면, 아침의 햇살로 어젯 밤엔 볼 수 없었던 지하실의 풍경이 적나라하게 보여지며
어린 남자아이가 가지고 놀았음직한 몹시 낡고 오래 된 세발 자전거와 장난감들이 지하실 한 구석에 정연히 쌓여져 있다.
허옇게 질리며 얼른 시선 돌려 지하실의 닫혀진 입구를 힐끗 보는 수진. 쥐죽은듯 조용한 집 안.
수진, 이때다 싶은 얼굴로 정신없이 의자에 묶은 몸을 뒤틀어 본다. 그러나 조금도 헐거워지지 않는 밧줄이고 통증만 심해진 듯
비명을 삼키며 이를 악 무는 수진, 식은 땀으로 금새 흠뻑 젖어든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밧줄의 묶여진 부위를 뒤트는 수진.
그 때 갑자기! 어디선가 소름이 오싹! 돋을만큼 처절한 진숙의 울부짖음이 지하실까지 아득하게 밀어닥친다.
섬뜩! 표정이 얼어 붙으며 더욱 미친듯이 몸을 뒤트는 수진.
S#126. 2층 침실 밖
방 문 밖으로 터져 나오는 진숙의 짐승같은 울부짖음 소리!
소리 : (진숙) 안돼! 안돼, 동우야!! 안돼!!!
S#127. 혜경 오피스텔
화면 가득 전화 탁자위로 쏟아진 수진의 갈색 가방에 든 잡다한 물건들과 곰 인형이 달린 수진의 열쇠 고리를 만지작거리는 손.
위로 오르면 수화기를 든 혜경, 의구심과 초조함이 깃든 얼굴로
혜경 : 휴가요? 실례지만 그럼 언제부터 휴가를 낸 건가요? 네에... 아, 전 이동우씨의 아내의 친구 되는 사람입니다.
아뇨. 메모해 두실 필요는 없어요. 네.
낭패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리는 혜경, 손 장난하듯 무심히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수진의 전화 수첩을 뒤적여 댄다.
S#128. 진숙 집. 지하실
진숙의 울음소리, 이젠 가슴을 쥐어 짜는듯한 흐느낌으로 바뀌어 점점 지하실 쪽으로 가까이 들려온다.
뻣뻣하게 굳어서 숨을 곳이라도 찾듯 황급히 눈동자를 굴리는 수진.
그때 열쇠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딸칵! 문 열고 들어서는 진숙, 몹시 비통한 얼굴로 넋 나간 사람처럼 허청허청 계단을 내려온다.
숨도 못 쉬고 잔뜩 웅크리듯 지켜보는 수진. 그 뒤로 서며 수진의 양 어깨로 마치 다정한 사람처럼 두 손을 쓱 올리는 진숙,
움찔 약간의 고통을 참아내며 급격히 떨려오는 몸을 추스리는 수진.
허공을 공허하게 헤매는 진숙의 시선. 탁하게 목 쉰 음성이 가늘게 떨려 나오는
진숙 : 아니라고 말해 줘. 동우 죽지 않았지? 그렇지?
수진 : ...!!!...
진숙 : 죽을 이유가 없잖아. 어쩌면 많이 아픈 걸거야. 그래서 말을 못하는 지도 모르지.
하는 진숙, 표정이 이상하게 뒤틀리며 시선을 쓱 내려 수진을 내려다 본다.
수진 :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이를 달래듯) 맞아요, 어머니. 동우씨가 왜 죽어요. 동우씨 죽지 않았어요.
하는데 수진의 어깨를 콱! 움켜 잡는
진숙 : 그래. 그럼 예전처럼 둘이서 쇼핑도 하고 여행도 가고, 그렇게 할거야.
지 감정에 취해 곧 음성에 활기를 띄는 진숙. 수진, 어깨의 상처로 기절할 듯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지지만 비명없이 꽉 참아낸다.
점점 흥분하는 진숙, 수진의 어깨를 움켜 쥔 손에 더욱 힘을 가하며
진숙 : 우린 정말 행복했어. 너 알지. 동우가 기분 좋을 때 웃는 표정 말야.
부드럽게 보면서 내 뺨에 입을 맞추곤 했어. 얼마나 근사했는지...!
점점 짓눌리는 수진 어깨의 상처, 마침내 다시 터지며 뻘건 핏물이 울컥! 베어져 나온다.
동시에 더 이상 고통을 버텨 내지 못하고 아악! 비명을 지르는 수진.
그 바람에 몽상이 깨진듯 아련하던 눈빛이 일시에 싸늘하게 식는 진숙, 수진을 무 섭게 휙! 내려다 보며
진숙 : 그 모든 걸... 니 년이 뺏으려 했지. 내가 그렇게 쉽게 뺏길거 같니? 감히 너 따위가 동우를 뺏겠다고?!!
하며 그대로 수진의 머리를 후려치는 진숙. 그 순간 윗층에서 울리기 시작하는 전화 벨소리.
하지만 감정이 격앙되어 수진의 머리고 팔, 어깨 할 것 없이 마구 테러를 가하는 진숙.
제대로 비명도 못 지르고 최대한 몸을 움츠려 고스란히 맞는 수진, 갈대처럼 이리 저리 휘둘려 진다.
S#129. 거실
시끄럽게 계속 울리는 전화벨. 어느순간 불쑥 수화기를 집어드는 피 묻은 손.
씩씩거리는 호흡을 내뱉으며 수화기를 귀에 갖다대는 진숙, 아무말 않고 가만히 들고 있으면
잠시 후 어정쩡한 음성으로 들려지는
필터 : (혜경) 여보세요?
진숙 : (무뚝뚝) 네?
필터 : (혜경) 저... 실례지만 거기 이 동우씨 댁 맞죠?
진숙 : ...그런데요?
필터 : (혜경) 죄송하지만 전 수진이 친군데요.
진숙 : (표정 꿈틀)... 누구?
필터 : (혜경) 한 수진이요. 동우씨 어머니신가요?
진숙 : (다소 불안) 잘못 걸었어요. 여기 그런 사람 없어요.
진숙, 끊으려는데 다급하게 말을 잇는
필터 : (혜경) 좀 전에 이동우씨 댁 맞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진숙 : (벌컥!) 그런 사람 없다고 했지, 이 망할 년!
쾅! 끊는 진숙, 전화선을 잡아채 확! 잡아 당기면 툭! 끊어지는 전화 코드선.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진 듯 초조하게 거실을 맴도는 진숙, 그러다가... 거실의 장식장 유리에 비친 자신을 보고 흠칠! 굳는다.
꼿꼿이 서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진숙, 마치 타인을 보듯 기묘한 눈으로 찬 찬히 뜯어 보다가
손으로 흐트러진 자신의 머리를 곱게 쓸어 넘긴다.
S#130. 혜경 오피스텔
묘한 표정으로 수화기 든 채 서 있는 혜경. 접선이 안 되는지 그냥 수화기를 내린다.
손가락에 끼워진 수진의 열쇠 고리를 무심코 빙글빙글 돌리는 혜경, 알 수 없단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열쇠 고리를
탁자에 던지 듯 놓고 냉장고로 걸어간다. 문 열어 물병을 꺼내다가 아무래도 수상쩍은 듯 표정이 시종 찝찝한 혜경.
S#131. 진숙 집, 지하실
의자에 처절하게 널브러져 온몸에 경련을 일으킨 사람처럼 바들바들 떠는 수진, 진숙이 다시 들어오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으로
완전히 겁에 질린 눈으로 닫혀진 지 하실 문만 바라다 본다.
가까이 다가오는 발 소리. 더욱 급격히 몸을 떨어대는 수진.
그러나 철그럭! 열쇠 돌아가며 자물쇠 잠기는 문. 그리고 발 소리 멀어지며 잠시 후 쾅! 현관 문 닫고 나가는 소리 들린다.
그 소리에 얼른 주위를 두르는 수진. 그러나 도움 될 만한 물건을 못 찾고
온몸의 기력을 다해 의자채로 엉거주춤 일어 나는 수진, 금방이라도 앞으로 쓰러질듯한 몸으로 한발짝 한발짝 쓰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밍기작거리듯 지하실 계단 쪽으로 다가간다.
실상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아주 조금씩 나아가는 거리지만 온 정신을 집중하는 수진,
그러나 그만 얼마 가지도 못하고 콰당! 의자채 바닥으로 넘어져 버린다. 고통, 신음...
S#132. 주택가 골목길
붕_! 빠른 속도로 달려 오는 진숙의 차.
맞은 편에서 천천히 서행해 오는 빨간색 프라이드에게 신경질적으로 클랙션을 두드려 댄다.
놀라서 얼른 핸들을 꺾는 빨강색 프라이드.
보면 운전석에 앉은 혜경, 쌩 하니 옆을 스쳐 지나는 선그라스의 진숙을 황당한 표정으로 본다.
그러나 진숙임을 알아차리진 못하고 그저 입 속으로 혼자 투덜거리며 골목 양 쪽의 집들을 살피는 혜경,
어림 짐작의 표정이지만 정확히 진숙의 집앞으로 차를 멈춘다.
차에서 내려 진숙의 집으로 걸어가는 혜경, 문패와 주소를 확인하곤 집을 올려다 본다.
약간 갈등하는 표정으로 서 있다가 이윽고 대문의 벨을 누르는 혜경.
S#133. 집 안. 지하실
딩동딩동! 끊임없이 울리는 현관 벨 소리.
소리에 흥분과 기대로 벌겋게 상기되는 수진. 바닥에 쓰러진채 결사적으로 버둥거리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수진 : 여기요!!! 살려 주세요!!! 사람이 갇혔어요!! 여기요!!
미친듯이 몸부림치며 목이 터져라 악을 쓰는 수진.
S#134. 집 앞
소용없이 한낮의 나른한 소음밖에 들을 수 없는 혜경. 한숨을 폭 내쉬며 도로 차로 걸어간다.
S#135. 백화점. 남성복 매장
상품 걸이에서 서 너개의 양복 자켓을 빼 드는 선그라스의 진숙,
색깔이나 디자인등을 꼼꼼히 살펴 보다가 전신용 거울 앞으로 걸어간다.
그 모습을 지켜 보던 종업원 하나가 거울 앞에 서서 양복들을 이것저것 허공으로 들어서 비춰보는 진숙의 옆으로 얼른 다가간다.
종업원 : 누가 입으실 건데요?
흠칫 돌아보는 진숙, 곧 미소지으며
진숙 : 내 아들이요.
종업원 : 네에. 아드님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진숙 : 나이? 나이가...
하는 진숙, 순간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단듯 당황하며 얼른 아무도 없는 옆으로 고개 돌려 묻는다.
진숙 : 너 나이가 얼마지?
보면, 놀랍게도 싱긋 웃으며 놀리듯 진숙을 보는 동우의 모습!!
소리 : (동우) 어머니도 참! 서른이잖아요.
진숙 : 참!!! 그래, 맞아. (종업원 쪽으로 고개 돌리며) 서른이예요. 왜요?
두 눈이 동그래져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종업원, 물론 동우의 모습따윈 보일리 없고 진숙을 황당무계한 표정으로 훑어 본다.
종업원 : (당황) 아니 뭐...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
진숙 : 없어요. 고마워요.
종업원 : 그럼...!
돌아서서 서둘러 매장 지배인 쪽으로 걸어가는 종업원.
동우에게 자켓을 갖다 대 보이는 진숙. 역시 에코로 들려지는
소리 : (동우, 웃음) 어때요? 맘에 드세요?
순간, 진숙의 표정, 가슴이 두근! 설레인듯 자신의 눈에 보이는 동우를 향해 애정이 듬뿍한 눈길로 본다.
진숙 : 음. 아주... 아주 멋있어.
하며 동우의 허리에 팔을 두르듯 나란히 거울앞에 서는 진숙, 촉촉히 행복감에 젖은 얼굴로 자신들의 모습을 비춰본다.
그 거울의 한 켠으로 멀찍이 뒤쪽에 서서
미친 여자를 보듯 난감한 얼굴로 지켜보는 종업원과 매장 지배인의 모습이 같이 비춰진다.
S#136. 진숙 집 앞. 혜경이 차 안.
차속에 앉아 지루한 얼굴로 진숙의 집 쪽을 노려보고 있는 혜경.
길에 오가는 사람들이 집 앞으로 스칠 때 마다 얼른 긴장해서 지켜 보지만 그저 집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 뿐이다.
언뜻 시계를 보고 체념한 표정으로 바뀌는 혜경. 차에 시동을 걸어 무거운 얼굴로 집 앞을 떠난다.
S#137.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쇼핑 백을 들고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진숙.
묵묵히 앞만 보다가 일순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로 휙! 시선을 돌린다.
보면, 자기 또래의 한 엄마와 동우 또래의 아들이 정겹게 얘기 주고 받는 모습.
혼이 나간 사람처럼 그들을 부러운듯 바라보는 진숙. 천천히 스쳐 지나는 그들 모자.
고개를 끝까지 돌려서 그들을 바라보는 진숙. 진숙의 뒤에 선 남자, 괜히 그들 모자와 진숙을 번갈아 본다.
S#138. 주택가 골목.
혜경의 차 안 핸들을 돌리며 골목을 빠져 나가는 혜경 왠지 표정이 점점 이상하게 흔들리며 갑자기 차를 끼이익! 세운다.
S#140. 진숙 집. 정원
덜컹! 대문이 열리고 민첩하게 안으로 들어와 얼른 대문을 닫는 혜경.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잠시 동정을 살피듯 얼른 집 현관쪽을 지켜본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자 조심스럽게 현관을 향해 걸어간다.
S#140. 1층 거실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서는 혜경. 다소 불안한 표정으로 집안을 두르며 거실로 올라선다.
수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커튼 등으로 어두 컴컴한 실내를 묘한 눈길로 둘러보는 혜경.
2층 쪽으로 주춤주춤 다가가며 그리 크지 않은 음성으로.
S#141. 지하실
울다 지친듯 참혹한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던 수진, 순간 귀가 번쩍 뜨이며 꼼짝도 않고 다시 귀를 기울인다. 위에서 들리는
소리 : (혜경의) 여보세요!
들으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수진 : 혜경아...??
가슴이 사정없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하는 수진. 너무나 놀랐기 때문인지 입을 벌리지만 즉각 소리가 튀어 나오지 않는다.
자신을 진정시키듯 허억, 허억 급하게 숨을 몰아쉬는 수진, 고개를 최대한 지하실 입구쪽으로 돌리며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지르기 시작한다.
수진 : 혜경아!! 혜경아!!
S#142. 1층 거실
계단을 반쯤 오르다가 문득 어디선가 들려지는 수진의 고함 소리를 듣는 혜경. 깜짝 놀라서 몸이 굳는다.
아래로부터 들려지는 절박한 수진의 음성
소리 : (수진) 여기야, 혜경아!! 나 지하실에 있어!!!
듣고 급박하게 계단을 달려 내려오는
혜경 : 수진아!!
거실을 휘드르며 지하실 입구를 찾아 정신없이 헤맨다.
S#143. 도로. 진숙의 차 안
고조된 엔진음. 옆좌석에 쇼핑백을 두고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운전하는 진숙.
S#144. 지하실 문 앞
쾅! 쾅! 잠겨진 지하실 문을 몸으로 힘껏 부딪는 혜경. 지하실 안에서 울부짖듯 들려오는 수진의 음성.
소리 : (수진) 빨리, 혜경아!! 빨리 좀 해, 제발!!
정작 혜경은 대꾸할 여유도 없이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해 문을 쾅쾅 들이 받는다.
어느 순간 콰-앙! 자물쇠가 떨어져 나가며 열리는 지하실의 문.
다급하게 달려 내려가는 혜경. 눈앞으로 보이는 수진의 처참한 몰골에 입을 딱 벌린다.
S#145. 1층 거실
달려나와 수화기를 드는 혜경. 그러나 신호음 없이 먹통인 수화기.
당황해서 얼른 전화통을 살펴 보면 탁자 밑으로 늘어뜨려진 전화 선이고 선 끝에 코드가 딸려져 나온다.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급히 코드를 낚아채는 혜경. 거실을 뛰어 다니며 전화 코드의 접속 플러그를 찾아
정신없이 헤집고 다니다가 마침내 찾아내곤 얼른 코드를 꼽고 전화통으로 달려온다.
수화기 들고 119를 두드려대는 혜경. 두 변 연속 통화중 신호음이나 대기 녹음 음성이 흘러 나오고
급한 마음을 참다 못해 고함을 빽! 지르는 혜경. 다시 119 번호를 누르면 딸칵! 신호음 떨어지는 소리.
봇물 터지듯 두서없이 말을 쏟아내는 혜경.
혜경 : 119죠? 여기, 사람이 죽어요! 얼른 앰블런스를 보내줘요. 뭐요, 주소요? 여기 평창동 2의... 2의. (하다가 꽥!)
전화만 연결되면 알 수 있다면서요!! 사람이 죽어요!! 뭐라구요?!!
하는데 뒤에서 들려지는
소리 : 아가씨, 여기서 뭐 해?
기절할 듯이 놀라 수화기를 툭! 떨구는 혜경, 휙 돌아보면 어느새 외출에서 돌아온 진숙!!
손에 삽을 들고 혜경을 수상한 눈초리로 살피듯 보고 있다.
혜경 : ...!!!...(경악해서 삽과 진숙을 재빨리 번갈아 본다)
혜경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서는 진숙. 순간 달아나려고 홱 몸을 돌리는 혜경이고 틈을 주지않고 번쩍 삽을 치켜드는 진숙,
혜경의 뒷통수를 그대로 퍽! 내려치면!!! 혜경, 거실의 탁자위로 엎어지며 탁자 유리와 함께 와장창! 바닥으로 나가 떨어진다.
확인하고 이번엔 전화통을 향해 돌아서는 진숙. 삽을 쳐들어 전화통 마저 쾅! 내리쳐 박살을 내버린다.
다시 혜경을 향해 스윽 돌아서는 진숙, 유리 조각속에 파묻혀 정신을 잃은 혜경을 내려다 보며
진숙 :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엘 들어와?
분노로 일렁이는 진숙의 얼굴, 혜경을 아예 죽여 버리겠다는 듯 보며 삽을 휙 치켜 드는 순간!!
진숙의 뒤로 엉망인 몸을 벽면에 의지해 소리없이 다가오던 수진.
수진 : 안 돼!!
하며 진숙의 팔을 잡아 뒤로 확 잡아 당긴다. 그 바람에 구석 쪽으로 날아가 쳐박히는 삽이고!
불시에 제지로 휘-청! 몸이 흔들리는 진숙! 얼른 몸을 바로잡고 수진을 휙 쏘아보며
진숙 : 죽을려고 환장을 했구나?
움찔 겁에 질리는 수진을 향해 소리도 없이 빠르게 다가가는 진숙.
수진, 정신이 아뜩!해지며 재빨리 몸을 돌려 쩔뚝거리며 도망가지만 진숙의 걸음에 당해내지 못하고
곧 뒷 멱살을 왈칵! 끌어 잡힌다. 멱살을 잡아 채 그대로 지하실로 끌고가는 진숙.
몸부림치며 처절하게 발악하는.
수진 : 싫어! 싫어요!! 안돼!!
하는 수진을 인정사정없이 지하실 입구로 질질 끌고가는 진숙, 수진을 퍽-! 떠다미는 순간!!
팔을 휘저으며 진숙의 셔츠 자락을 급히 잡아채는 수진.
그 바람에 삐끗해서 수진과 부둥켜 안듯하고 함께 지하실 아래로 떼굴떼굴 굴러 떨 어지는 진숙!
<지하실 안>
누가 누군지 모르게 뒤엉켜 바닥으로 쿵-! 나뒹구는 진숙과 수진.
바닥에 부딪힌 충격은 진숙이 한꺼번에 다 흡수해 버린듯 죽은듯 꼼짝도 않는 진숙 이고!
끄응! 눈을 뜨다가 후다닥 진숙에게서 몸을 떼고 보는 수진, 놀라서 얼른 진숙의 가슴에 귀를 대본다. 죽은 것 같다!!
표정이 끔찍하게 일그러지는 수진, 비명을 지르며 이 모든 공포와 지옥으로부터 벗어나듯 급히 계단위로 향한다.
몇 계단 달려 오르다가 계단을 헛 밟아 쾅! 앞으로 엎어지며 다시 아래로 주루룩! 미끄러지는 수진,
아픔도 잊은채 계단의 난간을 잡고 다시 벌떡 몸을 일으키는데 그 순간!! 덥썩! 수진의 발목을 잡아채는 손!!
보면, 죽은 것이 아니라 의식을 잃었던 진숙이고 경악하는 수진!!
진숙, 광기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수진을 쏘아보며 수진의 발목을 힘껏 잡아 당기지만
이를 악물며 죽자고 계단의 난간을 붙들고 놓지않는 수진, 뒤돌아 보지 않은채 발버둥치듯 정신없이 뒤를 발로 차 댄다.
한순간 수진의 발길에 엉겁결에 턱을 정통으로 퍽-!! 걷어 차이는 진숙!
일순 커다란 고목이 베어져 넘어가듯 뒤로 스윽-! 넘어가더니 바닥으로 쿵-! 머릴 찧으며 쓰러져 꼼짝 않는다.
놀라서 얼른 돌아보는 수진, 그대로 지하실 위를 향해 기다시피 올라간다.
S#146. 1층 거실
울음을 터트리며 기듯해서 밖으로 나오는 수진.
그 위로 멀리서 들려오는 경찰과 앰블런스의 싸이렌 음을 들으며 까마득히 기절해 버린다.
동시에 얼굴과 손 등이 온통 유리에 긁혀 탁자에 엎어져 있던 혜경, 흠칠! 눈을 뜬다. 위로 점점 가까워지는 싸이렌 음.
S#147. 지하실
경찰 싸이렌 음이 더욱 크게 들려지며 완전히 죽은 것처럼 누워있는 진숙을 부감으로 잡으면
커다랗게 열려져 깜빡이지도 않는 진숙의 두 눈. 뒷통수 뒤로 찐득하게 스며져 나오는 씨뻘건 핏물.
그 위로 싸이렌 음에 뒤섞여 에코로 들려지는 동우의 맑은 웃음과 음성이 들려진다.
소리 : (동우) 어머니! 어머니!!
소리에 놀랍게도 꿈틀! 움직이는 진숙의 손가락!! 이어 닫히지 않고 있던 진숙의 두 눈이 꿈뻑꿈뻑 힘겹게 깜빡여지며
동우의 부르는 소리를 인식한듯 눈가에 안타까운 경련이 스친다. 순간 온몸을 뒤척이며 사력을 다해 몸을 뒤집는 진숙.
S#148. 대문 앞
대문 앞으로 속속 도착하는 119구급 차량과 경찰 차. 안에서 우루루 뛰어 내리는 대원들.
그때 대문이 덜컥! 열리면 일시에 돌아보는 대원들.
곧 수진을 부축하고 쩔뚝이며 혜경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험한 모습에 경악한다.
S#149. 1층 거실
요란한 군화 굽 소리와 함께 카메라,
그들의 시선이 되어 지하실에서 2층 계단으로 끊어질 듯 이어진 핏자국을 따라 급히 치달아 올라 간다.
S#150. 2층 침실
쾅! 열리는 방문. 역한 냄새로 얼른 물러나는 경찰들, 끔찍한 광경을 목도한 듯 하얗게 탈색한다.
보면,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의 진숙이 침대에 누운 동우의 손을 꼭 맞잡을채 침대 옆으로 비스듬히 기대 앉은 자세로 죽어있다.
그녀에게 있어 아들이란 안식처를 향해 사력을 다해 찾아와 죽은 셈이다.
화면 깊숙히 F.O되는 위로 낮게 울리기 시작하여 점점 소란스러운 소음에 뒤섞여 커다랗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
S#151. 인테리어 그래픽 사무실(몇 달 후)
화면 가득 근사한 저택의 내부의 화려한 칼라로 펼쳐지는 컴퓨터 화면. 키를 두드리는 누군가의 손 위로
소리 : (여자) 한 수진씨!
소리에 컴퓨터 화면에서 고개드는 수진, 그동안 많이 성숙한듯 달라 보이는 모습이고
주택의 인테리어를 담당하는 부산하게 돌아가는 사무실. 수진을 향해 수화기를 흔드는 동료 직원 여자.
여자 : 2번 전화예요.
알았단듯 눈짓하고 수화기를 드는
수진 : 전화바꿨습니다. 한 수진 입니다.
필터 : (진숙의 회계사) 안녕하세요. 저 기억 나시죠? 최진숙씨 재산 대리인입니다.
수진 : (순간 표정 굳으며) 전 모든 권리를 다 포기한다고 말슴드렸는데요?
필터 : (회계사) 압니다. 그거 때문이 아니라 저희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물건이 있어서요.
수진 : ...???...(불안해 진다)
S#152. 소형 아파트
테잎으로 봉해진 커다란 소포 상자를 칼로 북! 찢는 손.
박스를 열어젖히자마자 화면 가득 드러나는 진숙과 동우의 환하게 웃는 사진 액자다!
화면 빠지면 흠칫! 굳으며 그 사진을 보는 수진과 옆의 혜경.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듯 불안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멍하니 진숙의 사진을 보는 수진.
찝찝해 하며 그 사진을 들어내고 안을 뒤적이는 혜경. 온통 진숙의 방에 있던 동우와 진숙의 사진 액자들이다.
그 틈에 수진과 동우의 결혼 사진 액자도 끼여져 있다. 표정 흔들리는 수진.
혜경 : 어떡 할거야?
수진 : (멍!) 모르겠어. 처분해야지.
혜경 : (수진의 어깨를 탁! 치며) 내가 태워 없앨게. 괜찮지?
수진 : (멍!) 고마워.
박스를 들고 일어나는 혜경. 문 열고 아파트 밖으로 나가려는데
수진 : 잠깐만, 혜경아!
혜경 : ...???...
벌떡 일어나 혜경에게로 달려가는 수진. 박스 속에서 동우와 자신의 결혼 사진 액자를 꺼내든다.
혜경 : (불안으로 굳으며) 너...? 뭐할려구 그래?
수진 : ...(액자를 가만히 품속에 안으며) 그냥. 그러고 싶어.
S#153. 수진의 방 안
침대 머리맡의 장식 선반. 그 위로 불쑥 프레임 인 되며 놓여지는 사진 액자.
예의 동우와 수진의 결혼식 사진이고 유리의 표면에 비춰 보이는 수진의 얼굴. 가만히 들여다 본다.
자신의 슬픔같기도 한... 어쩌면 동우에 대한 연민같기도 한 표정으로 사진을 보다 가 어느 순간 유리 밖으로 사라지는 수진.
액자위로 조용히 문 닫고 나가는 소리 들리며 곧 정적 속으로 휩싸이는 실내.
별안간 어디선가부터 진숙의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아스라하게 들려지기 시작하며 화면, 엔딩 타이틀이 떠오른다.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