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히스토리쿠스2
최근 역사와 삶의 괴리를 강하게 느끼고 인식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역사책을 통해 알게 된 역사에 삶을 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심지어 그것이 삶을 왜곡하고 억압하기도 한다고.
역사를 책을 통해서만 배운다면 불행한 일이다. 지식과 관념은 얻을 수 있겠지만 거기엔 삶도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역사의식을 갖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 타당할까 되묻기도 한다. 물론 역사의식을 갖고 과거사를 살펴보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역사의식이라는 말에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 거대담론인 역사 속에 돌보아야 할 수많은 진실과 시각이 매몰되어온 것 또한 사실이다. 때문에 지배자의 역사의식이 아니라 피지배자나 피해자의 역사의식을 갖추고 균형을 가지려 노력하는 게 필요하다. 역사의식이란 어차피 사회의식이 역사적 필터를 통과하며 획득된 이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통해 획득된 이데올로기적 이념의 성격이 있는 탓에 그것은 특수한 것이다. 그렇다면 맹목의 역사의식을 경계하며 정당한 역사의식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란 무엇일까?
내가 여기서 발견하는 것은 정치다. 정치란 사회 안에서 발휘되는 권력이며 정치 제도란 그 권력의 양식이다. 경제, 종교, 문화라는 것도 결국 그렇게 정치가 규정한 존재의 양식에 구속되는 모습을 띄고 있다. 역사의 핵을 형성하는 것은 아무래도 정치제도다. 한 사회 안에서 개개인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의 양식변화는 시대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관계의 형식이 정치제도에 의해 규정된다. 권력의 형식인 정치가 역사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새삼 하게 된 것은 올 봄 대관령을 다시 다녀오면서이다.
지난겨울 홍종학(87)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작년 할아버지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 할아버지는 어질병과 천식으로 고통을 겪고 계셨다. 이미 기억이 뒤섞이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할아버지의 입에서 일제시대에 대한 단편과 대관령 옛길에 대한 단편을 얻어 들을 수는 있었지만 너무나 파편적이었다. 오히려 젊을 때 하도 고생을 해서 골병들었다는 말만 뇌리를 떠나지 않고 울렸다.
왜 그렇게 심한 고생을 하며 살아야했을까? 과연 그것은 발전이 안 된 탓일까, 아니면 국가제도의 문제 때문인가? 원시시대에도 대관령에 사람이 살았는데, 그때도 일제시대 화전민처럼 살기 힘들었을까? 대부분의 빈곤이 상대빈곤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빈곤으로 느껴지는 이 빈곤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국가체제가 가진 위력이 실감났다. 군국주의의 일제시대와 전쟁, 개발독재 기간을 보면 개인의 사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국가와 마주치게 된다. 성격의 차이는 있겠지만 조선시대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한 나라의 정치제도는 개인의 사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그 성격을 드러낸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 형식이 이미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비정치적이려 해도 비정치적일 수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나 고려의 노예제도를 떠올려도 이것은 귀족들의 과두정이나 왕정 하에서 규정된 존재형식이며 의식인 것이다. 개인이 이 권력의 사회적 형식을 규정하는 정치를 극복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홍종학 할아버지처럼 골병든 삶의 이야기를 하며 숙명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일종의 깊은 체념, 근원적 체념이 존재한다. 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는가? 왜 우리는 평등할 수 없는가? 그것은 결국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는 정치 문제를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와 평등은 내 정치적 힘을 행사해 지켜야 하는 것이지 저절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와 평등이 정치가 발휘되는 사회적 형식에 의해 규정 되고 제한받는 이상 우리는 사회적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유사이래로 제나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정치의 대상으로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민주주의라는 현대도 정당한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아니지 않는가? 1인 1표라는 선거제도의 투표권을 통해 정치력을 행사하지 대부분은 관료와 위정자들의 결정에 따라 살아가는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참된 민주주의려면 개개인의 정치력이 생활 속에서 꾸준히 발휘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참으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관심이 필요한 일이다. 때문에 선거민주주의가 일종의 과두제와 유사하게 변질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국가체는 결국 과두적 권력기관의 형식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지닌 게 아닐까?
봄에 강릉에 내려가니 김재호(91) 할아버지도 훨 쇠약해 있었다. 말이 느려졌다. 이 얘기하다 저 얘기하다 해서 흐름을 유지해나가기 어려웠다. 일제시대 대관령의 이야기가 곧 꺼질 듯 약한 호롱불처럼 위태로워보였다. 홍종학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들었을 때 나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부욱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 생애가 곧 역사였구나. 인디언들이 그랬듯, 여진족이 그랬듯, 할아버지가 그랬듯, 남겨지지 않은 역사가 얼마나 많은가? 정말 우리들의 모든 생애가 또한 각각 역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역사란 무엇인가? 개인의 삶에 담긴 역사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는 어떻게 다른가? 내가 남겨지지 않은 역사, 혹은 사라진 역사라고 할 때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는 정치로 불리는 사회적 권력의 역사 대신 전혀 역사 취급을 받지 못하는 삶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거기엔 생명을 가진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발휘하며 자연과 사회 환경 속에 적응해 살아온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삶의 주인으로써 개인이 자신의 의지를 발휘하고 경험한 모든 것 또한 역사적인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가의 판단은 떠나서, 우선 기본적 구조는 동일하다. 사회에서 권력의 의지를 발휘하며 벌어진 일들이 역사의 중요 내용이 되듯 개인에게도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패망한 민족, 사라진 민족에게도 동일한 것이다.
이제 나는 개개인이 가진 삶의 역사를 역사의 가장 중요한 대상 중 하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을 미시사의 일부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의 역사 또한 거시사 만큼이나 성찰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 삶의 역사는 거시사가 가진 이데올로기적 함정에 빠질 우려가 적은 장점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개개인의 삶이 평등하게 조명되는 삶의 역사라는 장르를 만나게 된다. 이러한 시각이이라면 역사의 층위는 무수히 많고 다양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역사를 다 서술할 수 없듯 모든 역사를 다 복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양한 역사는 삶을 보다 풍부하고 의미 있게 만들 것이다.
특히 몇 분의 삶을 통해 나는 내가 아는 역사와 전혀 다른 역사, 내가 아는 종교와 전혀 다른 종교, 내가 아는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가 엄존했음을 느끼며 놀랐다. 우리가 아는 역사적인 문제와 그 이면도 그렇지만, 호랑이나 도깨비와 같이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더 이상 전설이 아닌 실재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실재에 대해 뭔가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그들과 나의 간극을 좁힐 수 없음도 느꼈다. 하나의 세계가 있고, 하나의 세계관도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세계를 다 묘사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세계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내가 『삼국유사』나 『사기』를 들고 읽는 것도 가치 있겠지만, 부모님이나 거리의 노인이나 무당 등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가치 있다. 역사를 공부한다면 나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회와 개인뿐 아니라 자연 등 모든 것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저마다 역사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와서 보고, 와서 들어라. 우리가 사는 세계는 마치 수많은 채널이 한꺼번에 켜진 방송실 같다. 수많은 세계가 있고 그 세계가 각각의 역사를 들려줄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세계관은 또다른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의미 없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역사가 온당하기 위해서는 생명이 가진 의지가 세계 안에서 어떻게 발휘되는지-인간에게는 그것이 정치고 그것이 삶이기도 한데- 살펴보며 자유와 평등의 감각을 터득해 나가려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