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로맨스/ 미국,독일, 영국
감독: 필립 카우프만
출연: 제프리 러쉬(마르키스 드 사드), 케이트 윈슬렛(마들렌), 호아킨 피닉스(쿨미어 신부)
그를 만나는 순간, 모든 상상력은 쾌락이 된다!
{"쾌락은 내 인생의 모든 것, 생명과도 바꿀 수 없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로 군림하던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말기의 공포 정치 시대에 수천명의 시민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본 사드(The Marquis de Sade: 제프리 러쉬 분)는 그 때문이었을까? 젊은 시절부터 가학적이고 문란한 섹스 행위와 성 도착적인 소설 집필로 감옥을 드나들며 전 프랑스에 악명을 떨친다. 말년에 샤렝턴이라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사드. 그곳 원장인 쿨미어 신부(Abbe Coulmier: 조아킨 피닉스 분)는 사랑으로 환자를 치료하려는 이상주의자였다. 그러나 사드가 병원에서 일하는 처녀 마들렌(Madeleine: 케이트 윈슬렛 분)을 통해 자신이 쓴 음란소설을 밖으로 빼내 몰래 출판하면서 샤렝턴 정신병원은 나폴레옹 정부의 요주의 대상이 된다.
나폴레옹은 로이 꼴라(Dr. Royer-Collard: 마이클 케인 분)라는 정신과 의사를 샤렝턴의 고문의사로 파견 사드를 치료, 감시하게 한다. 위선적 도덕주의자였던 로이 꼴라는 연금된 사드의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인 집필 행위를 철저히 금지한다. 그럴 수록 사드의 광기는 더욱 더 노골화 되어간다. 결국 모든 집필도구를 압수당한 사드. 그는 침대 시트와 자기 몸에 온갖 외설적인 말들을 써 갈기며 로이 꼴라에게 저항한다. 그 와중에 마들렌이 사드의 소설 집필을 도와왔음이 밝혀져 공개 태형이 처해진다. 마들렌을 몰래 사랑하고 있던 쿨미어 신부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나보낼 결심을 한다. 그날 밤 쿨미어 신부의 방을 찾아온 마들렌은 쿨미어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자기를 보내지 말아달라고 마들렌은 애원하지만 사제인 쿨미어는 눈물을 머금고 이를 거절하는데.
[스포일러] 샤렝턴을 떠나기 며칠 전, 마들렌은 사드에게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모든 집필 도구를 압수당한 사드는 동료 정신병자들의 도움을 받아, 가학과 음란의 극치인 자신의 최후의 소설을 입에서 입으로 마들렌에게 전달한다. 이를 종이에 옮겨 적는 마들렌. 그러나 소설의 내용을 전달하는 도 그 충격적 내용에 자극을 받은 한 정신병자가 병원에 불을 지른다. 아비규환 속에서 마들렌은 성도착 환자인 부숑(Bouchon: 스티븐 마커스 분)에게 살해되고 만다. 사랑하는 마들렌을 잃은 쿨미어는 사제의 본분을 잊고 증오심에 불타 사드의 혀를 빼는 참형을 가한다. 죽어가는 사드 앞에서 쿨미어는 마지막으로 회개하고 구원 받을 것을 종용하지만 사드는 십자가를 씹어 삼키며 끝까지 신에게 저항하고 눈을 감는다. 이에 충격을 받은 쿨미어는 정신 이상을 일으켜 샤렝턴의 병동에 수용 된다. 자신이 본 모든 것을 글로 옮겨 쓰게 펜을 달라며 절규하는 쿨미어. 순결한 이상주의자였던 그의 모습은 이미 죽은 사드를 닮아있었다.
'새디즘(Sadism)'의 어원이 된 19세기 프랑스의 실존 인물 마르키스 드 사드(Marquis de Sade) 후작이 샤렝턴 정신 병원에서 보낸 마지막 10년의 삶을 그린 시대극. 아카데미 수상자 제프리 러쉬가 사드 후작을 연기했으며, 그가 정신병원에서 쓴 글을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녀로 케이트 윈슬렛이, 그리고 그의 치료를 담당하는 신부 역에 조아킨 피닉스, 새로운 고문으로 부임한 정신과 의사 역에 마이클 케인이 출연한다. 감독의 주관적 견해에 따라 실제 사실과 다르게 윤색되거나 판타지적인 요소가 추가되어 전기영화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제목은 '깃펜(깃촉)'을 뜻한다.
사드의 이야기를 희곡으로 쓰고 시나리오로 각색한 더그 라이트(Doug Wright)는 사드의 방탕과 음행, 그리고 예술적 재능 등을 광기와 사랑의 감동적 우화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동기를 밝혔다. 이 희곡은 그에게 오비 상을 안겨줬다. 영화 제작자인 줄리아 챠스만과 닉 웨슬러는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했으며, 감독으로 선임된 필립 카프만은 검열 문제와 선, 악의 공생 관계라는 두 가지 이슈를 파헤쳐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마르키스 드 사드(Marquis de Sade: 1740-1814) 후작은 프랑스 귀족 가문 출신으로, 1740년 6월 2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백작이며 외교관이었으며, 정식 본명은 도나시엥-알폰스-프랑소아 드 사드(Donatien-Alphonse-Francoise de Sade)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격동적인 시기로서 사드는 왕정을 반대하고 절대 자유를 추구하던 반체제 인물이었다. 처음에 군인이 되어 7년전쟁에 참전하고 돌아온 그는 사법관의 딸과 결혼했지만 자유주의자, 반체제주의자로 돌변,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다. 창녀와 신성모독의 대화를 나눈 것을 시작으로, 아르퀴에유의 거지여자 구타사건(1768)과 마르세유의 봉봉사건(1772) 등의 스캔들을 일으켜 투옥된 것을 시작으로 생애의 1/3 이상을 옥중에서 보냈다. 프랑스 혁명으로 석방된 후로는 자작 연극을 상연하기도 하고, 정치운동에 열중하기도 하였으나, 공포정치 시대에 반혁명의 혐의를 받고 재차 투옥되었다. 그리고 나폴레옹 체제하에서는 필화(筆禍)로 인하여 죽을 때까지 샤랑통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 그는 옥중에서도 정력적으로 집필 활동을 벌였는데, 그의 작품은 도착성욕을 묘사한 것이라고 하여, 외설과 부도덕의 이유로 모든 검열을 받아야 했던 관계로 오랫동안 묵살되어 왔다. 따라서 그의 문학적 가치가 드러난 것은 19세기 말엽부터이며, 독일의 의학자와 20세기의 초현실주의 문학자와 실존주의자의 노력에 의하여 복권, 사회와 창조자에 대한 대담한 반항자로서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바스티유 감옥에서 집필한 <살로 소돔의 120일(The 120 Days of Sodom)>은 혁명 이전 체제의 권력 특권층들이 추종자들과 함께 외딴 섬에서 쾌락의 향연을 벌이다, 고문과 살육을 자행한다는 내용. <저스틴(Justine)>에선 신앙이 깊고 정숙하지만 불행해지는 저스틴, 악덕의 화신이지만 부귀영화를 누리는 줄리에트 자매의 운명을 통해 기성의 도덕을 조롱했고, 이어 줄리엣이 음탕한 수도원장과 매음굴 여주인의 도움으로 악녀가 돼가는 과정을 그린 <줄리엣(Juliette)>을 발간했다. 1801년, 사드는 <줄리엣>을 발간한 것이 발각된 뒤, 풍속괴란죄로 체포되고 샤렝턴 정신병원에 감금되었고, 1814년 샤렝턴에서 호흡곤란으로 사망해 샤렝턴 묘지에 묻혔다. 그의 생애와 작품을 다룬 영화로는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 브누아 자코의 <사드>, 피터 브룩의 <마라와 사드>, 앙리 조네의 <마르키스>, 지저스 프랑코의 <마르키스 드 사드: 저스틴> 등이 있다. <앨린과 발코(Alien and Valcour)> 등은 그의 소설을 공포와 성적 도착을 뒤섞어 놓은 고백체적 형태의 '악당 문학(PICARESQUE)'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또한 '자기 억제는 인간 본성에 위배되는 것'임을 주장한 선구자로도 인정 받고 있다.
새디즘(Sadism)은 성적 대상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인 쾌감을 얻는 이상 성행위 가학증 또는 학대음란증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귀족 문학가 사드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동성애를 즐기는 여성(레즈비언: Lesbian)의 성격에 새디즘적인 요소가 많이 나타난다. 새디즘을 최초로 명명한 사람은 독일의 의사이자 정신학자인 크라프트 에빙이다. 반면, 매저키즘(Masochism)은 새디즘에 반대어로서 고통을 받으면서 성적 쾌감을 얻는 이상 성행위를 말한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자허 마조흐(Sacher Masoch)의 작품에 나오는 피가학증에서 유래했다.
사드에 대한 평가는 양 극단을 달리고 있다. 사드 전기 작가 닐 섀퍼는 뉴욕 타임즈에 이렇게 기고한 바 있다. "사드는 문학의 밑 바닥의 한계를 보여줬다. 그의 소설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이다. 적을 아는 건 승리의 지름길인 법. 인간 본성의 밑 바닥을 파악하는 것은 이 폭력적 시대에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 어쩌면 매우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작가 프랜신 뒤 플레시 그레이는 그녀의 저서 'AT HOME WITH THE MAQUIS DE SADE' 에서 역사가들이 사드에 대해 '서구 사상의 가장 명석한 영웅'으로 혹은 '모든 죄악과 음란성을 한데 섞어 놓은 정신 파탄자'로 극단의 엇갈린 평가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드와 관련된 실화들. 사드는 프랑스 혁명 종반부에 'LES LIAISONS DANGEREUSES'의 저자인 꼴데로스 드 라클로등과 함께 픽푸스 감옥에 투옥 된 바 있다. 그곳에서 그는 마리 앙트와넷을 비롯한 수천명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감방 창문으로 지켜보았다. 그는 자신의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이 곳에 갇혀서 눈 밑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행진을 지켜보는 것은 바스티유 감옥에서 자행된 어떤 폭력보다 수백 배 더 큰 상처를 내게 안겨주었다." 61세의 나이에, 사드는 출옥한 지 얼마 안되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악명 높은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의 신작 소설 <줄리엣>의 발간을 막기 위함이 체포의 목적이었다. 그는 재판을 받지 않았다. 대신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나폴레옹 정부는 그를 죽을 때까지 샤렝턴 정신 병원에 감금시켰다. 사드는 샤렝턴에서 방이 두개 딸린 스위트룸에 기거했다. 강이 내려다 보이는 이 '감방'은 각종 고급 가구와 미술품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250여권의 장서까지 비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호사를 위해, 사드의 가족은 샤렝턴 측에 매년 3천 리브르의 돈을 지불해야 했다. 죽기 4년전인 1810년, 사드는 널찍한 자기 방에서 ?i겨났다. 나폴레옹 정부는 사드로 부터 연필과, 펜, 잉크 등 글을 쓸 수 있는 모든 도구를 압수했다. 교도 행정관은 나폴레옹에게 이런 보고서를 올렸다. "사드는 그의 연설과 글로 범죄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계속 연금되어야 하며, 모든 의사소통의 수단도 박탈되어야 한다." 일설에 의하면 사드는 샤렝턴에 있을 때 막달렌 레클렉이라는 17세의 세탁부와 사랑에 빠졌었다 한다. 막달렌에 대해서 알려진 바라고는, 그녀가 사드의 방을 규칙적으로 방문, 그에게 글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는 것 외엔 별로 없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사드의 방에 간 것은 사드가 죽기 1주일 전이었는데, 그날 밤 사드는 일기에 막달렌이 자기 방에 2시간 동안 있다 갔으며, 그래서 무척 기뻤노라고 썼다. 사드 후작은 1814년 12월 3일, 샤렝턴에서 호흡 곤란증으로 사망했다. 그는 자신의 유언과는 달리 샤렝턴의 묘지에 묻혔다. 사드 후작이 쓴 작품들은 1960년대까지도 프랑스 내에서 공식적 출판이 금지되어 있었다. 지금도 그의 책은 금서 목록에 단골로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