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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학 2024 가을호 -지난 계절의 시- 서평>
시의 영혼, 플롯
김광기(시인)
시를 쓰면서 가장 먼저 시의 플롯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를 생각한다. 어떤 글이든 쓰고자하는 글 안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전개해 놓은 이야기 구조가 있어야 한다. 현대의 우리는 그것을 스토리라고 하는데,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처음과 중간과 끝”의 구조를 갖는 플롯(plot)이라고 하였다.
플롯은 점점 세월이 지나면서 오늘날에는 스토리(story)라는 구조를 가지며 글의 기본적인 구성체계로 발전 변모하게 되었다. 하지만 플롯이라는 말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계속 사용되면서 스토리와는 다른 기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스토리는 소설 구조를 갖는 형식의 줄거리를 말하는 것으로 대표되고 플롯은 시의 구성을 이루는 흐름을 말하는 것으로 대표되고 있다.
스토리는 사실적 요소인 인물의 성격과 시간, 장소, 배경 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며 줄거리를 갖게 되는 형식이라 볼 수 있다. 주로 소설이나 사실적 요소를 중심으로 하는 논제들을 정리할 때 쓰인다. 플롯은 전술한 바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저서 시학에서 “모든 이야기에는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다.”고 하며 이것을 플롯이라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을 비극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 이래 작품의 묘사에 선행하는 극적 효과의 중요한 지주(支柱)로 삼았다.
현대에 와서는 이야기(story)가 시간적 경과에 의한 줄거리의 전개를 뜻하는 것이라면 플롯은 작품의 주제를 증명하는 데 관련된 등장인물 등의 내적 인과관계 및 사건의 내적 정황을 중심으로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스토리는 외형적 요소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고 플롯은 내재적 요소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다.
이러한 플롯은 시에서 기승전결로 정리가 되고 있는데, 시의 극적 효과를 더하기 위해 기승전결의 각 단계적인 요소를 생략하기도 하고 도치시키기도 한다. 시의 구성요소는 분명 기승전결의 체계가 있지만 시의 감동과 여운을 배가시키기 위해 그것을 기본적으로 잘 따르지 않는 추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시인의 철저한 기획 아래에서의 운용이어야지 다소 미흡하게 정리한 경우의 시행(詩行)이라면 기본적으로 시가 되지 않는 형태가 될 수도 있어 시의 플롯을 잡을 때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을 시의 영혼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플롯을 통해 시적 의미를 진행시키기도 하고 플롯이라는 진행구조 속에 시적 의미를 담아둘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호를 읽으며 탁월한 플롯 구성으로 감동을 배가시켜 주는 작품들을 여러 편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작품들을 골라 찬찬히 살펴보기로 한다.
깜깜한 그믐밤도 환히 돌아나가던 골목
해 눈 비빌 때부터 산그르메 저물녘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나와서 어울리던 동무들
얼뜨기 철뜨기 눈껌쩍이 코실룩이들로
호주머니엔 언제나 잡동사니 잘그렁거리고
어떤 날은 삽살이도 따라 나와 꼬리 흔들어
바람 지나가다 돌담에 한참 기대어 섰는
누군가 들고나온 둥글넓적한 보리 개떡
돌려가며 한 입씩 베어 물고 우물거리던
눈 감으면 언제라도 환히 떠오르는 얼굴들
구멍 난 고무 신에 너덕너덕 기운 옷 입고
그래도 구김살 하나 없이 어울리던 날의
- 김석규, 「보리 개떡」 전문
보리 개떡은 식량이 귀하던 시절 보리가 수확되기 시작하면 보리를 갈아 거친 가루를 반죽해서 치댄 후 떡을 만들어 쪄서 배고픔을 대신하던 음식이었다. 김석규 시인의 「보리 개떡」을 읽으니 까마득한 시절이었던 지금은 먼 기억 속에만 있는 시골 동네의 풍경이 그려진다. 보릿고개라 하던 춘궁기를 지내던 시절이 먹먹하게 떠오르기도 하고 먹을 것이 변변치 않아 보리 개떡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 시절인데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 나오는 어린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정경은 활기차기만 하다.
친구들을 골려주려고 “얼뜨기 철뜨기 눈껌쩍이 코실룩이들로” 부르던 별명들이 정겹게 느껴지고 “호주머니엔 언제나 잡동사니 잘그렁거리”듯 무엇 하나 변변하게 가진 것도 없지만 “누군가 들고나온 둥글넓적한 보리 개떡/ 돌려가며 한 입씩 베어 물고 우물거리던” 모습들이 한없이 그리운 시절의 정경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구멍 난 고무 신에 너덕너덕 기운 옷 입고/ 그래도 구김살 하나 없이 어울리던 날의”의 전환적인 요소가 시적 긴장을 바짝 조여주고 있는 듯하다. 특히 “날의”라고 끝맺음한 시어는 “어울리던 날”에 접속사 “의”를 더해 시적 여운을 배가시키는 효과를 주기도 하고, 본연의 의미를 주는 날것의 “날”에 옷 “의(衣)”를 더한 의미의 중의적인 표현으로 읽혀 한참을 시행의 의미에 머물게 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혹자는 한 편의 시를 잘 된 수필 한 편을 함축적 의미로 제시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김석규 시인의 「보리 개떡」을 읽으며 그러한 플롯 구성의 표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많은 별 가운데 하나를 본다
길지 않은 시간 이 땅에 머물다
아득한 별나라로 다시 돌아간
외로운 이름 하나가 반짝 빛난다
낯설고 먼 곳에서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우면
새벽까지 돌아가지 못하고
창문 틈을 기웃대고 있을까
하고 싶은 말 끝없이 많지만
끝내 한 마디도 못하고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표정이 너무도 창백하구나
뜨거웠던 너의 체온은 어디로 가고
서늘한 눈빛으로만 반짝이느냐
오직 그리움으로만 닿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거리는 너무나 아득하구나
마침내 나도 별이 되고 나면
뜨겁게 서로 안아볼 수 있을까
오늘도 밤하늘에 돋아난 별빛 하나
눈시울 속으로 녹아든다
- 김윤한, 「별」 전문
알퐁소 도오테의 소설 「별」 때문이었는지 어린 시절부터 밤하늘의 별을 보면 마치 누군가의 영혼이 별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많다. 이렇게 별을 생각하는 마음이 알퐁소 도오테의 「별」에서는 어깨에 기대어 잠든 주인집 아가씨가 별의 환생처럼 느껴져 목동은 행복해하고 있었지만 김윤한 시인의 「별」에서는 “길지 않은 시간 이 땅에 머물다/ 아득한 별나라로 다시 돌아간” 그립고 그립던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우면/ 새벽까지 돌아가지 못하고/ 창문 틈을 기웃대고 있을까” 하며 “하고 싶은 말 끝없이 많지만/ 끝내 한 마디도 못하고/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표정이 너무도 창백하”다고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화자가 새벽까지 잠을 못 자고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오직 그리움으로만 닿을 수밖에 없는” 사람, “마침내 나도 별이 되고 나면/ 뜨겁게 서로 안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눈시울 속으로 녹아든” 사람을 애타게 못 잊고 있는 정경이다. 그립고 안타까운 마음, 애석한 그리움의 미적 거리 균형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러한 미적 거리 원근법의 적절한 시적 구성이 독자의 가슴을 울리며 공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그래요 어린 것이 잠깰 새라 들쳐 업었지라
발바닥을 찌르며 올라오는 냉기처럼
어금니 깨물고 앉았지라
누추한 햇살에 뒤적이는 부끄런 순수 몇 장
지가 살아가는 명분이지라
찌든 비린내 긁어모아 견딘 시름처럼
흔들, 흔들리는 영혼을 함지에 두는 것은
어린 것하고 걍, 살고 싶은 것잉 께
그래요 깡마른 무릎이 허기져 소심해지는 동안
노릇하게 구워지는 저녁놀이
제 하루 걸어온 놀이터지라
왠지 오래된 질문처럼 낯설지만은 않응 께
- 박복영, 「지동시장, 앉은뱅이 풀꽃에게」 전문
박복영 시인의 시 「지동시장, 앉은뱅이 풀꽃에게」는 한 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것 같다. 대화체 회상구조의 독백처럼 흐르는 시어들은 연극의 대사를 읊는 소리처럼 낭랑하게 공간을 울리기도 한다.
화자는 힘들게 살며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인인 듯하다. 무대가 되는 “지동시장”은 수원 성곽을 배경으로 형성된 100년 전통의 상설시장으로 지역주민들의 애환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형편이 여의치 않은 화자는 시장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며 이곳에서 임시로 좌판을 벌이고 있는 아낙 같다. “앉은뱅이 풀꽃” 같은, “찌든 비린내 긁어모아 견딘 시름처럼/ 흔들, 흔들리는 영혼을 함지에 두”고 있는 것은 “어린 것하고 걍, 살고 싶은” 희망이 될 것들이지만 아무 보잘것없는 것들인 것 같다. “그래요 깡마른 무릎이 허기져 소심해지는 동안/ 노릇하게 구워지는 저녁놀”처럼 익어가는 하루하루가 여인이 힘들게 사는 팍팍한 삶의 단면을 보인다. 하지만 “왜 사냐 건 웃지요” 하는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분위기처럼 여인은 ‘왜 이렇게 사느냐’고 “오래된 질문” 같은 것을 받으면 “어린 것하고 걍, 살고 싶은 것”뿐이라고 말을 하는 뉘앙스를 보인다.
사람들의 눈길이 잘 가지 않는 ‘지동시장’ 구석진 곳에 피어 있을 것 같은 “앉은뱅이 풀꽃”을 보고 시인은 좌판을 벌이고 있는 한 여인의 서사를 떠올리며 한 편의 극을 연출하고 있는 듯하다. 단조로운 듯하지만 팍팍하게 살아온 한 여인의 온 생이 다 보이는 것 같은 서사의 생략과 도치적 배열이 극의 긴장감을 한껏 심화하고 있다.
시꺼먼 툇마루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처럼
단단했으나 틀어져 있다
잡아당기면 목쉰 수탉처럼 삐걱거리는
지그린 문짝 사이로 놀란 거미줄이 출렁거렸다
끊긴 수도꼭지는 푸른 녹이 끼었고
찬장에 갇힌 이빨 빠진 사기그릇
허청에 매달린 옥수수 씨앗
너무 오래 기다렸다
솥단지 빼낸 아궁이에 깊은 검댕
식은 아랫목에 누워 기침하던 아버지가 궁금하다
식구들 웃음소리 듣고 싶어 숨죽인 저녁 마당
애꿎은 바람이 추억을 떠받친 코스모스를 흔들어댄다
이끼 낀 기와지붕에 고양이 새끼 치고
침 빠진 괘종시계 울지 않은 지 오래
깨진 댓돌 틈으로 계절이 빠져나가고
텅 빈 물두멍에 겨울이 드나들었다
빈집은
바람이 먼저 알아
담장을 허물고 지붕을 부수고
세간살이 까발리고 묵은 냄새를 토해낸다
자란 풀이 숲을 만들어
별보다 많을 사연을 묻어버린다
별빛도 꺼져버린 먼 훗날
사금파리 한 조각 건질 수 있을는지
- 박계업, 「빈집」 전문
박계업 시인의 시 「빈집」에는 삶의 역사 한 페이지처럼 “빈집”에 얽혀 있는 서사가 고여 있다. 조상 대대로 살아왔을 집이 화자의 대에 와서 얼마 동안 비워졌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찾은 화자는 집을 재건하기로 마음을 먹고 둘러보고 있는 듯하다. “시꺼먼 툇마루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처럼/ 단단했으나 틀어져 있”고 “잡아당기면 목쉰 수탉처럼 삐걱거리는/ 지그린 문짝 사이로 놀란 거미줄이 출렁거”리고 있다. 화자는 “솥단지 빼낸 아궁이에 깊은 검댕”의 끝자락 같은 “식은 아랫목에 누워 기침하던 아버지가 궁금하다”. 화자의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요즘은 저세상에서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해하는 듯하다. “침 빠진 괘종시계 울지 않은 지 오래”이고 “깨진 댓돌 틈으로 계절이 빠져나가고/ 텅 빈 물두멍에 겨울이 드나”든 세월이 흘렀다. “빈집은/ 바람이 먼저 알아/ 담장을 허물고 지붕을 부수고/ 세간살이 까발리고 묵은 냄새를 토해낸다/ 자란 풀이 숲을 만들어/ 별보다 많을 사연을 묻어버린다”. 집이 재건되고 나면 “별빛도 꺼져버린 먼 훗날”처럼 모든 것이 사라지고 묻혀버리겠다는 아쉬움이 큰 듯하다. 세월 속에 묻어버리는 지난날의 가족사에서 “사금파리 한 조각 건질 수 있을는지” 하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기억 재생의 의지가 날 선 “사금파리”처럼 화자의 기억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단편소설 같은 화자의 서사가 잔잔한 기승전결의 플롯으로 전개되어 세대가 교체되고 전환되는 우리네 삶의 여정이 숙연하게 전해지고 있다.
두 볼에
시간을 채웠다 비우는 한낮
푸른 커튼 열면 움츠린 울음이 순간 멈추지요
비워야 채울 수 있지요
이도 저도 못한 날이었죠
맹꽁이 소리 익숙하던 시절
넘겼던 페이지처럼
접었다 펼쳐보는 비음에
귀 기울입니다
오래된 나뭇가지에
노래 한 가닥 걸쳐놨지요
데모하는 누리꾼이 한 차례 지나갔어요
사람들은 숲에 귀를 열고
왔다 갔다 합니다
바람에 흩어졌던 소리가 굴러다녀요
소리가 사라진 뒤
깊숙이 드리운 말씀
내일은 소나기 온다는 기상예보입니다
움츠린 울음이 순간 멈추고
다가가면 멀어집니다
숲 하나 비우느라 그렇게 울었나 봅니다
비워진 숲에 빗소리가 차오릅니다
한 계절이 지나갑니다
콧노래를 부릅니다
날마다 숨 쉬듯 노래하는 숲엔
한둘씩 모인 이주민들
여기는
우리는
- 송유나, 「맹꽁이」 전문
송유나 시인의 시 「맹꽁이」는 동화 같은 시로 읽힌다. “맹꽁이”의 삶에 비유된 인간의 삶과 역사, 숲의 이야기, 우리 인간적 삶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의식들이 동화처럼 펼쳐지고 있다.
‘맹꽁이’를 화두로 세우고 미시적으로 접근하는 “두 볼에/ 시간을 채웠다 비우는 한낮”의 날에 “푸른 커튼 열면 움츠린 울음이 순간 멈추지요/ 비워야 채울 수 있지요/ 이도 저도 못한 날이었죠” 하는 성찰의 말씀들이 가볍게 툭툭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맹꽁이 소리 익숙하던 시절/ 넘겼던 페이지처럼/ 접었다 펼쳐보는 비음에/ 귀 기울입니다// 오래된 나뭇가지에/ 노래 한 가닥 걸쳐놨지요/ 데모하는 누리꾼이 한 차례 지나갔어요/ 사람들은 숲에 귀를 열고/ 왔다 갔다” 하듯 사람들의 숨은 서사가 동화처럼 펼쳐지면서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서사는 다시 이어진다. “바람에 흩어졌던 소리가 굴러다녀요/ 소리가 사라진 뒤/ 깊숙이 드리운 말씀// 내일은 소나기 온다는 기상예보입니다/ 움츠린 울음이 순간 멈추고/ 다가가면 멀어”지듯 전개되고 “숲 하나 비우느라 그렇게 울었나 봅니다/ 비워진 숲에 빗소리가 차오릅니다/ 한 계절이 지나”간다고 한다. 그러다가 “콧노래를 부”른다는 반전과 같은 대전환의 희화적인 전개가 임팩트 있게 전달되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던져지는 화두와 같은 “날마다 숨 쉬듯 노래하는 숲엔/ 한둘씩 모인 이주민들/ 여기는/ 우리는”이라는 문제 제기가 더 이상은 동화적이지 않은 문제의식을 성찰하게 하고 있다.
재미있는 동화 같은 시적 비유로 톡톡 튀듯 재치있게 전개가 되고 있지만 각각의 연마다 의미심장하게 긴장감을 돋우며 흥미롭게 진행된다. 동화적이지만 절대 동화적이지 않은 의미의 심화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이다. 비유와 묘사, 특히 주제 의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플롯 구성이 도드라져 보인다.
시를 쓰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플롯 구성이 시를 오래 쓰다가 보면 타성에 젖듯 경시할 수도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시인은 언제나 초심으로 한 편의 시를 맞이하듯 언제나 처음부터 플롯 구성을 먼저 생각해보고 시작에 몰두해 가는 것은 어떨까 한다. 플롯은 시의 집이고 시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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