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읽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 자비하신 아버지의 비유 이야기에서 큰 아들에 대한 짧은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큰아들은 자기 동생이 아버지의 재산 반을 받아 떠난 후에도 아버지 곁에서 남아 아버지를 섬기며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재산의 반을 다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동생을 위해 아버지가 환영하는 잔치를 벌이자 분개합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겼습니다.”,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큰아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함께 사는 아버지와 큰아들의 관계에서 충분한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의 공동체 생활에서도 이와 같은 소통의 부재는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늘 갈등을 피하기 위하여 피상적인 수준의 대화를 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큰아들처럼 아버지를 종처럼 섬기고, 명령을 어기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거나 거절당할까봐 요구하지 못하는 거리감을 살아가는 것이죠.
물론 공동체 생활을 하는 내내 자기 자신의 내면의 깊숙한 감정들과 비밀들을 공동체의 모든 이들과 나눌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동체 삶을 “의로운 관계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간의 투명하고 진실된 마음의 소통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그래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아버지처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라는 마음이라 해도
함께 사는 이, 큰아들처럼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한 신뢰와 이해가 충분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더 많이 표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표현하는 데에 있어 신중한 주의와 상대에 대한 존중감이 필요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모든 행동과 말, 심지어 태도까지도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자신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표현된 자신을 서로가 품어줄 때 공동체는 의로운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공동체 생활을 하는 우리 각자에게는 균형 잡힌 삶 안에서 하느님, 이웃,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며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책임과 소통의 진솔함에 대해 성찰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제 입술을 열어주소서. 제 입이 당신을 찬미하며 당신을 마주하듯, 제 입이 형제들을 마주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