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인도구호물품 출정식겸 강연회가 있었습니다. 지난 두 달간 각 초,중,고등학교에서 모은 물건을 드디어 인도에 전달할 때가 된 거죠. 물품 모으기에 참가한 학생들과 학부모를 위한 특별한 행사였습니다.
강사가 세 분이나 되는 지라 은근히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견딜지부터 고민하는 학생이 많았으나 정작 강의가 시작되자 넓은 강연장은 고요 그 자체였답니다.
첫 번째 강사는 존스 홉킨스 대학의 길버트 번햄교수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강의를 했습니다. 알아듣는 무리는 중간 중간 웃음을 터트리는데 난감한 얼굴을 한 다수의 학생들은 급기야 졸기까지... 우리 아이들을 너무 과대평가 하셨나 봐요. 나중에 연세대 이명근 박사님이 요약해서 통역을 해 주셨는데 그다지 인기몰이를 하진 못했죠.
이어서 이명근 박사님이 학생들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다양한 국제기구의 매력들을 알려 주었네요. 책상 앞에서 공부만 주구장창 하는 학생들의 시야를 높이는데 짜릿하게 한 몫을 했네요. 국제기구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젊은 피아니스트 김철웅씨,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탈북한 파란만장한 인생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듣는 내내 가슴이 싸아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네요.
여덟살 때 음악신동으로 뽑혀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입학하여 20년이나 그 대학에 몸을 담고 있었답니다. 오로지 피아노만 알고 바깥 세상을 몰랐다네요. 몰랐기에 관심도 없었다고.
여자 친구가 생기고 그녀를 위한 음악을 연주하다가 금지곡이라고 붙들려 가게 되고, 그때부터 이념에 회오리 바람이 일었다는군요.
북한엔 허락되는 곡이 정해져 있답니다. 사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만한 곡은 전부 금지를 시켜 놨다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가고, 붙잡혀서 다시 북송되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고 얘기할 땐 숙연하기까지 했지요.
그 절절한 기억속에 자유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그 사람 손 짓 하나, 말씨 하나 놓치지 않으려 그야말로 푹 빠져들어 갔습니다.
얘들아 그렇게 불쌍한 눈으로 보지마, 다 지나간 일이잖아. 그리고 지금 나는 무지 행복하거든.
몇 밀리미터 차이로 남쪽에 태어난 걸 정말로 축복으로 알아라, 너희는 지금 무엇이 불만이냐. 부모에게 감사해라 등등...
아이들 가슴에 어떤 울림을 넣어놓고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리랑을 자신이 편곡했노라며 훗날 통일이 되면 남과 북이 다같이 불러야 할 노래라고 했지요.
강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이야기들과 피아노 연주 두 번 더 하고 그는 박수소리와 환호를 받으며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자유를 찾았다고는 하나 여전히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그의 눈이 서글퍼 보였네요.
그 사람의 말을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단 하나, '자유라는 건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온전히 하게 해 주었다'라는 대목에서 그저 감동만이 밀려왔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강연장 안에 있던 모든 학생들이, 학부모들이, 선생님들이 자신의 행복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시디를 사고, 싸인을 받고 나오는데 옆에서 누가, 강의 어땠어요? 합디다. 본능적으로 아, 너무 좋았어요, 정말 감동적인 강의였어요! 하고 고개를 드니 글쎄 마이크가 있고 카메라가 막 돌아가데요.
ㅋㅋ.. 김철웅씨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네요. 헐~ 그 속에 제 인터뷰도 나오는 거 아닐까요? 에이, 머리도 좀 하고 옷도 잘 입고 갈 걸... 티셔츠에 바지를 입고 갔구마는 ㅉㅉ..
대다수의 학생들이 엄마 성화에 못이겨 학원을 빼 먹은체 참석을 했을 텐데요, 얼마나 귀하고 값진 시간이었던지...
우리 학교 아이들은 탈북 피아니스트를 학교에 초청해서 전교생이 다 같이 강의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간부 학생들이라 교장선생님께 건의하면 제가 나서서 팍 팍 밀어준다고는 했는데 글쎄요 아이들은 얼만큼 적극적일지 또 김철웅씨는 바쁜 시간을 할애해 다시 대구를 찾아줄 지 미지수네요.
아마도 학부모 샤프론봉사단에서 다시 앵콜 강연을 계획하고 있지 싶습니다. 제가 앞을 좀 내다 보거든요 ㅋㅋ..(태원님도 그렇게 말했는데..)
신들린 듯 연주하는 김철웅씨, 손이 피아노 건반 위를 막 날아다녔어요.
첫댓글 너무 믿고 있기에 소중함을 잊고 사는 일 들이 우리에겐 많답니다. 부모님의 사랑, 공기, 내 가장 가까이 나를 지켜주는 눈길....김철웅 그에게 자유는 우리가 흔하디 흔해 잊고 사는 귀한 것을 다시 일깨워주는 소중한 것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그의 연주를 듣고 싶네요.
그러게요. 가끔 잠자고 있는 의식을 일깨우는 이런 강의가 참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내일 만나겠네요, 언니~~^^
아, 이런 분도 계시군요. 이념이 참 대단한 것이긴해요. 예술 또한 사람의 생에 한 획을
긋는 일이겠지요. 그 마음이 어떨지 감히 짐작을 해 봅니다.
머리에 넣는 지식에만 투자를 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모르고 있는 다양한 세계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더 바쁜 사람같아요
김철웅씨요? 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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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길버트 교수님 강의는 다 못 알아 들었을테고... 아마도 김철웅씨에게 감동했을 겁니다.
자유를 찾은 분이 음악적으로도 대성하기를 기원합니다.
그에게 진정한 자유는 아마도 죽을 때가지 요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