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읽기▮ 국순(麴醇-술을 의인화한 말. 술의 재료인 누룩[麴]을 성으로, 순[醇]을 이름으로 삼음)의 字(자)는 子厚(자후)이다. 그 조상은 농서(隴西-진한의 군이름) 사람이다. 90대조인 모(牟-보리)가 후직(后稷-주나라의 선조, 명(名)은 기(棄), 농사를 잘 다스려 순 임금이 후직이라는 벼슬을 줌)을 도와 뭇 백성들을 먹여 공이 있었다. ‘시경(詩經)에 “내게 밀과 보리[麥·牟]를 주다”한 것이 그것이다. 모(牟)가 처음 숨어 살며 벼슬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밭을 갈아야 먹을리라.”하여 밭에서 살았다. 임금이 그 자손이 잇다는 말을 듣고 조서(詔書)를 내려 안거(安車-앉아서 탈 수 있게 만든 좋은 수레)로 부를 때, 군과 현에 명하여 곳마다 후하게 예물을 보내게 하였다. 신하를 시켜 친히 그 집에 나아가, 드디어 방아와 절구[저구(杵臼)] 사이에서 교분(방아로 보리를 찧다.)을 정하였다. 화광동진(和光同塵-자기의 지덕의 칮을 싸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일)하게 되니, 훈훈하게 찌는 기운이 점점 스며 들어서(발효되다) 온자(醞藉-속이 너그럽고 편안함)한 맛이 있어 기뻐 말하기를 “나를 이루어 주는 자는 벗이라 하더니, 과연 그 말이 옳다.”하였다. 드디어 맑은 덕으로써 들리니, 임금이 그 집에 정문(旌門)을 표하였다. 임금을 따라 원구(圓丘-천자가 동지(冬至)에 제사지내는 곳)에 제사한 공으로(제주로 사용되다) 중산후(中山候)에 봉해졌다. 식읍(食邑-공신에게 내리어 나라에서 거두어 들여야 한는 조세를 그 공신이 맡아 쓰게 한 고을)은 일만호(一萬戶)이고, 식실봉(食實封)은 오천호(五千戶)이며 성은 국씨라 하였다. 5대손이 성왕을 도와 사직을 제 책임으로 삼아 태평성대를 이루었고, 강왕(康王)이 위에 오르자 점차로 박대를 받아 금고(禁錮-금주령, 신분에 허물이 있어 벼슬에 스이지 않는 죄과)에 처해졌다, 그래서 후세에 나타난 자가 없고, 모두 민가에 숨어 살게 되었다. 위나라 초기에 이르러 순(醇)의 아비 주(酎-소주를 의인화한 말)가 세상에 이름이 알려져서, 상서랑(尙書郞) 서막(徐邈-송나라 설화집 태평광기의 서막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술을 먹으면 정신이 알쏭달쏭하고 까마득하게 된다.)과 더불어 서로 친하여 그를 조정에 끌어 들여 말할 때마다 주(酎)가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침 어떤 사람이 임금께 아뢰기를, “막이 주와 함께 사사로이 사귀어 점점 난리의 계단을 양성합니다(술에 취해 있습니다.).”하므로 임금께서 노하여 막을 불러 힐문(질책)하였다. 막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기를, “신이 주를 좇는 것은 그가 성인의 덕이 있삽기에 수시로 그 덕을 마셨습니다.” 하니, 임금께서 그를 책망하였다. 그 후에 진(晉)이 이어 일어서매 세상이 어지러울 줄을 알고 다시 벼슬할 뜻이 없어 유령(劉伶), 완적(阮籍)의 무리(진나라 竹林七賢. 술과 청담을 즐김-죽림칠현 흠모)들과 함께 죽림에서 노닐며 그 일생을 마쳤다. 국순의 신분과 가계 순(醇)의 기국(도량과 재간)과 도량(순의 인물됨)은 크고 깊었다. 출렁대고 넘실거림이 만경창파와 같아 맑혀도 맑지 않고, 뒤흔들어도 흐리지 않으며, 자못 기운을 사람에게 더해 주었다. 일찍이 섭법사(태평광기, 섭법선 설화에 나오는 인물)에게 나아가 온종일 담론(談論)할 때, 일좌(一座-온 좌석)가 모두 절도(絶倒-까무러쳐 넘어짐)하였다. 드디어 유명하게 되었으며, 호(號)를 국처사(麴處士)라 하였다. 공경(公卿), 대부(大夫), 신선(神仙), 방사(方士(-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 들로부터 머슴, 목동, 오랑케, 외국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향기로운 이름을 맛보는 자는 모두가 그를 흠모하며(모두 술마시기를 좋아함) , 성대(盛大)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순(醇)이 오지 아니하면 모두 추연(근심하는 모양)하여 말하기를, “국처사가 없으면 즐겁지가 않다.”하였다. 그가 당시 세상에 애중(愛重)됨이 이와 같았다. 국순의 성품과 행적 순이 권력을 잡고서는 어진 이와 사귀고 손님을 접대하며, 늙은이를 봉양하고 귀신이나 종묘에 제사지내는 것도 강력히 주장하였다. 임금이 밤에 잔치를 베풀 때도 오직 궁인과 더불어 모실 수 있고 비록 근신이라 하더라도 참여할 수 없었다. 이로부터 임금이 취하여 주정을 부리면서 정치를 돌보지 않았고, 순(국정을 어지럽히는 간신배들을 은유)은 제 입에 자갈을 물려 말하지 못하니 예법을 아는 사람은 원수같이 미워했으나 임금이 매양 보호하였다. 순은 또 돈을 거둬들여 재산 모으기를 좋아하니, 시론(時論)이 그를 더럽다고 하였다. 국순에 대한 왕의 총애와 국순의 전횡 순은 입에 냄새가 있으므로 임금이 미워하며 “경은 나이가 많고 기운이 다하여 나의 씀을 견디지 못하는가?” 하였다. 순은 드디어 사죄하기를 “신(臣)이 받은 벼슬을 사양하지 않으면 망할까 두려우니 사제(私第)에 돌아가도록 허락하신다면 분수를 충분히 알겠습니다.(주제가 담긴 부분, 군력을 이용하여 재산을 모으다가 스스로의 부정함으로 인해 물러나는 인간의 몰락을 상징)”하였다. 임금이 좌우에게 명하여 부축하여 나왔다. 집에 돌아와 갑자기 병이 다해 하룻 저녁에 죽었다. 국순의 죽음 사신(史臣)이 말하기를 “국씨(麴氏)의 조상이 백성에게 공이 있었고, 청백(淸白)을 자손에게 끼쳐 창(鬯-옛날 강신제 때 썼다는, 웇기장을 재료로 하여 빚은 술이름)이 주(周)나라에 있는 것과 같아 향기로운 덕(德)이 하느님에게까지 이르렀으니, 가히 제 할아버지의 풍이 있다고 하겟다. 순(醇)이 들병[挈甁-설병: 술동이]의지헤로 독 들창(항아리 뚜껑)에서 일어나서, 일찍 금구(金甌-금 또는 쇠로 만든 사발이나 단지)의 뽑힘을 만나술단지와 도마에 서서 담론하면서도 가(可)를 들이고 부(否)를 마다하지 아니하고, 왕실(王室)이 미란(迷亂-정신이 흐리멍덩하여 어지러움)하여 엎어져도 붙들지 못하여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거원((巨源)의 말이 족히 믿을 만한 것이 있도다”라고 하였다. 국순에 대한 비판적 평가 |
국순전(麴 醇 傳) ▮핵심 정리▮ ►지은이 : 임춘(林椿 1147-1197) 고려 중기의 문인. 호는 서하(西河). 정중부의 무신란 때에 일가가 피해를 입고, 겨우 목숨을 보전하였다. 문명(文名)은 크게 떨쳤으나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였다. 불우한 일생을 보내면서도, 이인로 등과 죽림고회(竹林高會)를 이루어 시주(詩酒)로 생활하며 많은 시문을 남겼다. ►갈래 : 가전(假傳) ►성격 : 풍자적 ►표현 : 의인법 ►구성 : 일대기를 중심으로 한 순차적 구성 ►제재 : 술(누룩) ►주제 : 간사한 벼슬아치의 풍자 ►의의 : 현전하는 가전체 문학의 효시이다. 이규보의 “국선생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작품 해설 ▮ 가전(假傳)은 세상을 비판하고 풍자하면서 계세징인(戒世懲人)하고자, 사물을 의인화하여 실전(實傳)과 같은 기술 방법으로 써 나가는 국문학의 한 갈래이다. “국순전”은 술을 의인화하여 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말한 작품인데, “국순전”에 나타난 술의 교훈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술은 흥을 돋우어 주는 것이지만, 너무 마시면 나라마저도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 “국순전”과 “국선생전”과의 관계▮ ▰영향 관련 인물과 지명, 서술 방식 등에 있어 많은 유사성이 발견된다. 이규보의 “국선생전”은 이보다 앞서 나온 임춘의 “국순전”에서 제목, 관련 인물, 지명, 서술 방식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 주제상의 차이점 “국순전”이 요사하고 아부하는 정객들을 꾸짖고 방탕한 군주를 풍자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국선생전”은 미천한 몸으로 성실하게 행동하였기 때문에 관직에 등용되었고, 총애가 지나쳐서 잘못을 저질렀지만 물러난 후 반성하고 근신할 줄 아는 인간상을 그렸다. 즉, 국난을 당해서 백의종군(白衣從軍)까지 하는 위국 충절의 대표적 인간상을 등장시켜 사회적 교훈을 강조하였다. ▮본을 삼은 작품▮ 송나라 때의 <태평광기(太平廣記)>의 ‘서막(徐邈)’ 설화에서 많은 본을 받았으며, “청화선생전(淸和先生傳)”에서 직접 본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 이해와 감상▮ 고려 무신 집정 때 문인 임춘이 술을 의인화하여 지은 가전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생과 술의 관계를 문제 삼고 있다. 즉 인간이 술을 좋아하게 된 것과 때로는 술 때문에 타락하고 망신하는 형편을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인간과 술의 관계를 통해서 임금과 술의 관계를 조명하여 본 것이다. 당시의 국정의 문란과 병폐, 특히 벼슬아치들의 발호와 타락상을 증언하고 고발하려는 의도의 산물이다. 이 작품은 모리배들의 득세와, 뛰어난 인물들이 오히려 소외당하는 현실을 풍자,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일하게 술을 의인화한 이규보의 “국선생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