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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제 도 시
Ch.1 아이돌
idol [idl]Gk 「형태, 환영(幻影)」의 뜻에서 n. ★ idle과 동음 이의어.
1 a 우상; 신상(神像), 성상(聖像)
2 우상시되는[숭배 받는] 사람[물건], 숭배물
제 3 화
clancy
영업정지 명령에 따라 셔터가 내려진채로 방치된 클럽 입구에 서서 태현은 동행한 두명의 정복 경찰들이 보는 가운데 관공서에서 붙였을 봉인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있던 봉칠은 봉인이 완전히 철거되자 셔터 옆의 패널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클럽이 폐쇄된지 겨우 하루 지났을 뿐이였지만 그사이 위로부터 꽤나 닥달을 당했는지 봉칠의 얼굴은 말이 아니였다. 체중이 줄어서 홀쑥해진 데다가 누군가에게 얻어터졌는지 왼쪽 눈썹위가 찢어지고 양쪽 볼도 멍이 든채 시퍼렇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가 번호를 입력하자 셔터를 움직이는 원동기 소리가 들려오면서 서서히 입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권봉칠은 사고 후로 섯불리 클럽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었는지 -아니면 애초에 여기저기 머리숙이고 다니느라 그럴 시간 자체가 없었는지- 클럽 내부는 사고당시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는듯 보였다. 입구 바로 옆에 전원이 꺼진채 세워져 있는 경비로봇 '헐크'를 정복 경찰들에게 시켜서 홀으로 끌어오도록 하고선 태현은 스위치를 찾아 홀 위의 전등을 환하게 밝혔다.
"제가 뭘하면 되는 겁니까, 형사님?"
봉칠은 그사이 많이 기가 꺾였는지 고분고분한 태도로 태현에게 질문을 했다.
"그 로봇 메인 프레임에 억세스 기록부터 살펴보자, 코드는 너가 알고 있지?"
"예, 제가 관리하는거니까요..."
태현의 명령이 내려지자 마자 봉칠은 재빠른 동작으로 주머니에서 얇은 블럭처럼 생긴 키를 꺼내 원추형으로 생긴 로봇 몸체의 중간부분에 달려있는 도어를 열었다. 그리고는 그 안에 장착된 작은 모니터의 터치패드를 두드리더니 잠시후 태현을 불렀다.
"나왔습니다. 여기요..."
태현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선 모니터를 들여다 보았다. 텍스트로 구성된 목록이 작은 화면에 나타난 것을 확인하고선 화면을 스크롤하여 가장 최근의 억세스 기록을 살펴보았다.
"로봇 메인 프레임에 접근하는 코드를 알고 있는게 너 말고 누가 또 있냐?"
"몇명 없죠, 저하고 클럽 관리부장, 그리고 대니라고 여기 유지담당 하는애가 다에요..."
"어디보자... 사건 전날부터 당일까지 기록을 보니까 세번 억세스가 있었는데?"
"전부 같은 코드로 접속하기 때문에 누가 접속한건지는 알수가 없어요, 하지만..."
봉칠은 화면에 뜬 기록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두개는 저랑 관리부장꺼네요."
"어떻게 알지?"
"매일 클럽 문열때마다 우리 둘이 번갈아가면서 접속하거든요. 이녀석 상태를 매일 체크할 필요가 있으니까, 사건 전날엔 관리부장 녀석이 했었고 그날 체크는 제가 했었죠.. 그리고 기록 대로라면 제가 접속하고 난뒤에 누군가 다시 접속을 했었네요..."
"그렇군.. 접속해서 어떤 조작을 했는지 알수는 없나?"
"모르겠네요.. 저도 이쪽으론 영 꽝이라서.. 전에 보니까 그런 기능이 있었던 것도 같았는데..."
봉칠은 모니터에 뜬 메뉴들을 건드려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한참을 메뉴 여기저기를 건드려 본 끝에 봉칠이 외쳤다.
"찾았다! 여기 있네요.. 이걸 이렇게 하면..."
봉칠의 조작에 따라 화면에는 접속 기록과 함께 조작한 사항들에 대한 히스토리 목록이 나열되기 시작했다.
"여기 제가 했던거네요, 전원을 올리고, 관리모드에서 3급 경비체계로 지정해준 다음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지 자가진단 시스템을 돌린후 체크가 끝나고 나서 로그아웃했네요..."
"그대로인거 맞아?"
"예, 항상 똑같은 일이니까 기억 못할것도 없죠..."
"그럼 너 다음에 접속한 사람이 한 작업 내역 뽑아봐"
"여기 바로 나왔어요, 접속해서.. 어라 이건?"
"왜그래, 어디보자..."
기록을 보곤 놀라는 봉칠을 밀어내며 태현은 직접 모니터에 뜬 기록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클럽에서 총격이 있기 2시간 전에 로봇에 접속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접속은 정상적인 형태로 이루어졌고 접속후에 작업자가 한 것은 단 한가지 조작으로 조작 후 1시간 후에 타이머가 작동하여 2시간동안 일시적으로 로봇을 휴면상태에 들어가게 하는 조작이였던 것이다.
"누군가 사고가 일어난 시간동안 녀석이 휴면상태에 들어가도록 타이머를 맞추어 놓았어요..."
"나도 보고있어, 그리곤 우리가 도착할때쯤 해서 다시 타이머에 따라 원상태로 돌아오게 되어있군, 이러니 현장에서 얼른 눈치채지 못했었던 거야..."
태현은 자신의 짐작대로 나타난 증거에 흡족해 하며 경찰들에게 지시해 로봇의 프레임을 분리하여 증거로 압수하도록 지시했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봉칠이 태현에게 물었다.
"저.. 영업정지 언제쯤 푸어주실 겁니까?"
"안달하지마 어짜피 한달짜리 끊어잖아?"
"하지만 저 죽겠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죽을지도 몰라요 거기다 저 녀석 프레임 빼가면 고물이나 다름없는데..."
"사건 종결되면 프레임도 돌려주고 영업정지도 풀어줄테니까 우는소리 하지마라."
"아, 그리고 그 관리부장이랑 여기 유지담당 녀석 소재좀 파악해놔 조사해야 하니까"
"관리부장이라면 의심할 필요 없을 겁니다. 그녀석 사건 전날 일이 있어서 고향에 내려갔거든요 그날은 이 도시에 있지도 않았어요."
"그럼 유지담당이라던 놈은?"
"모르겠네요, 그 자식은 그 전부터 클럽에 나오지 않았어요. 특별히 일이 없어서 그냥 놔두고 있었는데 사고나고 나서 허가받고 수리라도 일단 해놓으려고 연락했더니 통 응답이 없네요"
봉칠의 말에 태현은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녀석 주소는 알고있어?"
"아니요, 하지만 집 전화번호를 알고 있으니까 그걸로 알아보시면 될겁니다."
클럽의 유지담당을 맡고 있던 '대니'는 작년에 갓 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이세계로 들어온 어린애였다. 아마도 이곳에서 얼마간 일을 하며 번 돈으로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였을 터였다. 형편이 좋지 못한 지하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은 의무교육이 끝나자 마자 제 살길을 따라 생활전선으로 뛰어드는게 대부분이였지만 개중에는 머리가 좋아 더 공부하고 싶으면 이런 업소에 취업해서 돈을 모아 진학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수 있었다. 고교시절부터 전자, 전기 계통으로 실력을 보였다는 대니는 그쪽으로 진학하여 엔지니어나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했다고 봉칠이 말해주었다. 워낙 손재간이 좋아 크고 작은 클럽내의 고장은 모두 녀석이 맡아서 고쳐놓았고 기기의 세팅이나 배선등도 대니에게 맡기곤 했었다고 했다. 몇달간 그렇게 지켜보다가 믿을만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는지 얼마전부터는 경비로봇 점검을 맡기고 코드도 알려주었다는것이 봉칠의 설명이였다.
봉칠이 알려준 전화번호를 통해 검색한 대니의 주소는 지하 중층부에 위치한 '네스트'라 불리는 곳이였다. 좁은 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은 서로가 얽힌채 하나의 거대한 벽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각각의 안에는 작으면 2평에서 10평 까지이 좁다란 원룸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자기 집을 구하기엔 경제력이 부족한 어린애들이나 실업자들이 일시 거처로 자주 이용하는 이곳은 마치 거대한 벌집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네스트'란 별명까지 얻고 있었다.
터무니 없을 정도로 싼 방세와 지하층 어디와도 가까운 위치를 제외하곤 이곳에 좋은점이라고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전력 공급이 충분치 않아 냉난방은 형편없었고 수도 조차 덜컹거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계속된 증축과 개조로 인해 집들이 마치 유기체마냥 서로 얽혀있는 덕분에 달랑 주소 하나 가지고는 집을 찾는다는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는 점이 태현에겐 가장큰 난제였다.
한참을 헤멘 끝에야 태현은 간신히 전화번호로 검색한 대니의 주소지에 다다를수 있었다. 막상 그 문앞에 선 태현에겐 대니를 만나보는 것 보다는 다시 이 미로를 거슬러 올라가 네스트를 빠져나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더 큰듯 보였다.
'찌-잉'
낡은 철문에 달려있는 스위치를 누르자 초인종의 요란한 기계음이 울렸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낄수가 없었다. 다시한번 스위치를 누르고 초인종이 울리는 것을 확인한 태현은 한동안 기다리다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안계십니까? 여보세요 아무도 없어요?"
그러자 갑자기 옆집의 문이 열리면서 요란한 헤어스타일의 젊은 여자가 짜증스런 얼굴로 소리쳤다.
"시끄러워! 그렇게 불러대는데 반응이 없으면 아무도 없던지, 만나기 싫던지 둘중 하날거 아냐?!!"
태현은 그런 여자에게 아무말 없이 자신의 신분증을 슬며시 내보였다. 그러자 여자는 입을 다물더니 여전히 짜증스런 눈으로 태현을 노려보면서 문을 닫고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태현은 한숨을 내쉬더니 주머니에서 만능키를 꺼냈다. 영장없이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명백한 주거침입이였지만 다시 미로를 빠져나가 영장을 발부받고 돌아온다는 것은 무모한 짓인듯 보였다. 낡은 문고리는 너무나도 쉽게 열려졌고 조심스럽게 문을 연 태현은 안으로 들어섰다.
좁은 방은 윗쪽으로 난 조그만 창 외에는 채광이 가능한 곳이 없는 탓에 낮임에도 어둑어둑하였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발밑은 조심스레 내딛으며 손으로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아 전등을 켜는순간 태현은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을수 밖에 없었다.
"이런..."
3평이 조금 넘어보이는 좁은 방 한쪽에 놓여진 수조속에 대니의 모습이 보였다. 취미생활로 물고기를 키웠을 수조는 기껏해야 폭이 1M도 되어보이지 않는 것이였는데 대니의 시체는 반동강이 난채로 그 좁은 공간안에 우겨넣어져 있었다. 그리고는 휴대용 비닐포장팩을 이용하여 수조 전체를 다시한번 감싸놓은 상태였다. 투명한 비닐을 통해 보이는 퉁퉁부은 대니의 시체는 어느정도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는데 팩으로 인해 외부 공기와 차단된 상태에서 그정도 진행이 되었다는 것은 아마도 클럽 사건 이전에 이미 살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태현은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경찰 공용회선으로 접속하였다.
"여기는 지하 16섹션 253-11 c-12동 320호, 시신 한구 발견, 살인사건이다 조사관과 처리반을 파견해주기 바란다."
사건 처리를 위한 지원팀을 호출한 태현은 조심스럽게 방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중에 과학수사팀에서 나온 조사관이 제대로 살펴볼 터였지만 그전에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보고픈 마음은 형사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것이였다. 봉칠의 말대로 방주인인 대니의 목표는 대학으로의 진학이였음에 틀림이 없었다. 좁은 방 한쪽에 이리저리 쌓여있는 전기 부품들과 작은 테이블 그리고 벽에 걸린 데이터 팩들에 씌어져 있는 각종 전기계통 교재 이름들이 밤에는 클럽에서 일하고 낮에는 이곳으로 돌아와 공부에 몰두했을 주인의 모습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태현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는 개인 휴대용 컴퓨터 세트를 발견하고선 조심스럽게 전원을 켜보았다. 어댑터가 연결되어 있는 덕분에 바로 작동이 시작된 컴퓨터는 그러나 곧 패스워드를 입력하라는 화면으로 넘어가 버렸다. 나중에 본부로 가져가 해킹하면 자료들을 열람할수 있을터이니 섣불리 건들지 않기로하고 태현은 다시 다른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옷장과 조리대 세면대등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을 보며 태현은 이 좁은 공간에 그래도 있을건 다 있구나란 생각을 했다. 태현 자신은 소위 말하는 지상계층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네스트같은 곳을 경험한 적이 별로 없었다. 어릴적부터 남들 사는 만큼은 살았고 명문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정규교육을 마친뒤에는 곧바로 집안의 지원을 받으며 경찰학교에 입학했었다. 경찰학교에서도 지하층에서 진학한 아이들을 몇몇 볼수는 있었지만 그들도 개중에서 살만한 축에 드는 아이들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경제적 형편에 따라 만들어진 현대사회의 새로운 카스트는 결과적으로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후대에까지 전해진다는 점에서 과거로의 회귀처럼 느껴졌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나마 '일말의 희망'이란 것이 남아 존재하며 헛된 꿈을 꾸게 만든다는 것 뿐이였다.
대니란 아이의 꿈도 헛된 것이였을까... 지하층에서의 위험하고 더러운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대학을 다니고 학위를 따서 엔지니어가 됨으로서 지상층의 사치를 살짝 빌어올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 얘기일까, 얼핏 들으면 재능과 정열만 있다면 가능해 보이지만 거기엔 너무나도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재능과 정열 두가지를 모두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오던 지하층 아이의 최후란 자기집 수족관 안에 토막 난채 매장되는 것 뿐이였으니 뭐라고 말할수 있을까?
생각의 고리가 현대사회의 계급문제에 관한 망상으로 이어질때쯤 태현의 시야에 무엇인가가 들어왔고 곧바로 그의 정신은 현실속으로 돌아왔다. 멍하게 바라보던 대니가 담긴 수조 옆에 놓여진 작은 노트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태현의 손바닥보다 조금 커보이는 노트는 하늘색의 두꺼운 플라스틱 겉표지에 철제 스프링으로 연결되어진 것으로 매우 희귀한 종류였다. 그것은 분명 태현과 대니의 시체가 있는 이곳 네스트에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였던 것이다. 태현은 바지주머니에서 작은 스프레이를 꺼내들고선 천정으로 치켜든 손에 스프레이를 분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반고체 상태의 내용물이 분무되며 그의 손에 점착되기 시작했고 얼마못가 매끈한 라텍스 층이 그위 손위에 코팅된 마냥 씌여졌다.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해보이며 접착 상태를 확인한 태현은 조금전 보았던 노트를 조심스레 집어들었다.
플라스틱 재질의 두꺼운 겉표지를 넘기자 무엇인가 그려진 속지가 나타났다. 태현은 일단 코끝에 노트를 가져가 냄새를 맡아보았다. 종이 위에 덧칠해진 약품의 냄새와 함께 천연종이 특유의 은은한 향기가 섞여있었다. 속지의 끝부분을 조금 찢어내어 천정에 붙은 조명에 비추어 보자 불규칙한 섬유질의 엉김현상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그것은 나무의 섬유질을 이용한 전통적 제조 과정으로 만들어진 종이였고 전자문서나 플라스틱 합성 종이등으로 기존의 종이가 모두 대체된 요즘엔 정부의 허가를 받은 소수의 업체에서만 제한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덕에 예술가나 지상 부유층들 사이에서 상당한 고가에 소비되고 있는 제품이였던 것이다. 아마도 이 노트 한권 값이면 대니가 살고 있는 이 네스트의 집세 세달치 정도는 해결이 될터였다. 그런 고가품이 이런 곳에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했던 것이다.
태현은 페이지를 하나씩 넘기며 종이위에 남은 흔적들을 살펴보았다. 앞표지 안쪽에 커다랗게 대문자 D가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사망한 대니가 사용하던 물건인듯 싶었고 넘겨본 결과 세 페이지만 사용하였으므로 굉장히 아껴서 사용했던지 아니면 최근에 생긴 물건임에 틀림없었다. 사용된 세장의 종이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대니 본인의 솜씨인 모야이였다. 이 재주많은 청년은 그림에도 꽤나 소질이 있었는지 연필로 그려진 그림은 상당한 수준의 것이였다. 첫 페이지는 물속을 부유하는 관상어의 그림이였다. 아마도 저속에 대니가 담기기 전 수조속에서 노닐던 물고기일 터였다. 두번째는 나무들이 우거진 풍경이였는데 요즘 이런 곳을 찾으려면 시 외곽으로 나가야 하는 만큼 생황에 바쁜 대니가 직접 가서 그렸다기 보다는 사진이나 상상에 의존한 것일듯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그려져 있었다. 어딘가에 기대어서서 담배를 꼬나문 남자의 얼굴은 무표정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매서움이 느껴지는 것이였다. 태현은 곧 그 얼굴이 상당히 낯이 익음을 알수 있었다.
"이건...?!!"
태현은 노트를 책상위에 올려놓고선 자신이 단말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경찰청 DB에 접속하여 전과자 리스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페이지 상단의 검색창에 이름과 성별을 기재하자 곧바로 리스트가 떴고 6명의 동명인중에서 태현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의 데이터를 찾아서 화면에 띄울수 있었다.
'제레미 킴, 남자, 28세, 폭력전과 및 살인혐의로 수배중'
역시나 살인범이 태연하게 클럽안으로 걸어들어갈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니가 있었던 것이다,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 알수 없지만 대니와 안면을 튼 제레메가 그에게 경비로봇의 접속코드를 얻어내고선 대니를 살해한 것이였다. 고가의 노트도 아마 대니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제레미가 제공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제레미만 잡아들이면 이 사건의 전모를 밝혀낼수 있을 터였다. '사장님'과 '의문의 여성' 어느쪽이 진짜 타겟이였는지 그리고 누가 그 배후에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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