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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5차 간산안내(2014년 6월 29일 서울지역 번개답사)
우리 연구소에서 6월 실시예정인 제 45차 간산은 서울 동부권(노원구) 및 남양주지역에서 번개답사 형식으로 실시할 예정입니다.
회원 여러분께서 많이 동참하시어 서울 경기지역 풍수의 진수(眞髓)를 느껴보시기 바라며, 특히 풍수에 관심이 없더라도 역사나 유적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도 참여가 가능합니다.
1. 간산 일시
- 2014년 6월 29일(넷째 일요일), 오전 08: 00시
2. 집결지
▶ 태릉역: 08:00, 지하철 6, 7호선 태릉역 1번 출구로 나오시면 답사차량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3. 회비: 40,000원(교통비, 중식, 간식비용 등)
4. 답사 경유지 및 간산지 안내
서울 태릉역 출발(08:00)→ 한글고비 이윤탁 음택→ 충숙공 이상길 음택 → 덕흥대원군 음택 → 삼성 이병철회장 증조모 음택 → 남재 음택→ 여경구 가옥 → 서울 귀경
※ 다른 장소에서 합류를 희망하실 분은 김명식 고문(010-2212-3494), 정철화 부회장(010-3745-2357)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5. 번개 답사지 안내(답사지는 현지사정에 따라 장소와 순서가 바뀔 수 있습니다)
1). 한글 고비의 주인공 이윤탁 음택 (노원구 하계동 산12번지)
이곳 음택을 지키는 비각 안의 고비(古碑)는 한글로 세겨진 비석으로 역사적, 국가적 가치가 아주 높다고 인정,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보물 제1524호(2007년 지정)로 지정되었다.
서라벌고등학교 맞은 편 높은 콘크리트 옹벽 위 약 50여 평 터에는 현재 이윤탁과 그의 부인 고령 신씨의 합장묘 1기,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이 각각 1기, 문인석(文人石)이 2기, 묘갈(墓碣)이 2기 놓여 있다.
이윤탁은 본관이 성주(星州)이고, 자(字)는 탁지(濯之)이며, 1483년 두 형과 함께 사마시에 올랐으며, 1501년 문과에 합격하여 승문원 권지(權知)에 보임되었으나 그 해 12월 26일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권지' 란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합격한 자로 성균관․승문원․교서관․훈련원 등에 나뉘어 있던 임용대기 중의 견습관원을 말한다.
그의 부인인 신씨(1463~1535)는 한성판관을 지낸 고령신씨 신회(申澮)의 따님으로 1478년 이윤탁과 혼인하여 슬하에 2녀 3남을 두었다.
비문에 의하면 신씨부인이 1535년 73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양주(楊州) 노원(蘆原) 율이점(栗伊岾)에 무덤을 썼으나, 이듬해 봄, 가까운 곳에 있던 이윤탁 묘에 합장하여 5월에 비를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비문을 지은 아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나, 당시 큰아들 홍건(弘楗)과 작은아들 충건(忠楗)이 1521년 사망하였기에, 막내아들 문건(文楗)이 지은 것으로 전하며, 글씨가 그의 필적과 유사한 것으로 전한다.
이문건은 1513년 사마시를 거쳐 1528년 문과에 급제하여 시강원 사서(司書)를 지냈던 인물이다.
비석의 오른쪽 측면에는 먼저 "不忍碣(불인갈)" 이라 새기고, 그 아래 "爲父母立此 誰無父母 何忍毁之 石不忍犯則 墓不忍凌 明矣 萬世之下 可知免夫" 라 새겨있어
차마 훼손하지 못하는 갈(碣)이니 길이 무덤과 비석이 훼손되지 않도록 힘쓰라는 내용이다.
비석의 왼쪽 측면에는 "靈碑(영비)" 란 글씨와 함께, 그 아래는 한글로
"신령스러운 비이니 거스르는 사람은 재화(災禍)를 입을 것이다. 이는 글 모르는 사람에게도 알리노라" 란 내용으로, 묘소의 훼손을 경계하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러한 비문 내용 때문에 묘소가 6차선 도로 개설구간에 포함되었으나, 감히 누구도 선뜻 손을 대지 못해, 장기간 병목현상으로 교통체증을 겪다가 문중의 협조로 1999년 15m 뒤로 천장(遷葬)하였다.
이곳 묘역은 불암산 자락에서 낙맥하는 지룡의 용진처를 점하고 있으며, 묘소를 일으키기 전 속기(束氣)하고, 도두 아래에 묘소가 조성되었다. 도로 건너에는 서라벌고등학교와 아파트 등이 밀집되어 조안산 역할을 한다.
2). 충숙공(忠肅公) 이상길(李尙吉) 음택 (노원구 하계동 산 16-1)
1556(명종 11)∼1637(인조 15).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사우(士祐), 호는 동천(東川). 유번(有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석명(碩明)이고, 아버지는 동몽교관(童蒙敎官) 희선(喜善)이며, 어머니는 경상도군사(慶尙道郡事) 정환(丁煥)의 딸이다.
1579년(선조 12) 진사가 되었고, 1585년(선조 18)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88년 감찰, 호조좌랑, 1590년 병조좌랑, 사간원정언, 지제교 등을 역임하였다. 1599년 광주목사 재임 시 선정의 치적이 있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602년에는 앞서 사간원 정언으로 있을 때, 정인홍(鄭仁弘), 최영경(崔永慶) 등을 정여립(鄭汝立) 일당으로 몰아 추론한 죄로, 성혼(成渾) 등과 함께 6년간 황해도 풍천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다. 1608년 유배에서 풀려 난 뒤 강원도 회양부사, 평안도 안주목사, 호조참의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폐모론이 일어나자 전라도 남원으로 돌아가 은퇴하였다. 인조반정 후에 다시 출사(出仕)하여 승지, 병조참의, 공조판서를 역임한 다음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평난호성정사진무원종공신(平難扈聖靖社振武原從功臣)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조정의 명을 받아 영위사(迎慰使)가 되어 80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묘사(廟社)를 받들고 강화도에 들어갔다. 다음 해 청군이 강화도로 육박해오자 아들 경(坰)을 불러 뒷일을 부탁하고는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강화도의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으며, 좌의정(左議政)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동천집≫이 있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신도비(神道碑)는 당대의 명문인 성균관 계주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글을 썼다.
이곳 묘소는 불암산에서 낙맥하는 지룡(枝龍)의 척맥(脊脈)을 비집고 나온 횡결맥(橫結脈)에 둥지를 틀었는데, 묘역을 일구면서 횡룡으로 굴곡(屈曲)해 오는 후룡(後龍)의 자태가 선명하다. 그러나 묘역 바로 전방의 아파트가 수직으로 몸통을 세우면서 능압(凌壓)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산객의 마음을 착잡하게 흔들어 놓는다.
3). 선조의 부친 덕흥대원군 묘 (남양주시 별내동 산 5-13)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1530년 3월 5일 ~ 1559년 5월 9일)은 조선 중기의 왕자이며, 왕족으로는 조선 최초의 대원군이다.
본관은 전주이며, 휘는 이초(李岹), 자는 경앙(景仰), 아명(兒名)은 환수(歡壽)이다.
조선 제14대 선조의 사친(私親)으로 선조는 생부인 덕흥대원군을 왕으로 추존하려 하였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고종 때 왕족의 수가 귀해지자 선조의 왕자군(王子君) 후손들에게 왕위 계승권을 적용시켰다가 뒤이어 덕흥대원군의 후손들에게도 왕위 계승권을 부여하였다.
이곳 묘는 수락산이 크게 낙맥하여 불암산을 잇는 당고개에 터를 정했으며, 선조가 왕권을 행사할 당시에는 덕릉으로 칭하기도 하였다. 묘소 아래에는 큰아들 하원군 묘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덕흥군 봉분 중심에서 사방을 보면 천심십도(天心十道)가 아름답게 나열된다.
4). 삼성 이병철 회장 증조모 진주강씨 음택(남양주시 별내동 산 208-1)
이곳 묘를 일으킨 주맥(主脈)은 암석(岩石) 목체(木體)의 불암산(佛岩山)에서 낙맥한 터에 두 개의 봉우리가 연접되는 안산(案山)의 공(空)에 향을 정함으로써 북동향의 입지를 이루고 있으며, 예전에 누군가 터를 점한 것으로 보이는 구광(舊壙) 터에 1982년 의령에서 이장하여 둥지를 틀었다.
5). 조선개국공신 남재 음택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282-7)
본관은 의령, 자는 경지(敬之), 호는 구정(龜亭), 초명은 겸(謙)이다.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을번(乙蕃)이며, 숙부는 조선이 개국되었을 때, 이에 항거, 감악산 남선굴로 은거하여 일체 사람들을 만나지 않은 고려충신 을진(乙珍)이다.
1371년(공민왕 20)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아우 은(誾)과 함께 이성계(李成桂) 진영의 인물로 활동하다가 위화도회군 뒤 회군공신에 봉해졌다. 1392년(태조 1) 태조에게 재(在)라는 이름을 하사 받고, 개국공신 1등으로 의성군(宜城君)에 봉해졌다. 1393년 주문사(奏聞使)로 명(明)나라에 들어가 관계를 개선하고 3년마다 조공할 것을 승인 받아 그 공으로 판중추원사가 되었다.
1396년 도병마사로서 쓰시마 섬[對馬島]을 정벌했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에 아우 은이 살해되자 잠시 유배되었다가, 풀려 나온 뒤 대사헌을 거쳐 1414년 우의정에 이르렀고 부원군이 되었다.
1416년(태종 16) 영의정이 되었으며, 경제에 밝고 문장에 뛰어났다. 산수(算數)에도 능하여 당시 사람들이 남산(南算)이라 불렀다.
저서에 〈구정유고〉가 있으며, 하륜(河崙)과 함께〈고려사〉를 개수했으며, 태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6). 안채가 특이한 여경구 가옥 (남양주시 진접읍 내곡리 286번지)
이 가옥은 중요민속문화재 제129호이다. 현재의 소유자 여경구의 장인인 연안이씨(延安李氏) 이덕승의 8대조가 약 250년 전에 지었다고 전하는 집이다. 180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마을사람들은 연안이씨 동관댁으로 부른다. 이 집은 태묘산 줄기를 배산(背山)으로 하여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남향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집의 모양은 전체적인 배치가 ‘日’ 자로 되어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행랑채, 사당채, 광채(곳간)가 연결되지 않고 각각 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안채는 집 안 깊숙이 동쪽에 ‘ㄱ’ 자형으로 자리 잡았으며 부엌 2칸, 안방 2칸, 건넌방 2칸으로 구성되었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곳간이 ‘ㄴ’자로 배치되어 튼 ‘ㅁ’자형 배치를 보인다.
‘一字形’ 사랑채, 대문채, 사당채가 있으며, 사랑채 앞에는 헛간채가 있었으나 지금은 헐리고 없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인데 왼쪽으로 사랑채가 있고 앞쪽으로 광채가 보인다. 광채의 오른쪽 끝에 있는 중대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안채가 자리한다. 안채는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의 평범한 ‘ㄱ’ 자형 집에 안방의 뒤쪽으로 골방, 뒷방, 광을 둔 것이 경기도 사대부(士大夫) 집의 특이한 공간 구성을 보이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기단의 높이와 건물의 크기가 같으나 사랑채가 약간 앞으로 나가 위치하여 대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이 바로 안채를 감지할 수 없도록 하였고, 모두 맞배지붕이다.
사당채는 사랑채의 뒤편 한 단 높은 터전에 따로 꾸몄는데 2칸 규모로 되어 있다. 집 뜰은 안 뒤뜰과 사랑 뒤뜰을 구분하여 담장을 쌓아 막았다. 부엌 동쪽의 조그만 뒤뜰을 지나면 개울이 흐르고 수목이 울창하다.
6. 지참물
산행을 할 수 있는 간단한 복장과 나경패철, 필기도구, 간식 등
(우천 시도 예정대로 간산을 진행할 예정임으로, 비가 오면 우산이나 우의 등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7. 신청방법 :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은 반드시 이름과 연락처를 아래 에 꼬리말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이번에 실시되는 번개 간산은 조기에 마감될 수 있으며, 반드시 6월 26일까지 리필을 달아야 합니다)
8. 연락처
서울, 경기, 전국 : 정철화(010-3745-2357), 채영석(010-6282-9721)
충남: 정수일(011-9823--2588)
대전: 정부연(011-9800-0307)
경북, 경남 : 박정수(010-3530-2847,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소 상주 지부장)
전북, 전남 : 장원기(010-5638-6905,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소 호남 지부장)
첫댓글 심유룡, 박기현님 신청합니다
유재억님 참가합니다.
정철화 예약합니다
그리고 연락처 010-3745-2357로 수정 부탁드립니다
장원기교수 3명 현재 10명 신청하였읍니다. 버스 25인승 예약. 자연풍수 운영위원님들의 큰 협조 부탁드립니다.
“행사 중에 발생하는 모든 제반사고(손해)는 학회에서 책임지지 않습니다. 각자의 안전사고 및 손해에 대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여행자 보험 등의 대비는 각자 해주시시기 바랍니다."
박종호선생 참여합니다.
정수옥님 참석합니다.
손정호님 참석합니다.
김원규 참석합니다
"이은실" 님 참석합니다
허영식님 참석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까페가입 45차 간산 참가하고자 합니다.
이성용 참석합니다
조찬성 고문 참석합니다.
서원홍님 참석
유홍주 님 간산 참여합니다.
박분임님외1명 참석합니다
홍강호님 참석합니다
장원기위원 2명 추가
간산신청을 모두 마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