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13일째 무차별 공습 …가자 주민 '극한 상황'
"이스라엘, 잔혹 행위 저지른 뒤 전면 부인 반복"
유엔총장 휴전 촉구…미국과 일부 서방국은 반대
이스라엘 '지상 침공' 준비…사망자 5000명 넘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북부 가자 지구를 공습한 뒤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2023 10.20 [AFP=연합뉴스]
최소 500명의 목숨을 앗아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내 병원 폭발 참사가 일어난 지 이틀만인 19일 이스라엘 군이 가자 내 한 교회를 공습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가자지구 내무부에 따르면, 이날 밤 이스라엘 군이 그리스정교회 성 포르피리우스 교회를 공습해 교회 건물에 대피했던 피란민 여러 명이 숨지거나 부상했다. 아랍권 방송인 알자지라는 최소 8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교회 외관이 손상되고 인근 건물도 무너졌다고 전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인 성 포르피리우스 교회는 17일 폭발 참사가 발생한 알아흘리 아랍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피격 당시엔 500명가량이 피란 중이었다.
AFP통신에 따르면, 당시 교회에 있던 한 목격자는 이번 공격이 가자지구 주민이 피란처로 삼았던 교회 근처의 목표물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예루살렘 정교회 총대주교청은 성명을 내고 "교회와 그 시설, 특히 지난 13일간 주거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집을 잃은 어린이와 여성 등 무고한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제공하는 피란처를 표적으로 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전쟁범죄"라면서 "가장 강력하게 비난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군은 타격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AFP는 전했다.
가자지구 내무부는 또한 이날 이스라엘이 가자 북부의 자발리아 난민촌 내 안와르 아지즈 모스크 인근 가옥들을 폭격해 최소 18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병사들이 19일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갈란트는 이날 이스라엘 남부의 접경지대를 방문해 병사들에게 "곧 내부에서 가자지구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3. 10.19 [AP=연합뉴스]
유엔총장 휴전 촉구…미국과 일부 서방국 반대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의 기습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19일 현재 양측 사망자가 5000명을 넘겼으나 상황은 악화일로에 있다. 알자지라 방송은 20일 현재 가자 희생자만 4000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미국 등 일부 서방국을 제외한 유엔과 대다수 국가가 휴전을 촉구하고 있다. 이집트를 방문해 구호품 전달이 가능한 유일한 통로인 라파 국경 개방 문제를 논의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하면서 하마스에는 즉각적인 인질 석방을, 이스라엘에는 가자 주민에 대한 즉각적이고 제한 없는 인도 지원 허용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지상 침공' 태세를 풀지 않고 있다. AP 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날 가자지구 인근 군부대를 방문해 "곧 내부에서 가자지구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야론 핀켈만 남부사령관도 이스라엘이 전투 계획을 승인하는 과정에 있다며 향후 공세는 "길고 강렬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과 식량, 전력, 의약품 등의 공급을 전면 차단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의 '완전 봉쇄' 조치가 길어지면서 가자 주민은 생사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집트의 라파 국경 개방도 빨라야 21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 등 국제기구는 의료 등의 인프라가 붕괴 직전이라며 시급함을 호소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 7일 이후 가자와 요르단강 서안 등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내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이 최소 136차례였으며, 최소 16명의 의료진이 숨졌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으로 난민이 되어 칸 유니스로 피란온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임시 거처할 텐트를 제공했다. 2023.10 19 [AP=연합뉴스]
"집단 학살과 인종청소 넘어 팔레스타인 지우기"
이에 대해 미국 서던 메소디스트대(SMU)의 오마르 술레이만 교수는 19일 자 알자지라 기고를 통해 "가자 봉쇄와 폭격이 전면화하면서, 매일 수백 명이 죽고 더 많은 수가 불구가 되며, 모든 가족들이 주민등록지에서 내쫓기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여전히 한가로이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가자 공격에 관한 국제사회 논의는 유서 깊은 팔레스타인의 또 다른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병합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다음은 무엇일지에 대한 두려움이 팔레스타인인에겐 그들의 고통에 대한 세계의 무관심이란 잔인함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술레이만 교수는 "지금 나크바(대재앙‧1948년 5월 이스라엘 건국 당시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강제추방한 사건)가 TV로 방영 중이고 나크바에 대한 최후통첩의 악취가 풍기고 있다"며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더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나 인종 청소로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대량 말살을 넘어선 (팔레스타인) 총체적 지우기"라고 주장했다. 이슬람계 미국인 학자인 그는 현재 야킨 이슬람연구센터 창립자 겸 소장을 맡고 있다.
술레이만 교수는 "사라지는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이나 나라의 이름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이란 단어 그 자체"라며 "팔레스타인은 전쟁 중, 심지어 평화 시기에도 우리의 의식과 담론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 주도의 아랍-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프로젝트인 '아브라함 협정'에 대해서도 "주된 피해 당사자인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배제하고 있다"며 "아브라함 협정에 관한 한 팔레스타인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알아흘리 아랍병원 폭발 참사의 '주체'와 관련해 이스라엘이 사건 다음 날인 18일 '군사적 증거'를 내놓고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의 '오발'로 몰아가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열린 이스라엘의 에서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인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3.10.18 연합뉴스
"이스라엘, 잔혹 행위 저지른 뒤 전면 부인 반복"
카타르 도하 대학원의 미디어 전공인 무함마드 엘마스리 교수는 18일 자 알자지라 기고를 통해 이스라엘이 잔혹 행위를 저지른 다음 전면 부인하는 행태를 늘 반복해왔음을 지적했다. 그는 잔학 행위를 저지른 이후 이스라엘의 대응 방식에 대해 △ 아무 관련이 없다고 즉각 부인하고 팔레스타인인의 범죄란 확고한 증거가 있다고 말한다 △ 그런 뒤 누군가가 진실을 증명하는지를 보기 위해 기다린다 △ 결국 이스라엘 소행이 분명해지면 조용히 그 책임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때는 이미 세계의 시선이 다른 이슈로 넘어가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이런 사례로 엘마스리 교수는 지난해 서안지구 취재 도중 이스라엘군 총격을 받고 숨진 알자지라의 시린 아부 아클레 기자 사건을 거론했다. 당시 네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는 "우리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무장 팔레스타인인들이 책임이 있는 것 같다"고 했고 베니 간츠 당시 국방장관도 "그 언론인을 향해 어떤 사격도 없었다"면서 이스라엘 군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무차별 총격을 가한 장면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작년 말 여러 독립적인 조사를 통해 이스라엘 군의 총격을 받고 숨진 게 확실하게 드러나자 마지못해 이스라엘 정부는 또렷한 '프레스'(Press) 마크가 박힌 조끼와 헬멧을 입은 언론인을 죽인 것은 이스라엘의 총알일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했다는 게 엘마스리의 설명이다. 2003년 팔레스타인 주택 불법 철거를 막던 당시 23세의 미국인 학생 레이철 코리 사망 사건, 앞서 2000년 9월 2차 인티파다(봉기) 당시 12살 소년 무함마드 알-두라가 이스라엘 저격수의 총격에 숨진 사건 등도 비슷한 사례로 거론했다.
미국의 비영리 매체인 <데모크라시 나우> 18일 인터뷰에서도 진행자인 애미 굿먼도 아클레 기자 피살 사건을 거론한 뒤 "그들은 처음에 팔레스타인 무장대원이 죽였다고 했다가 증거가 결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면서 "그리곤 수많은 언론매체와 인권 단체들의 압력과 다각적 조사가 있은 이후에야 자신들이 죽인 것같다고 말하면서도 의도적인 게 아니라 교전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했으나 결국은 포렌식 과정을 거쳐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세계적인 중동 문제 전문가이자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역사학자인 라시드 할리디 교수는 "이스라엘은 대단히 성공적인 대중 홍보 기계(시스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한 모든 행동에 대한 변명을 제조하는 탁월한 기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국방부 내에 '역정보' '허위 정보'를 생산, 전파하는 기구들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