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84-당신의 종을 당당하게 만드시는 하나님
오후를 푹 쉬며 보내고 있노라니 아래층이 요란해진다. 저녁 준비할 때가 됐나 보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내려가니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 그 중에 눈에 띠는 인물이 한 명 보인다. 별똥별 패밀리 중의 한 명이 젊은 한국인 순례자다.
“진호 형제님. 아니 여기에 왜 있습니까? 안 그래도 당신이 안보인다고 패밀리들이 걱정하던데…”
“안녕하세요. 실은 제가 별똥별보러 야산에서 밤을 지샌 다음에 감기기가 있어서 하루 그냥 푹 쉬었거든요.”
“그래요? 다른 패밀리들이 천천히 움직이니까 곧 따라잡을 수 있을거에요.”
부엌에서 특별히 할 일을 찾지 못한 달형제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맞은 편의 일본 노인 부부 순례자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일본인 순례자들 중에는 저렇게 나이든 분들이 한 번씩 보인단 말야. 지난 여행 때도 그랬고. 그런 반면에 왜 한국 순례자들 중에는 노인 분들이 전혀 안보이는걸까?’
일본에 비해서 크리스찬이 압도적으로 많은 까닭에 여기에서 보통의 순례자들 또한 한국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유독 한국의 노인 순례자들이 없다는 것이 문득 신기하게 느껴지는 달형제다. 유럽인 순례자들 중에는 노인들이 많다는 것은 워낙 당연시 여겨 지는 것이고.
‘일본의 노인분들이나 한국의 노인분들이나 영어를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만약 여행 좋아하시는 내 부모님이 여기 오신다면? 물론 장기적으로 이런 여행은 못하시겠지만…. 첫째는 장기적인 여행에 심심해 하시겠지. 둘째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고생하시겠고, 셋째는 침대라서 불편하실려나? 몸이 피곤해지면 뜨거운 탕과 뜨거운 구들방이 생각나실려나? 그렇다면 결국 제일 불편한 것은 음식인데… 음…
유럽을 여행하며 이곳 산티아고에 온 어떤 순례자가 지난 번에 그랬는데…. 이곳의 여행은 마지막 코스여야 한다고. 이곳 여행 후에 다른 곳에 가면 여행이 심심해진다고. 그 만큼 이곳의 이런 여행이 가장 선진국형 여행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의 노인분들에게는 이런 선진국형 여행이 아직 몸에 안맞는지도… 젊은이들은 이미 선진 문화에 접해서 살기에 이런 여행을 하는 것이고…’
이런저런 묵상을 하며 한국의 여행 문화에 씁쓸한 입맛을 느끼는 달형제다. 자신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먹고 마시고 춤추고 떠들며 하는 나이든 분들의 여행 모습을 그려보며.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밑에서 소리가 들린다. 미사 참석하자고. 몸도 피곤하니 굳이 참석하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그래도 예의상 참석하는 것이 덕이 되겠다 싶어 밑에 층으로 내려가는 달형제다.
미사는 역시 지금까지 참석했던 때와 똑같이 따분하기만 하다. 그저 기도라도 해야겠거니 하며 노력해보지만 기도도 안된다.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다. 마음을 모을 수가 없다. 풀어진 정신과 마음은 자기 가고 싶은 곳으로 맘껏 휘젓고 다닌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은 특별히 이곳 성당의 전시실을 공개하신다. 이것에 보관 중인 옛날의 미사복이나 성경책 등을 보고 있는데 한국 분 한 명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미사에 참석하신 것 보니 카톨릭이신가 봐요?”
“안녕하세요. 네. 카톨릭입니다.”
"저는 개신교라서 그런지 미사의 의미를 거의 몰라 그냥 참석만 하고 있네요. 그런데 어디서 머무르세요? 제가 머물고 있는 여기 기부제 숙소에서는 못뵌 것 같은데요?”
“예. 저쪽에도 기부제로 운영하는 숙소가 하나 있어요.”
“그래요? 몰랐네요. 공립 알베르게가 두 개나 있었나 봐요?”
“아니요. 저 쪽은 사립 알베르게에요.”
“오~ 그렇습니까? 사립 알베르게도 기부제로 운영되는 곳이 있나 보네요.”
좋은 정보를 얻었다고 좋아하며 상대방과 작별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온 달형제는 저녁 식사를 위해 테이블 셋팅 하는 것을 도우며 저녁을 기다린다. 셋팅이 다되고 순례자들이 다 모이니 식탁을 꽉 메운다. 가이드 북에 의하면 평상시에는 16개 매트리스로만 운영하다가 여름에 순례자들이 많아지면 40명까지 받아들인다고 적혀있다.
‘참 재미있는 시스템이란 말야. 여름이니 비 바람만 피할 공간이 있고 매트리스만 있으면 어느 곳이든 숙소로 이용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풀코스 저녁을 먹고 있는데 맞은 편에 앉아 있던 한국분 순례자 형제님이 물어온 정보 한가지를 달형제에게 알려준다.
“선생님. 저 쪽 알베르게에 지금 신혼 여행으로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에 온 부부가 있데요. 저녁 먹고 그곳으로 놀러가려구요.”
참 발 넓은 젊은이라고 생각하며 그 정보에 기분이 좋아지는 달형제다.
“그래요? 그럼 나도 저녁 먹고 그 쪽으로 움직여 볼까요? 그 신혼 부부 한 번 만나 보고 싶네요.”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약긴 신기한 생각도 든다. 왜냐햐면 지금까지 이곳 순례 여정 중에 뭔가를 보고 싶다거나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한 번도 든 적이 없는 그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든 생각이라면 오직 ‘먹는 것’ 뿐이었던 식탐 달형제였다.
식사를 다 하고 나니 역시 설거지는 지난 번 때와 같이 전체가 참여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설거지를 하면서 아무런 프로그램이 없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달형제다.
‘봉사자가 바뀌어서 프로그램도 바뀌었나? 보통은 그 알베르게의 전통이 있어 그것에 따르지 않을까?’
다들 조용히 혹은 웅성웅성 거리며 설거지를 해 나간다. 이 시간이 괜히 아깝다는 생각이 든 달형제는 설거지를 멈추고 의자 위로 올라간다.
‘침묵이라는 것이 무작정 말 안하는 것이 아니니 이렇게 여행의 즐거움을 즐기는 것도 괜찮겠지~’
젊은 날의 그의 습관이 다시 한 번 나오는 순간이다. 의자 위에 올라서서 전체를 보며 손뼉을 몇 번 친다. 그리고 나서 전체에게 외치는 것이다.
“여러분. 여러분을 위해서 제가 한국 전통 노래를 한 곡 부르겠습니다.”
갑작스런 달형제의 제안에 어리둥절 하면서도 곧 좋아하며 박수를 친다. 본래 여행자들은 이런 거 좋아하기 나름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역시나 이번에도 자기 노래에 자기가 도취되는 달형제다. 노래를 마치자 열화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자 다음은 어느 나라에서 노래를 불러주시겠습니까? 이탈리아 어떻습니까?”
순간 이탈리아 분들이 바빠진다. 서로 모여 의논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광경을 보며 살짝 바깥으로 빠져 나오는 달형제다. 저쪽 기부제 알베르게로 가서 신혼 부부를 만나려 하는 것이다.
‘이런 분들을 만나는 즐거움이란 것이 있지~. 신혼 여행을 이런 순례길을 택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모처럼 즐거운 분들을 만나는 구만.’
가까운 곳에 있는 알베르게 안으로 들어가자 1층에 아담하게 꾸며 있는 거실이 있다. 잠시 거실을 구경하는데 곧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자 분이 나타난다.
“혹시 신혼여행 오신 분이신가요?”
“네. 혹시 맨발로 여행하시는 한국인이세요?”
첫 눈에 ‘순수’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하는 해맑은 여자 분을 보며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달형제다.
“네. 맨발로 여행하고 있긴 합니다마는.”
“아~ 드디어 뵙는군요. 오면서 얼마나 얘기를 많이 들었는지 몰라요. 여기 이 사람은 신랑~”
“안녕하세요. 훌륭하십니다. 신혼 여행을 이런 곳으로 오시고.”
그렇게 얘기하는 달형제를 신부는 앞뒤로 돌아가면서 달형제의 모습을 여기저기 살펴본다.
“꼭 연예인을 보는 것 같아요. 얼마나 유명한지요~. 외국인들이 우리보고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보고는 그렇다고 하면 꼭 다음 질문을 해요. 맨발로 걷는 한국 사람 본적 있냐고. 그 사람 아냐고. 그런데 이렇게 직접 보니 정말 신기해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띄는 달형제다. 순수한 그런 모습이 마냥 좋은 것이다.
세 명은 한적하니 바깥으로 나온다. 입구 옆에 깨끗한 소파 하나가 놓여 있다. 이런 것 하나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달형제다. 피곤한 순례자가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역시 사립 알베르게라 관리도 잘 해놓았구나.’
“제가 다리가 몹시 피곤해서 서 있기가 힘이 드니 좀 앉아야 겠습니다.”
“네. 앉아서 말씀하세요. 듣고 싶은 얘기가 많아요.”
“저도 두 분께 듣고 싶은 얘기가 많습니다. 어떻게 신혼 여행을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요? 남자라면 모를까 여자분들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일 것 같은데. 크리스찬이시지요? 저는 개신교인입니다만.”
“네. 저희도 개신교에요. 우리는 신부가 먼저 제안을 해서 오게 되었어요.”
“역시 자매님의 믿음이 깊고 순수하게 느껴집니다. 할렐루야~”
“그건 그렇고 달형제님은 어떻게 맨발로 여행을 하시게 되었어요?”
기분이 마냥 좋은 달형제는 긴 자신의 얘기를 시작한다. 맨발로 여행을 하게 된 계기, 그리고 그 의미. 이곳에서 벌어진 중요한 몇 가지와 자신의 순례 방식. 또 여기와서 새롭게 깨달은 맨발의 사명에 대해서.
“그래서 거금의 기부금을 받은 후 어제 산또 도밍고의 숙소에 들어갈 때는 특별한 자세가 나왔지요. 1차 여행 때 무시 당했던 기억이 있어서요. 들어가서는 당당히 얘기 했지요. 나 오늘은 여기 들른 이유가 여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기부금을 내러 왔다 하고. 나를 보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부금은 내지 말라고 했지만 아주 당당히 냈지요. 오늘도 저쪽 알베르게에 지난 번 하지 못했던 기부금까지 내고 머무르고 있습니다. 할렐루야지요?”
“맞아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그렇게 당당하게 만드세요.”
여자 분이 신나게 맞장구를 치신다.
“자, 이제 두 분에게도 제 사명을 실천하겠습니다. 제 사명 중 하나가 빌어 먹고 기도해 드리는 것이라고 했지요? 두 분 1유로씩 제게 기부해 주세요. 기도해 드릴 테니까.”
“어머. 어떻게 1유로만 드려요.”
그러면서 20유로 지폐를 꺼내 달형제에게 건네 준다. 그러자 신랑도 똑 같이 주머니에서 20유로를 꺼내 달형제에게 건넨다.
“아니.. 이렇게 두 분이 다 큰 돈을 주시면..”
주는 돈 절대 거부하지 않는 달형제는 웃으면서 즐겁게 돈을 받으며 감사를 드린다.
“감사합니다. 두 분과 이렇게 얘기를 나누니 참 즐겁고 좋습니다. 순례하시면서 예수님 더 깊게 만나시고 나중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여행 소식 꼭 전해 주세요.”
오랜 만에 믿음의 동질감을 느끼는 형제, 자매님과 얘기를 하고 나서인지 행복함을 가슴에 품고 숙소로 돌아오니 봉사자 한 분이 부엌에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계신다.
“달, 어디 갔었어요? 여기서 오늘 저녁에 명상(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네. 저는 미리 순례자를 만나기로 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얼마나 좋은 시간을 가졌었는데요.”
“그랬어요? 아쉽네요.”
“저쪽 문 뒤로 가면 교회가 한 눈에 보이는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 명상하기에 좋은 곳이 있어요. 당신이 그곳을 보지 못했으니 후회하실 거에요.”
“그래요? 지난 번 여기에 머물렀을 때도 그런 얘길 듣지 못했었는데.”
“아무튼 명상 참석 못한 거 후회되는 일이었어요.”
“저기요… 저 문 뒤에 한 번 들어가 보면 안될까요? 어떤 곳인지 궁금한데.”
“열쇠는 가지고 있으니까 볼 수는 있어요.”
달형제에게 자랑하고 싶은 눈치를 한 껏 보이는 봉사자는 달형제를 기꺼이 그 은밀한 장소로 데려간다. 그 공간은 성당이 한 눈에 보이는 2층 공간에 위치한 객석 같은 곳으로, 밤이어서 그런지 고풍스런 의자와 소품과 돌로 쌓여진 사방 때문에 중세 시대의 신비를 은은하게 내품는다.
“저기… 한가지 더 부탁이 있는데요. 저 여기서 오늘 밤 기도하면서 자고 싶은데… 허락해 주실 수 있을는지요?”
“그건… 신부님께 여쭤봐야 되요.”
“그럼 여쭤봐 주세요. 맨발로 순례하는 사람이 여기서 기도하면서 자고 싶어 한다고.”
봉사자는 친절하게 곧 허락을 받아온다. 그리하여 달형제는 매트리스를 깔고 홀로 어둡고 신비스런 공간에 몸을 맡기고 기도에 들어간다. 그러나 기도는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잠이 오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쩝… 육신이 지쳐도 영은 빠릿빠릿해야 하는 것이거늘… 아… 수도의 내공이 이것 밖에 안되는 도다… 성령님…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모처럼 기도한 번 제대로 해 보려고 마음 먹고 장소까지 빌렸는데 이내 실패하고 편히 잠자리로 들어가는 달형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