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야산에 묘를 쓰려는 장의차를 가로막고 유족으로부터 수백만 원의 돈을 받은 마을 주민들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 지난 8월 8일 충남 부여군의 한마을에서 시신 안장을 위해 진입하려는 운구차의 길을 가로막고 ‘통행료’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물의가 됐다. 유족에 따르면 이 마을 이장 A씨가 매장용 묘지 굴착을 준비하던 포크레인 작업을 중단시키고 장의차를 막아선 채 통행료를 요구하며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애가 탄 유족들은 그대로 돈을 내고 장의를 치를 수밖에 없었으며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죽음을 가지고 장사하는 마을에 대한 공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마을 이장 A씨가 장의업체를 통해 요구한 통행료는 당초 300만원이었다. 그러나 유족들이 반발하는 과정에서 500만원을 내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어머니의 시신을 10여 년 전에 사둔 야산에 매장하기 위해 운구차로 모셔왔지만 통행료를 요구하는 마을 주민들에 가로막혀 한 시간 가량 멈춰있어야 했다. 이후 350만원으로 합의를 보고 나서야 야산으로 향할 수 있었고, 마을 이장은 이에 대해 ‘마을의 법’이라며 관행인 양 요구했다.
그러면서 A씨는 돈을 강요하지는 않았다고 말하면서 장사법이 개정된 10여 년 전부터 마을 발전을 위한 통행료(마을발전기금)를 받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현행 장사법에 따르면 개인묘지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5조에 20가구 이상의 인가 밀집지역 등으로부터 300m 이상 떨어진 곳에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사건을 보도한 세계일보에 따르면 유족은 “우리 쪽에서 ‘세상에 이번 법이 어디 있나. 마을 옆에 묘소를 쓰는 것도 아니고, 1.5㎞나 떨어진 마을에서 보이지도 않는 산속에 묘지를 조성하는데 돈을 못 준다’고 했더니, 마을 사람들이 ‘300만원이 안 되면 마음대로 해라. 이젠 500만원 안내면 절대 통과 못 시킨다’며 되레 액수를 올리고 화를 더욱 내기가 찼다”고 토로했다.
이어 “시간이 가도 길을 터 줄 기미가 없어 우리 쪽에서 하는 수없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며 “그러나 찜통더위 때문에 어머니의 시신이 상할까 걱정한 5남매는 차 안에서 즉석 유족회의를 한 결과 경찰이 오면 양쪽 다 조서를 받아야 하고 잘못되면 장례가 하염없이 늦어질 수 있으니 금액을 최대한 낮춰서 합의를 보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하고 맏상주인 오빠가 나서서 350만원에 합의를 본 뒤, 급히 경찰에 다시 전화를 걸어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유족들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진정서를 냈다. 진정서에는 마을 이장이 흥정을 하며 액수를 높이는데, 이는 마을법이나 발전 기금이 아니라 명백히 갈취행위이며 장례방해, 도로교통법 위반 등의 범법행위라고 명시했다.
신창현 의원, ‘장례 방해 금지’ 장사법 개정안 발의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결국 마을이장 A씨를 비롯해 길을 막은 마을 주민들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 부여경찰서는 지난 10월 13일부터 16일까지 기부금 명목으로 통행료를 받은 옥산면의 한 마을 이장 A씨 등 4명에 대해 장례방해와 공갈 혐의로 조사를 마쳤다고 밝혔다.
경찰서 관계자는 “이틀에 걸쳐 공갈협박에 가담한 주민 4명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며 “이들에게 공갈죄를 적용할 계획이며 10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고 밝혔다. 또 장례방해혐의(3년 이하 징역)도 적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사건이 확대되며 논란이 커지자 마을 주민들은 유족 대표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당시 길을 막은 마을 주민 4명 중 이장 A씨를 제외한 3명이 경찰에서 공갈협박 혐의로 조사를 받은 직후였다. 이들은 마을 기부금 명목으로 받은 통행세 350만원도 즉석에서 반환했다.
이날 유족 대표와 마을 주민의 만남은 주민들로부터 현금 반환과 사과 의사를 전해들은 경찰이 때마침 현장에 내려온 유족에게 연락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을 이장 A씨는 그동안 돈을 강요한 사실이 없고, 주겠다고 해서 받았다고 주장해왔다. 자발적인 마을을 위한 기부금이라며 둘러대왔다. 그러나 단 두 달 만에 마을 이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결국 유족 앞에 사죄하며 무릎을 꿇었다.
유족 대표는 이날 세계일보를 통해 “어머니 묘소 현장에 내려왔는데 마을주민 측에서 사과의사를 밝혀 마을 이장 A씨 등 2명을 만났다”며 “두 분이 무릎을 꿇고 ‘경위야 어땠던지 간에 무조건 잘못했다. 정말 죄송하다’고 수차례 말하시기에 사과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건이 세간의 화제가 되자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장례절차를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지난 10월 18일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5조에 따르면 개인묘지는 20가구 이상의 인가 밀집지역 등으로부터 300m이상 떨어진 곳에 설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신 의원은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장의차의 목적지인 묘지는 마을로부터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설사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관할 행정관청에 신고할 일이지 주민들이 차량통행을 막고 유족들에게 통행세 명목의 금품을 요구하는 것은 법이 허용하는 장례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로사실상 갈취행위라고 밝혔다.
신 의원은 “이런 장례 방해 행위를 방치할 경우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며 “법률에 의하지 않고 장례절차를 방해하거나 방해하지 않는 조건으로 금품을 요구 또는 수령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근거규정을 마련하기 위해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