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메시지(92)] 민병돈 장군
그는 누구인가?
6월 3일 토요일 조선일보 별지 “아무튼 주말”에 민병돈 장군이 떴다. 김아진 기자가 취재했다. 군복을 입은 모습이 신문의 반면을 차지해 반가운 모습을 4년만에 뵙게됐다. 민병돈 장군은 이 시대 참 군인의 표상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그는 육사15기, 나보다 7년 선배다. 그는 그 자신의 특유한 군인철학이 있어 일반 장교들과는 늘 달라, 별명이 ‘민따로’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그를 높게 인정했지만 노태우에게는 가시였다. 육사 졸업식때 청와대에서 써 보낸 교장의 연설문을 버리고 그가 따로 만든 연설문을 읽어 각을 세웠다. 아마도 노태우 청와대가 써서 내려보낸 연설문에는 북한은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라는 의미의 문장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3성 장군으로 예편했다.
55만대군에 군인은 없고, 스타계급은 많은데 장군이 없다.
이 말은 김아진 기자가 뽑아낸 헤드라인이다. 군인정신이란 무엇인가? 미국 해병대에는 구호가 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군복을 벗어도 죽기 전까지는 국가에 충성해야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구호가 있다. “아무도 싸우려 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싸워야한다.” 해병이 조국을 지킨다는 뜻이다. 1990년, 나는 F/A-18 해군기를 차세대 전투기로 선정한 것에 대해 다시 F-16기로 바꿔야 하고, 곧 바꿔야할만한 처지가 닥칠 것이라는 논리를 가지고 청와대 김종휘 당시 안보수석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물론 예편하고 미국 해군대학원 교수생활을 끝내고 귀국해서였다. 이때 김종휘 밑에 근무하던 신 모 준장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 너는 예편했으면 그만이지, 왜 예편해서까지 군에 간섭을 하냐?” 이것이 육사출신 현역장군의 군인정신이었다. 미국의 해병정신과 정 반대인 것이다. 결국 내 강의를 개별적으로 들었던 육사14기 이종구 대장이 이상훈 국방장관이 갑자기 사퇴하는 바람에 국방장관이 되면서 탈락했던 F-16기가 차세대 전투기로 선정됐다.
2010년 연평도가 일방적으로 포 사격을 당할 때, 나는 빨리 연평도를 수색해 관측장교 역할을 한 간첩을 잡으라고 인터넷에 글을 썼다. 관측장교 없이 포탄을 표적에 명중시키는 군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런데 인천지역 경찰로부터 간첩을 옹호하는 협박전화가 왔다. 혹세무민죄로 처벌한다는 것이었다. 빨갱이 경찰은 내 글을 읽었지만, 군에서는 내 글도 읽지 않았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장교, 장군이 없었다. 55만 대군에 군인이 없다는 민 장군의 말씀이 정확한 것이다. 스타는 많은데, 그 스타들의 머리에는 가상의 전쟁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골프장과 양주폭탄주가 있는 것이다.
지식인은 많은데 지성인이 없다.
민병돈 장군은 또 “지식인은 차고 넘치는데 지성인은 없다”고 했다. 한 가지 더 보태고 싶은 말이 있다. 정치모리배는 차고 넘치는데 정치인은 없다는 말이다. 지식인은 무엇이고 지성인은 무엇인가? 감옥에 있기에 사전은 찾아볼 수 없지만 내 생각을 표현하면 이렇다. 지식인은 NATO(No Action Talk Only)이고, 지성인은 AT(Action&Talk)이다. 지식인은 입만 살아있고 행동이 없거나 지저분한 사람이고, 지성인은 언행이 일치하고 품위를 중시하고 염치를 아는 사람이다.
지식인은 입과 행동이 가볍고 사기를 잘 친다. 지성인은 얼굴에 지성미가 흐르는 사람이다. 얼굴이 과학이고 얼굴에 인간 스펙이 쓰여져 있는 것이다.
정치인이라는 말이 등장하면 나는 가장 먼저 스위스 운하를 사들인 영국의 디즈레일리 수상부터 떠오른다. 그는 체구가 작은 유태인이었지만 글을 잘 쓰고 연설을 잘 했다. 옷을 잘 입고 훌륭하고 정숙한 아내를 두었다. 그에게는 이튼 스쿨을 나온 영국 본토인 그래드스톤이라는 정적이 있었다. 이 사람은 독서광이었다. 그래서 연설을 아주 잘했다. 서로 앙숙으로 싸웠지만 분수를 지켜 링 밖에서 싸운 적이 없다. 피나게 싸웠지만 언제나 신사도는 지켰다. 이를 지금의 우리 정치권을 대조시키면, 우리 정치는 개싸움(Dog Fight) 그 자체다.
민병돈, 현충원 안가는 이유
민병돈 장군, 그는 10세 연하의 여성과 결혼하였고, 뇌에 문제가 발생한 부인을 19년동안 수발한 후 4년 전에 부인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그 때에 그 분의 얼굴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신문을 통해 반가운 얼굴을 대하게 되었다. 그는 부인의 유골을 집에 보관하고 있다. 그가 떠나는 날 그 역시 가루가 되어 부인과 함께 걸었던 뒷산에 뿌려지고 싶다고 한다. 현충원에는 가지 말아야할 인간들이 많이 가 있어서 더럽다고 했다. 핸드폰도 없이 주로 집에서 독서를 하고 강연을 다니면서 부인을 만나러 갈 준비를 한다고 했다. 독서가 많은 그와 대화를 하면 저작권 수준의 명언들이 즐비하게 나온다. 생활이 넉넉지 못한 그는 가끔씩 내게 50만원씩의 뭉텅이 성금을 보내주신다.
국군묘지에는 신분차별이 있다
나 역시 현충원에 갈 이력은 되지만 전과가 많아 갈 수 없다. 설사 심의를 해서 갈 수 있는 자격을 준다고 해도 그런 더러운 곳은 나도 가기 싫다.
국립묘지에 가고 싶지 않은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신분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립묘지에는 신분차별이 없다. 대 원수인 퍼싱과 맥아더가 병사 옆에 같은 면적에 묻혀있다. 사망한 순서에 따라 묻힌다. 그런데 우리 국군묘지에는 신분차별이 드러나 있다. 장군 묘는 별도의 공간에 1인당 8평짜리, 시체 그대로 매장된다. 아름다운 꽃 덩굴도 가꿔져 있다. 묘역 자체가 정원이다. 반면 대령 이하의 모든 장병은 1m의 공간에 계급 표식만 달고 있다.
나는 베트남전에서 낯선 광경을 보았다. 식사시간이면 장군도 똑같은 식기를 들고 병사들 틈에 끼어 차례를 기다리는 장면이었다. 이것이 차별 없는 민주주의일 것이다. 나는 국군묘지의 민주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채명신 전 주월사 사령관을 월남참전자 묘지에 안장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고인의 유언이라며 국방장관에게 의사를 전달했지만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은 규정에 어긋난다며 거부를 했다. 나는 긴급하게 문 여사님의 이름으로 편지 한 장을 썼다. 문 여사님이 거기에 서명을 해서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내도록 했다. 결국 김기춘 실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 그를 병사들 묘역에 묻히게 됐다. 그리고 그 묘지석에는 내가 써드린 문구가 새겨져있다. “그대들 여기 있기에 조국이 있다.” 나는 백선엽 장군도 6.25 참전용사들 옆에 묻히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유족과의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채명신 장군은 병사들 옆에 묻혀 계시기에 더 많은 사랑과 추앙을 받고 있다.
2023.6.4.
지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