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사태 이후 세계는 종교 양극화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났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양극화 현상이 대표적이다. 두 종교는 서로 만나지 못할 기차 레일이 되었다.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종교적 이념 대결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어느 한 쪽이 자기 것을 내려놓고 방향을 바꾸지 않는 이상 해결점이 어렵다. 지난 로잔 방콕 대회에서는 21세기의 세계 기독교가 풀어야 할 과제가 '이슬람과 기독교의 화해(Reconciliation)'에 있었다. 두 종교의 양극화 된 해법은 화해하는 방법 뿐 다른 유(有)가 없다.
이슬람의 근간을 이루는 코란은 성경을 모방(Mortified) 하고 있지만 기독교에 대한 편견이 있다. 편견의 주범이 교회사가(家)들은 십자군 전쟁 이라고 말한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십자군은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정의의 이름으로 모집되었다. 십자군의 모집 동기는 선했지만 과정이 잘못되었다. 소아시아를 진군하며 많은 무슬림 부녀자들을 겁탈하고 어린아이들을 살해했다. 방콕 로잔 대회 선언서에도 천명했다. " 지난 세기 기독교가 무슬림들에게 준 상처를 화해해야 한다."
최근 한국은 이슬람이 다가오고 있다는 이유로 초미의 관심사다. 자의든 타이든 한국에 밀려오는 무슬림들에 대한 위기감이 있다. 여기에 편승하여 이슬람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로 크고 작은 포럼을 가졌다. 필자의 교단에서는 강도사 고시 논문제목이 " 다가오는 무슬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3) 주제로 나왔다. 기독교 선교단체들은 매파와 비둘기파4)로 나누어져 다가오는 이슬람에 대해 갑론을박하였다. 한국 무슬림들은 심기가 불편해 법정 소송 까지 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이런 일련의 불필요한 종교 간의 갈등을 보며 이슬람에 대한 경각심과 동기부여는 되었는지 모르나 복음의 수용력을 가지고 선교의 대상자로 접근하게 하는 데는 거리가 멀어졌다.
한가지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다. 한국에 온 무슬림에 대해 선교 접근방식이 이런 흑백논리접근 할 때 ' 우리 형제 이스마엘' 이라고 하는 용어는 이미 물 건너갔다. 불행한 일은 매파와 비둘기파의 논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의 양극화 현상은 현저하게 나타났다. 이런 논리로 이슬람을 접근하면 수면위에 떠있는 이슬람만5)을 논하는 근시안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좀 더 연구하고 고민하며 수면 밑에 있는 이슬람을 보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더라면 한국의 무슬림들이 맘 문을 닫지 않았을 것이다.
이슬람 선교에 있어서 선행되어져야 할 과제가 있다면 기독교는 천국과 지옥을 선명하게 제시해야 하지만 먼저 하나님나라(The Kingdom of God)의 영광을 선포해야 한다.6) 이런 맥락에서 수면 밑에 현대 이슬람 운동을 접근하므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슬림들의 실체를 알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 연구의 범위는 유럽이 이슬람 화 되어 가는 과정과 함께 지난 30 여 년간 현대 터키 이슬람 운동으로 일어난 패툴라 귤렌(Fethullah Glen) 운동과 뿌리7)를 중심으로 접근코자 한다. 또한 무슬림들의 거룩한 이동으로 삶의 이슬람을 실천하는 과정과 활동, 그리고 정체성(Identify)을 다루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무슬림들에게 십자가의 복음만이 가능함을 결론으로 맺고자 한다.
1. 패툴라 귤렌(Fethullah Glen)8)운동의 역사 적 접근
패툴라 귤렌(Fethullah Glen)운동의 역사적 접근을 대략 5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1966년 터키 서부지역 에드리네 회교 선생부터 1970년 서남부 지역 이즈밀 시대까지 이다. 둘째는 1980년은 패툴라 귤렌이 정치와 힘겨루기에서 가장 힘든 시기(Fethullah Glen'in en zor yıları이다. 셋째는 1994년 패툴라 귤렌 운동이 해외로 확산하는 시기이다. 넷째는 2000년 정부와 법정 투쟁시기이다. 다섯째는 패툴라 귤렌 운동의 세계화 시대로 나눈다.9)
첫째, 패툴라 귤렌의 1966년부터 1970년 말까지는 역량 결집을 위한 준비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부 예드리네에서 회교 선생으로 근무 시 전 무슬림들이 라마단 금식 기간 중 귤렌은 금식도 하지 않고 연설을 했다.10) 당시 터키 정부의 수상이었던 아드난 멘데레스를 초청해 현대 이슬람 아카데미를 열어 강연을 했다.11) 그는 평생 독신으로 회교 사원에서 혼자 기숙하며 책과 씨름했다. 자신의 고민을 부친이 살고 있는 고향 엘쥬룸으로 편지를 보냈다. " 아버지, 저는 선지자 야곱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오스만 언어로 코란을 읽고 있습니다."12) 이처럼 패둘라 귤렌은 자신의 역량 결집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둘째, 1980년 부터는 본격적인 정치활동에 나섰다.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지 않고 세속 정부를 대항하며 현대화하기 위한 이슬람 운동을 전개해 갔다. 결국 1980년7월12일 부르사(Bursa)에서 군부의 의해 체포되었다.13) 국가 분리 주의자라는 죄목으로 감옥생활을 한다. 그 후 계속하여 정치참여를 하며 사회 여론을 조장하며 현대화된 이슬람을 전파했다. 패툴라 귤렌은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명성을 날리게 되었고, 그를 따르는 추종세력은 가속화되었다. 당시 투르크트 외잘(zel) 수상은 패둘라 귤렌 정치 자금을 받아 정치에 입문했기에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었다.
셋째, 1990년 이후 부터는 귤렌의 추종 세력이 커지면서 결국 해외로 갈 수 밖에 없게 된다. 이 시기 부터는 미국과 유럽 등지를 순방하며 현대화 이슬람 강연을 시작한다. 특히 유럽에서 미국에서 무슬림들에게 강연은 선풍적인 열풍을 몰고 왔다. 이 강연을 통해 미국과 유럽의 터키 사업가들을 동원해 현대 이슬람 운동을 위한 자금을 모았다.
넷째, 2000년 정부와 투쟁시기이다. 터키 민영 방송 A-TV사14)에서 1999년 7월18일 패툴라 귤렌 강연을 방영했다. 이 방영을 계기로 군부 합참의장은 방송을 금지시키고 일련의 조치를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 국민들의 조사의 의하면 86%가 패툴라 귤렌의 강연을 지지한다고 말했다.15) 결국 2000년 8월3일 수도 앙카라 제1 헌법 재판소에 기소되어 투옥되었다. 16)
여기 패툴라 귤렌 설교 일부이다. 기독교 목회자들의 설교와 별 차이점이 없다. 오히려 복음주의 설교보다 더 호소력이 있고 기독교 용어를 차용해 감동을 주고 있다.
"Come, come over, more over, how long this brigandage? As you are me and I am you. How long this discrimination of you and I? We are light of God! Why is this separation among us? Why does light escape from light? We are all from the same yeast. But under this bowed sky we see double. Come on, deny your Ego. Get united with everybody. So long as you remain in yourself, you are a particle. But if you get united with everybody, you are a mine, an ocean. Believe that all spirits are One! And all bodies are One! Just like almonds in quantity hundred thousands; but there is the same oil in all of them. There are many languages in the world, in meaning all are the same. If you break the cups, water will be unified and will flow together "17) 오라, 나오라, 얼마나 이렇게 차별할 것인가? 나와 너는 같은 존재이다. 얼마나 너와 나를 차별할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알라)의 빛이다. 너희가 왜 분리하는가? 왜 빛이 빛으로 부터 피하는가? 우린 같은 이스트로 부터 나왔다. 그러나 굽은 하늘 아래 우리가 두개로 보인다. 어서 너의 자손 심을 버리라. 모든 사람과 연합하라. 자신 안에 갇혀있는 한 너희는 티글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너는 모든 사람들과 연합하면 너는 나의 것이고, 바다이다. 수천 개의 아몬드 안에 같은 기름이 있듯이 모든 영들은 하나임을 믿으라. 그리고 모든 몸도 하나이다. 이 세상에는 많은 언어들이 있다. 그리고 그 뜻도 같다. 컵을 깨뜨리면 물이 하나가 되고 같이 흐를 것이다."
"Come whatever you are, come Whether you are atheist, or worship fire,Whether you have broken your oath thousand times Our convent (Dergah) is not the convent of despair,Come whatever you are, come again" 오라, 누구든지 오라, 무신론자이든, 배화교도든, 너희가 천 번이라도 약속을 어겼더라도 우리의 언약( Dergah)은 실망의 언약이 아니다. 누구든지 다시 오라."
다섯째, 패툴라 귤렌 운동의 세계화 시대다. 2007년 패툴라 귤렌은 노벨 수상자 후보에 올랐다.18) 당시 영국의 시몬 로빈슨교수가 귤렌을 방문해 저녁 만찬을 한 후 재직하는 자기 학교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귤렌은 정중하게 거절했다.19)
패툴라 귤렌의 현대 이슬람 화를 위한 3 가지 철학이 있다. 첫째 봉사(Hizmet)이다. 종교와 국가에 봉사해야 한다. 둘째, 도움(Himmet)이다. 열심히 일해 기부하고 헌금을 많이 한 사람은 성공한 주인공이 된다. 셋째, 생산, 창조 (ihlas)이다. 생산된 모든 것을 알라에게는 아낌없이 바친다.20) 이 3 가지 철학은 이상적인 근본주의 이슬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발상이다. 특히, 둘째 철학은 무슬림에서 금리(이자)를 터부시하는 법을 패툴라 귤렌은 이슬람을 현대 화 한 획기적인 상황 화 작업21)RADITIONAL DOMINANT CONTEXT(전통 이슬람 수피주의 상황)閷΄΄̅㜤΄̅㜤΄̅㜤
2. 사이드 눌시(Said Nursi)의 영향
패툴라 귤렌 운동을 역사적으로 접근하려면 사이드 눌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귤렌의 이슬람을 현대화 작업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눌시 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늘날 귤렌의 운동의 기초는 눌시 정신의 벤치마킹이다.22) 현대 터키에서 사이드 눌시 운동은 가장 힘과 영향력을 미친 그룹이다.23)
2.1.사이드 눌시(Said Nursi) 성장 배경
사이드 눌시(Said Nursi)는 1896년 터키 동남부 비틀 리스(Bitlis) 출생하여 1960년 사망했다. 원래 그는 수피종단인 낙시벤드(Naksiband)24) 출신으로 회교 선생으로 입문했다. 초기 수피 종단 낙시밴드는 인도의 힌두교 수피 아흐멧 쉬힌디(Ahmed Sirhind)영향을 받았다. 오스만 제국 당시 수피 종단인 낙시밴드는 순니 무슬림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이 운동이 힘을 받게 된 것은 서민들을 중심으로 이상적 이슬람을 개혁의 일환으로 수피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수피 종단은 초기 근면과 청빈을 목표로 삼고 사회 정화 운동에 나섰다.25)
눌시는 초기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신문사를 창업했다.26) 당시 1922년 케말 파사가 독립운동의 주체가 되어 일하고 있을 때 케말 독립운동을 도왔다.27) 1925년-1949년 사이에는 이슬람 당을 설립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28) 눌시가 세운 당이 이슬람 색체가 강함을 보고 초기 케말주의 자들이 민주주의 사상을 반대하는 이유로 투옥시키기도 했다.29) 터키 민주주의 건국 초기의 눌시는 격동의 한 시대를 살았다. 결론적으로 사이드 눌시는 근본주의 이슬람으로서는 사회 변혁은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고 현대 이슬람 운동을 시도했다.
2.2. 사이드 눌시 운동의 3가지 철학
눌시 운동의 3 가지 철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무슬림들은 배워야 한다. 둘째, 물질주의와 적극적인 행동으로 지성인들이 부패하지 않아야 한다. 셋째, 사회에서 이슬람들이 모범이 되어야 한다.30) 눌시의 3가지 철학은 혁명적이었다. 첫째와 둘째의 사고는 무슬림 지성인들에게 충격적이었다. 아울러 셋째는 전 무슬림들에게 정화의 기치를 높이게 했다.
3. 향후 서구 유럽에서 현대 이슬람 등장
알버트 후라니(Albert Hourani)는 그의 책 『유럽 사상에서의 이슬람(Islam in European Thought)』에서 “이슬람적인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문을 제기한다.
"what do we mean by 'Islamic Society'? In view of the great variety of customs and institutions, of artistic firms and collective mentalities of the 'world of Islam' which stretches from the Atlantic to the Pacific, from Morocco to the Philippines, is there a sense in which they can all be called 'Islamic'? (중략) Michael Gilsenan, in Recognizing Islam, suggests that 'Islam', when seen in its social context, is not a single unitary object which by itself determines the behaviour and customs of a society; it is a world which can be used to refer to certain concepts, symbols and rituals which have helped to mould the collective consciousness of various societies, but have also been moulded by them.31)" 우리가 말하는 이슬람 사회는 어떤 의미인가?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와 조직 그리고 예술과 집단적인 멘탈리티들이 대서양에서 태평양, 모르코에서 필리핀까지 이 모든 것이 소위 이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마이클은 말하길, 이슬람 인식이란 책에서 말하길 이슬람을 사회적인 상황 속에서 보았을 때 어느 한 고정된 물질, 자기의 행동과 문화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개념이나 의식과 상징들이 여러 사회 속에 집합적인 의식을 바꾸어(mould) 놓았고 자신들도 바뀌어 졌다."
다시말해서 유럽 내의 국가들은 소수 민족들이 유럽으로 들어 올 때 무슬림들이 이처럼 다양한 옷을 입고 들어 온 것을 미쳐 깨닫지 못했다. 한 마디로 이슬람 사회가 어떤 의미 인 것을 몰랐다. 심각한 것은 여러 사회 속에서 자기들의 신앙으로 삶의 의식을 변화시킬지 몰랐다.
레슬리 뉴비긴 주교는(1909-1998년) 기독교와 이슬람교와 근본적인 차이점을 이렇게 정의한다.
"역사상 그 어떤 것도 견 줄 수 없는 새 신앙의 전승보가 아닐 수 없다. 이슬람의 핵심은 형성초기부터 칼의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다. 예언자 모하메트는 사역의 정점을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 손에 칼을 들고 말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했지만, 예수님의 사역 정점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을 입성했다는 사실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근본적인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생략..., 성경에 뿌리를 둔 기독교와 이슬람 간에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을 택해야 하는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32)
이런 유럽의 기독교 사회의 이슬람이 들어 가 서구의 계몽주의와 이성주의 철학이 기독교를 휩쓸고 가 윤리만 남게 된 빈 공간에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의 무슬림들이 유럽으로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1970년까지만 해도 유럽은 소수 민족의 종교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소수 민족공동체(ethnic communities)이라는 개념 외에 종교로 생각하지 않았다.
"유럽의 이민 온 새 소수 민족 공동체들은 새로운 사회의 조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일을 이루는 방법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While most agree that Europe's newer ethnic communities should be harmonized into a new society, the means of achieving this are by no means obvious."33)
좀 더 실제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동서 냉전시대의 미, 소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기들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 현실적 과제였기에 다른 곳에(소수 민족 공동체들) 여력을 쏟을 시간이 없었다.34) 2차 세계 대전이 종식되고 미국의 베이비 붐 시대가 도래했다. 문제는 유럽 여러 나라에 이민자들이 점진적으로 늘어났다. 아프리카에서 중동에서 아시아에서 이민자들이 들어왔다. 당시 유럽 전역의 이민자들이 대략 3백만 명 되었다.35)
한 실례로, 1980년 초 부터 독일은 신나치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신나치주의자들은 이런 슬로건을 내걸었다. " 어제의 유대인 내일의 터키인- 터키인은 무슬림이 아니다. - Yesterday the Jews, tomorrow the Turks- Turks not Muslims."36) 일종의 민족주의 운동이었지만 소수민족들에게 심각한 경종이었다. 여기에 이슬람 단체들이 인종차별이라고 대항했다. 소수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대항했다.
유럽의회에서는 심각하게 수용하여 결론을 내렸다. 이것이 소수민족에 차별과 종교핍박을 하나로 보면 안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37) 문제는 중동의 이슬람 단체들과 연대한 터키 무슬림들은 이것을 역이용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필립 젠키스(Phillp Jenkins)는 ' 현대화된 터키 이슬람 (Turkish Islam)이 수피 주의 리더인 패툴라 귤렌 운동의 의해 유럽에서 활동되어 지고 있다고 말했다.38)'
현대 기독교가 풀어야 할 과제는 중동의 근본주의 이슬람이 영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구 다원론 사회에서 자생력을 가지고 생성된 상황 화 된 이슬람이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39) 이슬람과 현대성과 함께 공존할 수 있을까? 바로 패둘라 귤렌 운동이 이슬람 전통을 유지하면서(과학, 이성) 서구 현대성으로 이슬람 화하고 있다. 자본주의(이자, 기업운영, 가난한 사람들의 은행가)40)가 이슬람과 충돌 없이 전파되고 있다. 마치 김 일성 주체 사상이 기독교의 기독론을 대치해 신격화 했듯이, 이슬람이 형이상학적인 울레마(전통 코란)41)는 보존하고 이슬람 행동 강령을 상황 화 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즉, 현대 이슬람이 울레마와 자연과학을 수용하여 양자를 종합해 현대 이슬람 화 했다. 서양 철학인 임마누엘 칸트, 니체, 헤겔 철학을 도입했다. 문제는 현대 이슬람은 서양의 기독교 윤리, 이성철학과 유배되지 않고 동질성을 가지고 해석하고 있다는 데 파격적이다.
서서히 유럽 이슬람은 기독교 토양 속에서 무슬림들이 생존하는 자생력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 이슬람의 힘이 있다. 핵심은 서구 유럽 기독교가 윤리만 남은 껍데기 공간을 채우는 상황 화 된 이슬람이 나오고 있다는데 기독교의 경각심이 필요하다.
4. 문명 간 연대(Alliance of civilization)운동
현대 터키 무슬림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에 대한 불식의 일환으로 문명 간 연대(Alliance of civilization)라는 주제로 평화 모임을 주선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하여!42) 주제로 모임이 시작되었다. 일명 '문명 간 연대'라는 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주로 청소년 이 민 교육, 미디어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고 있다. 각국의 저명한 학계, 언론계 인사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문명 간 충돌에 의한 특정 사안 발생 시 언론을 통해 대응하려는 움직임인 신속대응 미디어 메커니즘(Rapid Response Media Mechanism)
문명 간 연대를 위해 2009년 4월, 6-7일 양일 간, 문명 간 연대 제2차 포럼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개최되었다. 반 기문 사무총장과 6개국 정상, 28개국 외교 장관이 참석한 이번 포럼은 문명 간 연대에 대한 각 나라 고위급 차원의 공약을 재확인하고 문화 간 대화, 협력을 증진한다는 명목으로 모였다.43)
"요즘 세상에는 이슬람이 현대화되고 있습니다. 즉, 현대 사회의 지식을 대면하는 것도 함께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슬람이 역사의 무대의 진출할 때 언제나 평화의 길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서구 모델을 따르지 않고 그 안에서 연합되는 논리도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슬람과 현대화가 만났을 때 두 사상이 변화를 겪게 되고 현대화 개념이 혼돈되어 집니다. " Islam bugn modern dnyanin ağaşıhaline geliyor. Yani sıa modern dnyanı bilincini sorgulayan bir yzleşme srecini de beraberinde getiriyor. Islam'in tarih sahnesine girişi her zaman barişıyollardan gerekleşmiyor; kendini Bati modeline benzetecek, onun iinde asimilasyonu sağacak bir mantığıda izlemiyor. Islam ile modernitenin bu karşıaşması karşıılıolarak her ikisinin de dnuşmne yol aarken modernliğn mevcut tanılarııda iyice karıtıyou."44)
위 언급은 이슬람이 변화를 하고 있다는 단면이다. 현대 이슬람은 지식경제 기반을 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안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서구 기독교의 쇠퇴한 모델을 따르지 않으면서 변화하는 이슬람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이슬람은 테러나 칼의 종교가 아니고, 평화의 종교로 위장해야 한다. 문명 간에 연대 운동은 그런 맥락에서 타 종교와 만나려는 현대화 된 이슬람 운동의 실체이다.
5. 무슬림들은 거룩한 이동(Kusal hareket)
현대화한 무슬림의 핵심 가치는 거룩한 이동에 둔다. 이슬람 종교적 핵심 가치는 헌신에 둔다. 현대 무슬림들은 헌신의 핵심가치를 위해 거룩한 이동을 해야 한다. ' 거룩한 이동(Kusal hareket)'45)은 삶이 종교이고 종교가 삶이다. 이슬람의 거룩한 이동은 의미심장하다. 무슬림으로서 자기가 태어난 조국을 떠나 무슬림으로서 삶을 위해 이동을 해야 한다. 무슬림으로 거룩에로의 초대이다. 삶속에서 거룩한 영향력을 주는 것이다. 이슬람을 전파하지도 않는다. 단지 무슬림으로서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독교적 관점으로 본다면 타문화권 선교이다. 자기가 태어난 곳을 떠나 타문화권으로 가 서 산다. 이 거룩한 이동은 현대 유럽지역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에게 핵심적용가치이다. 무슬림의 종교적 헌신은 타문화 권에 가서 사는 일이다. 그가 어떤 일에 종사하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사업가로, 장사로, 교수로, 하층계급의 노동자로 살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룩한 이동을 하여 무슬림으로 삶 자체가 중요하다.46)
현재 한국에서 '거룩한 이동'을 하여 살고 있는 터키인들이 220명 정도 된다.47) 작은 수지만 이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무슬림으로서 거룩한 이동을 하여 살고 있다. 문화원 사역, 식당운영,48) 학생, 교사(레인보 국제학교 교사), 사업가, 비니네스, 통역 등 다양하게 삶의 현장에서 살고 있다. 비근한 실례로, 터키의 영웅으로 손꼽혔던 국가 대표 축구 감독이었던 센놀 규네쉬(şenol Gneş, 2002년 월드컵 당시, 전, L.G 축구 감독), 터키 축구 황제로 불리었던 하칸 슈큘( Hakan şkr, 전, 국가 대표 선수, Galatasaray 소속 팀)도 패툴라 귤렌 운동의 일원이다.
아래 세계 지도(The world by religion) 속에 종교 분포도를 보면 10/40 창(Window)이 산불처럼 이슬람이 번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타 종교에서는 '거룩한 이동'이란 개념으로 무슬림처럼 선교전략을 세우는 것이 없다. 오직 현대 이슬람이 이런 전략으로 이동 한다.
6. 언론과 지성과 기업을 앞세운 활동
현재 패툴라 귤렌 운동은 국내외적으로 대단한 활동하고 있다. 1999년7월 터키 군부에 의하면 패툴라 귤렌 활동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49) 국내 활동을 살펴보면 1969년 부터 이후부터 패툴라 귤렌 재단 200개, 200개 사립학교, 56개 대기업, 500개 중소기업,460개 학원, 약 500명 학생들이 기숙사에 머물고 있다.50) 그 외에 신문사(Zaman Gazetesi)51),14개 잡지, 2개 라디오 방송, 텔레비전 방송52)을 가지고 있다. 대 기업 중에 빛 보험(lşı sigorta), 아시아 경제(Asia Finans)가 막강한 활동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53)
해외 활동은 다음과 같다. 1992년 무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활동을 해 왔다. 현재 54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모르코, 세네갈, 수단, 나이제리아, 예멘, 케냐, 우간다, 파키스탄, 인도, 뱅그라데쉬, 카작키스탄, 투르메니스탄, 우즈벡키스탄, 키르기즈스탄, 아젤바이잔, 타타르스탄, 나취반, 타직키스탄, 그루지아, 체첸, 다게스탄, 아프카니스탄, 동 러시아, 몽고, 시베리아, 바쉬크르스탄, 아브하자, 첼키스인, 독일, 영국, 덴마크, 벨기에, 화란, 보스니아, 마게도니야, 루마니아, 알바니아, 몰도바, 일본, 한국54), 캄보디아, 태국, 대만, 필리핀, 싱가폴, 인도네시아, 파파뉴기니아, 미국, 호주이다. 대략 대학교 설립 6개(전문대학포함), 250개 고등학교, 2개 초등학교, 8개 학원(컴퓨터 학원 포함), 6개 대학 입시 학원, 21개 학생 기숙사 등으로 전체 293개 교육기관을 세웠다.55) 외국에서 가르치는 교수, 교사들은 매월 월급을 600$-1500$ 사이로 지급한다.56)
* 터키 대도시의 학원 성장 도표57)
지역
1970년도
2000년
아다파자르(Adapazarı
5 개
123 개
부르사(Bursa)
5 개
94 개
에스케세히르(Eskişehir)
0 개
19 개
엘주룸(Erzurum)
6 개
67 개
이스탄불(Isanbul)
23 개
349 개
카이세리(Kayseri)
2 개
60 개
코냐(Konya)
3 개
182 개
반(Van)
1 개
8 개
현대 이슬람은 비즈니스와 이슬람 종교의 양 날개를 사용한다. 개신교 종교 개혁자인 존 칼빈의 그리스도인의 직업과 소명 론58)과 별 차이가 없다. 칼빈은 그의 저서'기독교 강요 '그리스도인의 직업과 소명 론'에서 '게으름을 가장 위험한 악이라고 책망했다. 게으른 자는 사회적 기생충'이라고 비판하며 부지런히 노동하고 거룩하게 사는 금욕적인 생활을 강조했다. 59) 칼빈은 계속하여 기독교 강요 제10장 '현세생활과 그 보조 수단들을 사용하는 법'에서 일상생활의 가장 미천한 일이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생각으로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그것을 빛나게 한다는 칼빈의 원대한 식견이 여기 나타났다.60) 그리스도인의 직업은 소명이며 노동은 소중한 것이다. 직업은 귀천이 없으며 직업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거룩한 일이다. 한국교회는 이론과 현실적 실천에서 거리가 멀다.
현대 이슬람은 칼빈의 직업과 소명 론을 현실적 실천행동 화하여 부지런히 노동하여 거룩한 직업관을 가지고 살고 있다. 지금 지구촌에 닥친 경제위기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근간이 되는 칼빈주의의 청교도적인 근검사상과 하나님 앞에서 직업과 소명 의식 붕괴에서 왔다. 변화하는 현대 이슬람을 보며 칼빈이 새삼 그립다.
7. 군부와 현 정부(AKP)와 갈등 문제61)
대부분의 무슬림 국가들과 달리, 터키는 서구의 민주주의 정치 체계가 사회 전반에 상당히 성공적으로 정착해 있다. 터키에서는 세속주의 원칙에 입각한 헌법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이념일 뿐 아니라 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한 원칙에서 터키 대중들의 삶에 자리 잡고 있다.
닐뤼퍼 괼(Nilfer Gle)은 그의 논문에서 1995년 정권 교체와 같은 변화가 평화적으로 일어나 민주주의가 정착했다고 말했다. 이는 터키의 종교적, 종족적 정체성, 민족적 연합, 세속주의 등 민주적인 다원주의 때문이라고 말했다.62) 메틴 헤퍼(Metin Heper)는 그의 논문에서, 이슬람의 요소들이 자유 민주주의와 양립이 불가능함을 주장한 다. 버나드 루이스 조차도 터키의 상황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에서 높이 평가했다.63)
루이스는 그의 논문에서, 터키는 역사 속에서 오스만제국 시대와 세속적인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아타튀르크 치세 하에 두 가지로 다른 국가들의 모범이 되어 왔다. 첫째는 터키가 민족적 특성과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자유 경제와 개방적인 사회였다. 둘째는 자유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치 체제를 수립하는 데 성공한다면 한 번 더 세계의 다른 민족들에게 있어서 모범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64)
터키가 다른 중동의 무슬림 국가에 비해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잘 정착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호평을 받는 것은, 무슬림이 99%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에서 이슬람이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세속주의 민주주의 원칙(Secularism democracy)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캐말 주의 원칙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터키가 세속주의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터키인들이 세속주의가 필요성을 인식했을 뿐 아니라, 종교가 정치적 영역까지 확장되었을 때 발생하는 어떤 부정적인 면모에 대해서도 합의를 가지고 있었음을 뜻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의 세속주의와 서구 통치 이념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현 정부(친 이슬람 성향)는 군부와 심각한 갈등관계에 있다. 몇 해 전, 군부는 현 정부에게 패툴라 귤렌 운동(Fethullah Glen'in hareketler)연결 고리를 청산할 것을 제의했다. 현 정부는 단계적으로 정리하겠다고 약속 각서에 사인을 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도 관계정리를 하지 않고 계속하여 패툴라 귤렌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군부는 약속 이행 차원에서 경고를 했다. 경고를 받은 현 정부는 과거 약속 이행에 관한 서류가 없다고 발뺌을 했다. 심기가 불편한 군부는 조사 처리위원회를 구성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나섰다. 이런 일련의 일들로 인해 심각한 군부와 현 정부와 관계가 어려워졌다.
8. 이슬람과 십자가 복음65)
베드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바울은 예수님이 '해 받음'과 '죽임 당함'으로 '나무의 달리셨음'으로 십자가를 표현했다. 구약 신명기 21:22-23에 보면 사형 죄 때문에 나무에 달려 처형당한 사람은 해가 지기 전에 장사하도록 되어있다. 이유는 이렇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다.' " 사람이 만일 죽을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21:22-23)"
사도들은 구약의 율법을 익히 알고 있었다. '나무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도들은 입을 막지 않고 도리어 담대하게 나무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다. 여기에 기독교의 핵심가치가 있다. 사도들은 ' 예수님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바로 예수님이 담당하신 저주가 우리를 위한 저주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이렇게 전하고 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 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베드로 역시 동일한 고백을 했다.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벧전2;24)"
이슬람 종교의 결정적인 오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한다. 코란에 그리스도 십자가 부인을 5회 정도 하고 있다. 코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어떤 영혼도 다른 사람의 짐을 져서는 안 된다. 짐을 진 어떤 영혼이 도움을 호소할 때 가까운 관계있는 사람이라도 그 짐을 나누어 져서는 안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알라가 비록 자비로우며 회개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을 용서한다고 할지라도 ' 각 사람은 자기 행위의 열매를 거두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슬람교는 인간이 만든 종교임이 입증된다. 모하멧 자신이 인간이기에 다른 인간을 구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에서는 십자가의 중요성을 부인하고 더 나아가 그 사실까지 부인한다.
중동에서 40년을 선교한 사무엘 제이뭐(Samuel M. Zwemer 1867년 출생 -1952년 사망) 는 이렇게 말했다. ' 십자가가 이슬람 선교의 핵심이다. 십자가는 신약사상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축이다.' 십자가가 어떤 이들에겐 거침돌이지만 우리는 이것이 자력 같은 힘은 불가항력적임을 발견케 된다. 그리스도의 나무 십자가! 이슬람 선교의 핵심이다. 에밀 부르너는 말했다. " 십자가를 바로 이해하는 사람은 성경을 이해하며 그리스도를 이해한다." 영국의 회중교회 감독이었던 포사이스( P. T. Forsyth)는 그의 책 '십자가의 중요성(The Cruciality of the cross)' 에서 이렇게 말했다. "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의미한다. 십자가를 이해 할 때까지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가는 말
지금까지 현대 이슬람을 살펴보며 이슬람을 위험이나 선동으로 이해시키려 해선 안 된다. 변화하는 현대 속에 살아남은 현대 이슬람을 주목해야 한다. 현대 이슬람은 서구의 합리주의 이성철학과 기독교의 지성을 모방하여 접근하고 있다. 복음을 상화 화 작업으로 접근하고 있다.66) 패툴라 귤렌 운동의 효시인 사이드 눌시(Said Nursi)는 동일한 철학을 주장했다. 첫째, 무슬림들은 배워야 한다. 둘째, 물질주의에서 적극적인 행동으로 지성인들이 부패하지 않아야 한다. 셋째, 사회에서 무슬림들이 모범이 되어야 한다.
주님이 산상수훈에서 설교하신 말씀과 무슬림들이 남에게 봉사하고 섬기는 기독교 정신과 무엇이 다른가? 현대 이슬람의 영향력이 여기에 핵심이다. 서구 기독교는 그리스도 없는 윤리만 남아 머리로만 알고 있지만 현대 무슬림들은 이성으로 인식해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현대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정치가, 지성인, 사업가, 언론인들은 세상 속에서 근본주의 무슬림들과 다른 모습으로 사는데 힘이 있다.67)
도전받는 시대의 기독교가 서있다. 현대 이슬람이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차용해 기독교인들보다 더 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소외된 사회 속에 들어가 빛으로 소금으로 살고 있다. 중세시대 경건주의자인 필립 슈페너68)는 말했다. " 실천 앞에 침묵하라." 현대 이슬람은 신앙적 지식보다 실천하는 무슬림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역사를 움직이고 계시기에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길을 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문헌
국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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