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 김 중 위 - 헌정회 홍보편찬위원장, 영토문제 특별위원회 위원장, 12∼15대 국회의원, 환경부 장관, UN 환경계획한국부총재, 현)한강문학회 상임고문,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회장
〈눈총도 총이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모택동毛澤東이 한 말이다.
옳은 말이다. 적어도 인류 역사는 그런 경로를 밟아 왔다. 총이 없을 때에는 칼 가진 자가 권력을 쥐었다. 총이나 칼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래 가지고는 총칼의 대결이 끊일 사이가 없어 안 되겠다는 자각으로, 총칼 대신 생겨난 것이 ‘종이 총’ 즉 투표용지다. ‘지탄紙彈’ 이라고도 한다.
총탄을 수도 없이 퍼부어 정적政敵을 무너뜨림으로써 권력을 잡던 방식에서 이제는 지지자를 향해 투표용지 즉 지탄을 마구 쏘아댐으로서 집권하도록 만드는 제도가 정착되었다. 이름하여 민주주의다.
이처럼 종이가 탄알처럼 역할을 하는 영역 그곳은 정치의 세계다. 투표용지(ballot)가 상대의 후보보다 자신을 향해 더 많이 날아 들 때만이 정치인은 살아남는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높은 장대 위에 바구니를 매달아 놓고 어느 편이 먼저 더 많은 ‘오자미’를 집어넣느냐로 승부를 가리는 게임과 같다.
총탄의 대체용으로 창안해 낸 것이 바로 이 투표용지이기 때문에 총탄(bullet)과는 거꾸로 기능한 것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총탄(bullet) 대신 투표(ballot)로 정권을 창출해 내는 제도다.
민주주의 국가의 권력은 그런 의미에서 모택동이 말하는 것처럼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투표용지[紙彈]로 부터 나온다.
그런데 권력을 만들어 내는 총구나 투표용지보다도 더 무서운 총을 모든 국민들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권력자들은 가끔 잊고 있는 때가 있다. 이 총에 의해 사람들은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의 권력을 잃을 수도 있다.
총은 화약을 장전해서 쏘는 총만 총이 아니다. 국민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총이나 무기에는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첫 번째 무기는 입이다.
입이 무슨 무기가 될 수 있겠느냐고 말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입도 총구銃口 역할을 한다.
입에 문 독화살을 쏘아 사냥하는 산속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言]이 화살 되어 입에서 쏟아져 나올 때 이 화살을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입살도 화살[矢]이다’라는 말을 자주한다.
누구라도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면 언젠가는 그 장본인의 신상身上에 해가 돌아갈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 그만큼 사람들의 입은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말막음을 위해 돈으로 상대를 매수할 때에도 우리는 ‘입씻김’ 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요즈음 들어서는 사람들이 입으로 음식만 씹어 삼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씹는다’. 누구든지 사람들에게 씹히기 시작하면 살아남을 재간이 없다. 그만큼 입으로 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도 더 쉽게, 해치울 수 있다. 남들로부터 칭찬받기는 어려워도 비난 받기는 쉬운 일이다.
입에서 나온 말[言]은 말[馬]과도 같아서 잘못 다스리면 성을 내어 ‘말썽’을 일으킨다. 말썽이 생기면 말한 사람이 도리어 자칫 잘못 낙마落馬하는 수도 생긴다. 그러니 어찌 입이 총보다 못하다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말로 직업을 삼는 정치인의 경우에는 오죽하겠는가?
두 번째 무기는 눈총이다.
상대가 올바르지 않거나 잘못을 저지르거나 마땅치 않을 때에 사람들은 우선 눈살을 찌푸린다. 기차표를 살 때나 극장표를 살 때, 지하철을 기다리거나 버스를 기다릴 때 새치기하는 사람은 영락없이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맞는다.
눈총은 찌푸리는 눈살보다도 강도强度가 한 단계 높다. 총이 화살보다 한층 더 위력이 있는 것과 같다.
남의 눈총이 머리 뒤 꼭지에 와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는 분명히 무지無知한 사람이거나 강심장의 소유자이거나 철면피다.
그러나 아무리 철면피라도 잠시 동안은 버틸 수 있어도 눈총을 오랫동안 맞으면서 서 있을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눈총도 총임을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무기는 손가락 총 즉 지탄指彈이다.
지탄 즉 ‘손가락질’이다. 사람들은 무심히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쓰고 있는 말이지만 이 말처럼 무서운 말도 없다.
눈총이 효력이 없다 싶으면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아니하고, 손가락질로 총탄을 쏘아댈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지탄을 받고도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오래 살아남을 장사는 없으리라 여겨진다.
군사용으로 사용하는 총탄에는 오발이나 불발이라도 있지만 손가락으로 쏘아대는 지탄에는 오발이나 불발도 없다. 오직 명중뿐이다.
총탄을 맞아 죽는 사람은 ‘맞은 사람 한 사람’에 국한되지만, 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받아 한번 쓰러진 사람은 살아생전의 당대當代로 끝나지 않는다.
죽은 이후에도 자신은 물론 자손에 이르기까지 ‘죽일놈’이라는 그 손가락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천형天刑과도 같은 연좌제連坐制다.
이 ‘손가락질’은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을사 5적’과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묘는 파헤쳐 지고 자손들은 나라 밖으로 도망을 가고 그 흔적조차 사라지고 만다. 그 만큼 무서운 것이다. 하여 지각 있는 사람들은 바로이 지탄을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을 가다듬고 올바른 행로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사람들의 손가락질이나 입으로 내뱉는 욕이나 눈총은 하나같이 사람을 사회적으로 죽이거나 권력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무서운 무기다.
소지所持허가도 받을 필요가 없다. 소지를 금할 수도 없다. 그로 하여 사람이 죽거나 권력자가 권좌에서 쫓겨나도 누구 하나 처벌할 수도 없다. 오히려 자연권적 기본권으로 보호될 뿐이다.
세상 사람들의 눈살이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언행이나, 입살에오르거나 눈총을 받거나 지탄을 받는 행동들이 자신에게 어떤 보복으로 되돌아가는가를 번연히 알면서도 그러한 행위를 아주 태연하게 연출하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이다.
모아진 눈총에 ‘지탄指彈’이라는 탄알을 장전하여 불을 댕기면, 눈총도 폭발한다. 모든 혁명의 단초端初는 바로 이렇게 눈총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유추해 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유독 정치인들만이 자주 잊고 있는 것을 보면 건망증이야 말로 정치인의 전유물專有物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월간 헌정》(2012.9), 《눈총도 총이다》(2015, 한강문학刊),*일부분 윤문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