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세월호 희생 학생들을 기억하자는 기억시입니다.
<416 기억시 - 2학년 4반 9명 - 김종인>
아름다운 발차기
- 2학년 4반 임경빈
김종인
기억하리, 잊지 않으리, 그 아름다운 발차기
푸른 하늘 높이 차올리는 180도 옆차기
타고난 재능 위에 엄청난 노력을 했지
우리는 알아, 하늘 높이 차올리는 의미를
일요일마다 가까운 산으로 등산도 가고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주던 예쁜 마음
평생 운동할 수 있는 품새를 좋아했지
이젠 알아, 더 높이 차올리려면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을.
한번 이겼다고 잘난 체하지 마라
금메달을 땄다고 우쭐대지 마라
진 사람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리라
운동만이 인생의 다가 아니야
리더십이나 참다운 인간관계가 더 중요해
공부도 하면서 평생 해야 하는 운동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을 때마다
기억하리라, 잊지 않으리라
세상을 향해 차올리는 아름다운 발차기를.
파랑새의 꿈
- 2학년 4반 임요한
김종인
파랑새 한 마리 날아왔네
주의 종으로 삼겠노라 간절한 기도 끝에
신앙으로 키워온 파랑새 한 마리
굴곡 없이 사는 것, 세상에 큰 탈 없이
행복한 삶을 꾸리겠다는 소박한 꿈
아름다워라, 신유(神癒)의 은사를 베푸는 목회자
어린 나이에 삶의 고달픔도 알아버렸네.
인사 잘 하고, 늘 살갑게 굴었지만
어머니를 기다리다 잠들곤 했네
청소와 설거지, 분리수거도 힘들지 않아
어머니를 돕는 급식봉사도 즐거워
온 가족이 화목하게, 가족 여행 가는 꿈
사진관 앞에 걸려있는 가족사진도 부러웠네.
목회자로 마음먹고 신학대학을 목표로
아빠보다 훌륭한 목회자가 되는 꿈
공부도 잘 하고 싶었네 학원도 다니고 싶었네
여행 전날 짐을 챙기며 왠지 불안한 생각
가슴이 설레었네 망망한 바다를 그리며
새 한 마리 아득히 날아가고 있었네
눈부신 봄바다 너머로.
쾌남, 주니어
- 2학년 4반 장진용
김종인
남자는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약속을 어기고, 축구하다 늦게 들어왔지
친구들의 부탁으로 한 게임 더하다가
토요일 다섯 시, 귀가 시간을 넘겼어
친구를 좋아하는 것까지 아빠를 닮은 쾌남, 주니어.
오랜만에 가족 나들이 제부도로 간다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물이 빠지고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가 길을 열었다
아주 오래 기억할 거야, 제부도의 조개구이
목장갑을 끼고 조개를 굽는 쾌남, 아버지.
파도가 생선 비닐처럼 석양에 눈부시다
갔다 올게, 키가 큰 뒷모습이 듬직하다
해맑은 얼굴로 아빠를 쏙 빼닮은 쾌남아
마음에 담아두는 게 사진보다 오래가는 거다
아빠가 건네준 맥주잔을 부딪치며 자, 건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 쾌남, 주니어.
연둣빛 사랑
- 2학년 4반 정차웅
김종인
화랑유원지 단원각, 제야의 종소리가 들린다
해가 바뀌는 순간,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
상남자가 되고 싶어 아빠를 졸라 면도기를 샀어
에니메이션 마니아, 짱구와 스펀지밥, 도라에몽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모르는 아이가 자라
검은 도복을 어깨에 걸치고 검도장에 간다.
사부를 보조하는 교범이다. 벌써 십년째
도장의 꼬마들에겐 교범 이상의 존재
다정하게 격려도 해 주고, 용기도 주고
서툰 동작을 하나하나 고쳐주기도 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얼음땡 놀이도 하는
검도는 어느새 일상이 되고 꿈이 되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욕하지 않는 아이
술이나 커피까지 입에 대지 않는 아이
운동을 오래했으나 결코 싸우지 않는 아이
김치 볶음밥에 토마토 케첩 살짝 넣어
이것저것 섞어 볶음밥을 후딱 해주는 아이
새끼오리 같은 어린 조카들을 몰고 다니더니
요즘 들어 학교 가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처음, 예쁜 선생님을 만났다
비로소 공부가 저절로 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난생 처음 야자도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가슴이 뿌듯했다
꿈 많은 열여덟 연둣빛 같은 사랑아
도장에서, 거리에서, 너를 생각하면서
웃음 짓는다, 추억한다, 힘을 얻는다.
행복은 늘 가까이에서
- 2학년 4반 정휘범
김종인
아, 두려워! 모든 것이 사라질까봐 겁이 나
두런두런 수다를 떨다 스르르 잠드는 엄마
짙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매의 아빠
공부 잘하고, 활달하고, 친구도 많은 동생
마지막 차창 밖으로 익숙한 풍경이 지나가고
기분 좋으면서 눈물 날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누가 들어도 공손한 말투가 나는 좋아
거친 욕설은 싫어, 섬세한 것이 나는 좋아
휘두를 휘(揮)자에 법 범(範) 휘범(揮範)!
모름지기 법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오로지, 올바르고 정직해야 하는 법
운동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아빠에게
등산, 배드민턴, 야구, 축구를 배웠지.
디자인반에서 하는 자동차 디자인이 나는 좋아
겉모습을 스케치하고 색칠까지 하고 나면
자동차는 막 살아서 움직이지, 달려가는 거야
된장찌개랑 제육볶음, 육개장 같은 게 좋아
일요일에는 어김없이 라면을 먹어야지
매콤한 국물, 쫄깃한 면발, 후루룩 먹다보면
행복은 늘 가까이에서 웃고 있지.
수학여행 준비, 처음 가보는 제주도
처음 집을 떠나보는 3박 4일 아, 두려워!
여행 가방을 건네받으며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
엄마는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영원처럼,
인천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문자를 보냈다
사진 많이 찍어서 보내드릴게요. 안녕.
행복은 늘 가까이에서 웃고 있지. 안녕.
노을빛 카랑코에
- 2학년 4반 진우혁
김종인
어쩌다 라면을 끓여주면 ‘사랑합니다’ 하는 아이
라면을 잘 먹고, 잘 끓여, 진라면이라 불린 아이
청소 당번에서 한 번도 도망간 적이 없는 아이
워낙 조용하고, 말이 없어, 몸이 약해 보이는 아이
조용히, 그저 씩 웃어주는 것으로 기억하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으로 생각하는 그러나,
엉뚱한 장난으로 친구들을 웃게 만드는
친구들의 기억에 참 행복했던 청년!
혜빈이란 예쁜 태명으로 애교 많고 다정한 아이
도울 우(佑), 빛날 혁(赫)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
정직하고, 바르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
초등학교 때는 그림이나 글짓기로 상장도 받아오고
할머니가 만들어 준 수수팥떡을 좋아하던 아이.
가족여행을 많이 했다. 주말마다 여행을 다녔다
그림을 좋아했다. 졸라맨 캐릭터에도 빠지고
디자인을 좋아했다. 색채 감각이 뛰어났다
만화가나 시각디자이너가 되는 꿈을 꾸었다
일본의 기타리스트 오시오 코타로를 좋아했다
핑거 스타일로 황혼과 윈드송을 연습하곤 했다.
엄마에게 드린 마지막 생일 선물,
아직도 집 베란다를 지키고 있는 카랑코에
너의 분신인가, 환생인가, 선물인가
평화, 설렘, 사람에게서 사랑받는다 했던가
오묘한 노을빛의 카랑코에가 부활인가
영원할 것처럼, 화사한 꽃을 피웠다.
하얀 손가락
- 2학년 4반 최성호
김종인
저녁 여덟시에 피는 꽃이 가장 아름답다
화정길 물길 따라, 초지동 개천길에도
와동 쪽빛공원, 물왕리 저수지에도 꽃이 핀다
미술관 근처와 화랑유원지까지 화사하게
붉게 물오른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면
퐁퐁퐁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다.
뭉게뭉게 꽃구름이 온 동네를 덮어버린다
집으로 오는 길, 저녁 여덟시 벚꽃이 제일 예뻐요
여성스럽고 곰살궂은 아이의 섬세한 감정
요리를 배워 닭갈비며 스파게티를 해주던 아이
바느질 공방에서 금방 따라하더니 네가 만들어 준
오직, 세상에 하나뿐인 머리핀이랑 머리끈의 추억
천 피스가 넘는 퍼즐을 맞추던 가늘고 긴 손가락
결국 로봇대회에 나가 금상을 따기도 했다.
가늘고 긴 너의 손가락이 시킨 운명
피아노를 배우더니 인터넷으로 악보를 구하고
해품달의 오에스티(OST)를 치기 시작했다 몇 번 듣고,
엄청나게 빠른 곡, 나이트 오버 나이츠(The Night Of Nights)
소낙비가 유리창에 부딪치는 것처럼
폭포가 거침없이 떨어지는 것처럼 격정적이다.
안산 천지에 해마다 벚꽃이 피면
밤 여덟 시에 그 꽃을 볼 수 있을까 너도 없이,
네가 좋아하던 삼각 김밥이나 캔 커피,
우동이나 돈가스, 만두를 먹을 수 있을까 혼자서
너는, 분분히 휘날리는 벚꽃잎처럼 사라지고
야생마처럼 건반 위를 질주하던 하얀 손가락
꽃잎이 진다, 휘날린다,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금진 국화꽃
- 2학년 4반 한정무
김종인
배꼽 왼쪽에 새겨진 국화꽃 무늬가 보인다
동해에서 출발하여 묵호, 망상 지나 옥계까지
자그맣고 고운 백사장 하나, 금진(金津) 마을
바닷가 길은, 어느 나라 둘레길보다 아름다워
물이 깊고 파도가 센 금진항(金津港)에는
커다란 콘크리트 테트라포드가 쌓여 있다
금진 방파제 아래 놀이터는 아이들의 정글짐
따닥따닥 붙은 따개비를 따기도 하고
잔망스럽게 돌아다니는 물송사리 같은
눈부신 고기들이 물을 타고 있었다.
횟집 하는 외가에서 뛰어놀다가
전기밥솥 아래 깔려 새겨진 국화꽃 같은 화상 자국
수정처럼 맑은 공주시 유구천의 추억에서
경기도 일산으로, 파주로, 다시 안산으로 다니다가
친구처럼 사랑했던 강아지, 행복이를 보내던 날
무언가 가슴 아프게,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지
소중한 것이 사라지는 모래지옥 같은 슬픔에 젖었지.
합기도를 배우고, 샌드백을 치고, 드럼을 두드리면서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고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지
하얀 페리호에서 청록색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이 걷히자 환상일까
물송사리 같은 것이 보였다 떼를 지어,
왼쪽 배꼽의 국화꽃 무늬가 욱신거렸다
4월의 따뜻한 햇빛을 받아 비단처럼 반짝이는
금진 방파제의 물송사리 같은 것이 아른거렸다.
영원한 빛으로
- 2학년 4반 홍순영
김종인
눈부신 엄마의 꿈으로 들어온 아이
마냥 밝고 따스하고 부드러운 빛이었다
열세 살 난 누나는 어린 동생이 신기했다
볕 좋은 창가에 놓인 화초처럼 자란 아이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집안은 온통 태풍이 휩쓸고 간 바닷가 같았다.
누나가 아이를 보살펴야 했다
사랑으로 자란 아이는 사랑을 믿었다
아빠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던 반월 저수지길
이제는 아이가 아빠를 모시고 산책을 한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면서
고단한 투병과 기약 없는 재활의 세월 속에
누나는 마침내 결혼하고 집을 떠났다.
엄마에게 각별했다, 애교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엄마를 위해 집안일을 돕고, 요리도 했다
가스 불을 잠그고, 온 집안 문단속을 하고
때로는 팝콘을 사서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하고
화랑유원지를 산책하다가 미술관에 들리기도 했다.
아이는 그림을 그릴 때가 제일 행복했다
만화는 자유로운 상상의 나라였다
졸라맨을 그리다가 만화 동아리에 들기도 했다
밴드에 가입하여 포스터를 그리고, 캐리커쳐를 그렸다.
자연스레, 만화가 장래의 꿈이 되었다.
아이는 따스한 빛으로 어머니 곁에 있다
산책길의 다정한 목소리로 아빠 곁에 있다
아이는 밝은 빛으로 누나와 매형 사이에 있다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사랑스런 눈빛으로
아이는 영원한 빛으로 머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