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詩, 나는 이렇게 썼다 ■
슬픔 또는 깨달음의 과정
양승준 (시인)
한 그릇의 밥이 나를
보리菩提로 이끌 것이라 믿었던
어리석은 때가 있었다
오늘 아침,
이 한 알의 약물藥物이 나를
보리菩提로 이끌 것이라는
새로운 믿음으로
슬픈 공양을 받아들인다
아, 내가 나를
추스르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역겨운 일인가
-「 미카르디스 플러스 정錠」전문
‘미카르디스 플러스Micardis Plus 정’은 내가 십여 년 전부터 복용해 오고
있는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에서 생산하는 혈압 강하제 이름이다. 다른 고혈
압 환자들처럼 나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이 혈압
강하제 한 알을 복용하는 일이다. 처방전을 받기 위해 순환기 내과를 찾을
때면 자신의 혈압 측정표를 들고 담당 의사를 만나기 위해 복도에 대기하
고 있는 많은 환자들은 대부분 4,50대 이상의 나이 먹은 사람들이다. 너른
복도를 가득 채우고 앉아 간호사의 호명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어쩌면 그렇게도 고혈압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그저 놀라울 뿐이
다. 내 질병과 동일한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데서 다소
안심하는 한편, 이른바 같은 배를 탄 듯한 동지애(?)로 그들 모두가 정겹게
느껴진다. 그야말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이다.
그런데 이 혈압 강하제를 죽을 때까지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늘
우울하게 한다. 한두 달도 아닌, 한두 해도 아닌, 자그마치 죽을 때까지라
니! 혈압약이란 게 치료제가 아닌 조절제인 만큼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우
주여행을 한다는 이 첨단 문명시대에 아직 고혈압 치료제를 개발하지 못하
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고혈압 치료제를 개발하기만 하면 억만장
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생각할수록 내 존재가 까마득한 게 서글
퍼진다.
그렇게 ‘서글픈’ 삶을 산 지도 어느덧 십년이 지났다. 그 긴 세월 동안 매
일 아침 같은 시간이면 약속인 듯 약을 투여해주고 있으니, 지금쯤 내 몸은
이 약을 제 몸의 일부처럼 생각하고 있을 게다. 그러다 보니 제때에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이상반응을 일으키는 등 불필요한 짓거리로 나를 골탕 먹
이기 일쑤이다. 제 것이 아닌 것이 시간의 힘을 빌려 마치 제 것인 양 내 몸
안에서 내 몸의 주인 행세를 하는 우스운 꼴이라니! 내가 내 의지대로 내 몸
을 추스르지 못하고 겨우 680mg의 작은 알약에 의해 내 몸이 추스려진다
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비참하고 초라해진다.
내 몸이 고혈압에서 자유롭지 못한 체질임을 알게 된 것은 십여 년 전,
어느 여고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입시 지도의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아님 집안 내력이었는지 어느 가을날 오후, 강의를 하던 중
뒷목이 댕기고 어지럽고 구토증이 생겨 잠시 강의를 중단하고 학교 보건실
로 내려가 혈압 측정을 받아본 다음에야 나도 평생을 혈압약과 함께해야
하는 운명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죽을 때까지 혈압약을 복용해야 하는 것이 내겐 슬픔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깨달음의 한 과정이 아닌가 싶다. 내 의지대로 약을 중단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이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운명인 듯 혈압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느 날 나는 나
와 함께하는 혈압약에다 나만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시 작업을 하게
되었다.
나의 선친은 극작가 고동율(高東栗, 필명, 196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로, 4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의 죽음은 어린
우리 3형제를 공부보다는 존재 문제에 관심 갖게 하였으며,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를 교내에서 유명 문학 소년으로 활약하고 있던 친구들의
뒤꽁무니를 좇게 만들었다. 그 후, 우리 3형제는 모두 국문학을 전공하게
되었으며, 동생 양승국은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내 젊음은 가난과 외로움에서 온종일 허우적거렸으며, 내
시는 이러한 내 삶을 벗어날 수 없었다. 가난하고 외롭지 않은 시인이 있을
까. 아마도 모든 예술의 출발점은 가난과 고독일 게다. 나도 가난이 싫어
서, 지독한 가난을 대물림해준 세상이 싫어서, 그리고 낭떠러지 같은 세상
에 나 혼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외로움이 싫어서 나는 시를 썼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문학이라는 유산은 온전히 내 것이 되기는커녕 자꾸
빗나가기만 하였다. 그럴수록 내 어리석음과 재주 없음을 탄식하는 시간들
이 많아졌으며, 무엇을 위해 내가 시를 쓰는 것인지, 과연 목숨을 걸고 한
판 진검 승부를 겨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건지 점점 오리무중이 되어 가기
만 했다. 숱한 좌절과 갈등 속에서도 내가 지금껏 시를 버리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하루 세 번 / 한 끼도 거름 없이 / 너를 향해 머리 조아리는 / 이 거룩한
시간, // 밥은 곧 왕王이다
-「 밥은 곧 왕이다1」전문
‘하루 세 번 / 한 끼도 거름 없이’ 내 몸을 지켜주는 ‘밥’. 그렇다면 ‘밥’
을 향해 ‘머리 조아리고’ 식사하는 모습은 결국 ‘밥’을 마음으로부터 ‘왕’
으로 받들고 있다는 증좌가 아닐까. 사랑하는 식솔들의 허기를 채워주기
위해 거침없이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이 시대 가장들의 전쟁 같은 삶을 떠
올려본다면 ‘밥’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왕’이 아니겠는가. ‘ 목구멍이 포
도청’이라는 속담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먹고 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이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우리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밥’이 바로 우리
가 평생 모셔야 할 ‘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하루 세 번 / 한 끼도 거름
없이’ 내 안에 ‘왕’을 모시고 살다 보면 언젠가 ‘보리’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얼토당토않은 욕심이지만, 생의 종착지에 이르렀을 때
‘보리’는 커녕 ‘좁쌀’의 경지라도 맛볼 수 있기를 꿈꾸며 만든 작품이 바로
‘밥은 곧 왕이다’ 연작시이다.
‘밥’이 나를 ‘보리’로 이끌 수 있기를 소망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 ‘밥’
대신 ‘혈압약’이 나를 ‘보리’로 이끌 수 있기를 소망하며 살게 된 지금, 나
는 과연 얼마나 ‘보리’에 가까워졌을까. ‘미혹함이 없다’는 불혹不惑을 지
나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마저도 지난 지 오래인데, 아직도 나
는 ‘보리’의 경지에 다다르겠다는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이 어리석은 중생이여.
‘보리菩提’는 산스크리트어로 수행자가 최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깨달
음’ 또는 ‘앎의 경지’를 의미한다. 부처님께 정성껏 재물을 공양하는 선남
선녀들처럼 아침마다 내 몸에게 내가 바치는 알약 한 알의 숭고함! 늙고 병
든 내 몸을 내 의지대로 통어함으로써 언젠가는 ‘보리’가 되거나 ‘도솔천’
에 도달할 수 있기를 꿈꾸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내가 나를 추스르지 못하
는’ 일은 점점 더 허다해질 것이고, 그에 따라 내 자신에 대한 모멸감 역시
늘어날 것을 생각하면 그건 분명 견딜 수 없는 ‘역겨운 일’이리라.
결국은 욕망이 문제이다. 인간 문명을 발전시키는 동력도 욕망이고, 인
간 세상을 타락시키는 원인도 욕망이다. 삶이 있기에 욕망도 있고, 욕망이
있기에 삶도 존재한다. 욕망은 모든 생성의 원천이다.
‘도솔천’에 가고 싶은 것도, ‘ 보리’가 되고 싶은 것도, 욕망을 덜어내기
위한 글쓰기도, ‘ 텃밭에 나가/ 주먹만큼씩 자라났을 감자 몇 알 캐’(' 하지’
부분)는 것도, 시집을 출판하는 것도 결국은 욕망이다. 결코 욕망을 버릴
수 없는 어리석은 내 존재의 숙명적 한계를 알면서도 욕망을 버리겠다고
발버둥치는 이 무량한 슬픔을 나는 어찌 해야 하는가.
양승준 시인
* 1992년《시와시학》및 1998년《열린시조》로 등단.
* 시집 :『 이웃은 차라리 없는 게 좋았다』,
『 사랑, 내 그리운 최후』,『 영혼의 서역』
* 저서 :『 한국 현대시 500선 - 이해와 감상』상·중·하 등
* oldcame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