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입히다 : 예술과의 교류
이브 생 로랑을 예술의 세계로 눈뜨게 한 것은 연극 [아내들의 학교(L’Ecole des Femmes)]였다.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는 모던 아트와 현대 예술 작품의 열렬한 수집가였다. 이런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열정은 패션 디자인의 원천이 되어 독창적인 패션 디자인으로 창조되었다. 이브 생 로랑은 다른 예술가들과 활발한 교류와 협업을 통해 새로운 컬렉션을 완성하기도 하고, 평소 존경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재로 삼아 오마주한 컬렉션을 창조하는 등 예술가와 예술 작품으로부터 얻은 영감을 정교한 재단, 쿠튀르의 수공예 기술, 천부적인 색채 감각으로 걸어다니는 예술 작품, 입을 수 있는 예술로 재탄생시켰다.
이브 생 로랑의 예술작품을 소재로 한 컬렉션의 첫 신호탄은 1965년 가을에 발표한 몬드리안 드레스였다. 신조형주의 화가였던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의 회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울 저지 시프트 드레스(shift dress)는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미국의 <우먼즈 웨어 데일리(WWD)>는 이를 두고 ‘패션의 왕 자리에 올랐다’고 평가하였다.
1966년에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영향을 받아 달, 해, 여성의 몸 등을 이용한 강렬한 색상의 팝 아트(Pop Art) 의상을 선보였다. 앤디 워홀은 이브 생 로랑이 즐겨 어울리던 예술가 중 하나로 후에 이브 생 로랑을 찍은 폴라로이드 스냅 사진을 가지고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이브 생 로랑은1969년 조각가 클로드 라란느(Claude Lalanne)와 함께 조젯 크레이프(Georgette Crepe) 소재의 드레스에 청동 ‘가슴’ 조각을 단 드레스와 ‘허리’ 조각을 단 드레스를 발표하였다. 옷으로 감추어져야 하는 인체 부위가 청동으로 만든 인체 조각으로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의 드레스는 놀라운 아이디어의 산물이었다.
이후 1979년 ‘피카소, 댜길레프’ 오마주 컬렉션을 시작으로, 1980년 ‘기욤 아폴리네르, 장 콕토, 루이 아라공’, 1981년 마티스 & 페르낭 레제’, 1987년 생 로랑 리브 고슈 라인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1988년 ‘조르주 브라크’ 오마주 컬렉션까지 거장 예술가와 작가들의 작품들이 이브 생 로랑을 통해 아름다운 의상으로 탈바꿈되었다. 특히 1988년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모티브로 한 재킷은 오트 쿠튀르의 자수 대가 장-프랑수아 르사주(Jean-Francois Lesage)와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해바라기 문양은 35만개의 스팽글과 10만 개의 자개가 600여시간에 걸쳐 수놓아져 화제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브 생 로랑은 패션 디자인뿐만 아니라 발레, 오페라, 연극 무대와 무대의상 디자인, 영화 의상으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1957년 롤랑 프티 발레단(Roland Petit’s Ballet)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Cyrano de Bergerac)]의 무대 의상을 디자인하였고 이후 롤랑 프티 발레단과 꾸준히 협업하여 무대의상을 디자인하였다. 1963년 영화 [핑크 팬더]의 배우 카퓌신(Capucine)의 의상, 1966년 영화 [아라베스크]의 소피아 로렌(Sophia Loren) 등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하였다. 늘 아름다운 여인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이브 생 로랑이 실제로 진정한 우정을 나눈 사람은 여배우 까뜨린느 드뇌브(Catherine Deneuve)였다. 생 로랑은 그녀를 뮤즈로 삼아 주요작 [세브린느](Belle de Jour, 1967), [열애](La Chamade, 1968), [미시시피의 인어](La sirene du Mississipi, 1969), [리자](Liza, 1972), [악마의 키스](The Hunger, 1983) 등의 영화 의상을 디자인하였다.
이브 생 로랑은 “나는 2류의 아트(minor art)를 했으나 그것은 결국 결코 2류의 것이 아니었다”고 밝히기도 하였는데, 그의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디자인은 패션을 예술로 격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예술성을 높이 인정 받아 1982년 12월부터 1984년 9월까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이브 생 로랑: 25년간의 디자인(Yves Saint Laurent, Twenty Five Years of Design)’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는데 생존 패션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열린 회고전이었다. 이후 베이징, 파리, 모스크바, 도쿄,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전 세계에서 전시가 이어졌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에는 결승전 게임 전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각국에서 선발된 모델들이 300벌의 의상을 선보이는 대규모 패션쇼가 전세계로 생중계되기도 하였다. 프랑스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2000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코망되르 등급, Commandeur de la Legion d'honneur). 이브 생 로랑은 2002년 파리의 퐁피두 센터에서 이브 생 로랑 디자인 하우스의 40주년을 기념하는 패션쇼를 마지막으로 65세 나이에 은퇴하였고 2008년 6월 1일 지병인 뇌종양으로 영면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