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의 인도 스리랑카 배낭 여행기 34(폰디체리)
01월 30일(토) : 폰디체리 최악의 열차였다. 모두들 뒤척이며 뜬눈으로 새벽을 맞이하였다. 현지인들 틈에서 좋은 추억이 되었길 바라는 마음이다. 4시에 일어나 내릴 준비를 하였다. 5시40분에 정확하게 빌루뿌라역에 도착하여 내렸다. 모두 내린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택시를 타고 폰디체리 Ginger호텔로 갔다. 호텔은 인도에서 만나는 최고급 호텔이다. 전자키를 사용하는 호텔이다. 룸을 배정하고 올라오니 8시반이다. 룸도 고급 호텔답게 깨끗하여 좋다. 어젯밤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다. 사워를 하고 아침을 해결한 후 10시에 집합하여 릭샤를 타고 오오로빌로 출발하였다. 30여분 시골 길을 달려 릭샤가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에서 내려 바로 옆에 있는 안내소로 가서 오로빌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안내소를 나와 오로빌 본부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오로빌은 스리 오로빈도의 제자 마더가 세운 인류의 이상공동체를 꿈꾸는 곳이다. 1968년에 지어지기 시작해서 아직도 미완성된 채로 있다. 외국인들의 헌납에 의해 지어져 가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인 오로빌리언도 20여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오로빌에는 ‘Free Store'라는 특별한 곳이 있는데 누구나 필요한 물건을 바꿔가는 곳으로 화폐가 사용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공동체적인 성격을 띤 Free Store는 필요한 물건은 가져갈 수 있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조건 없이 내다놓을 수 있는 곳이다. 모든 경제활동은 전산화된 시스템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로빌 밖으로 나갈 때가 아니면 돈이 필요하지 않다. 오로빌에는 현재 1,700여명의 오르빌리언이 살고 있다고 한다. 무더운 날씨다.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을 택하여 걸었다. 입구가 눈에 들어오며 멀리 축구공 모양의 거대한 마티르 만다르가 보인다. 금장을 한 마티르 만다르는 명상의 성소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실제로 만티르 만다르는 축구공 같은 원형 조형물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조형물 속에 계단을 만들어 가운데 천정에 메달려 있는 에머널드가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가 내려 올수 있다고 한다. 워낙 방문객이 많아 이름처럼 명상의 명소가 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멀리서 만티르 만다르를 바라만 보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국제선타에 들려 목을 축이고 쉬었다가 폰디체리 시내에 있는 오로빈도의 아쉬람으로 갔다.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주택가의 한 가운데에 오로빈도 아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스리 오로빈도는 1872년 캘커타 상류층의 자제로 태어나 7살 때 영국으로 건너가 캠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21살이 되어 인도에 돌아왔다. 인도에 돌아온 그는 바로다 대학에서 교수로 시작하여 총장으로까지 재임하며 주목받는 젊은이가 되었고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운동에도 참여하게 된다. 1906년에 고향 캘커타로 돌아가 독립 운동을 하다 투옥되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명상요가의 수행에 빠져들어 정치가로부터 수행자로 변신하게 된다. 1910년 캘커타의 경찰들을 피하여 폰디췌리로 내려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는 요가의 생활화와 봉사 행을 위해 인도 델리에 오로빈도 요가 아슈람(요가 수도원)을 세워 요가의 보급과 사회봉사활동을 하였으며 여러 가지 요가를 하나로 통합하여 현대화하였다. 이곳 오로빈도 아쉬람이라 불리는 폰디췌리의 인테그랄 요가 아쉬람은 프랑스의 여인 미라 알파사에 의해 자리 잡았으며 그녀가 폰디췌리에 처음 도착하여 오로빈도 선생과 만난 것은 1914년이었으며 6년 후 1920년에 다시 찾아와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평생을 같이 했다. 오로빈도 선생은 미라 알파사 여사에게 아쉬람의 모든 것을 일임하고 1926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날 때(1950년)까지 칩거하며 많은 저술을 남겼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성스러운 곳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여기에서도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화단이 잘 가꾸어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오로빈도의 무덤주위를 둘러쌓고 앉아서 기도와 명상을 하고 있었다. 실내에는 오로빈도와 마더의 사진과 엽서 그리고 각종 저서와 명상음악을 판매하는 상점이 있다. 명상과 기도의 요람 아쉬람은 경건함으로 가득하였다.
조용히 아쉬람을 빠져나와 해변으로 갔다. 해변은 파도가 드높다. 해변을 거닐다 점심 식사를 할 곳을 찾아 해매다 적당한 곳에 들려 현지식으로 점심을 해결하였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느린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점심을 먹고 공원을 들려 시장으로 갔다. 꽤 큰 시장이다. 과일이랑 쌀이랑 일용품을 사가지고 호텔로 돌아 왔다. 호텔로 돌아오니 먼저 들어와 쉬고 들 있다.
축구공 모양의 마티르 만다르
폰디체리 해변
폰디체리 해변
폰디체리 해변의 등대
폰디체리 해변 간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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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년친구 원문보기 글쓴이: 천년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