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첫 상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침 9시에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 시간 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노트북 앞에 앉아 구인 공고를 보고 있으니 밴드에 게시물이 올라왔다는 알림이 떴다.
내용은 상담 내용은 자녀의 진로문제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중3인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을 두고 있는 가정주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의 아들이 특목고에도 갈 수 있는 수준인데 갑자기 실업계인 항공과학고에 가겠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 학교는 학비와 교재, 교복이 다 무료고 품위유지비도 나와 부모 부담도 덜어주고 기계를 만치기 좋아하는 자기의 적성과도 맞고 졸업 후에 자동으로 취업이 되고 정년도 보장이 되어 대학교는 안 가고 그 학교를 가겠다고 하니, 이 일을 어쩌나요? 자기는 꽃을 피우는 뿌리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는데 왜 내 자식이 뿌리가 되겠다고 하는지 속상합니다.”
나는 항공과학고면 특목고인데 왜 실업계라고 하는지 이유를 몰라 아이폰으로 검색을 하니 예전의 공군기술고등학교로 중학 시절에 집안 형편이 안 좋은 같은 반 학생 2명이 그 학교에 진학한 것이 기억이 났고 그중에 한 명은 경남 진주에 발령을 받아 근무를 할 때 우연히 만나 저녁을 했는데, 당시 준위로 얼굴에 여유가 넘쳐 흐르고 전역하면 지리산에 태양열 친환경 주택을 지어 살고 싶다는 말을 하여 내심 부러워 했던 기억이 나서 답변을 썼다.
“일단 어린 나이에 그렇게 생각이 깊은 아들을 두신 것이 부럽습니다. 말씀하신 학교는 아드님이 말한 대로 재학 중 품위 유지비도 받고 졸업 후에 공군에 기술부사관으로 자동 취업이 되고 정년이 보장되는 요즘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기회를 제공하는 학교입니다. 저의 중학교 동창도 그 학교를 나왔고 2년 전 진주 근무 시 만났는데, 연봉도 중견기업에 다니는 나와 비슷했고 그 밖에 환상적인 군인 연금 등 국가에서 주는 각종 혜택을 더하면 당시 중견기업 직원이었던 저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드님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 어머님 노후에 품위 유지비도 넉넉하게 드릴 것이고 의무 복무를 마치면 민간 항공사나 공항에 취업할 수도 있으니, 아들의 선택을 믿고 응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답장을 보내고 약 3시간 뒤에 답글이 올라왔다.
“저는 의사를 시키고 싶은데 기름이나 만지겠다고 하니 엄마로서 속이 터집니다!”
나는 “아직도 이런 된장녀 엄마가 있나?”하며 답글을 썼다.
“혹시 아드님의 의사는 물어보셨나요?”
“네. 본인은 피만 보면 징그러워서 팔에 힘이 빠져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해요. 그런 놈이 뭔 군인을 하겠다고 하는지 ...”
나는 얄미운 생각이 들어 쏘듯이 답글을 썼다.
“왜 의사를 시키려고 하는 거죠?”
“그거야 뭐...친척 애들은 다 특목고, 명문대 나와서 국내외 대기업에 다니고 교수도 하는데 우리 애가 의사가 되면 체면도 서고 장가도 좋은 집안에 갈 수 있고 또 부모 노후에 넉넉하게효도를 할 수도 있고 그런거죠 뭐...”
나는 짜증이 확 밀려와 상담이고 뭐고 상담을 빨리 정리하고 싶어 작정을 하고 답글을 썼다.
“어머님 얘기를 들으니 결국은 자신을 위해서 아들의 의사는 무시하고 의사를 시키겠다고 하는 거네요. 남들이 보기에는 성공한 인생을 살아온 것 같이 보이는 50대의 의사나 변호사 중 우울증에 걸려 정신과 병원에 가서 부모가 꼴 보기 싫다며 그 나이에 부모를 원망하는 중년 남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설사 아드님이 어머님 강요에 못 이겨 의사가 되었다고 해도 그런 중년 아저씨들 같이 늙어서 부모를 원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여운을 두고 방점을 찍었다.
“자식은 독립된 인격체이지 부모의 뽀다구 용도가 아닙니다. 이상.”
바로 답장이 왔다. 확실히 여자들은 손놀림이 빠른 것을 실감했다.
“뭐 이런 엉터리 심리상담사가 있어? 유쾌, 상쾌, 통쾌가 아니고 불쾌, 똥쾌, 재수없쾌한 사이비 심리상담사네... 퉤, 퉤.”
첫 상담을 보기 좋게 실패하고 나는 실의에 빠져 매일 술에 쩔어 지내고 있는데 어디선가 10만원이 이체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누가 돈을 보냈나 확인을 하니 김말희라는 여자였다. 그리고 바로 밴드 일창에 글이 들어와서 열어 보니 그때 교양 없던 아줌마였다.
“선생님. 방금 10만원 이체한 김말희입니다. 그때는 정말 제가 미쳤는지 큰 결례를 했습니다. 우리 애가 진로 문제로 저랑 싸우다가 가출을 했는데, 전화도 안 받고 카톡도 안 읽네요. 다행히 마산으로 이사 간 친한 친구집에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었는데 선생님이 우리 애랑 상담하셔서 집에 돌아오게 해주세요.”
나는 바로 응답을 했다.
“아들이 돌아오면 아들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약속을 하실 겁니까?”
“네.”
나는 전화를 끊고 바로 아줌마가 준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카톡을 했다.
“오준성 학생. 나 엄마랑 진로문제로 상담을 했던 심리상담사 아저씬데 톡이나 할까?”
바로 답신이 왔다.
“안녕하세요.”
“엄마한테 준성이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확답은 받았으니깐 이제 집에 돌아오지!”
“이제 엄마한테 안 속아요.”
난 이 아이가 엄마하고의 신뢰 관계가 깨진 지가 오래된 것을 직감했다.
“너 항공과학고를 가던 졸업을 하고 공군에 가던 너랑 마음이 안 맞는 사람을 극복 못 하고 회피하면 절대 거기서도 적응을 못 해. 부모의 허락 없이 그 학교에 지원 할 수도 없고 ”
“그런데 너 엄마한테 항공과학고 가려는 이유를 들으니 속이 깊던데.”
준성이가 대답했다.
“사실 그 학교에 갈려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부모와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떨어져 살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서 갈려는 거에요. 원체 시시콜콜 간섭하니 자유의지가 말살 당해서 제가 인간이 아니고 반려견 같다는 생각이 들을 정도에요!”
나는 요즘 애들이 쓰는 표현이 우리 때 보다 고급스럽다는 생각이 들며 놀랐다.
“그래. 너 나이에 비해 생각이 참 깊어서 아저씨가 마음에 든다. 내가 엄마한테 또 신신당부를 할 거니깐 일단은 You must come back home!”
나의 아재 개그에 준성이가 누그러진 것 같은 답신을 보냈다.
“ㅋ 알았어요~”
나는 준성이와 톡을 마치고 엄마에게 바로 거짓말을 보태 일창을 했다.
“준성이는 돌아갈 겁니다. 다만 어머님이 또 약속을 어기면 제 경험상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제 의뢰인 중 아들은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는데 아들이 의대에 가게 해달라고 고등학교 3년 동안 아들이 공부하는 동안 뒤에서 108배를 해서 결국 의대에 들어갔는데 아들이 의대 본과 3학년 때 어머니에게 ”이제 당신이 지긋지긋하고 꼴 보기도 싫어 이제 당신을 떠나겠습니다!“란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가출을 하고 어머니는 놀라서 아들을 찾아 떠돌다가 미쳐 자살을 한 사례가 있는데, 준성이가 그 학생과 성격이 비슷한 것 같더군요!”
물론 몇 년 전 인터넷에서 본 이야기를 나의 경험담으로 지어낸 것이지만 효과는 컸다.
“어머 세상에! 그런 일이.....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아줌마에게 일창이 왔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덕분에 아들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동안 나에게 이렇게 불만이 많았는지 알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내 주장을 밀어붙였으면 영원히 못 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아들이 원하는 대로 항공과학고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사실 애 아빠 사업이 망해서 의대에 보낼 형편도 안 되고 저는 친척들한테 손을 벌려서라도 의대에 보낼 생각이었는데 아들은 나보다도 생각이 깊어 학비가 무료고 품위 유지비도 나오고 졸업 후 바로 취업이 되는 학교를 알아보았더군요. 이렇게 우리 아들이 생각이 깊은지 몰랐네요.
그동안 자식을 내 소유물로 생각해서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이룰 대상으로만 취급한 나를 발견해서 부끄러웠고 이번 일을 계기로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애 아빠도 대학을 나와 세계적인 대기업에 다니다가 명퇴를 하고 사업을 했는데, 남의 눈에 비치는 화려함, 명성 다 필요 없고 자기만족과 안정이 최고라며 아들을 대견해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하나가 된 기분이 들어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늘 행운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준성이 엄마 드림.”
첫 상담을 우여곡절 끝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하고 자신감이 붙은 나는 남은 인생을 심리상담 전문가로 헌신하겠다는 결심이 서며 심리학 관련 서적들을 읽고 유튜브에서 심리학 강의를 들으며 다음 상담을 위한 내공을 쌓았다.